〈 370화 〉32.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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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부로 1등 시녀 임서현을 황궁 비서실의 『비서실장』으로 임명, 본궁을 받치는 [귀인(貴人)]임을 선포한다."
유은이 단상 너머로 임명장을 건내주고는 손을 내밀어 서현과 악수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으례 할법한 말을 한 서현이 꾸벅 인사하더니 뒤로 돌아 좌중을 한 번 훑어보고 다시 고개를숙였다.
앞줄에 앉아있던내빈들과 그 뒤로 쭉 앉아있는 수천의 시녀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물론 정말로 그녀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이자리에 있는 90%이상의 사람들은 속으로 엄청난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황궁의 『비서실장』이 되면 모든 시녀들을 총괄해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궁의 2인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은은 그녀를 임명하기 전, 중국에 대한 응징을 『비서실장』에게 위임한다는 말도 했었다.
즉, '그' 임서현이 중국에 대한 응징을 전적으로 위임받는다는 의미다.
그게 도대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지, 사람들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임서현 이후에도, 황궁법관이던 이소냐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하고 이유나를 『사업부장』, 유소라를 『황궁어의부장』, 이은주를 『제국과학기술부장관』, 으로 임명하는 등 여러 인사를 임명하고 정식으로 궁의 '활동재개'를 천명했다.
지난번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중국을 응징하고 거대한 던전재난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는 것을당면한 목표로 삼는다는 것을 발표하고, 동시에 던전협력기구 총회장과의 긴밀한 회의를 통해 세계구호에 있어서만큼은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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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죠? 지구 망한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화성으로 갈까요?"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아니! '그' 여자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했잖아요! 하는 말만 들어보면 그냥 2인자라고요! 게다가 중국에 대한 건 맡기겠다는 말까지 했으니...히익!"
"시끄러 인마."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후배기자에게 꿀밤을 먹여준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역시 떨리는 건 마찬가지.
상대적으로 온화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유소라가 날뛰었을 때에도 일본이라는 국가가 박살이 났는데, 궁최악, 아니 '인류'를 들먹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최악의 여인인 '임서현'이 중국에 대한 응징을 위임받은 것도 모자라 궁의 2인자, 『비서실장』이 되었다.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국에 닥칠 재앙을 넘어간다 쳐도, 앞으로 세계는 공식적으로 하렘궁의 2인자가 된 임서현을 감당해야만 한다.
도대체 어떤 재앙이 인류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말입니다..."
"또 뭐?"
"그 인간들, 『장관』이라고 했잖아요."
"그게 뭐 어쨌다고."
"이제 진짜로 '국가'로서의 행동을 하겠다는 의지를보여준 거 아니겠어요? 이러다 땅 내놓으라고 전쟁을 걸어올지도 모른다고요! 그럼 제일 위험한 건 당연히 우리나라고!"
"...설마 그러겠냐.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유은 본인이 은혜를 갚겠다고 했잖아. 기자회견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걸 확 뒤엎겠어?"
"그,그래도...."
"구호복지부인가 뭔가 만들어놓고 던전현상을 해결하겠다고 천명했잖아. 막나가긴 해도 언론을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럼 적어도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진 않을 거야. 안심해라."
"으으...."
불안과 초조.
선배가 건내는 위로의 말에도 그는 진정할 수 없었다.
"역시 화성으로 가야...."
"지랄한다 진짜. 화성은 무슨."
"테슬라님! 제게 축복을!!"
"닥쳐."
만세삼창하듯 하늘을 보며 외치다 뒤통수를 얻어맞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취하는 행동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절망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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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실태 보고해줘요."
공식적으로 비서실장으로 임명되고 일주일 정도 후, 서현은 지금까지 파악된 실태를 보고하게 했다.
"현재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은 약 5만 명으로서, 그 중 3천 명은 이번주에 수료하고, 추가로 6천 명이 이번달에 수료할 예정입니다."
"그럼 총 9천 명 정도가 이번 달 내로 수료한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 9천 명까지...몇 기수가 되는 거죠?"
"3기입니다."
"그럼 4기부터는 교육기간을 6개월로 늘리겠어요."
갑자기 교육기간을 세 배이상으로 늘린다는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앞으로 특별히 주인님께서 신경쓰시거나, 바로 곁으로 들이셨다거나 하는 특이사항이 아니라면, 일단 교육에리어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고 일정 등급 이상으로 수료한 자들에 한해 시녀로 삼아 주인님께 올릴 거예요."
"그럼...그 등급을 달성하지 못한 것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확실한 기준은 추후 회의를 통해 정하겠지만, 일단 기준에 미달한 것들은 육변기...아 순화했지. 화육(花肉)으로 삼고, 그마저도 안되겠다 싶은 것들은 전부 폐기처분할 거예요."
여인들은 조금 황당한 마음이들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서현에게 불려 이곳까지 온이상, 기본적인 마인드는 비슷비슷했고, 유은에 대한 충성도 역시 만땅이었다.
"선별청장님?"
"예."
"이번에 수료하는 것들과 한 달 이내로 수료하는 것들까지해서 이번 달 내로 9천 명이 확충되니 지금있는 인원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기존의 시녀들 중에서 충성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선별해줘요. 기간은 내일 18시까지."
"범위는 어느정도로 잡습니까? 지금 있는 시녀의 범주가 너무 커서...."
