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25.NTL판타지
에휴.
하며 유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마수를 뻗친다.
뭐,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아마 생각해본다 해놓고 밤쯤 되면 슬그머니찾아가 그녀의 몸을 탐하려 하겠지.
훤히 보인다.
"근데말야. 그 결혼이라는 거 꼭 해야되는 거야?"
"네?"
"로이든지 노이드인지 하는 놈 인성도 터진 거 같던데 잘생기지도 않았고. 결혼 해봐야 어차피 불행할 게 뻔하잖아."
"...그래도 아마르 자작한테 가는 것 보다는 나아요."
"하긴. 탈모에 돼지라며? 아 최악."
무심코 탈모에 전신이 뚱뚱한 여자를 상상해버린유은이 부르르 떨었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로이드씨와 기사들이 남아 있어도 영지전이 벌어지면 어차피 지는 거 아닌가요? 전력차가 많이 난다고 들었는데요."
"아! 맞아. 내가진짜 궁금한 게 이거였어."
"그건...."
라이젠 남작이 고개를 떨궜다.
확실히 그녀의 말 대로 로이드를 혼인을 핑계삼아 잡아둔다해도 영지전이 벌어지면 어차피 진다.
로이드가 무슨 소드마스터도 아니고, 고작해야 하급귀족 휘하에 있는 그저 그런 기사.
수적으로 열세에 빠지게 되면 아마도이기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로이드를 잡아두는 이유는,
"아마 외로워서 그런 걸거예요."
"외롭다고?"
"네. 지금은 저밖에 없잖아요. 가족은 모두 죽었고...가신들도 의지할 만한 사람은 없고. 어떻게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조적으로 입을 여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서글퍼보였다.
그녀의 열악한 상황을 이용하여 혼인협박이나 하는 인간을 그래도 소꿉친구랍시고 옆에 둘 수밖에 없는 이 구슬픔.
가족도 모두 죽고 남아 있는 이들 중에 그나마 의지할 만한 인간이 로이드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안쓰러운 인생인가.
"모순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그래도 지금은...이렇게라도 있고 싶은 것 같아요."
"그렇구나."
불쌍하네.
라고 유은이 중얼거렸다.
그걸 못 들었을 리도 없건만, 라이젠 남작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표정을 반전시키며,
"그래도 며칠은 있다 가시는 거죠?"
라고 밝게 물었다.
+++
유은과 유나가 이세계에서 조난당해 있을 때, 지구에서는 난리가 났다.
A급 던전의 출현인 줄 알았던 바르카나가 사실은 던전이 아니라 외계인 이라는 사실,
그로 인한 인명피해가 40만을 넘는다는 사실,
인류의 군대가 먹히지 않는 재앙이 존재한다는 사실,
모험가 전력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
오직 유은과 그 일당만이 유효한 타격을 주었다는 사실,
그 유은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등등등등.
하나만 터져도 전 세계적 이슈가 될 만한 사건들이 연이어 줄줄이 터진 탓이다.
덕분에 현재 궁의 최우선명령권자라 할 수 있는 소라는 머리가 터질 지경.
물론 실질적인 일처리는 서현과 은주가 도맡아 하고 있지만 소라는 이번 인천사태에서의 활약도 있고 유은과 유나의 실종과 관련해서 여러 문의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한 시도 쉴 수가 없었다.
"아. 대체 어디있는 거야."
벌써 3주째다.
일각에서는 실종된 게 아니라 이번 사태로 인해 사망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고, 더러는 여러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덕분에 하렘그룹의 주가는 연일 바닥.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소라'라고 하는 라이징스타가 있었기에 궁 자체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러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만...그년은 도무지 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요."
"불 생각이 없는게 아니라 그냥모르는 거겠죠."
서현의 보고에 신경질적으로 답한 그녀는 머리를 싸매는 소라.
"설마 이대로 못 보는 건 아니겠지?"
"그렇진 않을 거예요. 흑흑이와 아흑이도 전력을 다해 찾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이 일로 인해 인류의 과학이 무지막지하게 발전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궁의과학기술이지만.
