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66)화 (365/517)



〈 366화 〉32. 행보

이걸 신뢰라고 해도 좋은 것인지, 너무나도 강렬한 말에 유은이 머리를 긁적였다.
전 세계적으로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 그였지만, 애초에 무슨 깊은 생각이나 사상을 가지고 벌이는 일들이 아니다. 그저 본인의 욕망에 솔직하면서 그를 위해 남들이 피해보는 모습에서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곧바로 닥쳐오는 감정에는 약한 것이다.

그의 여인들이 보내오는 사랑의 속삭임이라던가, 맹목적인 충성이라던가, 아니면 눈 앞의 대통령처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믿음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맞이하고 있으면 콩알만큼 있는 양심이 움찔거린다.



"그러고보니 민예린씨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겠다고 하셨던  같은데."
"이여사님께 그런 제안을 했었죠. 아직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만. 결정된 겁니까?"
"글쎄요. 들리는 말로는거절했다고 하던데요."
"거절...신기하군요. 시녀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강제로' 시녀가 된 것이지만, 대통령은 신경 쓰지 않는다.

"뭐, 시녀라 해도 본인의 의지 정도는 있으니까요. '거절의사표출'정도는  수 있죠."
"그럼 유은씨의입장은 어떤 겁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입장이고 뭐고...애초에 법무부장관이 무슨 역할을 하고 얼마나 힘을 갖고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요. 그저 사법기관의 꼭대기?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솔직히 우리한테 그런 게 필요한지도 의문이고...."

 민예린이 아니어도 유은의 시녀가 법무부장관이 된다면 하렘궁에서 벌이는 각종 범죄행각들을 은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은폐가 아니더라도 아예 수면위로 끌어 올린 다음에 말도 안 되는 감형을 때린다던지 하여 '어쨌든 결론난 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필요하냐는 것이다.
특히 유은은 그런 필요성을느끼지 못했다.

어차피지금도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있는데 굳이 그런 게 필요한걸까.

차라리 궁 내에서 국회의원을 여럿 배출하여 법 자체를 유리하게 만드는 편이  있어보인다.

오히려 그의 시녀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여 얻는 이익은 대통령측이 더 크다.
일반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는 소리겠지만, 어딘가 빗나간 가치관을 갖고 있는 대통령의 입장에선알아서 궁과 관련된 사건사고를 정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반감을 조금이라도  줄일  있을 테니까.
한사랑을 이용한 전복계획도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튀어나온 것이니, 민예린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사실 누구보다도 대통령 본인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
"대통령으로서 할 말은 아닙니다만...뭐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방금  쾌락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씀하셨죠?"
"네."
"바로 그겁니다."
"?"
"현직 법무부장관을, 그것도 장관실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큰 쾌락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헐."

정신을 아득히 날려보내는 말에 유은조차 감탄을 비췄다.
무엇보다 대통령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혹시 미치셨나요?"
"그럼요. 미치지 않고서야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  있겠습니까."
"와우."

유은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장관실에서 현직 장관을 맘대로  수 있다니! 이게 무슨!


"흠흠...그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부탁해도 될까요?"
"말씀하시죠."
"제 여자들 중에 경정 달고 있는 분이 있거든요. 총경달고 있는 분도 있고요."
"은소령씨와 신도희씨 말이군요."
"네. 법무부장관까지 배출하는 마당에, 경찰쪽에도 줄이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하나씩 올려보면 어떨까요?"

은소령을 총경, 즉 강남경찰서장으로 임명하고 신도희는 지방경찰청장으로 픽업한다.

"그러고보니 각 분야별로 몇 분씩 계시군요. 군쪽에도 은율령이었던가...한사랑 대령은 워낙 유명하고."
"아! 율령짱도 있었지 참."
"뭐, 나쁠  없죠. 마침 은소령씨는 거의 세계 최초로 모험가를 잡아넣는 경찰이니 그런 그녀를 승진시킨다면 대외적인 이미지도 좋을 겁니다."
"그런 거죠."
"이왕 그렇게 하시는 거, 군쪽 인사도 손 좀 보도록 하죠. 어차피 조만간  주도적으로 통합군사령부도 만들 거 아닙니까?"
"...예?"

대통령의 말에 순간얼타는 유은.
뭔가 들어본 적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아, 아직 정확한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겠죠. 전에 말씀 드렸던 군 장교의 모험가화 계획 말입니다. 궁에서 사관학교 비스무리한 기관을 설립하고, 세계 각국에서 장교들을 파견, 거기서 군인의 소양을 함양하고 동시에 모험가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죠. 그를 통해 유은씨는 국군에서 장성 지위를 받고요."
"아...."


