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28.재회,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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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바람.
비어있는 온기탓에 도시는, 마을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
거기서 소라는 잠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진짜 아무도 없네. 다 쓸려 나간 거야?"
듣기로 북부 수십만의 주민들이 모조리좀비화 되었다고 한다.
소라의 스킬을 통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되지 않는다면....
"그럼 뭐...어쩔 수 없지."
그땐 모조리 죽여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사람들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게 끝나고 나면...돌아가는 건가...은이 데리고."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지금이야 잘 해결 됐지만, 처음 그와 유나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갔다는 걸 들었을 땐 정말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흑흑이나 아흑이가 없었다면 여긴 오지도 못했을 거야. 그걸 생각해 보면 정말 천운인 거지.'
둘 모두 도쿄에 있는 B급 던전 - 이제는 하렘궁의 지하기지 겸 연구소가 되었지만 - 을 통해 얻은 펫이다. 조금이라도 운이 엇나가 얻지 못했다면? 그럼 지금도 소라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현대과학 수준으로 차원을 넘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넘어왔다.
이렇게 재회했다.
어찌나다행인지.
새삼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후...돌아가면 착한 일 좀 해야 하나?"
피식 웃으며 대충 감정을 정리한 그녀가 다시 하늘로 떠올랐다.
힐러지만 현대에 있을 적 유나에게 배운 경공술을 통해 어지간한 비행기 보다도 더 빠른 비행이 가능했다. 그것도 연료 없이.
그렇게 하늘을 주파하며 끝없이 북쪽으로 나아가던 그녀의 시야에 수평선 너머로 엄청난 군세가 포착됐다.
"있다!"
물결.
하나같이 거뭇한유형의 기운을 뿜어내는
물결.
검은물결.
수평선 너머의 모든 평야, 좌끝에서 우끝까지의 모든 평야.
그 전체가 검은 물결이 되어 밀려온다.
쿵. 쿵. 쿵.
그르르르.
대체로 인간의 모습을 한 것들이었지만, 더러는 괴상망측하게 생긴 괴물이나 거대한 거인 같은 존재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본다면 도저히 대적할 용기가 나지 않을 터.
정예 병사라 해도창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
하지만 소라는 그렇지 않았다.
유은을 제외하면 적이라 할 만한 존재가 없는 그녀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 거대한 물결을 향해 날아갔다.
"크어어어!!"
"유...은...!"
"죽인다! 죽인다!"
가까이 갈 수록 그들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이었지만, '유은' '죽인다'등의 말도 간간히 들려왔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대체 어떻게 했길래 몬스터들이 유은의 이름을 증오를 담아 불러대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인이라도 데려다가 겁탈했나?"
생각나는 거라곤 그 정도.
그나마 제일 신빙성 있는 것이다.
사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면 유은과 로이드의 관계를 비롯한 전말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자세한 설명이 가능한 사람은 어제의 사태때 거의 죽어버렸다.
"인...간....!"
"크어어!!"
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대군세 쪽에서 몇몇의 눈 좋은 몬스터들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빽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초점없이 움직이던 물결이 일제히 그녀를 올려다보고, 끔찍한 괴성과 함께 무수한 덩어리들을 멀리 토해냈다.
"윽. 뭐야. 침이야?"
수증기를 두른 초록색의 액체덩어리.
그런 것이 수천 개나 날아왔다.
"꺄악! 꺼져!!"
저딴 것에 닿았다간 데미지는 둘째치고 기분이 나쁘다.
후웅!
거칠게 팔을 휘두르자 날아오던 액체들이 흩어지면서 무수한 물방울이 되어 뒤편으로 쏘아졌다.
치이익!
"꾸에에엑!!"
여기저기서 액체에 맞은 몬스터나좀비들의 피부가 녹아내리고, 바닥에 떨어진 것은 커다랗고 깊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ㅡ 그아아아아!!!
수백 마리 정도 있는 거인 중 하나가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면서 투석기에나 사용될 만한 거대바위를 소라에게 집어 던졌다.
"성가시네. 저런 게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날아온 바위를 한 손으로 막아냈다.
그리고는 마치 볼링공처럼 손가락을 푹 집어넣더니 능히 집채만한 바위를 다시 거인에게 던져 주었다.
"반품이다 짜식아!!"
ㅡ 키이잉!
거인이 던졌을 때도 성벽을 무너뜨릴 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었지만, 소라가 던졌을 때와는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작부터 음속을 몇 배로 뛰어넘더니 그대로 거인의 머리를 꿰뚫고 땅에 처박히며 거대한 진동과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아...실수."
당연히 엄청난 수의 사람(이었던 것)과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튀거나 으깨지며 대량살육이 벌어졌다.
사망자만 따져도 족히 수천은 될 정도.
"음...어쩔수 없지 뭐."
그녀가머리를 긁적이며 대군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생각해보니치유가 된다 해도 하면 안 되겠네...몬스터한테 바로 죽을 거 아냐."
차라리 아흑이가 같이 있었다면 일단 치유를 해 놓고 즉시 몬스터들만 따로 락온해서 처리할 텐데, 지금은 아흑이 분신조차 없다.
"아 괜히 혼자 나왔어...."
짤막하게 후회하며 주동자가 있을 법한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군세의 바로 위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정말 사방이 새까맣게 물든다는 게 어떤 느낌인 지 체감하게 되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가지각색의 원거리 공격...마법 등등...
하나같이 끔찍한 몰골의 기술들.
그녀는 허겁지겁 실드를 몇 개나 중첩으로 펼쳤다.
그냥 맞아도 아무런 데미지도 없겠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토악질이 나오는 것들이라 멘탈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저건가?"
