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14)화 (313/517)



〈 314화 〉27.커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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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터, 새로운 질서가 필요합니다."
"네?"


한사랑을 청와대로 불러들인 대통령의 첫 마디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한사랑이 반문하자, 그는 여유로운 몸집과는 대비되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현대의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당연한 것이고 또 영원히 지속될 거라 흔히 생각하죠."
"?"

여전히 뜬금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무서운 생각입니다.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에는 그 대가가 있으니까요. 가볍게는  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목숨까지."

제법 무거운 말을 하려는 것인지, 마련된 커피를 후룩 마시며 잠시 뜸을 들였다.

"민주주의나 인권이등장한지도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그 대가를 치른 것도 말이지요. 그래서인지...이젠 그걸 유지하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반문.
그러나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졌다.

"대령은 지금의 질서가 얼마나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알겁니다. 똑똑한 분이니까요."
"...."
"5년...아니 이제 슬슬6년이군요. 던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수 많은 공동체와 사회가 붕괴했습니다. 우리 같은 선진국이 아니면, 그리고 선진국이라 해도 국력이 받쳐주는 나라가 아니면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지요."
"던전의 위험성에 관해 말하고 싶으신겁니까? 그런 거라면...."
"그런 거였다면  대령과 얘기하지 않았겠죠. 던전은 그저 전초전일 뿐입니다."

그는 설명을 계속했다.

"던전이 등장한 이후, 강력한 힘을 가진 개인이 출현했고, 그들은 서로 뭉쳐 길드를 세웠습니다. 말이 길드지 사실상 사설 무장단체나 다름없죠. 국가의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마침내...그 사람도 등장을 했고요."
"유은씨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사실상 그가 등장함으로 인해 그 이전의 모든 건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금 두려워 보였다.
여유로운 표정에감추어진 흔들리는 눈빛.
그렇다고 도망을 치는자의 표정은  아니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그에 대해 알고 있다 생각했습니다만, 지난  개월 간은 그런 저를 아주 모질게 책망하더군요. 그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고 위험한 사람입니다. 설령 그가 없더라도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는 하렘궁이 독자적으로 중국을 제압한 일을 생각하는 듯했다.
수십만에 달하는 인민군이 떼몰살을 당했으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그로 인해 얻어낸 보지니아들과, 납치되어 시녀화 된 여자들은 고스란히 궁의 소속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도 아니고...사람에게서 태어나 번식하는 괴생물체라니. 그런 것이 서울 한복판에 풀린다고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죠."
"중국군이힘도 못 쓰고 떼몰살을 당한 이상 국군도 그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한사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군에 몸담고 있는 그녀가 봐도 상대가 되질 않는다.

"아무튼...그런 상황입니다. 국가는 물론이고 인류가 힘을 합쳐도 그를 제압할 수 있을지 장담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머지않아...."


그는 잠시 목을 축였다.
몇 번이고 입맛을 다셨다.


"지금의 질서는 붕괴하겠죠.그는 민주주의나 인권이 있는 세상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든 걸 소유하길 원하고, 마음대로 하길 원하면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하죠. 마치 중2병 사춘기 소년을 보는것 같은 느낌입니다."
"...."
"그런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제가 보기에 그런 사람은 없는  같군요."
"...동감입니다."
"일이 잘못 틀어지면 이 나라도 존속을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있는 동안이라면 최대한 그에게 맞추는 방향으로 할 수 있겠지만...글쎄요. 왕정국가도 아니고 5년마다 반드시 대통령이 바뀌는 국가인데 새로운 질서가 정립돼가는 이 시점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지속되었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생각하고 있었고, 한사랑도 나름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유은이 없는 몇 개월간, 세상은 격변했고, 그동안 이어져오던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게 되면 그것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아까 제가 한  기억하십니까?"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는 말 말입니까?"
"네.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에도 당연히 대가가 따릅니다. 보통은...극심한 혼란이죠. 예를 들어 봅시다. 유은  사람이 지나가던 아무  없는 여자를 잡아다가 자기 여자로 삼고, 그걸 모든 국민이 알게 됐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건...."

대통령이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어떤 걸 택해도 파멸입니다. 딜레마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한답시고 영장을 발부해 그를 체포하겠다 하면, 국민들은 환호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정의에는 부합하겠죠. 하지만 궁에서는 반발할 것입니다. 살인에 무감각하고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것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는 집단이 반발하는 겁니다. 어쩌면 일본에 했던 원자로 테러나 중국에 했던 생화학 테러를 서울 광장에 할지도 모릅니다. 마약왕이 설치던 시절의 콜롬비아나 멕시코 꼴이 될 지도 모르죠. 그들의 반발을 막아낼 수단이 우리에겐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범행을 모른척 한다면, 이번에는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 흉악범죄의 처벌이 흐려지고, 각종 비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참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니까요.  한 명의 범죄자에게 국가가 굴해서는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택할 수가 없지요."

참으로 참담한 미래다.
문제는 그것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닌 매우 높은 확률로 현실화될 일이라는 것.


"그래서...제게 하고 싶으신 말이라는 건 대체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딜레마를 미리 해결하자는 거지요."
"?"
"히든직업을 얻었지요? 그 기능도 대강 들었습니다. 군사들을 소환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국가의 입장에선  껄끄러울  있겠습니다만, 간단하게 사병육성이 이루어진다고 보시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대령과 이 얘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습니다만...최소 5개 이상의 사단 규모로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5개 사단? 그렇게 많이 말입니까? 물론 제 스탯이 상승하면 의지와 상관 없이 소환되긴 합니다만...그렇게 되면 도저히저 혼자 데리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도 먹고 마시고 유흥도 즐기니까요."
"그렇겠죠. 하지만,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다면 5개 사단 쯤이야 얼마든지 입히고 먹일 수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네?"

