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24. A급 던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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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이 끌려가고 있을 무렵,한국을 제외한 D10지부장과 주요국대통령 간의 화상회의 회선이 연결됐다.
사태가 발발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사실 그렇게 빠른 대처는 아니었다.
"한국쪽은 아직도 연락이 안 되고 있나요?"
"예. D10한국 지부장과 대통령 모두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초조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비서가 떨리는 음성으로 답했다.
그래.
의문의 성이 등장한 곳이 인천이니 인천에 지부를 두고 있는 지부장이 연락 안 되는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대통령은 왜 연락이 안 되는 걸까?
"현재 인천 지역은 통신 자체가 안 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종의 전파방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위성으로 상황을 살펴 봤을 때 추정 사상자는 이미 30여만에 이를 것으로 판단됩니다."
"30만...."
아녜스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그동안 이만한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등장하자마자 이렇게 된 것은 그야말로 역대급.
"일단 알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상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각국의 지부장과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상황파악을 하느라 좀 늦었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A급 던전이라니!
-한국이라 들었는데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 건가요?
-이 재앙이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있습니까?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잠시간 묵묵히 들어주던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렸고,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일단 현재 상황을 알려 드리겠어요. 던전 출현지는 대한민국 소재 인천. 지금까지의 던전과는 달리 지하에 짱박혀 있는 게 아니라 외부로 드러난 형태에요. 성이라 보는 편이맞겠죠."
아녜스의 지시에 따라 인천의 위성사진이 모두에게 전송됐다.
-이건...?!
-요새?
-마치 도시처럼 생겼군요.
인천의 일부에 뻥 뚫린 크레이터가 있고, 그 안에 생소한 형태의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는 육각형으로 도시를 감싼 성벽이 있었고, 그 안에 빼곡히 자리한 중세틱 건물이, 그리고 정 중앙에 높게 올라와 있는 성이 있었다.
-던전...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던전은 아니다.
하지만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위성사진으로 보이듯 도시의 일부가 이미 소실된 상태이며, 추정 사상자는 대략 30만 정도로 보고 있어요."
-버,벌써 말입니까?
"예. 더 끔찍한 건 아직 시민은 대피하지 못한 상황이고 설상가상으로 해당지역 통신이 모두 마비됐다는 거죠. 덕분에 인천지부와의 연락도 끊긴 상황입니다."
-그런....
모두가 식은땀을 흘렸다.
B급도 대단했지만 과연 A급. 시작하자마자 D10 핵심이사국에게 한 방 먹여주고 있다.
"대통령측과도 연락을 취해봤지만 웬일인지 되질 않네요."
-그럼 하렘궁에 연락을 취해 봅시다!
-그래요! 이대로 방관할 순 없지요. 인명피해도 그렇지만 한국만한 경제권이 무너지면 더 이상 세계가 버틸 수 없습니다! 일본이 토막난 것도 불과 몇 달 전이라고요!
웅성웅성.
시끄러운 토론이 시작됐다.
평소라면 느긋하게 이 광경을 바라봤겠지만 지금은 비상시. 가만히 앉아 듣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만. 지금 이 자리는 여러분과 대책을 논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아닙니다."
-...예?
"그럴 시간은 없어요. 지금 즉시 가용 가능한 모험가 전력을 끌어 모아 파견 준비 해주시고, 대통령 및 국가 수장여러분은 파병을 준비해 주세요."
-파병까지?
"그 인간이 있는 이상 그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될 리는 없겠지만...만에 하나라도 이번 방어전을 넘지 못하게 된다면 반도 전체가 던전화 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세계 몰락의 시발점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건...
-아니 하지만 파병이라니. 그건 의회의 승낙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무턱대고ㅡ,
"그럴 시간 없다고 했을 텐데요. 의회를 없애든 독재를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 말에 따르세요."
-...이보시오 회장양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만한 거 아니오?!
한 중년인의 외침에 대부분의 사라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녜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야 한국이지, 다음은 독일일지도 모르고 중국일지도 모르고 미국일지도 모르는데 그때도 이렇게 천하태평한 말들을 하실 건가요?"
-뭐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눈에는 분노가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회,회장님 왜 이러십니까? 대체 어쩌시려고...!"
보다못한 비서가 바들바들 떨며 아녜스를 말려 보았지만, 그녀도 맞대응을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회의 승낙? 그게 대체 언제 되는 건가요. 사태가 모두 끝나고 멸망 직전까지 가면 되는 건가요?"
