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20)화 (319/517)



〈 320화 〉28.재회,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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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머나먼 곳.
준동이 시작된 곳.


그리고 분노가 시작된 곳.

거기서 운현의 환생이자 로이드의 변이체인 '그'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들으며 여전히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소라가 차원을 넘어서까지 유은을 찾아온 줄은 꿈에도 모른채.


"때가...됐다...유은...!"

수십만의 군세.

누구라도 본다면  경이로움에 고개를 조아릴 것이다.
누구라도 본다면 두려움에 떨며 한 마디 말조차 못할 것이다.


그 많던 왕국군도, 잘난듯이 허세 부리던 영지의 기사들도, 지금은 모두 분노의 주민이 되어 그의 명령만을 받들고 있다.



아무리 실력 좋은 기사가 몰려와도 무의미.
엄청난 수의 분노들이 달라붙으면 그도 결국 전염되어 똑같은 분노의 주민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분노가 된 기사들은 그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분노'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의 순환.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제르 왕국 북부가 먹혀 버렸다.


북방 평원의 몬스터들과 더불어 왕국의 주민들까지.
이대로라면 이 나라의 모든 인간들을 분노의 주민으로 만드는 걸 넘어 대륙 전체를 뒤덮을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그는 이제야말로 유은을 향한 진군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운현의 기억을 갖고 있고  로이드의 기억도 갖고 있는 만큼 유은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수십만이나 되는 분노의 주민들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네놈은...절대...그냥 죽이지...않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유은을 단순히 주민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오히려  반대.
그 만큼은 철저히 인간으로 남게 하여 남은 여생을 오로지 고통만을 겪으며 살게 만들 것이다.

스으.

앉아있던 그가 일어섰다.
그러자 수십만의 '분노'들이 하나처럼 일어났다.
그것 만으로 일대에 불어 닥치는 거센 바람.


무너져내린 도시와 불타버린 마을들을 가득 채우며 그들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진군...하라..."

백골이 반 정도 드러난 로이드의 입이 그렇게 열리고, 분노의 주민들은 일제히 몸을 반전하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쿵.
쿵.


어둠의 물결,
분노의 물결.

그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로이드가 뒤따랐다.




+++



소라들이 등장하고 나서 하루 뒤.
무너져내린 왕도 곳곳에선 곡소리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죽은 남편을  아내의 울음소리, 자식이 죽은 사람의 울음소리, 연인이 죽은 자들의 흐느낌등등.


하나같이 눈물없이 들을  없는 사무치는 한이었다.


그것들을 듣고 있자면  일의 원흉인 소라들, 나아가 시공전함이라는 해괴한 물건에 대한 증오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곤 했다.
심지어 그걸 듣는 장본인도 희생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면 더더욱.



"공주 전하! 그들에게 죄를 물리지 않는다니요! 그게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이번 일로 인해 자기 아들을 잃어버리고 딸 마저 유은의 시녀가 돼버린  백작은 붉어진 얼굴로 성토했다.


"수 많은 병사들과 기사, 귀족들! 그리고 국재(國材)들 마저 무수히 쓰러졌습니다. 무엇보다 위대하신 폐하께서 승하하셨는데 아무런 조치도취하지 않는다니요??"
"아무런 조치도취하지 않는다고 하진 않았어요. 그들을 활용하여 북부의 일을 처리한다 하였죠."

공주의 태연한 대답에 그는 더욱 불 같은 소리를 냈다.
완전히 새빨개진 얼굴 곳곳에 실핏줄이도드라졌다.

"감히 왕도를 침범하여 쑥대밭을 만들고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는 작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북부를 맡기신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완전히 격분한 백작.
보통 이정도까지 막나가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던 귀족이 말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누구 하나 그를 말리지 않았다.

모두가 한 마음.
왕국의 힘을 집결하여 저 건방지고 해악한 무리를 단죄하기를 바라고 있다.

"듣자하니 그 유은이라는 놈과 아는 사이라지요? 부인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 유은이라는 놈은 이번 준동사태에 아주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입니다! 그런 자와 한패인 것들에게 북부를 맡기신다고요??!"


그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그래서 더 말에 힘이 실렸고, 그래서 다들 그를 말리지 않았다.


말리지 않을 명분이 되었다.

"저 유유자적한 태도를 보십시오! 그런 천인공노할짓을 저질러 놓고도 태연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웃어대고 있습니다! 죽어나간 백성들과, 이 나라의 안위, 폐하의 안부 따위는안중에도 없는 인면수심의 무리를 벌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나라를 보고 나라라 하겠으며 누가 귀족을 보고 귀족이라 하겠습니까!"

그의 열변을 들은 귀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
.



"하아...."
"왜 한숨이야?"


퉁명스런 말에 공주는 고개를 들어 유은을 빤히쳐다봤다.
그는 양팔로 유소라와 이소냐의허리를 감싸 안은 채로 임서현이 주는 과자를 받아 먹고 있었다.

