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194)화 (193/517)



〈 194화 〉19. 강화석이라는 것입니다.

얼척없는 말에 소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네가 교주가 돼서 모험가들을 컨트롤하면 어떨까 해서."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재림 예수니 성녀니 뭐니 하는 건 다 장난 아니면 사이비다. 근데 그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니.

"지금이야 힐 좀 넣은  가지고 저렇게들 호들갑이지만, 몇 년 지나면 저와 비슷한 수준의 힐러도 나올 거라구요. 그때 되면 지금의 반응도 쏙 들어갈 걸요? 게다가ㅡ."
"너 바보구나?"
"...맞을래요?"


별로 친하지도 않는데 바보라니!

소라는 짜증의 기운을 풀풀 풍겨 보았지만, 안하무인에 무개념식 미스릴철판을 깔고 있는 소령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성녀가 남자들한테 얼마나 가치 있는 아이템인지 몰라?"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교복 입고 아양 떠는 거 보다, 성녀가 되는 게 훨씬그넘의 시선을 끌 수 있다고."
"...헤?"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나왔을 때, 소령의 결정타가 작렬했다.

"남성향 떡타지에서 꼭 나오고 나올 때마다 인기있는 히로인이 뭔지 알아? 성녀야 성녀. 어떻게든  성스러운 여자를 눕혀서 허리 흔들고 싶은  남자들이라고. 알겠어?"
"...."

왼손가락으로 만든 구멍에 오른쪽 검지를 넣었다 빼는 등 노골적인 묘사를 하면서 말하자 뭔가 알  없는 설득력이 생겼다.

"솔직히 너 가슴 큰 거 말고 딱히 특징 없잖아."

빠직.

"얼굴도 뭐 그냥저냥이고."
"나름...예쁜 편인데요."
"응. 나름."
"...인터넷에 얼굴도 올라와 있는데요!"
"응. 나름."
"팬카페도 있는데요!!"
"현실은 이소냐와 이유나에 심지어 시녀인 임서현한테도 밀리는 4위."
"...."

넘나강력한 팩폭에 입을 다물었다.

임서현의 경우 노출이 많고 활동이 많아서 팬카페 회원이 많은 것이지만, 어쨌든 밀리는 건 사실이다.

이 짜증나는 사실을 굳이 꺼내 언급한 소령은 계속해서 소라를 공격(?)했다.


"가슴 빼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너는 지금이야 옆에 착 붙어서 잘 지낸다 쳐도, 나중에 매력적인 여자들이 많아지면 어느샌가 잊혀질걸? 냉정하게 생각해 보렴."
"...그,그러는 언니는요."
"나? 뭔 상관이야 잊어버리든 말든. 이미 얻을 건 얻었는데."
"...."
"그리고 솔직히...'여경'하면 또 기가막힌 페티쉬 아니겠냐. 나야말로 제발  잊어줬으면 좋겠다."


후룹.


빙수를 국밥마냥 그릇째로 마시는 소령.
그 털털하고 태연한 모습에 왠지 모를 짜증이 치밀었다.


"아무튼...할 말은 이게 다야.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욘 없고, 천천히 생각해 봐. 네 신도들 어디 안 가니까."
"누가 신도에요."
"아까 그 인간들은 대충 훈방조치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

그 말을 끝으로 소령은 카페를 나섰다.



+++



"이러니까 뭔가 색다른 기분이네요."
"...뭐가요?"
"유나씨는  그래요?"
"...."


고개를  숙이는 유나씨.
괜히 붉어진 얼굴을 옷으로 감춘다.


"우리 첫 데이트잖아요. 할 건 다 해본 사이지만. 뭔가가 거꾸로 된 듯한 이 느낌!"
"그,그런 말 하지 마요."
"에이. 저보다 누나이면서 너무 부끄럼 타신다."

나는 그녀의 뒤에서 훅 하고 안았다.

"!"

그녀의 몸이 난간에 살짝 닿으며 휘청했다.
어차피 떨어질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철렁했으려나.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잠실에 세워진 초고층 빌딩의 전망대다. 수백미터 상공의 거센 바람을 견딜 수 있는 모험가만 출입 가능한 곳으로, 당연히 나와 유나씨쯤 되면 프리패스.


본래 모 그룹의 빌딩이 있었지만 강남 방어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무너져 내렸고, 지금은 또 다른 초고층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디자인적으로 보자면 지금이 더 낫다는 평이 다수인데...뭐  생각도 그래.

나는 유나씨의 귀에 속삭여 보았다.

"유나씨, 팔 벌려 볼래요?"
"팔이요?"
"네. 타이타닉처럼."
"네??"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귀엽다.
아마 보이진 않지만 두 눈을 댕그랗게 뜨고있겠지?

"다들 보고 있는데 무슨 그런 걸 해요...."

좌우를 살피며 거절한다.
확실히 지금도 주변에는 사람이 엄청 많고, 그 중 몇몇은 우릴 힐끗 쳐다보고 있다.


알아본 걸 수도 있고, 단순히 유나씨가 예뻐서 그런  수도 있고.
어쨌든 유나씨가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둘만 신경 쓰면 되지. 자,  감아봐요."
"으...."

어차피연애 앞에 타인은 병풍일 뿐이다. 신경 쓸 가치 1도 없다.

"시,십초만...이에요."

십 초씩이나 할애하시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아으..."

서서히 두 팔을 벌리는 그녀.
꼭 안은  팔을 통해 그녀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단단하면서도 말랑한 복부와 내 팔 위에 살포시 얹어지는 부드러운 살덩이.
그냥 계속 안고 싶다.


"고백 받아본 적 있어요?"

