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209)화 (208/517)



〈 209화 〉20.도쿄 대참사.

아흑이는 마치 우릴 보호하듯 앞으로 나섰다. 깔끔하고 세련된 은빛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뒷골목 누님의 포스를 풍기는 그녀의 뒷모습은 정말 멋졌다.


게다가 옷차림도 섹시해서, 엉덩이골이 거의 드러날 것처럼 짧은 청색 핫팬츠에, 조금짧아서 치골과 복근 아래쪽의 살결이 살포시 보이는 분홍색 티셔츠. 그 티셔츠보다도 짧아서 가슴보다 조금 아래부분까지 걸쳐지는 청조끼까지. 어디 용구슬이라도 찾아야  같은 애니에 인조인간으로 등장하시는 분의패션이다.

머리스타일도 살짝 비슷하게 해 두었지. 물론 완전히 통짜로 배끼진 않았다. 그럼 표절이자나.

"이거 놔요!!"

머지않아  밑에 깔릴 아흑이의 섹시한 자태를 바라보고 있자니 품에 안긴 모험가가 발버둥쳤다.

"이름이 뭐야?"
"당장 치우라고요!"

가슴을 조물딱거리고 있는 내 팔을 어떻게든 밀어내려 하지만 역부족.
뭐, 너무 싫어하지 말라고. 이대로 가버리면 다 죽을 텐데 그것 보단 낫잖아. 애초에 내가 일으킨 사단이지만.

"급박하긴 뭐가. 내가 왔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그녀의 귓가에 은근하게 속삭였다.

"너 어차피 목숨 버릴 각오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아냐? 내가 누군지 몰라? 도쿄 방어전을 순식간에 끝낸 장본인이야. 유은이라구. 아깝게 목숨 버리지 말고 내 여자 해. 구해줄 테니까."
"...나쁜새끼. 사람들의 위급함을 미끼로 이딴짓을 하다니!"

그녀는 한 층 더 분노해서는 나를 막 때렸다.
물론 내가 개새끼짓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 나쁜 거래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에휴.]

아흑이가 나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녀석, 나중에 반드시 앙앙거리게 만들어준다.




-그아아앙!!


아흑이는 분신을 조종해 몬스터가 우릴 위협하는 구도를 만들더니, 오른팔을 쭉 내밀었다.
마치 마법영창을 하는 듯한 모습.
 직후 기합을 내질렀던 트랜스 미스릴이 갑자기 기동을 멈추며 허물어졌다.

진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단순히 '컨트롤을 끊었구나.'하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지.
탱크와도 맞짱뜨는 트랜스 미스릴을 이토록 쉽게 물리쳐 버리니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심지어는내게 가슴이 만져지고 있는 모험가도 반항을 멈추고 경악의 표정을 지을 정도다.

"잘했어. 아흑아."
그녀를 치하해주고 나는 모험가를이끌며 건물 안으로들어갔다.
다른모험가들도 어어어? 하면서 따라왔다.


"이거 놔!! 놓으라고!!"

다시 정신차린 모험가도 발악을 시작했다.


"아흑이는 거기서 망 보고 있고, 흑흑이는 뒤쪽에서 경비해."
[네.]
[최악.]

 트랜스 미스릴 겸 ai는 저마다의 성격을 드러내는 말을 내뱉고는 자기 자리로 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두려움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는가 싶기도 하지만, 여기가 도쿄 한복판에다 나름 높은 건물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오히려 많지않은 수인  같기도 하다.


"와. 다들 이쁘네."


역시 연예계 소속사라서 그런가.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이쁘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아이들도 있었다.

"푸니푸니애들은 없네. 다른 곳에 있나."

살짝 걱정은 되지만...뭐  일 있겠어. 어차피 지금 난동 부리는 거  아흑인데. 걔가  반항적이긴 해도 내 뜻을 모르는 애는 아니니까.




짝!

나는 마음껏 주무르던 모험가를 해방시켜주고 손뼉을 쳤다.
안 그래도 집중되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모여들었다.

"자. 대충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밖으로 나가면 죽음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여러분들은 죽었을 겁니다."
"...."

안심과 불안, 신뢰와 불신. 서로 상반된 마음들이 눈동자에서 읽혔다. 그리고 불길한 말을 한 것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저한테 그런 표정 지어봤자 소용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절 반겨야죠. 난 당신들을 구원하러 온 거니까. 물론 무대가는 당연히 아니고."
"...서,설마...."

 여자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경악과 공포와 분노가 어우러져 있는 복잡한 표정.

