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41)화 (340/517)



〈 341화 〉29.다시 지구로.





낮게 깔린 목소리. 누가 봐도 극히 분노한 듯한 그 억양은  자리에 있는 모두를 놀라게했다.
심지어는 딱딱한 기계 같은 모습이던 시녀조차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으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에도 아오키는 심히 찡그려진 얼굴로 팀원들을 제치고 시녀 앞으로 다가왔다.

"뜬금없이 와서 누구도 주인이 될  없는 던전을 자기 소유라 우기는 것도 모자라 멋대로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새빨개진 얼굴에 톡톡 튀어나온 혈관들.
극대노라는 말이 이런 표정에 어울릴 것이다.

분명 이런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상대방 역시 표정이 바뀌기 마련인데, 시녀는 처음 살짝 놀랐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것이 더 두렵고 공포스러워, 카쿠는 재빠르게 아오키와 시녀 사이로 끼어들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실은 아까 이녀석이 술을 좀 마셨거든요."
"나 안 취했어!!"
"원래 취한 놈이 항상 그런 소릴 하지."

카쿠의 임기응변에 나머지 동료들도 정신을 차리고 그를 끌어당겼다.

"이거 놔!! 저ㅡ, 읍으읍!!"
"제발 닥치고 있어!!"

오오쿠가 그의 몸을 완전히 붙잡고, 하루나와 카렌이 카쿠와 함께 앞을 막아섰다.

그렇게 모든 동료들의 제지를 받으면서도 여전히눈에 핏발을 세운  노려보고 있는 아오키. 시녀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 마디 했다.


"본인이 소년만화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아시나요?"

아무것도 없는 표정이었지만, 말투는 분명히 비웃는 그것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파리마냥빌어대며 목숨을 구걸하는 여인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끄아아...살...려...."

일반인에 비하면 예쁘긴 하지만, 그뿐이다. 모험가 치고는 평범한 얼굴.
그러니 여자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즉결처형이 아깝지 않다.

"실력도 없으면서, 분노하기만 하면 세상이 나서서 정의를 수호하기라도 할 것 같나요?"

차가운 말을 내뱉으며 손을 여자의 목에 가져갔다.

"아...제발...제발...!!"

꽈악..


"끅...끄읅...!!"
"으읍!! 으으읍!!!"


목을  시녀의 손이 점차 조여졌다.
어찌나 강한지, 하얗고 매끄럽던 목은 어느덧 시뻘겋게 물들었고, 사방으로 각종 혈관이 튀어나왔다.


퍽.
퍽퍽.

어떻게든 살고자 발버둥치며 시녀의 손을 할퀴기도 하고, 주먹으로 옆구리를 쳐보기도 하지만, 그녀의 손은 요지부동.
오히려 더욱 조여올 뿐이다.

이럴 거면 그냥 한 번에 꺾어버리던가. 그럼 고통이라도 없지 않을까.

꽈아악.


여자의 입으로 피가 울컥울컥 올라왔다.
눈과 코, 귀에서도 피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결국,



꾸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시녀의 손에 쥐어진 목이 완전히 압착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여자의 얼굴은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툭.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내며 끔찍한 최우를 맞이한 시체.
그녀를 팔아 생을 도모했던 여자동료들도, 그리고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아오키 파티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아오키는 마치 자신의 가족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시녀는 피가 잔뜩 묻은 손바닥을 잠시 쳐다보다가 앞으로 걸어갔다.
긴장한 카쿠가 침을 꿀꺽 삼키고, 그 뒤로 카렌과 하루나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오오쿠역시 시녀를 주시하며 아오키가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렇게 세상의 정의를 믿고, 바라고 있다면 한 번 해보세요. 거기서 빠져나와 저한테 검을 겨눠 보세요. 물론,"

처억.

카쿠를 지나쳐 카렌의 앞에도착한 시녀가 새빨간 피로 점칠된 손을 뻗어 카렌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기고양이처럼 덜덜 떠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 경우 당신의 동료들 역시 처분되겠지만요."
"아...."

멋대로 뺨을 만져대며 피를 묻히고, 나중에는 품평하듯 턱을 쥔 이리저리 살펴보기까지 하는 모습이 상당히 기분 나쁠 법도 했지만, 압도적인 공포에 카렌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이는 옆에 있는 하루나나 자신을 스쳐갈 때까지 뒤도 돌아보지 못한 카쿠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녀가 덜덜 떨고 있는 카렌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극히 차가운 표정이지만,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이 소름돋게 만들었다.



"넌 주인님의 이동변소하면 딱이겠다. 평소에는 주인님의 좆물받이로서 사명을 다하다가 주인님께서 용변이 보고 싶으실 때는 스스로 화장실을 자처하는 거지."
"!!"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떠나, 이번에는 반대편 손으로 하루나의 얼굴을  쥐었다.


"힉!"
"너는   키우면ㅡ,"

-떠나는 그대여 울지 말아요~ 슬퍼 말아요~ 내가 단ㅡ,

"네. 임하얀입니다."

무언가 추가로 공포스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순간, 시녀의 전화벨이 울림으로  분위기가 끊어졌다.
공손히 두 손으로 폰을 잡아든 그녀는 아예 자리까지 슬쩍 옮겼다.


"...후우."

그제서야 압도적인 분위기에서 해방된 사람들.
아마 일시적인 일일 테지만 그래도 숨을 고를 시간이나마 있는 게 다행이었다.

