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25.NTL판타지
+++
"이걸로 정말 괜찮은 겁니까?"
UN에 파견된 외교관, 그를 보조하는 수행원이 걱정스런 마음에 물었다.
그러나 모다메 외교관은 강경 그 자체.
옛 대일본 제국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우익으로서 한낱 조선인의, 그것도 일개 길드에게 일부라고는 해도 도쿄를 내준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수치로 여기고 있었다.
당연히 하렘궁에 대한 감정과 그의 수장인 유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물론이지."
"하지만 하렘궁은 최근스탯 계좌라는 신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외계인의 존재까지 밝혀지고 '스탯'이라는 게 하나의 우주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 어쩌면 인류 전체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업적입니다. 방금의 선택은 이 혜택에서 일본국이 제외되는 악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설명해 보았지만 그래도 그의 태도는 강경하다.
"흥! 그래봤자 일개 모험가. 설령 그 말이 맞다 해도 어차피그놈은 죽었어."
"아직 죽었다고 확정된건...."
"못 찾으면 죽은 거지! 아니 40억 엔 가까이 들여야 겨우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그 정도면 이미 죽은 거 아닌가? 애초에 차원 어딘가로 날려졌다잖아. 근데 그걸 찾겠다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못 찾어. 찾을 수가 없지. 암."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유은은 죽었다.
그것이 그를 위시로 한 일본 우익단체의 입장이었다.
일본에 커다란 수모를 안겨주고 씻을 수 없는 수치를 겪게 한 그가 실종되자, 지금까지의 고통은 없었다는 것처럼 존재를 싹 지워버린것이다.
그것이 편하기도 했고, 또 믿고 싶은 일이기도 했으니까.
"괜찮아. 유은 없는 하렘궁은 아무것도 아냐. 성녀? 고작 치료좀 잘 하는 게 뭐 어쨌다고."
"고작이라뇨...거의 죽어가던 사람도 살리는데...."
"아무튼 이미 끝난 얘기 더 해봐야 입만 아프지. 그리고, 우리만 반대했나? 중국도 반대했고 러시아도 반대했어. 심지어 미국도 기권이야. 그깟 길드가 뭐 어쩌겠어?"
그 말에는 수행원도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일본만 반대했다면 좀 위험했을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까지 반대표를 던졌고, 그 미국도 기권했다.
제 아무리 하렘궁이 날아다니는 길드라 하지만, 이들을 어떻게 할 수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그건 그들만의 생각이었고, 그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하렘궁 "반대,기권국은 이번 결정 매우 후회할 것."
-유소라 曰 "UN안보리 결정에 실망. 지금이라도 번복해야만 한다."
-정부 "하렘궁 지원 단독으로 수행하겠다."
-美"국제법에 따라 결정했을 뿐, 사감 無. 하렘궁의 현명한 대처 요망."
-日 "그는 결코 세계를 위해 희생한 게 아냐. 감정적인 지원은 모두의 파멸을 부를 뿐."
UN안보리 결정이 나온 뒤 1시간 만에 하렘궁이 공식입장을 표명했으며, 여기에는 얼굴마담이라 할 수 있는 서현이 등장하여 냉정한 얼굴로 고했다.
감히 일개 길드 주제에 세계를 이끌어가는 국가들에 대해 매우 건방진 태도였지만 서현은자신 있었다.
그 누구라 해도 지금의 하렘궁을 이길 수 없고, 만약 이를 모른 채 건드렸다면 그 힘을마땅히 알게 해줘야 한다.
뒤이어 세계 각국도 공식 입장을 내놓았고, 찬성한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그리 온건한 입장이 아니었다.
심지어 스탯과관련해서 빅딜을 제시했던 미국도 기권과 더불어 꽤나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보통 이런 반응이 나온다면 대체 왜 그랬을까? 하며 분석에 들어갔겠지만, 서현과 소라를 비롯한 하렘궁은 그러지 않았다.
못해서가 아니다.
하렘궁에도 브레인은 얼마든지 있다. 소냐라던가, 서현이라던가. 기타 시녀라던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앞으로 반대국과 기권국 환자는 받지 마요. 아니, 그룹 전체적으로 그쪽 국적이랑은 그냥 거래 끊어요. 전부다."
"네."
소라는 첫번째로 '거래'를 무기로 뽑았다.
현재 하렘그룹은 온전히 그룹 소유에 있는 B급 던전과 D급 던전 등을 활용하여 원활한 수급을 함과 동시에 양질의 장비들을 생산하여 팔고 있었고, 전 세계에서 강남에 딱 1곳만 있는 강화소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또한 맞은편의 스탯 카지노를 통해서도 세계의 스탯과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는데 이렇게 얻은 스탯을 또 암암리에 막대한 금액을 받고 판매하고 있었다.
보통 국가단위로 빅딜을 제시하곤 했는데, 특히 미국의 경우 수십조 단위의 빅딜을 걸어오기도했다.
문제는 유은이 실종된 이후 거래진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
아마 유은이 없으면 더 이상의 스탯 생산이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딱히 거래를 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완벽히 틀린 생각.