실드에 각종 액체가 덕지덕지 붙어 흘러내릴 즈음, 그녀의 눈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딱 인간의 사이즈를 가진 그것은 주변의 평범한 좀비들과는 달랐다.
풍기는 기운이라던가, 느껴지는 강함이라던가.
하여튼 주변의 좀비들, 심지어는 거대한 몬스터들과도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졌다.
"그래봤자 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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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하염없이 분노와 증오를 태우며 진군하던 중, '그'는 무언가를 느꼈다.
상당히 강력하면서도 그리운 이 느낌.
가슴 저편이 시려오는 이 느낌.
사랑과 증오라는 애증의 감정.
분노 이외의 것을느끼는 건 오랜만이라 '분노'의 화신이 된 상태에서도 살짝 설레었다.
하지만 그뿐.
그 이질적인 무언가는 감히 분노의 군세를 어지럽히며 대적하고 있다.
그리고 주제도 모르고 점점 군세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죽여...라...."
그의 명에 따라 무수한 공격이 퍼부어졌다.
수십만의 물결에서 일어나는 족히 수천수만의 또 다른 물결.
이만큼의 공격을 덮어 썼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태연하게 공격을 받아내곤 계속해서 이곳으로 다가왔다.
이렇게까지 강한 존재라면...혹시 유은일까?
아니. 아니다. 그놈이라면 이렇게 묘한 느낌을 풍기지 않을 것이다.
그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곤 오로지 분노와 증오 뿐.
지금 느끼는 애틋함은 절대로 느낄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필시 그 외의 무언가.
대체 누가 있어 그로 하여금 이런 느낌을 받게 한단 말인가.
"저건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스스 고개를들어보니 저 멀리 허공에 떠 있는 한 여인.
"...!!!"
순간 그의 사고가 정지했다.
"그래봤자 껌이지만."
남심을 사근사근 녹이는 색기 어린 목소리.
그에 반응할 물건은 이미 파열되어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가슴을 감동케 했다.
그리운 목소리.
동시에 증오스러운 목소리.
반가운 얼굴.
동시에 혐오스런 얼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그녀는 어쩌면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라...."
로이드,
아니 운현의 입이 열리고, 쇠를 긁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그녀를 발음했다.
"소..라..!"
밉다.
너무 밉다.
하지만 그립다.
너무 그립다.
비록 바람을 폈지만,
약혼자를 놔두고 다른남자와 잠자리를 가진 헤픈 년이지만,
그가 첫 눈에 반했던 여인이다.
함께 미래를 꿈꿨던 여인이다.
사근거리는 목소리도,
웃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오로지 그가 독점하던 여인이다.
죽을 때는 원한보다 그리움이 앞서기도 했다.
그로 인해 유은의 시녀가 돼버린 세희보다,
언제나 그만을바라봐주던 세희보다,
소라를 떠올렸다.
그리고 환생.
이 세계에서의 새 삶으로30년.
의식의 한 켠에 자리한 운현은 그 동안 유은에게 빼앗긴 두 여인을 생각했다.
갖고 싶다.
이번에야 말로,
온전히 갖고 싶다.
또 어디 다른 남자에게 가지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하고 결박해서 나만의 소유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
그에겐 능력이 있다.
'분노'라는 능력이.
모든 생명체를 관장하는 능력이!
"소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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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아아아!!!!!!"
콰앙 - !
소라가 주시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힘을 폭발 시켰다.
호위하듯 그의 주변에 있던 존재들이 처참하게 쓸려 나가고, 그의 몸을 중심으로 새까만 기운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뭐,뭐야? 내 이름??"
애꿎은구름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소라아!!"
"뭐야 저거...나 알아?"
유은은 그렇다 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경로는 알 수없으나, 하는 짓(겁탈이라던가 NTL이라던가 등등)을 보면 대강 여기서도 원한을 샀겠거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라는 이 세계에 온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 시공전함과 왕궁에서만 있었다. 당연히 그녀의 존재를 알 턱이 없을 텐데...
"얘, 너 나 알아?"
궁금한 마음에 '그'의 앞에 내려선 소라.
끔찍하게 생겨먹은 얼굴이 그녀를 응시했다.
"...."
"나 아냐니까?"
두어 번 말을 걸었을 때, 흉측한 입이 열렸다.
"알지...아주...잘...알지...."
심히 듣기 싫은 목소리에 절로 그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예뻐졌구나...소라...전보다..더..."
"뭐야...."
"내...사랑...내...연인...."
"누가 니 사랑이래? 웃기는 놈이네."
풍기는 기운부터가 심히 기분 나쁘고, 생긴 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못생긴 수준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빻았다. 진짜로 뭉툭한 무언가로 얼굴을 계속 때려대면 저런 얼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 주제에 사랑이니 연인이니 웃기지도 않는다.
"기억...하라며...잊지...말라며...."
그 노골적인 혐오의 표정에, 운현은 눈을 매섭게 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그..말에...난...생사를 넘어...차원을 넘어...마침내..시간의 장벽마저...넘었다...."
"뭐?"
"길었지...그..시간...너..없는...시간..."
"뭐라는 거야 짜증나니까 그냥 죽으렴."
"나를...잊었나...?"
"아 글쎄 너 같은 걸내가 어떻게 알아?"
"나를...잊었나...?"
"모른다니까."
"정말...잊었나...?"
"하...저기요.님이랑 저는 오늘 처음ㅡ,"
"이..운현을...정말...잊었나..!!!!"
"만났...어?"
'그' 이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이름.
귓가에 들려온 순간, 그녀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경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