물론 혹시라도 아오키가 뛰쳐나가 이상한 짓을  수도 있기 때문에 카쿠와 하루나, 카렌, 오오쿠, 심지어는 죽은 여자의 동료들도 아오키를 밧줄로 꽁꽁 묶어버린다던가 하는 조치를 취했다.

"우웁!!!"

여전히 분노한...아니 카렌과 하루나에게 손을 대서 그런지 더욱분기탱천하여 날뛰려는 그를 보고 모험가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득,



"저 여자는 어떻게 던전에서 통화를 하는 거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의문이 불쑥 들었다.

본래 던전 안과 바깥쪽은 서로 통신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통신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녀는 태연하게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바깥에 있는 사람이든, 안에 있는 사람이든 현대의기술로는 불가능한 것.

들려오는소문에 의하면 외계의 무리 바르카나를 제압한 뒤 궁의 과학기술은 인류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점프했다고 하던데, 지금까지 딱히 실감은 되지 않았지만 저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실감이 되고야 만다.

"후."

통화가 끝나고 다시 모험가들에게 다가온 시녀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고수하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운 좋은 줄 아세요. 주인님만 아니었다면...그리고 제게 여러분을 바깥까지 수송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예정대로 처분됐겠죠."
"...그 말씀은...?"

조심스러운 카쿠의 말에 시녀가 흥. 하고 싸늘한 코웃음을 흘렸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기계적으로 판결문(?)을 읊고 그걸 실행하려던 여인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복잡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뭔가 기쁨과 짜증이 공존하는 느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여러분들의 처분은 당분간 유예하도록 하죠."
"!"

유예?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에 모두의 눈이 희둥그레졌다.


유예든 뭐든 상관없다.
일단 지금 당장 처분되지 않는다는 것이 어딘가. 다시 만나지만 않으면 그만이고, 세상은 아주 넓었다.

하지만...



찰칵. 찰칵.



일행   한 명의 사진을 폰으로 찍어두는 시녀의 모습에 다시금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당...아니 너."


사진을  찍은 시녀는 모험가들에 의해 꽁꽁 묶여 바닥에 뒹굴고 있는 아오키에게 다가가더니 힐의 굽으로 그의 왼쪽 어깨를 팍 하고 밟았다.

"으으으응븝!!!!!"

지금까지의 얼굴과는 달리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낸 임하얀이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녀를노려보는 아오키에게 침을 뱉었다.


"감히 주인님께 이를 드러냈으니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으면 오늘 자살하세요."

그녀는  말을 끝으로 던전에서 벗어났다.







+++






짜악 - !

하렘궁 시녀와의 한 바탕 실랑이 이후, 서로 협력하여 던전 바깥으로 나온 아오키 파티는 곧바로 분란이 일어났다.
오늘 있었던 일로 인해 잔뜩 열받은 하루나가 아오키의 뺨을 냅다 후려친 것이다.

"하,하루나!"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다시 팔을 들어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카렌이 잽싸게 달려들었다.

"그만해! 사람들이 다 보잖아!"
"보든 말든!"

하루나의 분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저런 멍청한  때문에 나까지...나까지 찍혀버렸잖아!!!"

그녀의 외침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던전시티 특성상 이런 일은 왕왕 있었기에 사람들은 금방 흥미를 버렸다.

"...미안."


아오키는 뺨을 맞았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녀의 화를 받아냈다.
그것이 하루나의 분을 더욱 부채질했다.


"미안? 미안??"
"왁! 와악!! 하루나!!"

카렌의 몸을 마구 밀쳐대며 아오키에게 달려드는 하루나.
카렌은 카쿠와 오오쿠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지만, 그들은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들 역시 하루나만큼이나 화가 난 것이다.

"카렌! 넌 화도 안 나?? 그 전화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린 그년한테 끌려가고 있을 거라고!! 앞으로 그렇게 될 거고!!"
"그야...."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분노도 더욱 커진다.


"이봐."


그때 아오키의 행동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유예'를 받게 된 여자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화난  알겠는데...일단 진정하는 게 어때?"

세 명의 여자가 아오키를 감싸듯 하루나와 그의 사이를 막아선 것이다.


"하...뭐라고요?"
"...너희들 입장에서야 해선 안 되는 일이었겠지만...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우린 살았어."
"살았다고? '유예'겠죠. 사진까지 다 찍혀놓고."
"어쨌든. 우리에겐 은인이나 다름 없으니 그에 대한 폭언이나 폭행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는데."
"...."


하루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아오키는 감동한 듯이  여인의 등을 쳐다봤다.


"그래? 그럼 당신들끼리 잘 해봐요. 난 이 병신 같은 곳에서 빠질 테니까."

분을 참지 못한 하루나가 탈퇴를 선언하자, 가만히 있던 카쿠가 막아섰다.


"하루나, 그건 안 된다."
"뭐야?!"
"아까 네 스스로 말했듯, 우린 찍힌 몸이다. 그 여자가 '유예'라고 말했지. 아마 반드시우릴 찾아올 거야."
"빠득...그래서 어쩌자고?"
"우리끼리 뭉쳐 있으면 위험하지만, 혼자는 더 위험해. 아오키의 행동에 대해서는 나도 심히 화가 난 상태지만 그렇다고 파티가 해체되면 있던 답도 안 나온다."


카쿠는 그렇게 하루나를 잡아놓고 아오키를 감싼 세 여인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도 당분간 우리와 함께하도록 하죠. 벗어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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