슬며시 물으니,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두 팔을 벌린 걸로 이미 수치심 최대가 되었는지, 말도 안 한다.

나는 그녀를 좀 더 꽉 안았다.

"합시다. 나랑. 러브."
"...네?"
"섹스 말고 연애. 나랑 하자구요."
"...."
"앞으로도 계속. 우리 둘이."
"그...거...."
"물론 다른 여자도 있긴 하겠지만."
"...."
"어쩔래요? 할래요 말래요. 할거면 돌아서서 키스해줘요."
"믓...!"

유나씨가 절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리한 요구.

"파,팔은  들라고 한 거ㅡ."
"절 안아 줘야죠."
"으으.."

너무 기습인가.
유나씨 성격에 힘드려나.

하지만 호감도 100이잖아?
스킬에 의한 작위적인 감정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강하지 않을까.
사랑을 표현하는 극적인 순간 만큼은 본래의 성격조차 뛰어넘어 준다면 참 좋을 텐데.
그리고 언젠가 그게 진짜 감정이 될  있다면..


"다른...사람한테도 이랬어요?"
"아니요. 유나씨가 처음이에요."
"...."

그녀가 자그맣게 웃었다.
아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보이지 않지만 공기의 흐름이랄까 뭐랄까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다.

"이거 기만인 거 알죠? 저속한 스킬로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가지고 놀고...그러면서 연애라니...사랑이라니...기만이잖아요."

힘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말투로 길게 늘어 말하는 그녀.
팩폭 덩어리의 아픈 문장이지만, 반전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녀가  돌아섰다.
 다물어 송곳니가 살짝 보이는 입술과 살짝 떨리는 눈썹.
전망대의 휘몰아치는 바람에 아무렇게나 날리는 머리카락.


쑤욱 하고 다가왔다.

동시에 좌우로 벌려졌던 그녀의 팔은  허리와 머리를 감싸왔다.


쭙.

하고 닿는 입술.
키스하나 싶더니, 그대로 들었던 까치발을 내린다.

"키스는...나중에...."

볼장 다 본 우리 사이에 별  아닌 일이지만, 오히려 그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고작해야 입술 박치기인데 뭐가 이렇게도 설레이는지. 이거 동정으로 돌아간 느낌인데.

맹렬한 사랑스러움을 뽐내는 유나씨는 내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래봤자  껴안은 팔은그대로라 착 붙어 있는 모양새지만.

뭉클하게 눌린 가슴 너머로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그게 내 심장인지 그녀 심장인지 아니면 둘 다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분되는 기분이다.


성적으로 흥분되는 거 말고.

그냥 뛰고 싶다!
몰라 그냥 뛰고 싶어.


"뛸래요?"
"...네?"


한 박자 늦게 대답한 그녀,
 순간 나는 이미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엥?"


다소 얼빠진 그녀의 반응과 함께, 우리는 수백미터 상공의 전망대에서 뛰어 내렸다.


"히이익????!"
"미안해요. 뭔가 너무 들떠서 주체할 수가 없네."
"자,자자자자잠!!"

사정없이 우릴 갈겨대는 바람과, 초마다 큼직하게 다가오는 건물과 지면.
죽을 리는 없겠지만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공포를 준다.

"오늘 진짜 특별한 날이네요!"

키라라때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그때완 확연히 다른 느낌!
그땐 일본 지부를 박살낸다는 목적을 위해 뛰어 내렸지만, 지금은 그저 뛰고싶어서 뛰었다.


"우와아아아!!"
"꺄아아아아!!"

 껴안은 채, 상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마  초 뒤면 지면에 떨어지겠지.

어떡할까.
이대로 모텔로 떨어져 버릴까.
침대는 과학이니까 어쩌면 받아줄지도 몰라. 그대로 깊고 깊은 관계 속으로 빠져들지도...

[뭐 하세요...?]


그런 잡생각을 하는 와중,
무언가가 우릴 낚아챘다.

아흑이었다.

[나 참. 또 뭘 잘못 먹은 거야.]
"너 말버릇 고약한 거 언제 고칠래?"
[그 주인님에 그 펫이죠 뭐.]

요녀석.
어느새 미니 제트기로 변해서는 우릴 태워 버렸다.
빠르기도 해라.

"으으...! 대체! 대체!!"

아흑이랑 말싸움 하고 있자니, 등 뒤로 퍽퍽 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유나씨가 날 때리고 있다.

"낭만이라곤 하나도...!"

뭔가 울먹이고 있는데 너무 심했나.응. 뛰어내린 건 반성하자.


"헤헤."

반성의 의미로 한껏 웃어주자, 그녀의 표정이 뚱하게 변했다.

"...왜 얼빠진 얼굴로 돌아온 거예요?"
"네?"
"아까 그 얼굴이 훨씬 나았는데."
"전 언제나 저입니다만."
"하아...."

날 보고 한숨을 푹 내쉰다.
상처받습니다? 이래봬도 연약한 남자라구욧.

"...자요."

유나씨가 손을 내밀었다.

"...?"

무슨 의미인 지 몰라 물끄러미 쳐다보니,


"오,오늘은 손만 잡는다면서요...손...잡아야죠."
"아...네."


손만 잡는다 했지 손을 잡고 있겠다고 한 적은 없는뎅.
유나씨가 이 자그마한 차이를 놓칠 리 없으니 이건....

잡아달라는 거지 뭐. 흐흐.
오늘 여러모로 수확이구만.

"조금  할래요?"
"아니요."
"에이."

부비적 거리며 달라붙자,


"히익! 뭐에요! 떨어져요!"

그녀가 기겁하며 내 얼굴을 밀어낸다.
아아.
괜히 손만 잡는다고 했나.
그래도 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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