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화 〉25.NTL판타지
"음...."
대통령은 몸을 뉘인 채 생각에 잠겼다.
전 세계적으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핵을 보유한나라는 그다지 없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보유한 나라는 더 없다.
이유는 간단.
너무나 파괴적인 무기이기 때문에 보유하려는 순간 사방에서 제제가 날아오기 때문이다.
'고작' 초기단계의 원폭만 해도 순식간에 10만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지금은 그때완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으며,심지어 그 원폭을 기폭제로 삼는 수소폭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재래식 무기밖에 없는나라는 핵을 가진 국가에 대해 도저히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것이다.
세계를 상대로도, 정확히는 미국과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할 정도로 핵전력이 우수한 국가(예로 러시아)라면 그 국가가 가진 경제력이나 기타 여건과는 상관 없이 세계의 압력을 개무시하고 행동하는 게 어느정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통제불능의 국가가 늘어나는 걸 국제사회는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좀처럼 탄생하지 않았고, 누군가 허락없이 핵을 보유하려 들면 각종 정치적 경제적 제제를 가해 세계적인 왕따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기에 '핵'은 그 자체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지만 그 만큼 엄청난 리스크를갖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국은 지난 도쿄 방어전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승인된 핵보유국!
핵무기를 어느 정도 위력까지 개발한 것인지, 얼마나 만들 것인지, 어디까지 날려보낼 수 있는 지에 대한 제한 따위도 없었다.
기타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핵무기를 개발하고 만드는 것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외교비용이 저렴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이미 초기단계의 원폭수준은 옛적에 뛰어넘었고 본격적으로 수소폭탄 개발에 착수한 상태.
그런 한국이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국제사회에 드러낸다면?
한국을 제제하려 하는 세계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멈칫할 수밖에 없다.
전쟁을 불사하자는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이 잦아들 것이며, 특히 중국의 경우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들이 전부 코앞이기 때문에 본인들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 아닥할 수밖에 없다.
제제를 위한주먹이 협상을 위한 손바닥으로 변하는 것이다.
얼핏 봤을땐 꽤 그럴듯한 수.
하지만 큰 함정이 있다.
일단 [아흑]을 통해복제한 핵무기는, 그래봤자 아흑이라는 것. 결국 컨트롤은 하렘궁에서 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이 한국에 핵미사일을 갖다 놓는 것 이상의 이득이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한국은 이미 핵을 자체생산해서 배치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딱히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집단이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핵무기가 안에 있다는 꼴이 되니 괜히 불안감만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흑]을 통한 복제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의문을 읽었는지, 소냐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아흑'이를 생각하시는 거라면 그건 아니라고 말씀 드려요. 우리에겐 '흑흑'이라는, 메카 생명체가 아닌 말 그대로 '진짜 기계'도 있으니까요. 복제는 그걸로하는 거죠. 물론 순식간에."
"흑흑...?"
신종 시리즈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녀의 '진짜 기계'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진짜 기계'라는 건 [아흑]처럼 '던전'을 비롯한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과학 기술'로 인한 산물이라는 것이고, 그 기술을 통해 복제한 것이라면 '하렘궁 측에서의 컨트롤을 끊고 제공할 것'과 같은 조항을 통해 '완전한 양도' 또한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얘기지.'
이쪽에서 완전히 컨트롤 할 수만 있다면 통제불능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어도 된다.
'문제는 이 여자가 일방적으로 좋은 제안을 할 리 없다는 거지만.'
핵심은 그것.
이소냐.
절대 남 좋은 일을 할 여자가 아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녀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을 텐데, 단순히 '지금까지 우릴 편들어 준 것처럼 앞으로도 그래주세요~'라는 메세지라고보기에는 내미는 패가 너무 강력했다.
핵을 복제하겠다니.
이런 건 절대 알려주면서 하는 게 아니다. 숨어서몰래 해놓고 끝난 이후 '나 핵 있어. 그것도 너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라는 식으로 협박하는 거지.
지금까지 한국이 하렘궁에 대한 세계적인 공격에 어느 정도 방어막이 되어주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강력한 패다.
'단순히 핵무기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우리에게 알리고 제공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보는 건데...대체 그 이익이 뭐지?'
얌전히 차를 홀짝이며 약과 따위를 집어 먹는 소냐를 보며 무한한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생각의 전환.
'그래...알리는 게 이익이 될 수도 있지. 저 여자에겐.'
비밀리에 제공하는 게 아니라면?
공공연하게 핵을 복제해서 한국에 제공하는 조약을 맺고, 그걸 한국 국내와 전 세계에 공표한다면?
한국이 받게 되는 이익은 둘째 치고, 하렘궁 역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
지금도 원자로를 폭격한 것에 대해 '일본꺼니까 괜찮아' '응 ㄱㅊ' 등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정도인데, 거기에 더해 자국의 핵전력을 초대량으로 확보하게 해준다면 한국 내에서 지지는 확실하게 오를 것이다.
