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화 〉27.커맨더.
27.커맨더.
후웅- !
뽀각!
경쾌한 소리.
달려들던 들개의 머리통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피와 뇌수를 흩뿌렸다.
"뒤!"
한 대원의 짤막한 경고에 단발머리 여인이 멋드러지게 뒤돌려차기를 시전, 막 그녀를 물어뜯기위해 달려들던 들개의 턱에 정확히 들어맞으면서 그대로 절명시켰다.
이어 그녀는 들개의 앞발 휘두름에 단검을 놓쳐버린 대원을발견하곤 그쪽으로 큼직하게 발을 디뎠다.
두어걸음 껑충 뛴 후 강하게 착지한 오른발을 디딤삼아 날라차기.
겁에질린 대원의 얼굴 코앞에 있던 들개의 대가리가 그녀의 군화에 맞아 처참하게 꺾였다.
이후 2분 가량의 전투 끝에 모든 들개를 소탕.
여인을 필두로 대원들이 헉헉거리며 주저앉았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은 알아서 보초를 서며 주변을 살피는 것이 완전한 프로.
"대장님, 물 좀 드시겠습니까?"
"어. 조금."
대원 한 명이 인벤토리에 실어 둔 대형물통, 정확히 말하면 보온보냉이 되는 녀석으로, 주로 야외 훈련을 나갈 때 싣고 다니는 것이다.
거기서 찬 물을 따라 건내 주었다.
제법 큰 컵에 따라주어 양이 많았기에 그녀는 두어모금 마신 후 머리에 뿌렸다.
축축하게 달라붙는 머리카락과 주르륵 흘러내린 물 탓에 흠뻑 젖어버린 녹색 티셔츠.
땀과 더불어서 그녀의 출중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음욕어린 시선을 던질 만도 하건만, 대원들은흘끔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F급이라 해도 이곳은 던전.
고작 음욕 따위에 사로잡혀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훈련도 낮은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모두가 지옥의 훈련을 거쳐 선발되었고, 모두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들어왔다.
다시금 정신차린 한사랑과, 50명의 정예 특전사들.
군 소유의 논산 던전에서 모종의 실험과 함께 본인의 능력 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었다.
철컥.
가벼운 총기손질을 마친 대원 한 명이 빠른 속도로 재조립하여 탄창까지 깔끔하게 장착했다.
분명 던전 내부에선 총기 사용이 안 될 텐데, 이제보니 전원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진행중인 GODK 프로젝트.
지난 수년간 던전과 화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한 결과, 던전의 마기와 일반적인 물질 간에는 서로 밀어내는 반발작용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반발력은 작용하는 힘이 크면 클 수록 역시 커지며, 그로 인해 화약과 같은 강한 폭발력을 가진 물질을 던전 내에서 사용하면 그만큼사용자가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를 가지고 크게 2가지 루트로 연구를 진행중인데,
첫 번째는, 던전용 화기, 즉 총의 몸체부터 총알의 몸체,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화약까지 아예 처음부터 모든 물질을 던전의 마기가 묻은 물질로 제작을 하는 것이 그것이었고,
두 번째는, 마기와 물질간의 반발력을 역이용한 폭발형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첫 째는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우선 몸체.
하렘궁이 대량의 트랜스미스릴을 구해오는 이 시점에선 크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은 하렘궁과 거의 유일하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나라였기에 아흑이의 분신을 빌릴 수 있었고, 이는 던전용 화기 개발에아주 큰 진척을 안겨다 주었다.
특히 화약을 대체할 신물질을개발하는 것에 아주 지대한 공을세웠는데,
D급 던전에서 주로 나오는 마나파우더에 화약을 아주 미량 넣어 섞게 되면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의 가루가 탄생한다.
이 가루는 마기를 머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일반 물질에 대한 엄청난 잠재반발력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충격을 주게 되면 물질에 대한 반발력 + 화약의 폭발력까지 더해져 화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반응성과 화력을 일으킨다.
이를 이용하여 현재 국군이 사용하던 K-2를 개량, 세계최초(아마도) 던전용 개인화기인 KD-1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두 번째.
상술한 신물질의 성질을 조금 더 극대화한 폭발물로, 아예 신물질 안에 소형 수류탄을 묻어놓은 것으로, 수류탄이 기폭제가 되어 외부의 신물질(이하 '화약파우더'라 칭함)을 터뜨려 그 충격파로 1차적인 피해를 주고, 이후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는 수류탄의 파편들이 2차적인 피해를 입힌다.
이 무기는 워낙 화력이 뛰어나고 범위도 넓기 때문에 던전 보다는 외부로 나온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한 용도로 개발되었으며, 따라서 현재 한사랑을 비롯한 특전사들이 시험하는 무기는 KD-1 하나였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매우 성공적.
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어지간한 던전은 말 그대로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끊임없는 보급과 인력충원이 되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던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기가 개발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 그녀와 부대가 복귀한다면 소속 과학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댈 것이다.
