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화 〉29.다시 지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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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궁시렁.
"하아...한 시라도 빨리 강해져야 하는 이 때에...하아...."
"한숨 쉬지 마라. 짜증난다."
연신 투덜거리는 아오키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카쿠.
형식적이라 해도 '리더'인 아오키가 매번 이런식이니 카쿠야말로 한숨을 내쉬고 싶었다.
"그치만...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석들은 강해지고 있을 텐데!"
"하루나, 따끔하게 한 마디 해줘라."
"왜 또 내가."
"네 말은 잘 듣잖냐."
"퍽이나."
데자뷰도 아니고, 매번 반복되는 상황에 하루나가 아오키를 향해 짜증스런 말을 내뱉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궁이 정체되고 너 혼자 강해진다 해도 못 이겨. 꿈 깨."
"윽."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
하지만 말 자체보다도 하루나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아오키에겐 크게 와닿았다.
'차가운 도시녀'라고 하면 딱 떠오를 정도의 이미지에 뛰어난 패션센스. 잘 관리한 피부와 몸매 등은 뭇 남성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때문에 모험가가 되기 전에 이미 대학 퀸카. 우연한 시기에 우연히 같은 튜토리얼 팀에 배정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말도 못 붙였을 것이다.
"아,아니야...할 수 있어!"
"응. 못 해."
함께 던전을 돌며 전우애를 다진 만큼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가 되었지만 이성적인 관계는 제로. 특히 하루나의 철벽은 대단했다.
"일개 시녀만 해도 공방 수십만에 달한다는데, 그 수장은 오죽하겠니."
"그치만...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ㅡ,"
"잠시 조용."
막 말을 나누던 그때, 카쿠가 둘을 조용히 시키며 한켠으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저쪽에서 작은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퍽치기인가?"
"그럴 수도. 일단 전투 준비."
언제 투닥거렸냐는 듯이 진지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무기를 꽉 쥐었다.
던전 내부인 만큼 몬스터도 매우 위험한 존재였지만, 사실 그보다 위험한 것이 바로 퍽치기 무리였다.
특히 일본의 경우 상위 던전인 B급과 C급 던전을 궁에서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에 고수들이 대거 아래 던전으로 몰려왔고, 자연스레 실력 좋은 퍽치기들도 늘어났다.
이 던전도 마찬가지.
자칫하면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이들을 만나 처참한 몰골로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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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들이 조심히 살펴보고 있는 파티.
남6 여4로 이루어진 보편적인 구성이었다.
평균공방도 약 9000 정도로 나름 준수한 팀.
그러나 팀원의 절반인 다섯명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남자 네 명은 사지가 찢긴 채로 숨이 끊어졌고, 나머지 두 명은 치사량의 피를 철철 흘리며 비통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여자 네 명은....
"시,싫어...!"
"이런 폭거가 용서될 거 같아??!!"
다가오는 위협에 오줌을 지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D급 던전도 큰 어려움 없이 돌고 있는 모험가지만, 눈 앞에 있는 이들은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존재였다.
"폭거라는 단어는 조금 지나치군요. 지난 도쿄협약에 의거하여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인들의 앞에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단정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풍기는 것은 정돈된 느낌 보다는 색기에 가까웠다.
"오늘 오전 00시를 기해 해당 던전을 하렘궁의 소유로 결정하였으니 이곳을 탐험하는 모험가라면 응당 입장비와 세금을 내야만 합니다. 다만 이 소식을 듣지 못하셨을수도 있기에 정중하게 이 사실을 고지하였고 사정을 감안하여 입장비 면제에 50%감면된 세금을 요구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그러나, 여러분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되려 무기를 빼어드는 등의 비협조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급기야는 저를 공격해 오기까지 하였으니, 궁의 영토에서 궁의 법도를 따르지 않는 여러분을 불량 이용자로 규정, 매뉴얼에따라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여 처벌하였을 뿐입니다."
마치 기계에게 듣는 것처럼 말투 하나하나에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이와 같은 특수공무집행방해죄의 경우 선고자의 재량에 따라 최소 가축형에서 최대 즉결처형까지 가능하기에 직접적으로 저를 공격해온 여섯을 죄질과 위험도를 감안해 즉결처형하였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지극히 패도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뭐가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어디를 봐도 문제투성인데.
그러나 그걸 주장하고 관철할 힘이 여인들에겐 없었다.
그저 지난 행동을 후회하고 자비를 바랄 뿐.
