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285)화 (284/517)



〈 285화 〉25.NTL판타지

+++


"그게...사실이에요?"
"넵."
곧장 유나씨에게로 달려온 나는 기쁜 마음으로 설명해 주었다.


 설명했냐고?
바로 자원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는 걸!






<퀘스트 : 이세계 진출>


지구는 이제 어느 정도 정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만족하기엔 너무나 이르죠. 세상은 너무나 넓고 무수한 세계가 있습니다. 위대한 정복군주라면 마땅히세력을 떨쳐 백성을 풍요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조건 : 이세계에 발자취 남기기(1/1)

보상 : 스킬 쿨타임 초기화권, 연계 퀘스트 '이세계 정벌' 개방.



조건이 이세계에 발자취를 남기는 거라는데, 엄청나게 애매한 조건이지만 누군가를 시녀로 만들면 충족되는 모양이다.
덕분에 퀘스트가 클리어 되었고, 그 보상으로!

"무려 스킬 쿨타임 초기화권을 받았단 말이죠."

그뿐만이 아니다.
연계 퀘스트가 해방되었다.

솔직히 아이템이니 퀘스트니 하는  신경 끄고 산  꽤 돼서 딱히 눈이 가진 않는데, 그래도 이세계에서 생활하면서 뭔가 유용한 걸 보상으로 주지 않겠어? 예를 들면 본국과 통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던가...펫을 이쪽으로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 이라던가....

아니면 말고....

"흐응...뭐 좋긴 한데. 뜬금없네요."
"그래도 그럴법 하지 않습니까? 이세계에 진출하게 만들고 이세계에서 뭔가 하면 그 보상으로 스킬 쿨타임 초기화...즉 영토를 선포할 수 있게 만든다! 꽤나 납득할 만한순서라고 봅니다."
"그럼 영토선포하고 건물을 짓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물론이죠. 어쩌면 현대쪽과 연락이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같은 나라의 영토인데 뭔가 있지 않겠어요?"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음. 그런가. 냉정하시네.


그래도 유나씨 또한 기쁜 모양인지, 자그마한 미소를 짓고 있다.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소중하지. 나도 얼른 소라누나나 소냐씨 보고 싶은데. 서현이도 그렇고.

"일단 영토선포부터 할게요. 음...라르나르랑 상의 정도는 해줘야겠죠?"
"그러든지요."

그게 예의 아니겠어. 라르나르의 땅인데.

"지금 당장 갑시다."

어차피 저녁 먹으러 가야 하지만.





+++


"...그래. 잘못된 거였어."

라르나르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고 침대에 누워 있던 로이드.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중얼거렸다.

그래.
애초부터 잘못된 관계였다.


아마르 자작이라고 하는 최악의 변태에게 가족이 몰살당하고 더불어 자기 자신과 영지까지 위험에 처한 여인에게 기사전력을 빌미로 혼인을 요구하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쓰레기나  법한 짓이다.

아니, 쓰레기를 넘어 애초에 아마르 자작과 다를  없다.
그 역시 그런 식으로 혼인을 제안하고 있으니까.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지.
상황을 가지고 협박하여 혼인을 요구한다면 있던 정도  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혼인을 승낙한 것은 결코 그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아마르 보다는 로이드가 더 낫기 때문에 한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그놈이 오고 나서...그리 된 거야...."

유은과 정분이 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로이드 자신의 선택 때문이다.


본인이 오만 정  떨어지게 만들었으니, 밀려오는 유혹에 이길 턱이 있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유은은 잘생겼고 몸도 좋다. 거기에 능력도 뛰어나고.

심지어 첫만남도 상당히 소설틱하다.
무슨 백마탄 왕자님도 아니고, 위험한 상황에 불쑥 등장하여 적들을 물리치고 구해내지 않았던가.

주위에 온통 적밖에 없던 그녀가 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

허탈감이밀려왔다.

그냥 옆에 있어 줄 걸,
가만히, 그냥 지켜줄 걸.
그러면 혹시 아는가. 진짜로 서로 사모하여 이어졌을 지.
유은 같은 놈이왔더라도 의리를 지켜 서로를 바라봤을지.

"떠나자...."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라는 격언이 오늘따라 새삼 사무친다.

"더 이상...그녀를 볼 낯이 없어."