다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럴 수밖에. 뜬금없이 '국가의 권력'이니 하는 거창한 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이런 소릴  것이다.

"아까 그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있습니다. 물론 전제조건을 파괴하는 궤변 같은 방법이지만요."


그가 검지로 본인의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애초에 사건 발생을 모르도록 하면 됩니다."
"?"
"그 사람이 여자를 납치하던, 남자를 납치하던, 모르면 됩니다. 그럼 국가의 선택은 보다 더 간단해지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언론통제를 말하는  같았다.
예전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했을테고, 실제로도 통제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글쎄.

"안 되지요. 그러니까 한 대령의 힘이 필요한 겁니다. 지금의 이 질서를 한 순간에 파괴하고 새롭게 쌓아올릴 수 있는 거대한 힘이."
"하...설마...저보고 쿠데타라도 일으키라는...그런 말씀이십니까?"

조금 격양된 어조의 그녀.

"아닙니다."
"그럼 대체!"
"쿠데타라뇨. 살아남기 위한 혁명에 불과합니다."
"...말장난이지 않습니까!"
"그럼 이 나라가 지금의 체제로 모든 언론을 개미새끼  마리 못 나가게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 나라가?"
"왜 그것만이 방법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한 대령, 묻겠습니다.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당신은 그가 어떻게 되길 바라시죠?"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당신은 그 자의 애인이면서 동시에 공리주의자입니다. 어느쪽의 입장이든 그가 체포되거나 국가와 척을 지길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만 꾹 깨물었다.

"그럼 그 상황에서 국가와 기관은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국민들에게  사실을 널리 퍼뜨리고, 그가 비록 죄를 지었지만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감히 우리가 체포하거나 기소하여 처벌할 수 없다. 뭐 이렇게 발표라도 할 겁니까?"
"그건...."

"나라가 무너집니다! 한 두번이어야지! 나라만 무너집니까?그 국민들은? 우리들의 한민족은 어떻게 됩니까? 국가가 대항하지 못할 때, 항상 일어나 칼을 겨눈 게 한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칼을 겨누었을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이 끔찍하게 터지면서 괴물의 모체로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원자로 테러를 맞아 방사능으로 점칠된 채 평생 몸이 녹아내리다 고통과 함께 죽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어차피 제가 혁명이든 쿠데타든 일으킨다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군부독재에 대한 국민의 악감정은 지금도 식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겠죠. 분명 반발도 할 겁니다. 시위도 일어나겠죠. 하지만 그건! 당신이 처리하게 되지 않습니까. 당신과 그 군인들이 처리하지 않습니까? 굳이 죽일 필요 없고, 고문하거나 불필요하게 높은 형을 때릴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면 목적이 그들을 지키기 위한 거니까.
하지만 만약 하렘궁이 시위대와 부딪힌다면 어떻게되겠습니까? 이래도 차이를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이런 제안을 드리는 건지 모르시겠습니까?"
"...."
"나라에 충성하고, 겨례를 마음에 담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면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당신이 장차 일어난 시위대와 격렬한 혁명의움직임에 대해 하렘궁 대신 그들과 마주치길 원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격양되었던 그가 숨을 고르며 호흡을 정리했다.

"......이미 질서는 바꼈습니다. 그와 같은 괴물이 등장한 시점에서 말이죠. 대항할  없습니다. 그럼 최소한 생존이라도 해야지요."
"하나 여쭙겠습니다. 군부 독재를 한다 해도 어차피 정보는 새어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완벽하게 틀어 막을 수 없다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해도 여전히 통제되는 부분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극단적인 수를 써야 하는 겁니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나라는 5년에 한 번 반드시 지도자가 바뀝니다. 그 중에는 확고한 의지와 신념을 가진 정의의 사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범죄를 혐오하고, 특히 그 사람을 싫어하는 자 일수도 있지요. 그렇게 그와 부딪히게 되면 이 나라 자체가 지워질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두려워 하시는 군요."
"그 힘을 보았으니까요."


이대로 가다가는 반드시 하렘궁과 부딪힌다. 그러니 그 전에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궁과 대립하지 않는 나라를 만든다. 그리고 국민들을 통제하여 그들 역시 궁과 부딪히지 않게 한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최소화.


그것이 바로 대통령의 계획.

한사랑은 그것에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항할  없으니 애초부터 굽히고 심지어 새로운 질서까지 세운다니.
이래서는 마치 매국노가 아닌가. 감히 대적할  없는 외적을 맞이해 싸우는 대신 항복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국민을 지켰다 자위하는 역사에 으례 있는 그들과 같은 모습이아닌가.

물론 그 외에 딱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유은은 물론이고 그가 없는 궁 조차 세계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인천을 등장과 동시에 쑥대밭으로 만들고, 모든 현대병기를 장난감 취급하던 그 바르카나가 고작 2명의 침입으로 무너져 내렸고, 수십만의 정병은 아흑이의 분신 만으로  쓸려나갔다.

역사속에 등장하는 여느 강대국이나 외적들과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차원이 다른 상대.
어쩌면 굴복이야말로 진짜 정답일지도 모른다.

"첨언하자면,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있습니다. 관련된 법조항만 적절히 만들어 진다면, 국내를 통제하는 것쯤은 일도 아닙니다. 물론 지금 이 나라는 할 수 없죠. 이미 너무 민주적이니까요."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상체를 앞으로 내미는 그.
아까와 다르게 떨리지 않는 단호한 눈동자였다.

"세상을 파괴하고, 세상을 창조한다. 그게 당신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한사랑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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