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화 〉27.커맨더.
"...!!"
서서히 떨어지는 팔.
분명 그 속도는 빠를 것이다.
그러나 인식의 속도가,
그의 뇌가,
느리다.
피어오르는 부정적인 감정.
그리고 회피하고픈 열망.
본래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눈 앞에서 목격하였기에 그의 뇌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 사라지진 않는 법.
오히려 반작용으로 시간의 픽셀 하나하나, 편린의 편린까지 인식하며 사건은 느리게 인식되었다.
또렷하게.
10분의1초도 되지 않을 찰나의 순간이, 1분, 10분으로 변한다.
투웅!
두터운 소리와 함께 합금의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을 베어낸 검은 여전히 번뜩이는 날카로움으로 그를겨누고 있고, 언제든 앞으로 뻗어 심장을 취할 준비를 다하고 있다.
바싹 타오르는 입술.
수분이 마르고 타는 듯한 갈증과 함께 아랫배에선 격렬한 뜨거움과 통증이 밀려왔다.
검에 맞았나?
그건 아니다.
그저 응축된 감정.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선 안 되는 일,
그에 대한 소망과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맹목적인 시야.
그러한 것들이 쥐어짜여 마침내 만들어낸 환상이 산산히 부서지는 그 광경.
그것을 목도했을 때의 고통이다.
"합금이니까 어차피 아프지도 않지? 좋겠네."
아프다.
미칠듯이아프다.
너는 모르는구나.
역시 모르는구나.
나의 이 아픔을.
보고만 있어도..
그저듣고만 있어도..
시리고,
욱신거리고,
뒤틀리며,
마침내 희망을 각혈하는..
이 아픔을 모르는구나.
관심도 없구나.
처절한 외침.
그것은마치 자동차의 엔진처럼 광광 울어대며 격렬하게 펌프질하는 심장의 그것과 같았다.
온 몸의 혈관을 돌고돌아 작고 작은 미세한 구역까지 산소를 공급하는 기적의 움직임.
그의 폭발하는 감정이 그야말로 그것이다.
가열차게 출발하는 피에 실려 전신의 혈관 곳곳을 돌며 모든 응축된 울분과 감정과 열망과 욕망을 모으고 모아 폐에 도달.
온 몸의 기운과 수분, 영양분 등의 필수 요소들을 모조리 불태우며 이제껏없었던 스케일의 비명을 터뜨린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청 터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한 사자후가 이런 느낌일까.
그 거대한 외침 만으로 한사랑의 몸이 순간 뒤로 휘청거렸고, 대원들의 몸은 경직되었다.
그뿐이랴.
던전의 벽과 천장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리고, 멀리서 꽥꽥 거리며 풀썩 쓰러지는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큭!"
움직이기가 힘들다.
도대체 어떤 성량을 가진 건지, 아니면혹시 스킬의 일종인지, 몸이 먼저 겁을 집어먹었다.
자신만만하게 있던 그녀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후웅 - !
때를 타 묵직하게 휘둘러지는 팔.
한쪽을 잘라냈다면, 다시말해 다른쪽은 멀쩡하다는 얘기다.
합금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의수가 그녀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진다.
스탯을 가지고, 버프효과를 가지고, 그것을 망설임 없이 휘두른다.
그 재빠름은 차마 피하지 못할 정도여서, 고작해야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리는 정도의 시간밖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 마저도 경직으로 인해 여의치않았으나, 위기의 상황에 인간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가까스로 팔을 들어 올렸다.
뽀각!
그러나 합금의수는 들어올렸던 그녀의 팔을 허무하게 부러뜨리며 머리에까지 충격을전달했다.
본래라면 그 즉시 죽었을 터.
그러나 천운인지 아니면 살고자 하는 의지였는지, 그 찰나의 순간 머리를 반대편으로 움직이며 충격을 줄였다.
물론 그 전에 팔이 부러지면서 충격을 흡수한 것이 가장 컸다.
"크읍...!"
전신에 힘이 풀린다.
아까의 휘청거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지러움이 전신을 장악하고, 맛이 간 달팽이관 덕분에 균형감각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서 있는 것 조차힘든 상태.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든 이를 악 물었다.
여기서 쓰러지거나 물러나면 남은 건 약해빠진(?) 일반 대원들이다.
이미 한 명을 죽이고, 군의 주요 간부인 그녀도 공격하였으니 살인멸구(殺人滅口)는 필수.
그녀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대원들은 몰살 당할 것이다.
"당신은 언제나 그랬지."
후웅 - !
다시금 팔이 휘둘러진다.
이번에는 옆구리를 향해.
부러진 팔은 다시 쓸 수 없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사용할 수 있는 건 반대편에 쥐고 있는 초진동 디바이스.