아마 생각하는 게 맞을 걸. 크크.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 하지 마세요. 특히 남자들. 댁들한테는 받아낼 거 없으니까 안심하시고."

풀어 주었던 모험가를 다시 껴안았다.
'꺄악!' 하는 귀여운 비명이 불끈 서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바지 속으로 손을 쑥 집어 넣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여기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내 말에 절대복종 해야 돼. 알겠지?"

+++





"전부...수용하겠습니다."
-....

힘겨운 결정.


 번씩이나 자기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린 한국 대통령을 상대로, 일본 총리는 굴욕적인 굴복을 선택했다.
어쩔  없었다.
이미 도쿄 사방이 박살나고 있고, 일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아니, 이젠 완전한 시가전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군이 도와준다 해도 제대로 진압이 될 수 있을 지도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수밖에.

-이번 사태가 끝나고 도쿄를 길드자치도시로 지정, 하렘단의 지배를 인정 하시겠다는 겁니까?

"예. 단, 여기서 말하는 '도쿄'라는 건, 도쿄 던전이 등장한 구 고쿄를 중심으로 반경 5km의 지역입니다. 이 구역을 따로 '도쿄 던전시티'로 지정하여 길드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주권의 일부만입니다."
-대충  정도로 하죠. 저로서는 선례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후...그럼...."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앞으로 한국군의 일부는 일본에 주둔할 것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논의하도록 하죠. 그럼.
"아,"

뚝.


세 번째 무례.
이젠 허탈하기만 하다.


"어찌...되었습니까?"
"후우...."

총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어떻게든 조력을 구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그를 휘감았다.
게다가 이번 사태가 어떤식으로 진행되든 그의정치인생은 끝났다. 한국군 주둔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 일부이긴 해도 일개 도시의 지배권을 길드에게 넘겨주게 되었으니까.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반발이 매우 거셀 터.

"이제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





"와...진짜 장난 아닌데...."
"그 인간들 정말...."

유나와 소라는 한참 아래로 보이는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잃어버렸다.

도쿄 근방의 상공.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무너져내린 건물과 사방에서 일어나는 폭발.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등등이 그야말로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막상 보니까 착잡해지네...역시 길원들 데려오길  한 거 같아. 그지?"
"빨리 내려가요."

일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이미 알고 있는  여인은 500명 정도의 시녀들과 함께 일본으로 향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에서 초대형 수송기를 빌렸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협조가 아주 요긴하게 작용했다.

하긴, 그로서도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으니 윈윈이다. 옆나라 일본을 구제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임은 물론, 확실한 전력이 될 수 있는 하렘궁을 설득하여 무려 500명이나 되는 고위 모험가를 파견했다...이는 확실히 좋은 선전주제였다. 당연히 하렘궁에게도.


아무튼 그렇게 일본에 도착.

당연히 이런 사태에 공항이고 뭐고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다.




"어차피 날뛰는 애들은 아흑이의 분신이에요. 그러니까 싸우는  보단 인명구조에 힘 써주세요."

 시가 시급하기 때문에 바로 뛰어내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공수훈련 같은 건 당연히 받아본 적 없었지만, 공방이 워낙 높은 관계로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혹시 잘못돼도 죽진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네. 사모님."

고개를 끄덕여보인 시녀들이 먼저 뛰어 내렸다.
속성으로나마 들었던 설명을 상기하며 줄줄이 다이빙.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수송기들에서도 속속 시녀들이 다이빙을 시작했다.



+++



"국민 여러분 보이십니까! 도쿄의 실시간 현황입니다!!"

도쿄 대참사.
도쿄 던전역류.

등등의 키워드로 불리고 있는 이번 사건은, 당연히 전 세계 이목을 집중 시켰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의 대부분의 방송국에서 방영중인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속보를 전달했는데, 현지에 나가있는 몇몇 앵커와 방송팀, 우연히 거기 있던 기자 등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실황을 중계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 도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상공에서 중계중이었고, 그럼에도 도쿄가 박살나는 모습은 실감나게 보였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



"아!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철군 중이던 한국군이 다시 이곳, 도쿄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양국간의 긴급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아울러 한국에서는 세계 최대 길드라 할 수 있는 하렘궁의 길드원 500여명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지난번 방어전과 같이 이번에도 인접국인 한국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생각되는데요. 한 가지 두려운 건...아직 도쿄의 시민이 대부분 피난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걱정되네요."

몇몇 기자들은 눈물까지 보였다.
몇 초간 집중하면 실시간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보였고, 무너지는 건물들이 연주하는 절망의 교향곡이 귀를 어지럽혔다.

"기자 이전에  명의 인간으로서, 이번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되고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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