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화 〉25.NTL판타지
여자는 벌벌 떨었다.
골드칩 3닢을 빌려준다고?
그래 좋다.
구슬 3천개라면 저 핀볼밭을 넘어 경사진 3층접시까지 통과하여 당첨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당첨되지 않는다면?
스탯은 엄청난 고액화폐다.
현재 하렘궁 카지노에서 통용되는 거래가는 스탯 1당 약 천만 원.
골드칩 3닢, 즉 스탯 300개라면 무려 3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이다.
게다가 이자가 10분에 10%. 1시간만 지연되어도 이자만 18억 원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하게 자라온 여자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구슬이 3천개!!"
"가자!! 할 수 있다고!!"
"그 정도빌릴 수 있다면 난 무조건 한다!!"
"나!! 차라리 날 빌려줘!!"
주변에서 바람을 넣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여자의 도전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더러는 그녀의 더딤을 빌미삼아 본인이 빌려 도전하겠다 달려들었다.
당연하지만 그런 이들은모조리 차단.
"자, 어쩌시겠습니까? 손님. 아무에게나 빌려드리는, 그런 기회가 아닙니다만."
시녀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크긴 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보상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무려 2억 스탯.
1스탯이 천만 원에 해당하는데, 2억 스탯이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전부 돈으로 환산하지도 못하는 금액이다.
하렘궁이 국가급 단체와의 빅딜을 성사해도오가기 힘든 단위.
'2억 스탯이면...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2천조라고...!'
이자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당첨만 된다면 거의 중동의 석유재벌급의 부자가 되어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아니잠깐...2천조...라고? 좀 말이 안 되지 않나? 얘네들 지금 400조 지원 받겠다고 세계적으로 그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2천조 만큼의 스탯이 있긴 한 거야?'
그런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당연한 의심.
합리적 의심이다.
하지만 그런 멀쩡한 사고는 금 앞에 무너지기 마련,
그녀의 사고는 곧장 합리화를 시작했다.
'하긴 금 같은실물도 아니고, 현금도 아니니까...무엇보다 2천조나 되는 규모인데 언제 처분하겠어. 스탯이야 있지만 막상 현금화할 방법이 없는 거야.'
그렇다면, 당첨됐을 때의 지급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가 생각할 것은 당첨!
'그래 씨발...이미 내 전재산을 여기에 날렸어.어차피 미래는 없는 거라고!'
그녀는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믿었다.
당첨될 거라고.
승리의 여신이, 이번 만큼은 미소지어 줄 거라고.
"빌...릴게요.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오오오!
분위기가 타올랐다.
여자는 골드칩 3닢을 건내받고, 떨리는 손으로 교환, '인생'에 3천개의 구슬이 리필 되었다.
촤르르르르륵!!
유리로 된 핀볼구간 출발지에 은색의 구슬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그럴 때마다 환희와 긴장감이 더해진다.
"우와아!"
"또 한다!"
"구슬 3천개!!"
"저것도 쌓이면 스탯 30만 개가 늘어나는 거네."
각자 저마다의 말들을뱉어내며 환호하는사람들. 타인의 인생을 태워 즐거움을 얻는, 흡사 악마들의 웃음소리였다.
"...실패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럼 빌린 스탯을 갚을 뿐이죠. 이자까지."
"...스탯 300개면...많은 거겠죠?"
"평범한 모험가에겐 목숨을 걸 정도의 금액이죠. 모험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시가 30억의 도박.
일반인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금액이다.
아니, 애초에 빌리는 것 조차 허용이 안 된다.
그런데도 하렘궁에서는 빌려준다.
물론 여자 한정이라는 조건이 붙지만, 어쨌든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빌려준다는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어떻게든저 금액을 회수할 자신이 있다는 건데....
'그쪽으로 쓰이는 건가.'
유은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시녀들을 늘려 천지사방으로 세력도 확장하고 본인의 욕망도 충족하는 거겠지.
다시 생각해봐도 참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그런 인간에게 단단히 꿰여버린 그녀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후웁....후웁...."
은색의 향연.
여자는 깊게 심호흡했다.
벌렁벌렁 뛰는 심장이 심상치 않다.
첫 연애를 시작할 때보다,
첫경험을 할 때보다,
지금이 만배는 더 긴장된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술렁술렁
술렁술렁.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극도의 긴장감.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은 듯이 죄여오는 압박.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인생이 바뀐다.
송두리째.
쾅!
"가랏!!"
티리리릭!
뽀로로롱!