"하아...."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나오는 한숨.
나라가 개판이 됐는데 정작 그 일을 초래한 인간들은 너무나 태평하다.
최소한 죽은 자에 대한 예의 정도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닐까.

"어허. 실례네. 사람 얼굴을 보고 한숨이라니. 혹시 너무 잘생겨서 그래?"
"주인님은 존잘이시죠."
"...양심은 있으세요?"
"없는 거 같애."
"...."


그녀가  손으로 얼굴을감싸쥐며 절망했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로 이런 인간들을 믿어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 마저 일어났다.


더 괴로운  그녀가 좋아하는이유나 역시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것.
비록 공주의 뺨을 때리긴 했지만 그건 이세계인이라 왕권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나름 상식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도 결국 마찬가지.
처음에야 유은의 막장 행각을제지하는 듯 싶더니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여 적당히 빈둥거리고 있다.



물론 그래봤자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니 더 지켜봐야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지금 하는 짓을 보면 굳이  것도없다.

"근데 너는 괜찮아? 왕실 쪽에도 사상자 꽤 있다고 들었는데."
"흥...참 일찍도 물어보시네요."
그녀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일이 벌어진 곳이 하필 왕도 중에서도 궁의 상공. 당연히왕실쪽에도 사상자가 있다.

일단 무려 왕이 승하했고, 차기 왕이 될 왕자들도 여럿 죽어나갔다. 그리고 그녀를 제외한 공주 2명은 강제로 유은의 시녀가  상태.
루드밀라가 귀족들을 진두지휘하며 사태를 수습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애초에 가족의  같은  없었으니 그건 상관 없어요."
"사패냐...;"
"사패?"
"사이코패스라고, 있어. 우리쪽 언어."
"...아무튼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아요."

3왕녀인 만큼 왕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단번에 계승서열 1위가 되었다.


"그건 됐고, 지금 당신들을 벌하라고 귀족들이 난리도 아니예요. 그러니까 최소한 가만히라도 있으세요. 돌아다니지좀 말고요."
"심심한데."
"...."

유은의 말에 입술을 꾹 깨무는 그녀.
더불어서 그녀 곁에 있던 베로니카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미안한 척이라도 좀 하시지요.이번 일로 죽은 사람이 대체 몇인지 아십니까?"
"음...미안."

유은이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지만 아무래도 충분치 않다.

"후...출발은 언제 할 거예요?"
"북쪽?"
"그래요. 북쪽. 시간이 지체될 수록 피해가 커지잖아요. 그거라도제대로 막아야 그나마면이 서죠. 안 그래요?"
"그건 그래."

유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부인이 이렇게 부탁을 하니 들어줘야지."
"누가 부인이에요?!"

앙칼지게 소리친 루드밀라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분들이 돌아오시면 가는 거죠?"

그분이라 함은 한창 왕도 복구에 힘쓰고 있는한사랑과 아흑이+시녀들을 뜻한다.

"그래야지. 그나저나 사랑씨까지 오실 줄은 몰랐는데."
"내가  생각해서 데려왔지."
"헤...."


복잡미묘한 표정의 유은.
소라가 그의 볼을꼬집었다.


"쬐끄만 게 여자만 왕창 늘려대고말야."
"자지는 큰데요."
"내 가슴이 더 크니까 무효야."
"예...? 무슨 논리 인가여."

"...천박해."

되도 않는 화재로 빠져드는 대화에 루드밀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단 귀족들은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북부 일이 처리될 때까지만이라도 잠자코 계세요. 제발."
"그래그래."

그녀는 마지막 한숨을 내쉬고 막사 밖으로 사라졌다.


"근데 말야."

그 뒤를 바라보며 소라가 말을 꺼냈다.


"쟤네들도 부인으로 삼을 거야? 정말로?"
"음...."
"사랑이는? 걔도 부인? 기준이 대체 뭐니?"
"음...."
"그러게요. 기준이 좀 중구난방이긴 하죠?"


소냐까지 합세.
거기에 유나까지 은근히 눈치를 주고 있다.

"누구는 온 몸을 굴려가며 일해도 단순한 시녀인데, 누구는 보자마자 부인이라니...듣는 누군가가 서러워해요~."
"음...."

소냐의 말에 유은이 살짝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아무래도 서현을 비롯한 몇몇 시녀 간부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 같았는데, 확실히 그녀들 입장에선 서러워  법도 했다.
한사랑이야 그렇다 치지만 공주나 베로니카, 그리고 라르나르 같은 경우는 딱히 연도 없고 그냥 이세계로 날아와서 눈에 띈 것 뿐인데, 적 길드의 수장이었다가 사로잡혀 충성스런 시녀가  임서현이라던가, 템창질을 하며 유은을 꼬셔 아이템을 꿀꺽 하려다가 역관광 당한 은주라던가 하는 여인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임팩트가 떨어졌다.

