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21.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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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야 하나 걱정했지만 사회자(서현)의 말에 따르다보니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망의 반지시간.
사실 반지를 껴주는 건 결혼식에서 하는 거다. 근데 난 청혼하면서 끼워준단 말이지. 말하자면 규모가 안드로메다급으로 커진 프로포즈라고 할 수 있겠다.
대상이 두 명인 게 문제지만.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해버리면 소외된 사람은 좀 씁쓸할 수도 있겠어...소냐씨라던가.
[소라님과 유나님은 주인님앞에 나란히 서 주시기 바랍니다.]
두 여자가 내 앞에 섰다.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적절한 음악을 흘려주던 오케스트라도, 그리고 매번 박수와 환호성을 내주던 내빈들도 조용하다.
그래서인지 더 두 분의 얼굴에 신경이 쏠린다.
[주인님께 반지를 전달하도록하겠습니다. 이 반지는 수 개월 전 부터 장인(은주)이 한땀한땀 제작한 반지이며 세계에 다시 없는 유니크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시녀 한 명이 또각또각 걸어와 고급스런 함을 열었다.
그 안에 푹신한 비단 같은 것에 두 개의 반지함이 고이 놓여 있었고, 주변에는 여러 천으로 장식까지 해 두었다.
은주가 반지를 다 만들었을 때 나한테 주었으니...아마 내 방에서 가져간 모양. 그거 찾는데도 시간 걸렸을 텐데 용하네.
꿀꺽.
내가 반지함 하나를 꺼내자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소라누나거나, 유나씨거나 둘 중 한 명인 것 같다.
흠...누가 먼저...이냐를 따질 때는 나이순으로 하는 게 제일 무난하겠지.
사실 거의 동시에 만난 거니까.
그런고로 나는 소라누나에게 먼저 다가갔다.
이왕 이벤트 하는 거 제대로 감동을 먹이는 게 앞날을 위해서도 좋을 터!
나는 누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함을 열어 보여 주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지.
"오!"
내빈들 사이에서 여러 소리가 들려왔다.
"아..."
소라누나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런 표정 보는 것도 나름 재밌는데.
"유소라씨, 제 아내가되어 주시겠습니까?"
이미 부인이라 정확히는 '비'가 되어 주겠냐고 물어야겠지만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또 분위기상 그게 맞는 거 같아서 단어를 바꿨다.
하지만 알아 듣는데는 문제 없다.
"...네!"
누나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나도 가슴이 떨린다.
반지를 꺼내 누나의 왼 손을 잡고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과하게 헐렁한게 아닌가 했지만 곧 알아서 줄어 들어 알맞는 크기가 되었다.
나는 일어서서 누나의 허리를 끌어 당기며 키스했다.
"오오!"
때에 맞추어 빵 터지듯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1분 정도 음악이 흐르는 동안 입을 맞추었고, 입을 뗐을 때 몽롱한 그녀의 표정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은 유나씨.
사실상 몇 분은 방치되어 있었지만 기분 나빠하진 않는 것 같다. 두 명이 올라와 있는데 이 점은 어쩔 수 없으니까.
소라누나에게 했던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함을 열었다.
"...."
누나처럼 울먹거리진 않았지만 제법 숨이 거칠다. 입가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억지로 표정관리를 하는 모양.
"유나씨, 제 아내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아까와 똑같은 대사라 혹시나 성의 없다고 하는 게 아닐까 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유나씨는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게 아무래도 말을 하면 뭔가가 속에서 터져나올 것 같아서 그러는 모양.
스윽.
유나씨에게도 반지를 끼워준 후 키스.
그녀 성격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추후 영상이 떠돌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스킨쉽 같은 건 못하는 게 정상인데 왠일인지 오늘은 퍽 적극적이다.
입술을 닫고 꾹 담아 두었던 감정을 내게 털어놓듯, 보이지 않는 입 속에서 유나씨의 혀는 공격적으로 나를 공략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게 아쉬울 정도.
소라누나랑도 1분 정도 했으니 유나씨랑도 1분 정도 하는 게 적어도 이런 공개적인 행사에서는 그림이 좋다.
그렇게 유나씨 차례까지 끝난 후에 나는 두 누나를 모두 끌어 안고 한 번씩 뺨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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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혀서 진짜."
행사는 거의 막바지.
유은이 두 여자에게 모두 반지를 끼워 주고, 스킬을 사용해 '비'로 승격 시켰다.
어이 없는 건 그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부터 시작해 이곳에 있는 내빈들이 엄청난 박수와 환호성을 쏟아냈다는 점이다.
"이딴 걸 보면서 박수를 쳐야 하다니."