여자가 힘차게 버튼을 누르자, '인생'의 외부에 설치된 내연기관 같은 곳에서 뿌연 수증기가 뿜어지더니 발사대에 쌓여 있던 구슬 100개가 발사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장관.
제 목숨을 태워 환한 빛과 즐거움을 선물하는 폭죽처럼,
그녀의 인생 역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띠리리리
우측 한 켠에 쓰여 있던 숫자 '3000'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
하지만 그럼에도 1천 개의 구슬을 사용하는 데 대략 1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운이 좋아 핀볼을 넘어서는 구슬이 많아진다면 시간은 더 걸린다.
3천개의 구슬이 소모되는데는 대략 30분.
10분에 10%의 이자이니, 30분이면 단순계산으로 30%다.
"우와아아앗! 가즈아ㅏㅏ!"
덩달아 타오르는 사람들.
카지노에서는 아예 대형 스크린을 내려 '인생'의 상황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생중계라곤 해도 진행상황을 보여줄 뿐이지만,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워 여기저기서 게임들이 멈추었다.
""맥주입니다. 손님.""
축제라도 하듯, 사방에서 쟁반에 맥주캔을 든 시녀들이 등장해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인생'을 돌리고 있는 여자에게 맥주를 내밀었다.
"오오!"
흥미를 돋구기 위한 카지노측의 전략.
덕분에 사람들은 더욱 환호성을 질러대며 흡사 경마장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사랑님도, 한 캔 드시죠."
"술...."
그녀는 망설였지만 곧 차도 안 가져왔다는 걸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취하는 수준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면상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지금의 그녀는 '절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신다.
"제발!!!"
한사랑이 캔을 따 홀짝일 즈음, 여자의 구슬 100개는 핀볼지역을 점차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의미로 지나간 건 아니었다.
"크윽....!"
모두 장외로 떨어져 '산'으로 쌓였기 때문.
"괘,괜찮아...할 수 있어...!"
하지만 아직 2900개의 구슬이 남아 있다.
그녀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버튼을 눌렀고, 사람들도 응원을 시작했다.
그렇게...200개...300개...
1000개를 넘어 2000개의 구슬을 소모했을 때,
비로소 기회가 왔다.
"왔다 씨발!!!!!"
2단계, 접시.
그것도 무려 10여개의 구슬이 한꺼번에 진입했다.
여자도 일어서고,
앉아서 관람하던 이들도 모두 일어났다.
무려 10여개.
밑으로 빠지는 구멍이 3개 중 1개이니, 아주 단순한 계산으론 9개 중 1개는 도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카지노의 수작으로인해 밑으로 빠지는 구슬은 경사진 접시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어 중력을 거슬러야만 2층, 1층의 접시로 빠질 수가 있다.
그리하여 대부분은 3층 접시에서 탈락.
"오오오!"
그래도 2개의 구슬이 2층 접시로 진출했다.
거의 이주일 만의 진출.
"우왁! 우왁!우왁!!"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합을 내지르며, 월드컵 따위보다 더한 응원의 열기가 펼쳐졌다.
혹시라도 당첨 된다면 '기분이다!'라며 떡이라도 돌릴 지 누가 아는가.
그러니 열심히 응원해 주는 거다.
텅!
또르르.
탁.
그러나 그 열기는 허무하게 식어버렸다.
2층 접시까지 도달한 두 개의 구슬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경사를 오르다 밑으로 빠진 것이다.
그 행선지는 '산'.
결국 2천 개의 구슬로도 당첨되지 못했다.
남은 구슬은 1천 개.
"하아...하아...."
털썩 주저앉은 여자의 손이 더욱 거세게 떨려왔다.
돈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20억 원을 쓴 것이 되니 떨릴 수밖에.
"씨발...씨발...."
그녀는 연신 욕을 해대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정신을 좀 추스리고 안정을 취한 뒤에 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이자가 10분에 10%나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는 편이 좋다.
그렇게 또 다시 100개...200개...900개에 접어들고,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개새끼야!! 좀 되라고!!!!"
거의 비명과 같은 기합과 함께 쏘아진 구슬.
그것은 마지막 인생을 화려하게 불태우듯, 거짓말처럼'접시'에 도달했다.
이번에도 아까처럼 10여개가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갔다.
마치 누군가 조종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
하지만 열기에 감싸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운이 따랐다고만 생각할 뿐.
"하아...하아...제발..! 제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발을 동동 구르며 열심히 기도하는 여인.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신이란 신은 모두 불러 모았다.
그 기도만으로그녀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가볍게 입고 있던 티셔츠는 착 달라붙어 굴곡진 몸매를 드러냈다.