잔뜩 교란된 신경계를 억지로 받쳐 올리며 가까스로 방어를 해 보지만, 그 허접한 움직임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뻐억 - !
끔찍한 고통이 순차적으로 밀려왔다.
막상 얻어 맞은 옆구리는 얼얼하기만 할 뿐 별 느낌이 없었고, 그 뒤에 있는 내장들...간이나 췌장, 폐, 신장 등에서 새빨간 격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2차로 잔뜩 금이 간 갈비뼈와 위, 십이지장, 반대쪽 신장이나 폐 등에 이르러 고작 몇 초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그녀의 정신은 3~4번의 퓨즈가 나가버렸다.
기절했다가 끔찍한 고통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 쇼크에 기절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그것을 무수히 반복.
그 자체만으로도 가지고 있던 모든 기력이 소모됐다.
전투불능 그 자체.
아니, 이쯤되면 생사의 문제다.
'안...돼...!'
꺼져가는 불꽃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해보지만 실패.
"기다리고 있어. 천천히 상대해 줄 테니까. 평생!"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은 그 말을 남기고 튀어 나갔다.
이어지는 피의 향연.
끔찍한 고통과 절규가 멀어져가는 의식 너머로 들려왔다.
'또...또...!'
몇 개월이나 지난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
그리고 사방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
지휘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녀를 중심으로 고작 중대 한 개만 간신히 움직이는 상황.
그리고 그 마저도 무능으로 인해 지켜낼 수없었으며,
그녀 자신이 인질로 잡혀가는 것 외에는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수백 수천명이 죽었고,
그만한 삶이 사라졌다.
민간인은 더 많이 죽었다.
무려 40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개소리!
고작 이따위 능력으로 무슨 그런 건방진 소릴 한단 말인가!
샤아악!
마침내 꺼져버린 의식 속에서, 그녀는 깨어났다.
"끄아아악!"
온통 검게 물든 곳.
보이는 건 하나 없었지만, 들리는 건 많았다.
"아아악!"
"살려줘!!"
"꺄아악!"
사방을 가득 메우는 비명.
한두 사람의 것이아니다.
적어도 천 명 그 이상.
상 하 좌 우.
360도의 360도.
그야말로 천지사방 모든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귀를 괴롭혔다.
"그만...!"
귀를 막았다.
하지만 소용없다.
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그 비명소리는 귀 속으로 꽂혀 들어왔고, 그 세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아악!!!"
마치 폭발같다.
휘몰아치는 폭격의 충격파와 여기저기서 터져나가는 수류탄.
빗발치는 총탄 등등이 하나하나 비명으로 치환되어 그녀에게 날아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원자부터 전자, 원자핵, 쿼크까지
'존재'라는 것자체가 끔찍한 비명으로 치환되어 버린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비명으로 이루어져 있다ㅡ,
라는헛소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정도의 세계.
귀를 닫아도, 고개를 돌려도, 미친듯이 달려가도,
어딜 가도 비명이 항상 존재한다.
피할 수 없다고 고하는듯이 무슨 짓을 해도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단 1초만 있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극한의 상황.
결국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처절할 정도의 무력함에, 눈물이 마구 흘러 내렸다.
저 비명들은 전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아무 능력이 없었기에,
미달된 자가, 자격 없는 자가 뻔뻔하게 앉아 있었기에,
세상이 이렇게 비명투성이가 된 것이다.
그 통렬한 자책감이 또한 비명이 되어 그녀의 내부에서부터 울렸다.
불안한 정신상태와 함께 두근두근하며격렬히 펌프치던 심장소리도 이젠 비명으로 들릴 정도다.
정신과 함께 신체 또한 무너지고, 끝없이 무너지고
망가지고 또 망가진다.
이제 여기에 있는것 자체,
그러니까 그녀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그저 고통이다.
무력하고, 무능하고, 힘 없는 자가, 그저 있으니까 있는 정도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그녀는 귀를막고 있던 손 마저 내렸다.
비록 의미 없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귀를 막고 있었던 건 최소한의 발버둥.
그것마저 이젠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안 될 텐데.
해서 뭐 해.
지독한 패배감이 그녀의 전신에 감돌았다.
옥토파민이 폭증하며 무기력에 무기력을 더하고,
세로토민이 급감하며 자신감은 자괴감으로 변질됐다.
이미 그녀의 정신붕괴가 신체현상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
늪.
깊게 빠져버린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살아 나올 수 없다.
극한의 늪.
절망의 늪.
절규의 늪.
비명의 늪.
모두 하나가 되어 그녀를 삼켜간다.
좀먹은 팔을 꾸역꾸역 내밀며 그녀를 잡고 끌어내린다.
늪 만으로 힘든데.
