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21. 개장!
"...."
상당히 전투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지만, 한사랑은 반박할 수 없었다.
'...실책이다.'
입술을 꼭 깨물면서 자신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생각해 보지만 본인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본인이 믿는 정의를 위해 감정을 배제하고 군의 힘을 행사하는 그녀로서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온 것 부터가 실수.
그녀의 말마따나 유은이 소라와 유나에게 청혼하는 걸 지켜봐야 속에서 천불밖에 더 나겠는가.
거기에 유은의 여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은소령을 발견하곤 쓸데없이시비를 걸었다.
평상시의 그녀랑은 천지차이.
본인도 이런 행동을 이해 못하고 있는데 은소령의 말에 반박할 수 있을 리가없다.
그저 분을 삼키며 수긍할 뿐.
"알아 들었으면 꺼져. 내 앞에 알짱거리지 말고. 아님 뭐야. 우리랑 껴서 해보게?"
"...흥."
한사랑은 마지막 자존심을 내뱉고는 싸늘하게 몸을 돌렸다.
역시 이 여자랑은 안 맞는다. 왜 이런 짓을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여자는 맘에 안 든다.
"씨발년. 끝까지 싸가지 없네."
은소령은 은소령대로 개념 없이 구는 한사랑이 미웠다.
"아~ 오늘도 은이방에 가야겠다~. 엉덩이로 하자고 해볼까나~~."
일부러 한사랑이 들을 수 있게 큰 목소리로 말하자, 한사랑이 잠시 멈칫했다.
"이번에야말로 내 궁극의 허리놀림을 보여줘야겠어. 뻑 가버릴 걸?"
"무리라고 봅니다. 부장님."
"불가능하져."
"할수 있거든."
저열하고 음탕한 대화.
누군가 성직자가 이 자리에 있다면 필시 입에 거품을 물고 저주했을 것이다.
"...."
한사랑은 잠시 그녀들을 노려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이미 패배한 무장(?).
더 얽혀봐야 추해질 뿐이었다.
결국 다시 발을 옮기는 그녀. 묘한 분노의 오라가 그녀를감싸고 있었다.
+++
"여긴...."
평소 안 가본 곳을 함께 둘러보며 어떻게든 데이트의 형식을 갖추던 나와 소라누나.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장소를 들렸다.
바로 우리의 시작점. 한남동 시티다.
그 중에서도 나와 소라누나가 잠시 머물렀던 단지...그래. 처음으로 소라누나, 유나씨하고 섹스한 곳이지.
그리고 소라누나와 2차를 뛰기 위해 나왔을 때 분위기에 취해 키스했었고...그리고 운현이 놈이 그 모습을 목격해서 소라누나는 5년간 사귄 약혼자와 헤어졌다.
오늘 나는 소라누나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유나씨한테도....
그러니까 이제 매듭을 지어야지.
간간히 누나 표정에서 보이는 운현이놈을 완전히 지워버릴 때가 왔다.
나는 누나를 데리고 담장 근처로 갔다.
여기가 바로 키스하다 들킨 곳.
"...."
누나도 눈치챘는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누나. 키스해줘."
"...."
너무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그녀.
오늘 느꼈던 감동이 조금씩 희석되는 모양이다.
"...찌질해."
"그 만큼 누날 독점하고 싶은 거에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쁜새끼.'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저돌적으로 입을 부딪쳐 왔다.
"우움.."
자연스레 누나와 나의 몸이 얽힌다.
부드럽고 풍만한 가슴이 너무도 기분 좋게 뭉개졌다.
"푸하...."
정열적인 혀의 얽힘.
떼고 난 뒤 그윽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가 나지막히 말했다.
"은아, 너는 날 좋아하지? 나는 너 사랑해."
"엣..."
나쁜 기습이다.
심장에 나빠...갑자기 훅 들어오잖아.
"우움...."
다시 이어지는 키스.
분위기에 취해 허리 밑으로 손을 옮겼다.
잔뜩 업된 엉덩이가 말캉하게 만져졌다.
어느새 누나의손도 내 몸을 만지작 거리고, 연인끼리의 짙은 스킨쉽이 이어졌다.
스윽.
엉덩이까지 내려갔던 나의 손은 어느새 허벅지에 손을 대고 있었고, 슬그머니 올려가며 애무했다.
"아...."
"여기서 해볼래요?"
"미,미쳤어?"
야외.
야외섹스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운현 그놈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었다.
이제 그놈한테는 빨아먹을 만큼 빨아먹었으니 잊혀져도 상관 없잖아?
"들어가서해...밖은 싫어."
내 가슴께에 주먹을 올려놓고 칭얼대는 소라누나.
어딘지 귀엽다.
"그래요. 그럼 들어가요."
잔뜩 달아올랐지만 오늘은 청혼의 날이다.
섹스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
무엇보다 소식을 들은 유나씨도 기다리고 있을 테고.
나는 달아오른 그녀를 이끌고 차에 탔다. 소라누나는 저녁도 같이 먹자고 했지만 유나씨 핑계를 대고 차에 태웠다.
"돌아가자."
"네. 주인님."
아직 꺼지지 않은 분위기.
차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만지작거렸다.
+++
"...."
"나도 이런 이벤트 받아봤으면 좋겠다. 너무 큰 욕심이려나."
"...뜬금없이 이런...."
당연하지만 유은의 황궁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는 건 알만한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일이 되었다.
인간 바리게이트로 진입을 막고는 있지만 기자들도 상당히 몰려왔고, 외국에서 온 기자들도 있었다.
"원래 이벤트는 뜬금없는 거란다. 너도 소라처럼 아예 몰랐다면 참 좋았을 텐데."