"아울러 남아있는 여러분의 경우, 가축형에 처하므로 얌전히 형의 집행을 받기 바랍니다."
"가,가축형...이라니...."
어감에서 느껴지는 폐퇴적인 요소.
네 명의 여인들은 질겁하며 뒷걸음질쳤다.
가축이라니. 절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하렘궁이라면 그 초변태 유은의 무리. 비록 어디 다른 세계로 날려졌다지만, 궁은 엄청난 기술도약을 통해 차원의 문을 열어젖혔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유은 역시 살아돌아올 것이고, 그리 되면 가축이 된 그녀들은 분명 성처리 도구 정도로전락하겠지.
당연히 그런 삶 따위 살고 싶지 않다.
"당연하지만 거부권은 없습니다."
여인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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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딴 짓을...!!!
상황을 지켜보던 아오키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욕설을 내뱉었다.
정의를 숭상하는 그로서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광경.
퍽치기도 문제지만, 저건 아예 억지다. 애초에 누구맘대로 던전을 소유한단 말인가? 국가와의 협약? 그건 이미 도쿄시티를 하렘궁에 양도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고, 설령 자기들 마음대로 일본던전의 소유를 주장할 수 있다 해도, 그걸 거부했다 해서 가축으로 만든다거나 죽여버린다거나 하는 건 당연히 불법이자 말도 안 되는 폭거다.
"나서지마라 아오키."
그런 아오키의 생각을 읽은 카쿠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야."
"뭐,뭐라고?! 어떻게 그런ㅡ,"
"맞아.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지."
"..!"
카쿠 뿐만아니라 하루나와 카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카렌의 반응은 꽤 격했다.
"저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난 내가 먼저야. 그리고 가축이래잖아! 괜히 나섰다가 걸리면? 나랑 하루나가 어떻게 될 지 뻔하지 않아?"
"그건...."
거대한 체구의 오오쿠역시 합세했다.
"그걸 떠나서 도와줄 이유도 없고, 도와줄 만큼 제대로 된 파티인지도 의문이지. 막말로 저놈들이 퍽치기 일행일 수도 있지않나? 여긴 던전이야. 정의따윈 개한테나 줘버려."
너무도 냉정한 말들.
아오키는 순간적으로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도 동료라고 믿고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느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하루나...!'
그래도 카렌의 말은 꽤나 와닿았다.
만약 하루나와 카렌이 가축으로서 끌려간다면? 악의 제국인 하렘궁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타들어가는 기분.
'넘어가야 하나...못본 척...그래야 하나...?!!'
꾹 깨문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의를 수행하고 악의 제국 하렘궁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정작 하렘궁의 불의를 눈 앞에서 보고도 물러나야 한다니. 이보다 참혹한일이 또 있을까.
"안 돼 아오키. 절대로."
카쿠는 아예 팀원들을 뒤로 물러나게하며 철수를 준비했다.
그리고 본인은 혹시모를 사태에 대비해 인벤토리를 앞으로 오게했다. 세금이 대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라도 걸린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낼 수 있도록.
'설사 90%이상을 요구하더라도 일단 내는 수밖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도와주세요!!! 거기 당신들!!! 살려줘요!!!!!!"
궁지에 몰려있던 여인들 중 한 명이 아오키들이 있는 방향을 똑바로 보며 외쳤다.
"!!!"
분명 저마다의 스킬을 사용해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있었을 텐데. 위기에 닥친 인간의 초인적인 힘인건지, 아니면 스킬인 건지, 발견하고야 말았다.
스윽.
하렘궁의 여인도 이쪽으로고개를 돌렸다.
'씨발...!!!'
최악의 상황.
하필이면 숨어있다가 걸렸다.
여인의 손이 이쪽으로 뻗어졌다.
까딱.
딱딱한 제스쳐.
"나오십시오."
딱딱한 목소리.
아오키들의 몸이 움찔하고 전율했다.
고작말 하나. 제스쳐 하나를 목도했을 뿐인데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세포 하나하나가 전력을 다해 외쳐댔다.
절대 대적해선 안 된다고.
처억.
상황파악을 재빨리 한 카쿠가 벽 앞으로 몸을 내밀며 모습을 드러냈다.
"궁에서 나온 분이시군요."
최대한 정중하게 여인을 향해 인사하는 한편, 자신을 지목하여 이 사단을 만든 여자들에게는 분노를 담은 시선을 쏘아주었다.
"퍽치기로 인한 소란이 아닐까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니,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계시다면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흐음."
궁의 시녀가 카쿠를 훑어봤다.