"당연히...전부에요. 경찰쪽이든 검찰쪽이든 어느쪽이든 상관 없이 시녀라면 전부 범위에 넣어요. 누가됐든 상관없이 교육이 필요하다 싶으면 명단에 넣는 거예요. 예전부터 어느 정도 해왔던 일이니 크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서현은 기관별로 이런저런 명령을 내려놓고 회의를 해산했다.
그리고는 곧장 몇몇 시녀들을 데리고 모종의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황제인 유은과 동행하지만, 지금처럼 유은의 일정이 없을 경우에는 본인의 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장관급』인사인 만큼 그럴때면 그녀 또한 의전을 받게 되는데, 이 '의전'은 그녀가 장으로 있는 황궁 비서실 산하기관 '의전실'에서 담당하며, 각 인사마다 몇 명이 어떻게 의전을 서는지까지 모두 메뉴얼로 정해져 있다.
가장 윗사람인 유은의 경우 150인에 달하는 비서들이 의전을 서게되며 특히 이 150인은 명단이 고정되어 있어 항상 최고급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그의 부인인 이소냐, 이유나,유소라는 120인의 의전을 받는다.
그리고 『장관급』인사인 임서현의 경우 100인의 의전을 받게 되어 있어 그 차량행렬만 해도 엄청나다.
당연히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의전을 서현이 하고싶어서 하는 건 아니었고, 유은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역시 너무 많아."
유은이 조금 더 유능하고 이런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면, 이번 의전을 결정할 때 조금 더 고민했을 것이다. 최소한 행사와 같은 특별한 때 하는 의전과, 오늘과 같은 평상시 의전을 구별하는 것 정도는 했었겠지.
하지만 그런 게 없다.
서현의 앞에는 100명이나 되는 비서들이 배정된 차량 앞에 서 있었다. 그 대수만도 20대가 넘었으니 이게 도대체 평상시에 할법한 일이겠는가. 도로나 막히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주인님의 명령이시라."
"...나중에 다시 건의드리도록 하죠."
유은이 의전에 대해 명령을 내렸을 때, 당연히 서현이 여러모로 의견을 냈다. 하지만 유은은 '본격적으로 궁의 활동재개를 천명할 건데, 뭔가 폼나고 엄청난 걸 해야하지 않겠어? 막 의전도 엄청나게 하고. 그래야 사람들이 우와! 하고 우러러보는 거지.' 라며 무시했고, 그 결과가 바로 눈 앞의 혼돈이다.
본의 아니게 도로를 난장판으로 만들며 서현이 도착한 곳은 강남경찰서 앞. 상당히 커다란 규모의 경찰서로 20여대의 검은차량이 들이닥쳤다.
무분별한 진입을 막도록 관리인과 차단봉이 설치돼 있었지만, 부수고 그냥 들어온 것이다.
"뭐,뭐야?"
제지하려 했지만 막무가내.
결국 소속 의경과 순경들이 진압봉을 들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검은 차량에서 시녀복보다 좀 더 점잖게 생긴 정장을 입은 여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하렘궁 같은데?"
요즘 같은 시대에 저렇게 예쁜 여자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무더기로 날뛰면서 일국의 경찰서에 무대뽀로 쳐들어올 정도의 깡을 지닌 곳이라면 한 곳 밖에 없다.
의전에 익숙하지 않은 서현이 직접 문을 열고 나오자, 막 문을 열어주려던 여인이 엉거주춤 옆으로 비켰다.
서현이 데려온 집행부 소속 비서들까지해서 100명이 넘는 여인들이 경찰들과 대치했다.
"흐음."
긴장으로 잔뜩 경직된 채 자신들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을 쭉 훑어본 서현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누군지 아시죠? 여기가 강남이라는 것도 아실거고."
"...."
경찰들이 침묵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인들의, 특히 서현의미모에 압도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괜히 나섰다가 찍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소란속에서, 이곳의 서장인 신도희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죠?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오다니."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서현을 바라보는 그녀.
정확히는 조금 두려움이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부하들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공포를 표현할 순 없었다.
"하렘궁의 황궁 비서실장으로서 봐야 하는 분이 있거든요. 들어가도 되죠?"
순간 도희의 등으로 오싹함이 스쳐지나갔다.
서현의 악랄함을 곁에서나마 지켜본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를 안으로 들이면 안 될 것같았다.
물론 서장으로서의 체면도 있고.
"...미리 연락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시면 곤란한데요. 여긴 경찰서예요. 대한민국의 공권력이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 드리잖아요. 정중하게."
서현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또각또각 걸어나왔다.
그럴때마다 그녀의 뒤에 있던 집행부원들도 함께 움직였고, 의전들 역시 경찰들을 위협하듯 움직였다.
"오,오지마!"
경찰 중 한 명이 외쳤다.
아무래도 형사인 듯했다.
하지만 서현은 멈추지 않았고, 경찰들의 코앞까지 도착했을 때, 도희의 힘없는 말이 들려왔다.
"...비켜주세요."
거의 항복선언에 가까운 말.
경찰들은 망설였지만 결국 서장의 명령에 따랐다.
"고마워요."
서현은 싱긋 웃어보이고는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진 경찰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도희가 있는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잘생각했어요. 조금만 더 뻐팅겼으면 당신도교육대상에 넣으려고 했거든요."
싸악.
아무도 모르게 그녀귓가에 속삭인 서현의 말에 지난날의 참상이 떠오른 도희가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