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19. 강화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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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별 걸 다 하는구나."
입술을 쭉 내민 채로 빙수를 숟가락으로휘저어대는 은소령.
그 참혹한(?) 광경에 소라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소령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난 설령 사랑하는 남친이라 해도 그렇게까진 못하겠던데. 대단하시네."
소라를재림예수로 착각하는 사이비들로부터 구출해낸 소령은 갑자기 흥미가 돋아 그녀를 이끌고 카페에 왔다.
"그래. 그게 좋은거야. 과정이야 어쨌든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을 수 있는거. 그거 엄청난 거라고?"
"...저도 알아요. 충분히 나이 먹었다고요."
소라의 말에 소령이 아하하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서른 이전엔 다 애송이야. 이녀석아."
"...아 네. 서른한살님."
나이차도 얼마 안 나는데 생색내는 꼴이란.
소라는 속으로 욕하며 투덜댔다.
애초에 그녀도 전남친을 떠나보내고 오는 중이다. 그것도 오늘. 그런 상황에 이런 말을 들어봤자 짜증만 날 뿐, 감동 따위가 있을 리 만무.
"그녀석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그런 거 까지 해줄 만큼 가치가 있나?"
"...몰라요. 이상한 스킬 때문에 이렇게 된거 같은데...그래도 어쩔 수 없죠. 이미 빠져버렸으니까."
"아하. 스킬."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걔한테 제대로 된 매력이 있을 리가 없지. 매력 스탯 만단위라며? 그러니까 그나마 적이 별로 없는 거야. 그나마도 곧 왕창 생기겠지만. 그거 아니었으면 택도 없을걸."
"동감이에요."
"일단 시녀 같은 걸 모집한다는 거에서 -100만점은 들어가지."
우움.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며 빙수를 퍼먹는 소령.
안 그래도 마구 휘저어놔서 반쯤 물이 된 상태였는데 퍼먹기도 엄청 퍼먹고 있으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개인당 하나씩 주문해서 다행이랄까...만약 둘이서 하나를 시켰는데 저런 행동을 보였다면 마땅한 응징을 내렸을 것이다.
"근데 왜 카페에 오자고 한 거예요?"
"응?"
"뭔가 용건이 있으니까 부른 거 아니에요? 딱히 접점 없잖아요 우리."
"글쎄. 왜일까. 접점 같은 건 만드려면 얼만든지 만들 수 있는데 말야."
그녀가 손으로 소라와 자신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살인자와 경찰이잖아 일단."
"...."
"그래도 그놈 패밀리 중에서는 꽤 유한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봤어.그렇게 공개적으로 쳐죽일 줄이야."
"...그 인간이 하는 말 못들었어요? 사람 짜증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성희롱에 모독에 아주 난리도 아니던데요."
"흐응...그래서 살인?"
"평상시라면 몇 대 때리고 넘어갔겠지만 그땐 처음으로 우리 세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거잖아요. 강한 면을 보여 줘야죠. 도전자 측에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거에 충분히 동의한 사항이고."
"...."
소령이 잠시 빙수 퍼먹기를 멈추고 소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가 피식 웃더니,
"뭘 그렇게 진지하게 답하고 있어. 장난인데."
"...."
순간 빠직하고 박히는 분노마크.
유은의 여자라서 참았다.
'이 인간이 지금 뭐하자는 거야....'
시간낭비가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다.
"설사 그거 가지고 누가 뭐라 한다 해도 걱정 없잖아 니들은. 이 대한민국에서 누가 너흴 건드리겠니. 경찰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군대도...제일 미친년이 애인처럼 굴고 있으니 가망 없고. 검찰쪽에서 좀 벼르고 있긴 하지만 별 일 있겠어? 집행이 불가능한데."
"그래서 용건이 뭐에요?"
"궁금해서. 앞으로 그놈의 행보말야."
"침대에서 직접 듣지 그래요?"
"그래도 돼?"
"뭐가요?"
"너 걔 좋아한다며. 다른 여자랑 침대에 있는 꼴 볼 수 있겠어?"
짓궂게 웃는 얼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저러는 걸까.
"...이제 와서 무슨...."
"그건 그래. 하지만 내가 싫은데."
"흥. 그쪽이 싫은 게 의미 있겠어요?"
"없지. 그러니까 짜증나는 거 아냐."
"훗."
소라는 이 자리에 와서 처음으로 웃었다.
이 껄끄러운 여자가 원치도 않게 유은에게 안기며 인상을 찌푸릴 걸 생각하니 뭔가통쾌했다.