애초부터 유은이 맘에 안 들었고, 당연히 이런 같잖은 행사도 맘에 안 들었던 민예린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어쩌겠어. 쳐야지. 이런 기회가 또 어딨겠냐."
"...흥."
옆에 있던 검사장의 말에 더 짜증이 난다.
대한민국은 일부일처제에 축첩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꽤 많은 이들이 애인을 두고 있다. 그런 자들 입장에서 유은은 돌격대장.
스스로를 스스럼 없이 드러내며 성대한 행사를 열질 않나 파티를 벌이질 않나...
심지어 이곳에는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도 있었고, 검사장을 비롯한 검사들, 그리고 경찰청에서도 무수한 사람들이 와 있다.
국가의 정의가 법이라 한다면 정의의 기사는 바로 그 법을 집행하는 검사, 판사, 경찰과 같은 이들이다.
그들이 유은의 행동에 박수를 쳐 주었으니, 나중에 이와 비슷한 문제로 걸린다면 할 말이 아주 많을 것이다.
"더러워."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나저나 어쩔거야. 계속할 거야?이변호사가 니 친구라며."
"당연히 해야죠. 그리고 누가 친구에요? 원수거든요."
"조심해라. 난 지원 못해주니까."
"흥. 쫄보."
"어쭈? 니가 비정상적으로 간이 큰 거야 이년아."
민예린은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쯧쯧쯧...차장까지 달아놓고 뭐 하는 거야. 목숨이 한 백 개 되나? 이래서 지 잘난 맛에 사는 애들 명이 짧은 거야."
멀어지는 등 뒤로 혼잣말을 뱉는 그. 눈동자에는 연민과 동정, 그리고 한심함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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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델 다 오시고...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최대한 막아보긴 하겠지만...요즘은 중세가 아니니까 결국 정보는 새어 나가게 돼 있단 말이지...
두 사람에게 청혼을 했고, 이 자리는 그걸 축하하는 자리잖아. 근데 거기에 대통령이 와 있다고...이게 알려지면 이 양반 정치생명 작살나는 거 아냐?
"훗. 미국처럼 재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
"허허."
거 참 태평한 양반일세.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두 분이나 맞이하시다니."
"정확히는 셋입니다. 부인이."
"여론뭇매 좀 맞으시겠는데요?"
"안 아프니까 상관 없어요."
"당신 답군요."
대통령씨는 잠시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가 급한일이 있다며 회장을 떠났다.
이미 메인 행사가 끝났으니 다른 사람들도 떠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내 오산. 사람들은 나나 누나들에게 형식적인 축하인사를 건내다가 다른 유력한 인물들과 사교를 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마치 중매쟁이 같은 사람들이 사방을 돌아다니고 집단과 집단이 만남을 가진다.
내게 다가오는 이들도 꽤 많았지만 남자들은 그냥 대충 대꾸해주었다.
"이왕이면 한 분씩 해드릴 걸 그랬나봐요. 살짝 후회되네."
유나씨와 소라누나와 함께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없어도 알아서 음식도 먹고 돌아다니고 있다. 시끌벅적한 파티 그 자체.
"으응?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충분해."
소라누나는 홍조를 띄운 채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
"사실 좀 급조한 거라서요. 아~ 이런 건 제대로 해야 되는데 평소 준비성이 없어서...."
"괜찮아요. 이 반지, 꽤 오래전에 주문했다면서요."
예...주문 자체는 오래됐죠. 까먹어서 그렇지.
"그럼 급조한 게 아니죠. 고마워요. 신경 써 줘서."
유나씨가 담백하게 말했다.
저번 데이트때의 그녀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의외인데. 한남데레인우리 유나가 이런 표정을 짓다니 말야."
감동의 얼굴을 하고 있던 소라누나가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한남데레라뇨. 무슨...."
"으흐흐. 부끄러워 하는 거 봐. 귀엽네 우리 스승."
모찌같은 유나씨의볼을 잡아당기는 소라누나. 유나씨도 그에 지지 않고 소라누나의 여기저기를 꼬집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기뻐하는 모양이다. 진짜 다행이야.
"...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회장을 둘러보던 나.
그러다가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비녀를 꿰어 머리를 올린 여인.
젊고 싱그러우면서 건강미까지 자아내고 있는 그녀는 바로 한사랑 중령이었다.
아....
근데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아.
그 이전에 여긴 왜 온 거지...;; 아니 누가 초대한 거야. 이런 거 봐 봤자 기분 좋을 리 없잖아.
"뭐야? 누구 보는 거야?"
"아...은...소령씨요. 참 많이도 먹는다 싶어서."
소라누나의 물음에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마침 햄스터처럼 볼을 부풀리며 이것저것 집어먹는 은소령 일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