유은이 있었을 적에는 그런 생산적인 일에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흑흑이가 가진 기술력을 가져온다거나 발전시킨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지만, 유은과 유나가 실종되고 나자 그들을 발견하기 위해 흑흑이의 기능을풀가동하다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다차원탐색기와 차원게이트가 3개월 이내로 완공될 예정이에요. 다만 돈이 좀 많이 들어서..."
"3개월...."
아득한 시간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까지 못 본것만 해도 미칠 것 같은데 앞으로도3개월 이상 못 볼 수 있다니.
그나마저 3개월도 시설이만들어지는 기간이지, 유은이 발견되는 기간이 아니다.
어쩌면 년단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정말 최악의 경우 쟌다르크가 말한 것처럼 블랙홀 같은 불가항력적인 곳에 떨어져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만약 주인님께서 돌아가셨다면 아흑이나 흑흑이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기별이 왔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기색은 없으니 안심하셔요."
"...."
저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길래 이리도 긍정적인 걸까.
새삼 놀라운 눈으로 소라는 서현을 바라봤다.
사실 그녀가 이번 사태로 인해 가장 걱정했던 사람 중 하나가 서현이었는데, 지금껏 봐온 모습을 생각할 때 소라나 유나 이상의 유은바라기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걸.
그녀는 재깍 정신을 차리고 차근차근 유은을 찾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한편 전 세계를 대상으로 효율적인 외교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무너져내린 인천의 일부지역과 강남을 비롯한 서울 일부지역, 그리고 착륙한 바르카나까지를 하렘궁 자치구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일본의 도쿄까지를 아울러 길드가 아닌 엄연한 국가로서의 위치를 다져나갈 수 있었다.
거기에 다차원 탐색기와 차원게이트를건설하는데 소모되는 막대한 자금 지원에 관한 안건을 상정하는 데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돈이 많은 하렘궁이었지만, 워낙 오버테크놀로지를 요하는 시설들이기 때문에 궁이 휘청거리는 건 물론이고 모든걸 다 쏟아 부어도 실패할 가능성조차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세계적인 지원.
이번 재앙으로 인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멸망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세계를 지키다 희생한 유은,유나' 와 같은 프레임을 씌워 UN에 상정한 것이다.
물론 하렘궁이 대놓고 나서서 움직이면 반발여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사람을 시켜 행동하게 만들었다.
'비록 적일지라도, 그로 인해 세계가 구원 받았음은 두말 할 것 없는 사실이니 그를 찾기 위해 세계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명이다.'
현 던전협력기구 수장으로 있는 아녜스 이사벨라.
유은이라면 이를 갈고 있을 그녀지만, 서현의 말을 거절하진 않았다.
덕분에 그녀의 힘을 받아 하렘궁의 지원에 대한 안건은 무사히 상정.
남은 것은 가결을 받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현은 물론이고 소라도 노력하고 있다.
"서현씨는 괜찮아요? 그녀석이 없는데."
"...괜찮지는 않아요. 다만 울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으니 버틸 뿐이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과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우는 건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해도 충분합니다."
+++
"안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지구, UN.
던전협력기구가 떠오른 지금도 UN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거의 모든 국가가 가맹해 있으며, 특히 강대국이라면 단 하나의 예외없이 가맹되어 있다.
각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오로지 긴급 상정된 안건만을 위한 회의.
거기서 사람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던전협력기구는 물론이고 UN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
중국의 대표가 말을 이었다.
"비록 결과적으로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얘기일 뿐만 아니라,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에만 국한된 얘기일 뿐입니다.
군대가 별 다른 힘을 못 썼다는 것도 신빙성 떨어지는 얘기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전 세계의 힘을 모았더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고작 그런 위기 하나 넘겼다 해서 전 세계적인 지원을 논하는 것은 이치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가 A급 재앙을 물리친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였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지도 모르는 바르카나를 품에 안고 내어주질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일입니다.
그렇다면 결과가 어떻든 간에, 자기 자신을 위해 한 행동으로 발생한 일을, 우리가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원하는 일을 하다 발생한 사고를 왜 우리가나서서 지원해주고 보상해 줘야 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