"흐,흥. 필요 없는데요."
안타깝게도 유나는 모든 전말을 들어버렸다. 시녀들의 실수.
미리 포석을 깔았어야 했는데 외출중이던 유나가 예정보다 너무 일찍 돌아와 버렸고, 뜬금없이 대한민국의 상류층이 모여있는 모습에 추긍하다 결국 알아버린 것이다.
'청혼...이라고...?'
유나와 소라에게 공식적으로 청혼이라니.
그야 물론 그녀도 여자이고 유은에 대한 호감도 100인 관계로 기분 자체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기뻤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의아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뜬금없이 청혼을 하고, 또 이렇게 사람을 많이 부른 것인가.
"20년만 젊었으면 떼라도 써보는데...후."
"...17살이라면서요?"
"얘는...몸만 17살이면 뭐해...."
생각에 잠긴 사이, 소냐는 드물게 자신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딸이 청혼을 받는다니, 엄마의 입장으로서는 기쁜 일이었지만, 그의 여자로서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딸한테 질투라니 추하네. 예린이 말이 맞는 걸까. 타락했어.'
물론 딱히 깊은 감정으로 발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싱숭생숭했다.
"유나님."
"...서현씨."
중간부터 합류하여 준비하던 임서현이 다가왔다.
"죄송해요. 김 새게 만들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리허설까지 모두 마쳤고...곧 주인님께서도 돌아오실 거예요. 유나님은 입구에서 기다리시다가 함께 들어오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
"유나씨!"
"어. 유나야. 기다리고 있었어?"
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것은 드레스를 갖춰 입은 유나씨.
역시 예쁘다.
"뭐야 이 복장...파티라도 하게?"
"언니도 갈아입어요."
"응?"
나는 드레스코드를 사용하여 그저 단정한 복장이 아닌 검은색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아니 턱시도라고 하던가.
"뭐,뭐야 갑자기...?"
오른 팔로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소라누나의 팔짱을 끼고, 왼팔을 유나씨에게 내밀었다.
"...."
그녀는 말없이 내 왼쪽으로 들어왔다.
크. 이거 뭔가 긴장되는데.
은주녀석 어떻게 준비했으려나.
"근데 유나씨는 알고 계신 거예요?"
"네. 어쩌다보니."
"쩝. 아쉽네요."
"그러게 잘 좀 준비하지 그랬어요."
"끙...."
할 말이 없네. 너무 급조한 탓이야. 반성하자.
"대체 뭐길래...."
소라누나는 여전히 당황해 하면서도 파티용 옷으로 갈아 입었다.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항상 보라색으로 염색하는 그녀답게, 연한보라색의 드레스다.
가슴이 풍만한 관계로 골짜기가 훤히 드러나는 의상을 입었는데, 보기만 해도 흥분된다.
유나씨는 가슴골을 드러내진 않지만 어깨와 목선을 드러내고 있다.
모두 미칠듯한 미모를 뽐내고 있다. 이 두 여인에게 오늘 도장을 찍는다.
청혼...
진짜 급조해서 만든 이벤트인데...이렇게 닥치고 보니 괜히 긴장되네. 너무 색다른 기분이잖아.
"주인님, 사모님, 이쪽으로."
은주와 시녀단이 우릴 맞이했다.
황궁 입구로 통하는 레드카펫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도열한 모습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
"가요."
"으,응."
두 여인을 이끌고 안으로.
그렇게 정문을 지났을 무렵,
[유은님과, 소라, 유나 사모님 드십니다!]
[따~ 따라라~라~라~]
[아~ 아아아 아~아~]
마이크를 잡은 서현의 말이 들리고,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사방팔방에서들려왔다.
어? 이거...아따맘X라던가 킹x맨에서 머리 터질 때 나오는 음악...이잖아? 위풍당당 행진곡이었나?
"...!"
광장을 가득 매우는 수백명의 사람들과, 멀리 건물입구 부근에서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여러 오케스트라.
뭉쳐 있는 덩어리(?)를 봤을 때 대여섯 정도의 오케스트라를 부른 것 같다.섭외한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합을맞춘 거지...시간이 됐으려나?
"우읏...뭐,뭐야?"
소라누나가 크게 놀라며 좌우를두리번거렸다.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을 들으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두 여인과 함께.
그리고 어느 정도 걸어갔을때,
[Land of~ hope and gl~ory~ Mother of thefree~]
갑자기 빵 하며 웅장하게 터져 나왔다. 수백명의 우렁찬 합창.
[내빈 여러분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짝짝짝짝짝.
레드카펫을 전진할 때마다 좌우에 앉아있던 무수한 사람들이 일어서 박수갈채를 쏟아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저 양반 대통령이잖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Wider still and wider shall thy bounds be set~]
이렇게까지 준비했을 줄이야...놀랐지만 담담히 걸어갔다.
유나씨는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지 포커페이스를 유지중. 그래도 기뻐하는 것 같다.
소라누나는...
"와...와아..."
어떻게든 나와 유나씨를 따라오고 있지만 허둥대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다.
허공에는 엄청난 양의 꽃잎이 흩뿌려지고 있다.
Land of hope and glory
Mother of the free
How shall we extol thee
Who are born of thee
Wider still and wider
shall thy bounds be set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레드카펫 구간을 지나자, 거짓말처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딱 끝났다.
짝짝짝짝짝.
그리고 또 다시 쏟아지는 박수갈채.
기립박수가 이어진다.
와...진짜 멋지긴 하다. 고양되는 기분도 그렇고...
근데...
그냥 반지 주는 이벤트인데 너무 거창하잖아!!! 이러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 기대에 찬 눈빛! 나보고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