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17)화 (316/517)



〈 317화 〉28.재회, 재회.

"왔구나."
"예. 폐하."

단상에 앉은 이를 향해 루드밀라가 공손히 인사했다.
이어 베로니카 역시 깊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하고 나와 유나씨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혹시 이걸 가지고 딴지를 걸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 애초에 나랑 유나씨는 신경 안 쓰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일단 앉거라."

그의 말에 따라 루드밀라가 나와 일행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많고 많은 좌석들 중 꽤나 앞부분으로 이동.

루드밀라는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옆을 베로니카가 앉고,  옆을 나와 유나씨가 앉았다.


이제 회의가 시작하는 건가.
겁나 지루할거 같은데.

"과자라던가 커피라던가 주는 거 없어? 심심한데. 떡볶이 먹고 싶다."
"...좀 참으세요."

날뛰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그녀.
미안하지만 난 참는 것과는 거리가 좀 멀거든.


"국재(國材) 35위가 모두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지."


왕이 근엄한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침묵이 가라앉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판때기 하나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지도를 붙여둔 건가?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드리죠."

그는 지도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몬스터가 점령했다느니 시체가 쌓여 전염병이 창궐했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 하품이 나올 것 같다.


"저 분이 라이제르 왕국에 1분 밖에 안 계신 마스터, '플푸미르 딘 오벨 크라바 공작'님이세요."
"관심 없어. 그보다 내가  와야 하는 이유라는 대체뭐야?"
"그러게요. 저희가 여기 있을 필욘 없어보이는데."

유나씨까지가세하여 의문을 표한다.
그걸 들었는지, 플푸미르라는 사람이 우리쪽을 쳐다봤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은 바로 북쪽 대평원에서 시작된 몬스터들의 준동입니다. 수십 년 마다 있어왔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릅니다. 한달 쯤 전, 최북단에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는  모두 알고 계시겠죠."

회장에 있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원흉인 것 같습니다."

그가 품에서 여러 번 접힌 천을 꺼내 펼쳤다.


"본가의 가신이 확보한 놈의 몽타주입니다."
"놈?"

여기저기 깨진 얼굴에 끔찍한 몰골.
제대로  생명체라 하기엔 너무나 멀리 간 모습이랄까.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 법한 키메라의 모습이다.

몬스터 수십만이 준동했다면서 저런  대체 어디서 구해온거냐. 설마 가까이 가서 그려왔다는 건 아니겠지. 말이 안 되지 않나. 아니면 무슨 시프라도 있어서 은신술 같은  건가.
그런 거면 그냥 그 기술로 우두머린지 머머린지 하는 것의 목이나 따고 오지.


"보시는 바와 같이 인간의 몸에 변이가진행된 모습입니다. 즉, 사람이라는 뜻이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든, 흑마법에 손을댔든, 어떤 일을 계기로 평원의 몬스터들을 거느릴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게다가...놈의 기술을 맞으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변이되어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좀비와 비슷한 양상이죠."
"좀비라니...."
"끔찍하군......"
"그럼현재 피해는 어느 정도 됩니까?"


플푸미르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왕도에서 북쪽으로 100km.  이북으로는 모두 전멸입니다."
"!!!"
"일반 농민이나 영주, 기사 할 것 없이 모두 놈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고 있죠. 다만 완전히 죽은 시체가 움직이는 좀비와는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병처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끙...."

몇몇 귀족이 신음성을 흘렸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상대하긴  번거롭겠군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베로니카.

"왜?"
"수십만이나 되는 적을 '살아있는 백성'으로 간주하고 상대해야 하니까요. 살려낼 가능성이 있는 이상 무작정 도륙할 순 없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생각보다 양심있네. 한국의 윗대가리들이라면 그런사실 따윈 비밀로 하고 네이팜 같은 거 투척할 텐데.

"이놈의 실력을 정확히 추산하긴 어려우나, 몸 주위를 두르고 있는 마나량을보았을 때 잘해야 극(익스퍼트 극) 정도라는 군요.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제가 이것과 지근거리에서 대면할  있게 되면 사실상 상황 종료라는 뜻이죠."
"그럼 몽타주 그릴 시간에 직접 가서 처리하지 그랬어."