하렘궁 최고의캐시카우는 유은이 아닌 앙리에타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감히 그런 수를 둘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꺼내든 무기는 반대 및 기권국의 환자를 받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환자는 거의 죽어가거나 죽을 병 혹은 불치병에 걸린 이들을 뜻하는 것으로, 카지노빌딩 1개 플로어 전체에 펼쳐져 있는 힐링필드에 들어갔다 나오면 말끔히 치유돼서 나온다.
당연하지만 소라가 설치한 것으로, 몇몇 시녀들의 조력을 받아 영구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하렘궁에 대한 인식이(정확히는 소라에 대한 인식) 꽤 좋아졌는데, 여기에 제한을 걸었다.
반대 및 기권국의 환자는 출입금지.
여기까지도 꽤 강력한 무기였지만 아직 국가들이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회심의 한 방.
소라에겐 핵에 버금가는 수단이 있었다.
.
.
.
-감사합니다 국민을 사랑하ㅡ,
"됐고 총리바꿔요."
-예?
"총리."
-아니 누구신데...
"원자력발전기 또 터지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네?
"총리 바꿔요."
-....
뜬금없는 전화에 당황한 비서.
하지만 얼토당토 않은 장난전화로 여기고 '장난전화 하시면 큰일나요.'라는 말과 함께 끊어버렸다.
"...그래. 그렇구나."
소라는 폰을 집어 넣고 앞으로 걸어갔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지도 벌써 수십년이지만, 여전히 후쿠시마는 폐쇄상태다.
이유는 방사능 때문.
물론 체르노빌 역시 아직도 폐도시로 남아있는 상태다.
"정말 하실 건가요?"
"네. 아무래도 힘에 비해 호구로 비춰지는 것 같아서요."
"음...그래도 지금까지 쌓으신 이미지가 있는데...."
"어차피 걔 데려 오려고 쌓은 건데요. 그리고 너무 걱정 마요. 제때에 만족할 만한 답만 주면 많이 죽진 않을 테니까."
소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를 굽혀 돌을 하나 주웠다.
그리고 팔을 뒤로 한껏 젖혀 자세를 만든 후, 높이 솟은 냉각탑을 향해 돌을 쏘아보냈다.
'힐러'라곤 하지만 그녀의 힘 스탯은 약 '3억 2천만'.
그리고 공격력은 무려 751억이나 된다.
세계 탑급의 모험가가 기껏해야 10만 단위의 공격력을 가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밸붕도 이런 밸붕이 없다.
-타앙 - !
그저 작은 돌맹이를 던졌을 뿐인데, 그것은 공기의 저항을 너무도 쉽게 무시하며 강제로 찢어발겼고, 궤도를 따라 직선의 번쩍이는 여파를 남기며 회색빛 냉각탑에 적중했다.
즉시 공격력 751억에 크리티컬 데미지 585333346%가 적용, 약 44경에 달하는 데미지가 냉각탑을 붕괴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힐러'다.
공격스킬을 활용하여 몬스터를 때려잡고 파티원을 지키는 전사나 무투가가 아니라 치유스킬을 사용해 '보조'하는 '힐러'다.
그 힐러가 44경의 데미지를 뽑아낸다.
하렘궁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집단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소라는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원자력 발전소,그리고 그걸 보며 절규와 절망에 휩싸이는 사람들을 냉담하게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녀의 행동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만큼, 즉시 비난과 여러 통제가 들어왔지만, 그녀와 서현은 아흑이를 타고 유유히 하늘로 떠올랐다.
+++
-日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태. 책임 엄중히 물을 것."
-美 "국제평화를 해치는 하렘궁은 즉각 사안의 중대함을 깨닫고사죄 및배상해야."
세계 각국의 경악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거기에는 당황과 함께 분노도 있었다.
아무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지만 다른 것도아니고 원자력 발전소를 폭격하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인가.
더욱 충격적이고 실망적인 건, 그 동안 좋은 이미지를 쌓아 올렸던 소라가 180도 돌변하여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죽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이 벌서 천 명을 넘어섰고, 각지에서 파견된 소방관이나 경찰들 및 자위대 중에서도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비난이 소라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무덤덤하게 받아 넘기며 기자회견까지 열고는 "그러게 잘하지 그랬어요."라는 유은틱한 말을 해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국제기구에서는 즉시한국과 하렘궁을 압박하며 이번 사태를 속히 해결하라 일렀지만, 오히려 소라는 더욱 강경하게 나갔다.
예를 들어 중국이 이번일 가지고 뭐라 하면 '너네도 터져볼래? 위치 대봐.'라고 받아치는 형식이다.
이 초강경대응에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조차 움찔했으며, 겉으로는 발끈해도 뒤로는 은근슬쩍 협상카드를 내밀었다.
물론 거절.
이제와서 협상은 없다. 일방적인 요구만이 있을 뿐.
이것이 소라의 입장이었고, 그녀는 그걸 실행할 능력이 있었다. 그것도 전 세계를 상대로.
"일본 여러분, 방사능이 뭔지 너무 잘 아시죠? 그게 여러분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평생."
소라는 본인의 방송채널을 통해 실시간 방송을 켰다.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해, 일본을 향해 말했다.
"살고 싶죠? 병 없이 살고 싶죠? 뭘 해야 되는 지도...알고 있죠?"
그 방송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섬뜩한 방송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