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20.도쿄 대참사.
"왜그래? 새삼스럽게."
[하아...]
깊게 한숨을내쉬는 아흑이. 하지만 말야. 이 정도 망상은 옆동네 사선생에 비하면 별 거 아니란 말이지.
"일단 너가 아무거나 한 번 만들어봐."
[재료가 있어야 만들죠.]
"너 몸 떼면 되잖아. 호빵맨처럼."
[와 진짜 어떻게 그런 명령을 내릴 수가 있어요?]
"아니면 여기 뒹굴거리는 거 대충 넣던가. 어디다 넣는 거야?"
사방을 둘러봐도 재료 넣는 곳 같은 건 없는데.
[흥. 미개한 닝겐의 기술이 아니거든요. 기다려 봐요.]
아흑이가 츤데레 같은 말을 하면서 화면을 쿡쿡 눌렀다.
그러나,
-삐ㅡ,
하는 별로 좋지 않은 경고음과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뭐야?"
[...권한이없다는데요.]
"너 진짜 쓸모 없구나."
[이익!]
하긴. 그렇게 엄청난 시스템인데 아무나 쓸 수 있게 하진 않았겠지.
[그럼 쓸모있으신 주인님이 한 번 해보시죠! 읽지도 못하는 주제에!!]
분기탱천하여 반항하는 우리 아흑이.
귀엽기도 해라.
"나는 원래인간이고. 못 읽는 게 당연한 거야. 못 하는 게 당연한 거고."
[내로남불 지리시네요.]
"그런 단어는 쓰는 거 아냐. 아흑아. 바르고 좋은단어를 써야지. 세종대왕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니?"
[세종대왕이 만든 건 한글이고요 한국어랑 다른 거거든요 멍청주인아.]
"어허."
요녀석 점점 반항기가 심해지는 군. 빨리안드로이드로 변신시켜야겠어. 그걸 위해서는 이걸 얻어야 하는데.
"너 반드시 내가 안드로이드로 만든다."
[흥. 할 수 있으면 해봐요.]
로봇 강아지의 얼굴로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를 비키는 아흑이.
나는 그녀(?)가 있던자리에 섰다.
모니터에는 전혀 알 수 없는 글자 투성이에, 그나마 '트랜스 미스릴'로 추정할 수있는 설계도 같은 것이 떠 있었다.
흠...
아무거나 일단 클릭해 볼까.
내 손으로도 터치 되겠지?
-삐 ㅡ,
역시나 아까와 같이 경고음이 울려 퍼지며 알 수 없는 기계음이 들렸다.
[훗. 정말 쓸모 없ㅡ,]
-지잉.
아흑이가 잔뜩 비꼬며 뭔가 말하려던 순간, 모니터를 터치한 내 손가락 주변으로 녹색의 전류 같은 것이 화면 전체에 흐르더니, 갑자기 방 전체가 '쿵'하고 울렸다.
-지직.
화면이 깨진다.
마치 옛날 tv처럼 지직거린다.
그러다가,
[사용인 신분조회 시작.]
[신분조회 완료]
[카테고리 : 황족]
[상세 신분 : 황제]
[신분 넘버 : code_1]
[사용인 등급 조정]
[master]
[접근권한 설정 ]
[unlimited]
알아들을 수 없는 기계음이 아닌, 한국어 안내가눈과 귀에 쫘라락 떠올랐다.
"오오!"
"와아. 역시 주인님!"
빨간색 투성이었던 사방의 led(?)도 녹색으로 변했다.
"이거 내가 쓸 수 있다는 거 맞지?"
[...실화냐.]
절망하는 아흑이.
나는 그런 그녀(?)를 안아 내 얼굴 높이로 들어 올렸다.
"흐흐. 기다려라 아흑아. 사람으로 만들어줄게."
[아...최악...]
와락 일그러지는 강아지의 표정.
귀엽다는 듯이 부비부비 해주고는 다시 내려 놓았다.
"그럼 주인님이 이 던전의 주인이 되신 건가요?"
"이 연구소인지 뭔지하는 곳을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던전도 내꺼 아닐까."
아니어도 딱히 상관 없지만.
어차피 여기 온 목적은 심심풀이 겸 도쿄 공습 준비니까. 꼭 던전까지 내꺼일 필욘 없지.
"중요한 건 이걸 통해 뭘 할 수 있느냐지. 진짜 보지니아를 만들 수 있으려나."
꼭 귀가 아니더라도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지...유두라던가 흐흐.
삑 삑삑.
나는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 이것저것 만져 보았다.
권한을 얻은 이후부턴, 완전히 리뉴얼되어 모든 언어가 한국어로 변환되어있어서 몇몇 전문용어를 제외하면 꽤나 알아보기 쉬웠다.
솔직히 어느 정도 눈치만 있어도 무슨 내용인 지 알 수 있을걸.
.
.
이것저것 조작해 보길 벌써 한 시간.
대략적인 건 파악했다.
일단 이건 이세계에서 건너온 녀석이다.
무역센터라는 게 있고 이세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거에서 대충 짐작했지만 던전 자체가 이세계에서 건너온 거였다.
다만 왜 갑자기 던전이 생겼는지, 어디서 건너온 건지 하는 등의 상세한 것들은 나와 있지 않았다.
이녀석이 건너온 이세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안 나와 있다.