플푸미르가 움찔하며 날 노려본다.
아니 그렇잖아? 저런  그릴 정도면 꽤나 가까이 갔다는  아냐? 그럼 애초에 그걸 저 마스터라는 양반이 했으면 이미 상황 종료됐을 거 같은데.

그나저나 예의를 지켜 최대한 작게 중얼거렸는데 들어 버렸네.


"...멀리서 망원경 같은 아티펙트로 봤을  뻔하잖아요. 미쳤다고 가까이 가서 그림 그리고 있겠어요?"

황당했는지 작게 쏘아붙이는 루드밀라.
그렇구나. 망원경이있구나 여기에도.

"유은씨, 당신한테 물어볼 게 있습니다."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내쪽으로 몽타주를 내밀었다.


"이것의 원형을 알고 계십니까?"
"원형? 모르는데."

뜬금없이 원형이라니 무슨 소리야.

"이 모습이 되기 전의 모습 말입니다."
"전혀 모르는데. 애초에 북쪽에 있는 내가 어떻게 알아. 쭉 남쪽에만 있었구만."

나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더욱 안 좋은 시선을 보냈다.
역시 반말 때문인가.

"모른다고?"

플푸미르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몽타주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뭔가를  꺼냈는데...둥그런 모양의 돌이다. 보석인가?


"이걸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그 말과 함께 입술을 달싹이는 플푸미르. 그러자,



-유으으으은!!!!!!!!!!! 유은!!!! 죽인다!! 널 죽일 것이다아아아!!!!
-유으은!!! 유은!!


저 작은 돌맹이에서 엄청난수의 군중들이  이름을 합창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짜 엄청 커. 순간 고막이 터졌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

돌맹이는 10초 정도 소리를 내다가 멈췄다.
모두가 한 층 더 적의어린 시선을 내게 보내고 있다.

"들었으니 알겠지. 이것들은 하나같이 네 이름을 외치고 있다."
"몰라. 우연인가보지."

그보다 반말했다고 반말하네.

"정말 모르나?"
"아니 님아...나 계속 남쪽에만 있었는데 북쪽에 있는 인간을 내가 어떻게 아냐고. 몬스터 평원이고 나발이고 그런  있다는 것도 일주일 전에 알았구만."
"그래? 그거 이상하군. 남쪽이라...그러고 보니 라이젠령에는 그가 있었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뭔가를 꺼냈다.
그만 좀 꺼내라 도x에몽이냐.

"이건 신체의 변이 진행도를 역산하여 그린 몽타주다."

플푸미르가 내민 새로운 몽타주.
거기에는 꽤나 깔끔하게 생긴 남자가 있었다.


"로이드?"

NTL의 희생자가 되어 북쪽으로 쫓아버린...
아...왠지 알 거 같다...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이 다 나랑 로이드 때문이라는 거네?

"역시 아는군."
"로이드라면...! 라이젠령의 기사단장 아니었나?"
"영주의 정혼자였다던데...최근에 쫓겨났지."
"영주는 저자와 정분이 났고...."

뭔데  정보력...;;
그런 걸 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로이드는 라이젠 남작을 연모하여 실제로 정혼까지 했으나 네가 남작령에 들어오면서 그의 모든 것이 날아가버렸지. 최근에는 아예 쫓겨나기까지. 이에 극심한 분노를 품고 악마와 계약을 했다던가 흑마법을 부려 세상을 파괴하려 하는 거라면 꽤나 설득력 있지 않나? 마침 네 이름을 불러대는 것도 그렇고."
"흠."

너무 그럴 듯한데. 빼박 나때문이잖아.

"그러게. 아무래도 나 때문인 거 같네. 미안."
"......"


사과했는데 모두들 표정이 굳었다.

"하아...."

유나씨는 한숨을 내쉬고 있고...음. 근데 원인제공을 내가 하긴 했어도 어쨌든 로이드 그놈이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잖아? 그럼 나쁜 건 그놈이지 뭘.