'확실히 바로 부인은 좀 그런가? 그래도 급이 있지....'


최대한 양보해도공주 정도가 마지노선일까.

"주인님,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어? 그래."

서현이 살짝 인사하며 밖으로 나가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토의.

"말이 꺼내졌으니 하는 말이지만, 서현씨나 은주씨는 이제 그냥 시녀로 두기에는 좀 너무하지 않나요?  동안 해온  있으니 나름의 대우는 해줘야죠."

소냐가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책봉에도 등급이 있다고 들었는데...최하위가 시녀잖아요? 그 다음이 재인(才人)이고. 재인 다음이 '빈'이라 실질적인 부인급이니 거기까진 싫으시다면 재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확실히...시녀 이후로는 써 본 적이 없네요."

시녀 아니면 부인.
그야말로 단순한 유은 답다.

하지만 서현이나 은주 등이 해주는 걸 생각하면 윗단계로 올려줘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재인은 to제한도 없다.

"아무래도 지구 상황이 그 모양이다보니, 궁도 좀 어수선한 상황이예요. 이런 때에는 뭔가 큰 이벤트가 필요하죠. 그 동안의 공을 치하하는 포상식 같은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서 서현씨 같은 분에게는 시녀 등급을 올려주는 거죠."
"오.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리고 사랑이도 좀 확실히 하자."
"음...."
"어쩔거야? 좀 애매한 관계 아냐?"
"으음...."

유은이다리를 떨며 생각에 잠겼다.

한사랑...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관계.


당연하지만 언젠가는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유은의 여자가 될 거라면, 시녀 포지션으로  건지, 부인 포지션으로 둘 건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래야 혼동이 없다.


"지금 당장부인으로 두라거나 그런  아니라, 장기적인 뭐랄까 방향? 그런 걸 알려달라는 거지. 너가 보고 있는 방향."

유은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가운데, 유나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차피 부인으로 삼을 거면서 뭘 고민하는 척해요."
"읏."
"하는 짓 보면 누가봐도 연인인데 그럼 시녀로 굴릴 거예요? 그 망측한 단어를 그 사람 이름 뒤에 붙일 거냐구요."
"아니 그건...."

시녀 한사랑.
한사랑 시녀.

음..


확실히 느낌이 이상하다.

'그건 그것대로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애초에 그분은 시녀도 아니고....'


"응?"

그러다 문득  생각.
유은이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근데 사랑씨는  시녀가 아니잖아요???"
"...어. 근데 그게 뭐? 지금까지 그 얘기 하고 있었잖아."
"아니...그게 아니라...."


유은이 짐짓 엄청난 걸 깨달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 시녀가 아니라면 호감도 상승 스킬의 영향을 받지도 않을 거고, 그 말은 그런 스킬의 영향을 받지 않는사람이절 보러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거잖아요?"
"...멍청이세요? 그걸 이제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이런 얘기까지 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유나가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흘겨본다.

"으음...."

유은이 얼떨떨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킥킥대며 웃는 소라.

"왜? 우리 동정남은 처음이야?그런 거? 아하하하!"
"동정이라뇨."
"섹스만 할 줄 알면 뭐해. 연애  본 적이 없는데."
"이,있거든요."
"흐응? 있다고? 말해두는데 당연히 우린 제외야. 물론 서현씨를 비롯한 시녀들도."
"...."

없다.
연애 따위, 유나라던가 소라 라던가 소냐와 비스무리한 걸 하긴 했지만 진짜 연애를 해본 적은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인이 되기 전의 소냐와 했던 것도 나름 연애라 할 수 있겠지만,  기간이 극단적으로 짧다. 일주일도  된다.


"없지? 없지?"

가슴으로 그의 어깨를 밀어붙이며 도발하는 유소라.
유은은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킥킥. 그럼 동정이네. 우리 동정군~ 혹시 자지도 미포경인가요~."
"윽."


유은이 부들부들 떨더니 웃고 있는 소라의 가슴을 콱 움켜쥐었다.


"꺅! 뭐얏!"
"흥. 정말 건방진 가슴이네요."
"히잇! 갑자기!"

유은이 마구잡이로 소라의 큰 가슴을 만져대기 시작하고, 처음엔 꺄꺄 거리며 웃던 그녀도어느샌가 찰싹 달라붙어 달달한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머. 망측해라."


소냐는 그런 말을 하면서 자기도 슬쩍 끼어들었다.
그렇게 점점 살색이 많아지고...마침내 살색 투성이가 된 막사 내부.


"아니...사랑씨 어떡할 거냐고요...인간들아...."

오직 유나만이 뚱한 얼굴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




"공주님?"

유은들이 있던 막사를 나와 궁으로 향하던 루드밀라와 베로니카.
그 둘을 뒤따라온 서현이 불러 세웠다.

"잠시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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