"당신 혼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카쿠가 뒤로 눈치를 주자, 아오키를 위시로 한 팀원들이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냈다.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있는 아오키와, 그 뒤를 따라 나오는 경직된 모습의 하루나와 카렌 등.
모두 저마다의 표정 속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특히 2미터가 넘는 거구에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오오쿠조차 잔뜩 쫄아있는 모습이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묘한 공포를 자아냈다.
카쿠는 시녀가 세금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저희는 일주일 전 부터 이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던전이 궁의 소유가 된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확실히 오래 사냥한 것 같긴 하군요."
"예. 해서 세율이 얼마인지 모르고 있으니, 알려주신다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납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쿠는 아예 인벤토리를 끌고 시녀에게 걸어가는 배짱을 보여줬다.
분명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과 잘려나간 사지 등으로 인해 상당히 공포스러웠을 텐데도, 꿋꿋하게 나아갔다.
시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이 던전이 궁의 소유가 된 것은 오늘 오전 00시부터 입니다. 그 전에 얻은 소득은 우리와 관계가 없으니 오늘 얻은 전리품의 3할(30%)을 징세합니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입장하셨기에 세금을 절반으로 감면하여 총 15%를 징수하며, 아울러 던전 입장료는 인당 1,000 달러 입니다만, 같은 원리로 면제하여 최종 15%에 해당하는 가치만 지불하시면 되겠습니다."
카쿠는 몇kg의 뼈를 제공해야 할 지 계산하다가 곧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리품의 양은 지난 일주일 간 사냥한 것들이지. 내가 임의로 제공량을 계산하여 내민다 해도, 이게 정말 오늘 사냥한 것에서 15%를 지불한 게 맞냐는 식으로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
빠르게 생각을 전환한 그가 인벤토리를 조작하여 인벤토리 안에 있는 - 일주일 간 얻어낸 것 - 것의 30%를 뱉어냈다.
"비록 궁의 소유가 되기 전에 입장했다고는 하나, 궁의 소유가 된 오늘까지도 여기서 사냥을 하였으니 결과적으로 저희는 '하렘궁 소유의 던전'에서 사냥한 것이됩니다. 따라서 지난 일주일간의 모든 소득을 징세대상으로 삼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며, 감면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던전 입장료를 면제해 주신다고하셨습니다만, 이 역시 같은 원리로 전액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심리적 기법 중 하나로 시녀와 비슷한 말투,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본인을 굽힌 카쿠는 인벤토리 안에 있는 100달러지폐 묶음 하나를 내밀었다.
"1만 달러입니다. 입장료는 총 5천 달러입니다만, 나머지 5천 달러는 궁에게 잘 부탁한다는 마음에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시지요."
"...."
시녀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빠른 상황판단에 기반한 탁월한 임기응변. 리더의 재목이다.
"그러죠."
잠시간에 고민 끝에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카쿠와 하루나 일행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아오키만은 아직도 표정이 풀리지 않은 상태.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어진 시녀의 말에 카쿠는 순간 심장이 철렁하면서 저도 모르게 아오키를 노려봤다.
다행히 아오키때문에 뭔가 해코지하려는 건 아니었다.
아예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도움을 청한 여인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군요."
"...다,당신들...뭐...야...치사하게...!!"
이미 그녀는 눈물과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었으며, 나머지 세 명의 여자들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이미 죄목과 형이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을 회피할 목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청하는 반성없는 태도. 제가 여러분을 즉결처분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심히 차가운 눈이다.
마치 너희들 따위는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돌맹이마냥 가치없다고 여기는 듯한 그런 시선이다.
"아,아니야!!이년이에요! 이년만 그런 거라구요!!!"
한 여자가 원흉이 된 여자를 팍 밀치고는 그 자리에서 무릎 꿇었다.
"가축이든 뭐든 상관 없으니 주,죽이지만 말아주세요!!"
"맞아요! 이,이년이 한 말이에요 우린 상관 없다구요!!"
"이 개 같은 년!! 왜 우리까지 끌어들이고 난리야!!!!"
"미,미코토...!"
"닥쳐! 내 이름 부르지 마!!"
고민없이 동료를 쳐내며 악귀 같은 얼굴로 매도한다.
"그렇습니까?"
시녀가 홀로 내팽개쳐진 여인뒤에 섰다.
"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의 눈을 보고 있으면 온 몸이 얼어붙으며 주마등이 스쳐갔다.
"그럼 당신은ㅡ,"
"어이, 적당히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