"이제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런 건 나중에 따지도록 하고, 일단은 대책부터 세우도록 하죠. 작전은 있는 건가요?"

불편한 침묵 속에서 루드밀라가 당당하게 말했다.
역시 공주라 그런지 어디서도 주눅들지 않네. 이 남편은 기쁘다...

"예. 물론입니다."

플푸미르는 다시 기나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다시 지루한 시간이....



.
.



회의는 무려 4시간 가량이나 진행되었다.

사실 풀프미르가 그렇게 말이 많았던  아니고, 중간에 국재 35윈가 하는 인간들이 두  파벌로 나뉘어 싸워댔기 때문에 늦어진 거다.


한쪽은 대단위 마나공격과 마법사들의 폭격 등을 이용해 로이드를 따르는 백성들을 먼저 처리하고 그 틈에 고위 국재를 투입, 순식간에 로이드의 목을 따자는 의견이고,
나머지 한쪽은 그렇게 하면 백성들의 피해가 너무 커질 수 있으니까 소수의 고수들을 은밀히 파견해서 암살하는 형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뭐 어느쪽이든 말 자체는 일리가 있겠지만 솔직히 후자는 말이 안 된다고 본다.
나나 유나씨가 아니라면 불가능한데,나는 해줄 생각이 없고 유나씨도 딱히 그런 수고를 굳이  필요성은 못 느끼는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시녀들을 투입하기엔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좀 불안해.


그냥 쓸어버리는 편이 낫지 않나...허허허...

아니 무슨 네이팜 투척 수준으로 쓸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진행방향을 막아내는 것들만 처리하자는 거지.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하죠."

계속되던 회의에 유나씨도 지쳤는지, 살짝 피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쓸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지만...활이라는 무기가 있잖아요? 당신 꽤 잘 쐈었고."
"아."
"뭐 데미지로만 따지면돌만 던져도 충분하겠지만 그래선 정확하게 맞을지 안 맞을  모르니까...활이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활이라면 괜찮을지도...

"활? 활을 쏠 수 있습니까?"


베로니카가 의외라는 듯이 말을 걸어온다.


"그럼. 이래봬도 유능하거든."
"아니, 제 말은 활에 마나를 담을 수 있냐는의미였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내가 물어봤는데 오히려 베로니카가 고개를 갸웃한다.

"놈을 둘러싸고 있을변이체만 최소 수만...그 정도면 놈과의 거리는 짧게 잡아도 Km단위입니다. 그만한 거리에 있는 걸 마나도 담지 않은 활로 저격하겠다는 겁니까?"
"왜. 맨 앞에 나와 있을 수도 있잖아."
"그건ㅡ,"





쿠구궁!!!






어? 뭐야?
갑자기 엄청난 진동!
막 천둥 수백개가 울리는 굉음이다.

"지진인가?"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구구구구구구구구구!

"어어어어. 뭐뭐야야 왜왜이이래래."

지진이다! 그것도 엄청난!

"꺄아아아아악!!!"
"피해!!"

웅장하게 서 있던 건물이 무너진다.

"공격인가?!!"
"어디냐!! 대체 무슨!!"


잠시 쉬고 있던 35위들도, 그리고 왕궁의 시녀나 하인들도 허둥대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국장님!!"

베로니카는 공주를 감싸 안으며 호위.
나랑 유나씨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쓰러지는 건물 같은 거 맞아봤자 하나도 안 아플 테고...그냥 공짜로 안마 받는다고 생각하지 뭐.


"그나저나 진짜 이거 뭐지."
"...이거 뭔가 전에 겪어보지 않았어요?"
"겪어보다뇨?"

유나씨가 대뜸 그런 소릴 했다.
흠...겪어봤다니...그러고보니 좀 비슷한 상황이 있긴 했지.

""바르카나?""

유나씨와 내가 동시에 같은 단어를 뱉은 순간, 우리 위로 엄청나게 거대한 무언가가 두둥! 하고 등장했고, 왕도는 그 그림자에 암흑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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