아무튼 이세계에서 건너온 이 도쿄던전은 던전 자체가 하나의 연구소 겸 공장이고, 기계관련 설비 뿐만 아니라 생명공학, 유전공학과 관련된 설비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고성능 3D프린터를 이용해서 무엇이든 순식간에 제작해 낼 수 있는데, 그 재료가 인류의 기술과는 넘사벽의 격차를 갖고 있다.
재료가 진짜 '아무거나'다.
응. 아무거나.
왜냐면 분자단위로 분해했다가 재조합&재배열 하는 과정을 거쳐 입력된 물건을 프린팅 하니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할 것도 같은데 그걸 어떻게든 처리하는 설비도 갖고 있는 모양이다. 혹시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변환하는 건가? 예를 들면 마나라던지...혹시 이걸 만든 놈들이 던전을 만든 거 아냐?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러니까 설계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와아."
서현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럼 보지니아를 만들어요."
"음...근데 아무래도 생명이다보니까 좀 망설여지는데. 설계하려면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고...."
분명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
"이런 시스템에는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을까요? 음성인식도 할 거 같은데."
"그런가?"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야 컴퓨터."
혹시 몰라 말을 걸어 보았다.
그랬더니,
[예 마스터.]
오.
깔끔한 목소리로 한국어를 구사했다!
"이야...."
나는 서현에게 엄지를 들어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너 주인인 거 맞지?"
[그렇습니다.]
"오오. 뭘 할 수 있는 거야? 생명창조도 가능한가?"
[가능합니다만 생명창조에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천 드리진 않습니다. 복제나 개조라면 저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라면 구체적으로어떤 걸 말하는 거야?"
[전력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할 수는 있는 거야?"
[현재 본 연구소가 위치해 있는 대도시에서 원격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다만 그리 할 경우 해당 대도시 뿐 아니라 전력망으로 연결 되어 있는 모든곳에 일시적인 정전을 비롯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할 수 있다는 거지?"
[네.]
어차피 일본인데 정전 좀 나면 어때. 근데 원격으로 끌어온다는 게 무슨 소리지. 전력망이 연결돼 있는 건가?
[유선망은 원시적인 기술입니다. 무선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워메. 실화냐. 끌어올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되는데?"
[본 행성 전역입니다.]
"오오."
전기걱정은 없다는 거네.
그럼 맘 편히 하지 뭐.
"앞으로 전력 관련해서는 지구 전체 전력 생산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보고 하지 마."
[알겠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튕기지 않고 순종하는 연구소.
아니 근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지. 그냥 AI라고 하면 되나.
"질문이 있는데, 개조라하면 인체개조도 가능하다는 거지?"
[물론입니다. 다만, 인체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스캔을 비롯한 정보수집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스캔은 그렇다치고 정보는 뭐야?"
[사람마다 형태가 다른 것은 저 역시 알고 있는 바,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간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아하. 요즘 말하는 빅데이터 말이구나."
[네.]
"인터넷에 접속하면 되잖아. 아흑이는 되던데."
[주인님께서 허가해 주신다면 접속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뭐 그런 걸 하는데 허락을 맡아."
[알겠습니다. 총 109억 7782만 2459명의 데이터를 수집 및 정리하였습니다.]
"...존나빠르네."
무슨 말하면서 완료하냐.
[약간의 설비 교체와 업그레이드를 마친다면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성노예 양산이 가능합니다.]
"아니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렇게 하는 양산은 재미 없지. 그보다 여기 이망둥이를 안드로이드로 개조할 수 없나?"
[가능합니다. 기능 업그레이드 역시 가능합니다.]
[히익!]
아흑이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 귀여운 녀석. 곧 이뻐해주마.
"그럼 일단...개조부터 해보자."
나는 서현이를 시켜 아흑이 분신에 들어가 있던 세리나(도적녀)와 리나(신관)를 내 앞으로 끌고 왔다.
바들바들 떨면서 나를 쳐다보는 그녀들.
나는 두 여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웃어 주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을 개조할 거야."
"에...?"
"개...조...?"
"어. 개조. 야. 어떻게 하면 돼?"
쿠웅.
갑자기 바닥이 열리면서 SF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수면실(?) 같은 캡슐이 등장했다.
[저 안에 개조재료를 넣어 주신 뒤, 제게 원하시는 바를 설명해 주시면 설계 및 개조수술을 집행하겠습니다.]
"그렇군."
마침 그때 캡슐의 유리관이 열렸다.
성인 한 명이 넉넉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
다만 좌우로 팔을 뻗을 수는 없다.
"그럼 세리나부터 해볼까?"
턱짓을 하자, 서현이 세리나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가기시작했다.
"힉...! 개조라니!! 싫어!! 싫어어어!!!!!"
"뭘 싫어. 너는 신인류로 개조되는 거라고? 기쁘게 생각해. 이참에 영원히 살게 해 줄 테니까."
"꺄아아악!! 이거 놔!!!"
세리나는 서현을 발로 차기도 하고 어깨를 깨물기도 하고 아주 난리를 쳤다.
하지만 무용지물.
그녀는 결국 서현에 의해 캡슐 안에 넣어졌다.
"싫...우웁!!!"
서현이 팔을 떼자마자 캡슐에서 나오려는 세리나.
하지만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캡슐 안에서 두꺼운 전선줄 같은 촉수가 그녀의 팔과 다리를 휘감고, 이어 입까지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
세리나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려움의 눈물이다.
아. 이거 뭔가 흥분되는데. 또 내 물건이 빳빳하게 서버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