또르르르!
"2층!!"
"오오! 간다아아!!"
3개의 구슬이 2층 접시로 빠졌다.
빙글빙글빙글.
이전과 다르게 힘차게 접시를 돌아다닌다.
이번에야 말로...
이번에야 말로...
갈 수 있지 않을까?
1층으로...
그리고 골인으로...
그러한 사람들의 염원을 받았는지, 힘차게 회전하던 구슬 중 2개가 마지막 고비를 넘기듯 힘겹게 속도를 줄이더니, 가까스로 1층 접시로 빠져 들어갔다.
"꺄아아아아악!!!!"
여자는 환희와 기쁨, 그리고 그에 상당하는 전율로 비명을 내질렀다.
1층.
무려 1층.
당첨까지 딱 하나의 고비만 넘으면 된다.
치이이익!!
그래서인지, '인생' 여기저기에 붙은 기관에서 몇 차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오오...!"
응원소리가잦아들었다.
열기가 식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과도할정도로, 에어컨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회장의 열기는 뜨겁다.
단지 모두가 지켜볼 뿐.
숨죽이고, 숨을 막고,
지켜볼 뿐.
또르르르.
2개의 구슬이서로를 마주보며 빙글빙글 접시를 돌고 있다.
2층에서의 그것보다 힘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경사를오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
구슬 하나는 밑부분에 자리한 탈락 구멍으로 빠져 버렸고, 나머지 하나가 가까스로 탈락을 비켜가며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또르르르.
1초가 1분이 되고,
작은 굴림이 천둥이 된다.
그저 보고 있는 것 만으로 전신이 찌릿찌릿 하다.
"제발...제발!!"
오른다.
천천히.
도달한다.
가까스로.
스르릉.
기울어진 접시에 경사로의 구멍.
단 하나의 당첨 구멍.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운명의 구멍.
그곳으로 구슬이 전진한다.
도달하고자 한다.
굴러가던 속도는 점차 멎어들었지만, 앞으로 조금.
고작해야 1mm.
모두의 염원을 담아, 여인의 염원을 담아 이제 그 정도만 더 위로 올라가면 당첨이다.
"하아...하아...흐이잇...!"
2억 스탯.
2천조.
이 1mm를 가는 찰나의 순간.
카지노 전체가 침묵에 잠기고, 모두의 눈은 충혈된 채 '인생'과 '인생'을 중계하는 모니터로 빨렸다.
"당첨...당첨당첨당첨당첨당처엄!!"
그르르.
툭.
그리고,
당첨의 0.1mm 밑까지 도달했던 구슬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힘을 다하며 밑으로 떨어져 내렸고, 곧 탈락 구멍을 통해 '산'으로 빠져 나왔다.
"...."
누군가 김빠진 맥주를 바닥에 쏟았다.
그리고 여자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면서 맥주 같은 액체를 지렸다.
골드칩 3닢.
스탯 300개.
그리고 당첨의 최후의 보루까지 갔던 격전.
0.1mm만 더 갔다면,
구슬에게 0.01%의 힘만 더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당첨이었을 텐데.
"아...아아...."
그녀가 지린 절망이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그 웅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밟으머, 곁에 있던 시녀가 허리를 숙였다.
"손님?"
"...에?"
시녀가 웃었다.
"아쉽지만 도전은 실패로 끝나셨군요."
"...."
"골드칩 3닢에 40분의 이자까지, 총 420개의 스탯을 지불해 주시겠습니까? 물론 돈도 괜찮습니다. 그 경우 약 42억 원이 되겠군요."
"...."
온 몸의 수분이 싸악 말라붙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초신경 저편마저 바짝 마르는 이 느낌.
머리가 핑 돌고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 상환 능력이 없다고 하셨었죠."
기억났다는 듯이 중얼거린 시녀가 허리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시녀 둘이 올라와 여인의 양쪽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아...아아!! 이거 놔!"
"상환, 해 주셔야죠?"
여자의 발버둥을 손쉽게 무시하며 그녀를 밑으로 끌어내더니 그대로 어딘가로 끌고 가버렸다.
이어 로봇청소기 등이 뽈뽈거리며 올라와 더러워진 곳을 치우는 등의 뒷처리를 시작했다.
짝!
분위기를 환기하듯 여자 곁에 있던 시녀가 손뼉을 쳤다.
"빅게임이 아쉽게 끝났네요. 손님여러분들은 하시던 게임을 마저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은 모든 게임비용을 10% 할인해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