거기에 '복제한 핵무기'를 '우호적인 집단'에게 '제공'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통해 '핵을복제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사상초유의 충격을 퍼뜨림(공포, 두려움)과 동시에 '너도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우리한테 잘 하면'이라는 메세지를 같이 전달한다.
이는 곧 하나로 모아졌던 세계 각국의 의견 분열과 대립을 야기하게 되고, 하렘궁이 저질렀던 짓은 면전의 이익과 떡밥 앞에 묻힐 것이다.
지지와 두려움의 확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경외'다.
단순히 무력으로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경외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하렘궁이 얻는 이익은 물질로 환산이 안 될 정도인데,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 소냐가 둔 수는 지금까지 궁이 보인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유은은 말할 것도 없고 소라의 행보와도 다르다.
'지난번 청혼식 때 유일하게 주인공이 되지 못한 부인...사람인 이상 그걸 담아두지 않을 수는 없어. 당사자든, 그렇게 한 사람이든.'
지금까지의 행보와 다른 길을 걸으면서 소라의 길 까지 틀어버린다. 결론적으로 소라의 목적 - 유은을 찾을 수 있게 세계의 조력을 얻는다. - 도 이룰 수 있게 되겠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소냐가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유은을 '경외받는 존재'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리고 사람에게 경외받는 존재라면 대표적인 상징이 있다.
"여신이 되고자 하는 거군요. 당신은. 유은씨와 함께."
소냐가 작게 웃었다.
'그이가 돌아오면 한옥식 궁전도 하나 지어보자고 해야겠어요.'
라는 말,
별 의미 없이 넘겼지만 되새겨 보면 그녀의 목적을 파해칠 하나의 힌트다.
유은이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면, 소냐의 작업으로 인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궁과 자신의 위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것이고 어렵지 않게 '청혼식 때 끼지 못했다'라는 기억을 살리겠지.
유은이라는 인간의 성격으로 보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만을 위한, 어쩌면 지난번의 그것보다 더 성대하고 짜임새있는 청혼식을 열어줄 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기억해내지 못한다 해도, 소냐가 '전에 청와대에 갔는데 크고 아름답더라고요. 우리도 그런 거 하나 만들어요. 한옥식으로' 같은 말을 하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못해주었던 것을.
결국 스포트라이트도 그녀가 받고,
유은의 관심도 그녀가 받는다.
이 일을 통해 한국도, 하렘궁도 큰 이익을 얻겠지만 가장 많은 걸 얻는 건,
이소냐다.
"어떠신가요? 뭔가 더 필요하신가요?"
엷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를 보며 대통령이 저도 모르게 한 마디 했다.
"정치인 하시죠?"
+++
와작.
딸깍 딸깍.
투둥!
화면에 전개되는 거대한 전함.
스피커를 통해 웅장한함포 소리가 들리며 정자같은 포탄 9발이 적 군함을 향해 날아갔다.
일반적인 fps게임과는 달리 거리가 km단위이기 때문에 포탄이 도달하는 시간과 적 군함의 속도를 계산해서 리드샷을 때려야만 한다.
"아 씨...딜안 들어갔네."
다행히 탄도 자체는 정확하게 계산해 냈지만, 독일 군함의 거지 같은 집탄률 덕분에 9발의 함포는 적 군함을 한 대도 맞추지 못했다.
그 사이에 적 군함이 발포한 철갑탄은 어이없게도 3시타를 뚫어버리면서 풀피였던 전함이 단 한 방으로 격침되어 버렸다.
"...씨발 이게 말이냐?"
게임의 매커니즘 상 독일전함은 시타(집중방호구역)가 어지간해선 뚫리지 않는데 그 적은 확률을 관통해 버렸다. 그것도 3발 씩이나.
"하...야마토나 키울까."
와삭.
항구로 나가면서 왼쪽에 놓인 감자칩을 집어 먹는 여인.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얼굴과 몸매를 하고 있지만, 군데군데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다.
빛나던 미모는 바래지 않았지만 예전의 그녀를 아는 사람이 본다면 '뭐야? 왜 이렇게 살 쪘어?' 라고 반응할 만큼 꽤나 통통해졌다.
달칵.
진지하게 일본 트리를 키울까 하고 고민하던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호리호리하면서도 육감적인 몸매에 군데군데 근육으로 다져진 것이 보일 정도로 단련된 군인.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는 여인의 모습을 보며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아."
"가관이다 아주. 방 좀 치워 이년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저리 가. 일본 전함 키워야 돼."
"아주 단단히 박살이 나셨구만."
바닥에 널브러진 맥주캔 따위를 대충 주으며 은율령이 한 마디 했다.
"찾았대. 그 녀석."
"...?"
"아니 찾은 건 아니지만, 신호를 받았대. 어느 차원 어디에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