아마 라르나르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런 광경을 보여 버렸으니, 로이드와 같이 있으면 껄끄러울 터.

아마르 자작은...유은이라는 놈이 막아줄 것이다.
막지 못해도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도망 정도는 칠 수 있겠지.


그러니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다. 필요도 없다.



로이드는 번뜩 일어나 옷가지를 챙겼다.
결심했으니 남은 건 실행.

집을 나와 부단장 시에스타의 집무실로 향했다.







+++






"예?"
"여기에 영토 선포를 할 거야."
"아니...그러니까...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녁식사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유은이 꺼낸 말은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라르나르는 스탯이라던가 스킬이라던가 하는 게 무슨 개념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여인.
'게임'이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이상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유은과 유나는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짤짤이(?)로 설명해 주었던 것과 오늘의 정성어린 설명덕분에 어느 정도는 이해된 모양.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저보고 나라를세우라는  진심이었던 거군요."
"응. 너가 나라를 만들어서 통치하고, 나는 콩고물만 빼먹는 거지."
"...."


정이 뚝 떨어질 법한 말을 하는데도 묘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대체 뭘까.

"영토 선포를 하고 건물만 지을 수 있게 되면 아마르 따윈 아무것도 아냐. 물론 지금도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지만 현대 병기를 불러오게 되면 그땐 뭐...."

아흑이 하나만 데려올 수 있어도 대륙이 아니라 행성정복이 가능할 터.
각국의 협력을 빙자하여 군대를 뜯어 데려온다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막대한 이익을 취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지금의 지구가 얼마나 개판이되어가고 있는 지 전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아마르...."

라르나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잊었던 악몽이 떠올랐다...는 듯한 얼굴.

유은에게 있어서 아마르 따윈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피해자인 라르나르 입장은 다를 것이다.

"불안해  필요 없는데.  그러면 당장이라도 쓸어줄까? 시에스타랑 같이 가면 되겠어."
"시에...스타요?"
"응."
"...그러고보니 그녀가 당신을 심문한다고 했었어요."

"응. 끝났어. 그리고 내 시녀가 되었지."
"???"


고개를 갸웃하는 라르나르.

'시녀는...쌍방간의 승낙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어떤 인과관계를 거쳐 로이드를 사모하는 시에스타가 유은의 시녀가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걱정 마."
"...."



+++


"이게...대체...?"


기사단 건물에 들어와 시에스타의 집무실로 걸어가던 로이드는 피투성이가 된 복도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후다닥 달려가 보니, 살점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에...시에스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시에스타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혹시라도 시에스타마저 살해됐을 까봐, 이 사태의 희생자가 됐을 까봐.


"...."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시에스타는 삐까번쩍하게 광이 나는 새로운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채 검을 닦고 있었으니까.

"...오셨습니까."


그녀는 고개만 살짝 돌려 그를 바라봤다.
언제나처럼의 열의섞인 눈동자가 아닌, 모든 감정을 숨기고 억제하는 듯한 눈빛.
그게, 오늘따라 예뻐 보였다.

갸름한 턱선도, 오뚝한 코도 오늘따라 클로즈업 된다.

라르나르를 포기한 탓일까.
항상 곁에 있어주던 여인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복도가 왜...."
"유은의 짓입니다."
"뭐...?"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감정을 억제하고 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분노, 그리고 슬픔, 두려움 등등.

무수한 감정이떠올랐다.

"왜...그러셨어요?"
"뭐?"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알고 계셨잖아요. 제 감정. 제가 느끼는 거."
"...."
"다 알면서 외면하셨죠."

시에스타가 눈을 꼭 감았다.


"가질  없는 것에 욕심을 갖고, 닿을 수 없는 곳에 손을 뻗고. 결국 모두 빼앗길 거라는 걸 알지 못한 채 바로 옆에 있는 행복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죠."

바보라도 안다.
지금 그녀가 어떤 기분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그 결과가 이거예요.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뺏기고...기사들은 죽고...저도...크윽..."
"...널 보지 못했던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이 참혹한 광경이 우선이다. 죽은 기사들ㅡ,"
"저는  물어보세요?"
"뭐?"
"저는 괜찮은 지 끝까지 안 물어보시네요."
"아니 너는...."

멀쩡하잖아.
라는 말을 삼킨 그에게, 충격적인 말이 날아들었다.

"저 범해졌어요. 그 인간한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