기억났다.
분명 그런 종류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페미들을 뚜드려 패고 검찰청 한곳을 무력으로 점거했던 때, 부랴부랴 달려온 대통령과  장관들 앞에 내민 협상내용들  하나였다.


유은을 명예 군 장성으로 추대할 것


이라는 조항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당시 유은은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임서현이 임의로 추진했었고, 결국 대통령은 조건부 수락.
국군의 정예화와 병기개발 협력 등을 이루기로 하였고, 병기개발 협력은 현재 진행중이다.


당연히 궁의 정치적인 상황 같은 것에 1도 관심 없는 유은은 죄다 까먹은 상태고.


"오자마자 기자회견을 여셔서 세계 각국의 던전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전 그걸 이 기관의 발호의사 천명으로 봤는데요."

분명 임서현이 명분으로 세웠던 것 중 하나가 그것이다.
범국가적인 군사조직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서 군장성 지위를 받고 장교들을 훈련하여 내보냄과 동시에세계 각국의 던전화로 인한 문제를 해결한다ㅡ,

참으로 거창하기 짝이없는 명분이다.

"그...랬던가...."
"조만간 여성징병제도 통과될겁니다. 그렇게되면 장기적으로 여장교도 늘어나겠죠. 그런 여장교를 교육할 수 있다는 유은씨에게도 좋은 일 아닙니까?"
"아! 맞다! 여성징병제 한다고 했었지!"


바르카나가 등장하기 직전에 전국민을 향해 발표했던 내용.
그제서야 제대로 떠올린 유은이 부르르 떨었다.

아아.

이 얼마나 미친사람이란 말인가.
옆나라(일본)의 위기를 이용해 핵보유 승낙을 받아내고,전 세계적인 비난과 제제를 개무시하면서 강제로 도쿄에 군을 주둔시키다가 결국 던전방어전을 이용해 국군주둔까지 허락받고, 나중에는 세계최악의 집단인 하렘궁을 끌어 안으면서 장교들의 정예화를 이룸과 동시에 여성징병제라는 폭탄을 터뜨려버렸다.


그야말로 세계적인 위기와 주변국의 상황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면 바로 선전포고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한국은 지금도 세계적인 제제를 받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현역병 90만 유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걸 제가 이룰 뿐이죠."
"와...."

진심으로 감탄한 유은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무려 이 나라에서 여성징병제를 시행하려 한다니. 탄핵당하지 않는  이상하다.


'이 사람...자신의 모든 걸 걸고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행보는 모두 자신을 내버렸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민족의 부흥을 이룰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신다니 제가 좀 도와드려야겠네요. 마침 한국에는 빚도 있고. 사실 저 이래봬도 애국자거든요."



+++


대통령과 만나고 여러 가지가 정리되었다.

일단 민예린의 법무부장관 임명건은 대통령의희망을 받아 승낙하기로 했고, 더불어 국가기관에 소속돼 있으면서 유은의 시녀로 있는 여자들, 말하자면 은소령, 은율령, 신도희를  단계씩 승진시키기로 했다.

다만 은율령의 경우 아직 섹파 정도의 관계일 뿐, 시녀로 맺어진  아니었기에 보다 확실한 관계가 정립되고 난 후 승진처리가 될 예정이다.

추가로 이번에 유은의 명으로 추진하게 된 정상화 프로젝트에 국군 정예화 계획을 살짝 얹어서 예전에 말했던 대로 '범국가적 군사기관'을 설립하고 첫번째로 한국과 한민족이 가맹, 명예 중장 직위를 받기로 했다.

왜 대장이 아니라 중장이냐고 묻는다면 '대장은 뭔가기사단의 단장이라던가 무슨 호위대의 대장이라던가 하는 끗발딸리는 직위의 뜻도 포함돼 있어서 없어보여'라는 유은의 말을 들려주겠다.



아무튼 나중에 일을 정해 기관 창립과 명예 장성 수여 등을 함께 하기로 하였고, 이외에도 중국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소냐를 정치판에 들이면 어떨지 등에 대해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인님, 아녜스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왔구나."
아슬아슬하게 바르카나의 폭격에서 벗어난 덕분에 인천공항은 아직도 운행중에 있었고, 이것이 인천에겐 천운이었다.
거의 40만에 달하는 인명피해와 헤아릴 수 없는 경제적 피해를 얻어맞은 인천은 거의 붕괴직전이었지만, 인천공항과 송도가 살아남음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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