-아니 이 여자가 못하는 말이 없네!
"당연히 없죠. 조만간 세계의 운명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허...
너무 당당해서 말도 안 나온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참에 말씀 드리죠. 이제부터 등장하는 던전들은 하나같이 재앙 같은 것들이에요. 전 지구적인협력이 신속히 요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거예요. 그때마다 의회 승낙이니 결재니 하고 있을 건가요? 이제 그럴 시간 없어요. 국가의 수장이 유사시 혼자의 결정으로 국가의 전력을 총 동원할 수 있는 방책을 시급히 마련하셔야 해요."
요즘 같은 민주사회에 이 무슨 폭군 같은 말이란 말인가.
모두가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분은 전적으로 제 말에 따르셔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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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대한 소식은 당연히 유은에게도 전해졌다.
"뭐? 인천에 A급 던전이등장했다고?"
"네."
"...."
한창 시녀들과 온라인게임을 즐기고 있던 유은이 4시간 만에 몸을 돌렸다.
"그...인천에 사랑씨 있지 않아?"
"예. 대통령이 센스를 발휘해 후방으로 빼둔 다는 것이...하필 인천 문학산입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냐? B급도 간당간당하던데 A급이라니."
"안 그래도 연락을 취해봤으나 인천지역 전반적으로 통신이 되질 않습니다."
"엥."
"D10 한국지부도 연락이 되지 않았고요. 최악의 경우 이미 궤멸했을 수도 있습니다."
"야! 그럼 큰일이잖아!"
"급한대로 아흑이를 보내고 오는 길입니다. 10분이면 인천에 도달해 상황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요."
"그래. 잘했어. 사랑씨 무사하겠지?"
"...아마도요."
"으음...."
유은은 1분 정도 다리를 떨다가 결국 박차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내가 가봐야겠어. 흑흑이 불러오고 1등 시녀 10명만 준비시켜."
"네. 부인분들은 어떻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제외. 여길 지킬 사람도 필요하고."
위험하다고 하기에는 부인들의 스탯이 너무 넘사벽이었지만 그러려니 하며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서현이 1등 시녀를 소집하기 위해 폰을 두들겨 문자를보내고, 머지않아 10명의 1등 시녀가 방문 앞에 도열했다.
"? 주인님. 아흑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은율령 소령을 만났다고 합니다."
"율령씨라면 얼마 전에 사랑씨 밑으로 편성 됐잖아? 어디서 만났는데?"
"인천 외각입니다.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걸 발견했다고...."
"...."
불길한 느낌이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한사랑의 직속 중대를 지휘하는 게 은율령인데 그런 그녀가 홀로 인천을 벗어나려 한다? 그것도 굴러 떨어질 정도로 급히?
"데려와. 직접 보게. 얼마 안 걸리겠지?"
"주인님께서 황궁을 나서실 때 쯤엔 이미 이곳에 도착했을 겁니다."
"좋아."
유은은 대충 옷을 차려입고 문 앞에 도열한 시녀들을 대동한 채 복도를 걸어갔다.
서현의 말 대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로비를 거쳐 밖으로 나오자, 이미 아흑이가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 모습으로 변한 그녀는 여기저기 찢어진 군복을 입은 여인을 안고 있었는데 바로 율령씨였다.
"율령씨!"
군복이 찢어지기 쉽지 않은데.
대체 얼마나 굴렀길래 이 지경이 된 걸까.
"괜찮아요?"
"응...여기 도착하고 10초 정도 지나니까 낫더라. 대체 뭘 장치한 거야?"
"아. 그거 소라누나 패시브 스킬이에요. 근방에 있는 아군에게 10초에 한 번 자동힐이 들어오거든요."
"자동힐?"
"네. 공격력의 10분의 1로 들어와요."
"와아...군에 입대할 생각 없으시대?"
"네."
"아깝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예요? 혼자 산에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는데."
"으...."
그녀는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헛기침 몇 번으로 무안함을 날려 보냈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이상한 성 같은 게 등장해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우리 연대를 궤멸시키고 한사랑을 데려갔어."
"...데려갔다고요?"
"응. 웬 상변태 같은 년이 데려갔는데, 그쪽 시장 취미가 좀 이상한가봐. 걔도 만만찮은 변태겠지."
"시장?"
"암튼 그런 게 있어. 빨리 가서 구해야 돼. 벌써 몇 시간은 지났다고."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가요."
유은의 말이 끝나자, 사람 모습으로 변해 있던 아흑이가 알아서 수송기로 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