비명 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한데,
이젠 오로지 비명으로 삐걱거리는 심연으로 그녀를 끌어당기고있다.
정신붕괴나 신체붕괴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이젠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
절망한 채로 서서히 죽어가며 생기와 핏기마저 증발하는 반쯤은시체.
저항할 구석도, 생각도, 그런 모든 의지들을 잃어버린 움직일 수 있는 시체.
'나처럼 능력 없는 사람은...없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온 몸에 힘을 빼고, 그저 받아들이며 늪으로 빨려가는 한사랑.
견디는 건 너무 힘들다.
저항도 너무 힘들다.
그냥 받아들이자.
비명도,
절규도,
그냥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같이 늪으로 빠져 버리자.
그러면 평생..아니 영원히 편안할 테니.
결심으로 포장한 포기를 했을 무렵, 또 다시 머릿속으로 주마등이 스쳐갔다.
죽어가는 병사들.
칼에 맞아 죽고,
화살에 맞아 죽고,
튀어진 돌에 맞아 죽고,
몸이 반으로 쪼개져 죽고,
하반신이 날아가 죽고,
목이 날아가 걸레처럼 나뭇가지에 걸려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죽고 죽고 죽고 죽고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콰악!
돌연 그녀의 눈빛이 번뜩이며 질척거리는 늪을 손으로 짚었다.
"씨발...포기하면 편한데...그럴 수가 없네...."
힘을 주었다.
콰악!
반대편 손도 늪을 짚었다.
그래도 빠지지 않는 몸.
아니, 애초에 손도 같이 빠져 들어간다.
그래도 힘을 준다.
하여튼 힘을 준다.
빠지든 안 빠지든...일단 힘을 준다.
"견뎌? 무슨 개소리야병신아.."
꽉 깨문 입술에선 피가 흘러 내렸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턱을 타고 흘러 내렸다.
고통?
그런 건 없다.
늪에 있는 게 더 아득한 고통이니까.
저 비명을 듣는 게 더 아득한 고통이니까.
이 빌어먹을 손들이 잡아 당기는 게더 고통이니까!
그러니까고작 입술의 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견딘다고 생각하면 안 돼...이긴다고 생각해야 돼...무조건...무조건 이기는 거야...."
아직도 머릿속에선 죽어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수백 수천의 삶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그 광경이, 너무도 선명하다.
그리고 아마 지금 또 그와 같은 광경이 기절한 그녀의 의식 밖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이기는 거라고...! 이겨서! 지켜내는 거야! 모두를! 이 세상을!!"
필사가 살아난다.
잃어버린 의지가 살아난다.
흩어졌던 힘이 모인다.
몸이...빠진다.
후드득.
온통 검은 세상이라 보이진 않지만,
점점 빠져나오고 있다.
늪에서,
점점.
"저리 꺼져!!"
팔을 휘두르니 그녀를 잡아당기던 팔들이 떨어졌다.
처덕.
아무렇게나 팔을 휘두르면서, 동시에 늪을 빠져 나온다.
손대면 댈 수록 손도 빨아 들이는 늪이지만,
그래도 빠져 나온다.
"늪은 무슨 얼어죽을! 그딴 게 어딨어!!"
탁!
바닥이 만져졌다.
그리고 반쯤 빠져 나왔던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솟구친다.
딱딱한 바닥에 내팽개쳐진 몸에서 미미한 고통이 올라왔다.
그걸 무시하고,
발을 세운다.
다리에 힘을 주고,
허벅지에 힘을 주고,
몸을 들어 올린다.
쓰러졌던 몸은
다시금 일어나
척추를 곧추 세우며
떨어져 내렸던 시야를 마침내 전방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지금껏 자괴감과 패배감에 억눌려 있던, 폐부 깊숙이 응축돼 있던함성을 내질렀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따위 수작질이야!!!!!"
팡!
힘이 잔뜩 들어간 주먹으로 심장을 쳤다.
"내가 바로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이 개새끼들아!!!!!!!"
휘몰아치는 기운.
그녀를 어떻게든 잡으려 몰려오던 손들도,
잡아 먹으려 날아들던 늪의 형상도,
귓가를 어지럽히던 비명도,
그 외침으로 모두 사라졌다.
소멸.
이 세상을 지배하던 검은 무언가조차 모조리 사라졌다.
[히든직업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YES/NO.]
이제는 하얀 세상.
그 가운데 오로지 그 메세지만이보였다.
안개를 걷어내고 마침내 보이는 시야처럼,
명확하게 보인다.
언제부터 떠 있었던 것일까.
그건 모른다.
하지만지금 보인다.
그녀에게.
한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빌어먹을 놈은 소중한 대원들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끄덕인다.
더 이상 후퇴는 없으니까.
띠링!
[히든직업 '불멸의 사령관'으로 전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