'...부족해.'
그러나 막상 화기를 사용해 본 한사랑의 표정은 그리 평온치 않았다.
분명 대단한 무기.
대단한 발전임에는 틀림없다.
던전 안에서 거의 무대책으로 학살 당하던 군인들이, 이젠 오히려 몬스터들을 압도하며 쓸어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것도 스탯 없이!
그러나 그래도 부족했다.
턱없이부족했다.
바르카나의 수십만의 정병들,
그들을 이끄는 장교들,
하나하나 말도 안 되는 힘을 갖고 있다.
고작 이 정도 무기로는 도저히 만족할수가 없다.
"보급품은 얼마나 남았지?"
"식량과 식수는 3일분, 탄약은 3번만 더 전투를 치르면 모두 소진됩니다."
"철수한다."
그래도 한 발자국.
어쨌든 내딛었다.
깊은 절망의 늪을 어떻게든 기어 나와
다시 정신을 다잡고,
다시 몸을 만들고,
다시 군에 복귀한 그녀처럼,
어쨌든 인류도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러면 이대로 하면 된다.
그게 틀림없이 정답이다.
"혹시 히든직업을 얻은 병사 있나?"
"없습니다."
"그거 아쉽군."
한사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개의 피와 뇌수가 덕지덕지 묻은 개머리판을 대충 문질러 닦은 뒤,탄창을 넣어 장전.
가볍게 몸도 풀었다.
"그나저나 대장님은 대체 스탯이 얼마나 되시는 겁니까? 엄청난 괴력이십니다."
"스탯은 별 거 없다. 장비빨이지."
그녀가 발을 툭툭 굴렀다.
이전부터 화기를 제외한 장비 만큼은 군대에서도 제법 잘 만들곤 했다.
그녀가 신고 있는 군화는 물론 군복과 심지어는 계급장마저 스탯과 효과가 붙은 군용 아이템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발차기로 들개의 대가리를 부수다니. 말도 안 됩니다."
"니가 약해서 그런 거다."
"에이."
부정하며 고개를 젓는 그에게 피식 웃어준 한사랑이 전사들을 다독였다.
이제 진짜 움직여야 할 때.
던전에선 특정 스폿을 제외하면 한 곳에 오래 있는건 금기. 몬스터가 리스폰 되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에 돌입해야만 한다.
그리 되면 아무리 익숙한 몹이 상대라도 부대가 궤멸될 수 있다.
"돌아가자. 기지로."
+++
척. 척.
험한 산세.
던전이 등장한 이후, 군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인공적으로 산을 만든 지역이었다.
소위 '논산 던전'이라 칭해지는 F급 던전.
대한민국 국군 소유로서, 민간인 - 모험가 포함 - 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어 있다.
또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항시 1개 사단이 주변에 주둔하고 있으며, 유사시 즉각적인 제압을 위해 20여대의 전차와 수십정의 기관총이던전 입구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있다.
만약 일전의 도쿄와 같이 던전 역류현상이 발생한다면, 그 즉시 모든 화기의 방아쇠를 당겨 건방진 몬스터들을 섬멸한다.
아무튼 이런 살벌한 장소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불규칙한 숨소리, 거칠게 움직이는 어깨.
상당히 지친 듯한 모습이었지만, 표정은 사뭇 달랐다.
지침 보다는 분노와 일그러진 욕망이랄까.
-한사랑...그년 어떻게 하고 싶지 않나?
-그게 무슨...?
-다 알고 있다네. 자네와 그 여자의 관계를.
-....
-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지. 어디 27짜리 애송이가 대령을 맡아? 말도 안 되지! 이게 다 그년 애비 때문이다. 격에 맞지 않는 거라고.
그는 바쁘게 움직이는 군영을 내려다보며 지난일을 회상했다.
병상에 누워 모든 희망과 의지를 잃어버리고, 그저 죽을날만 기다리던 그.
그런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비록 대외적으로 한사랑은 여러 일을 겪으며 승승장구 하고 있고, 찬란한 미모와 능력에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적도 그 만큼 많았으니, 아마 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이번에 한사랑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무려 계획에 동참하기만 하면 잃어버린 사지를 대신해 기계팔과 기계다리를 만들어 주고, 군인 신분도 회복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무엇보다....
-어차피 계획이 성공하면, 그년은 사망자처리다. 사망자를 누가 어떻게 하든 상관 없지. 그렇지 않나?
"한사랑...."
그에게 있어 최고의 보수.
그는 애증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끝이 심각하게 안 좋았던 이별.
아니, 이별이라 표현할 수도 없다. 그녀와 그는 그저 상관과 부하였을 뿐이니까.
그녀에게 있어 무수히 스쳐가는 간부들 중 한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게 다...당신 때문입니다...당신이...그 쓰레기를 좋아하지만 않았어도...!"
그가 주먹에 힘을 주자, 쥐고 있던 돌이 바삭 하고 부서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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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성! 임학봉 소령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