물론 유은이 다른 여자를 안는다는 것 때문에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래서, 언니는 어떤데요?"
"뭐가?"
"아까 말했잖아요.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을 수 있는 거, 되게 좋은 거라고."
"아."
"헤어졌나봐요?"
"당연하지. 이런 꼴이 됐는데 뻔뻔하게 여친노릇 할 순 없잖아."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푹 내쉰다.
"아~ 지금쯤 그녀석 뭐하고 있으려나."
"언니 찾고 있을 지도."
"찾긴 뭘 찾아...그랬으면 진작에 서로 왔겠지. 내가 어디서 근무하는지 다 알고 있는데. 걔도 단념했을걸?"
"그건 모르죠. 남자들 독점욕이 얼마나 강한데."
"출세욕 때문에 유은 같은 쓰레기한테 붙은 년이 뭐가 좋다고 그러겠어."
"그렇게 말했어요?"
"그럼 유은한테 강간당했어요 라고 말할까? 그러다 큰일나."
"하긴...괜히 은이한테 덤벼들기라도 하면 더 험한 꼴 당하겠죠."
"그새끼 씹변태잖아. ntl인지 ntr인지 한다면서 분명 이상한 짓 할 거야."
"정답..."
"그러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거지."
과연. 선견지명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탁월한 선택이다. 슬프지만.
소라는 가라앉은 그녀의 분위기를 살피며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다, 어렵게 입을 뗐다.
"좋게 생각해요. 출세욕 하나는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 걔가 인성이 글러먹어서그렇지, 능력 하나는 넘사벽이니까 경찰청장 같은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걸요?"
"...뭐 그렇지."
살짝 늦게 나온 대답.
그래서인지 더 쓸쓸함이 묻어 나왔다.
"뭐가 좋을까. 경찰청장은 너무 쉽다며? 대통령 어때? 그 정도도 할 수 있나?"
"그거 해서 뭐하게요. 어차피 그때쯤 되면 은이가 혼자 다 해먹을 텐데."
"그런가."
"애초에 목표가 뭐였어요?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신건가."
"으음...."
소령이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출세욕 때문에 유은에게 붙은 게 아니기 때문에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경찰청장 정도겠지만, 뭔가 이 자리에선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너 말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알아?"
뜬금없이, 그 말을 던졌다.
"그야...던전 시대잖아요. 조만간 기년법도 바꾼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래 던전...근데 그 이전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이 안전한 시대였어."
"?"
"모든 국민은 법에 의해 보호받고, 권리를 지녔으며, 수만 명의 경찰전력과 수십만의 군병력의 비호를 받아 적어도지나가다 칼침 받거나 전란에 휩싸여 뒤질 확률은 극단적으로 낮았다는 말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떠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법과 법관들의 대다수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그 사명감으로 공직에 머물렀고, 우리 경찰도 역시 밤낮 없이 일하고 휴가 반납해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칼 맞아서 붕대 둘둘 말기도 하고 가끔은...거기서 죽기도 했어."
"...?"
뜬금없는 화제에 당황할 즈음, 한 층 무거운 목소리가 소령에게서 튀어 나왔다.
"그렇게 이뤄낸 치안이야. 그렇게 이뤄낸 안정이고. 근데 그 던전이라는 놈이, 그걸 아주 개판으로 만들고 있어."
"아...설마."
"처음엔 몬스터들이 그 지랄을 떨다가 걔들이 던전에 쳐박히니까 이젠 모험가라는 것들이 나와서 설쳐대네? 어지간한 경찰무기로는 상대도 안 되고, 심지어권총탄 같은 건 튕겨내는 놈들도 있어.
지금이야 던전이 생긴지도 얼마 안 됐고, 모험가란 것들도 국가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머리에 박혀 있으니까 별 일이 없지만, 그건 모래성이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그럼 언니는 출세 때문이 아니라...."
"경찰이 힘이 없으면 이 나라의 치안이 무너지고, 치안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해. 나라가 망하면 말 그대로 생태계에서나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고 말아. 경찰로서, 난 그 꼴 못 봐.이게 어떻게 만들어낸 유산인데,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서 쌓아 올린 안정인데, 그거 무너지는 꼴 난 못 봐."
"죄송해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출세욕 때문이라 했으니...."
"뭘.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리고 그것도 아예 없는 건 아냐. 이왕 경찰이 된 거, 높은 자리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그래도 어쨌든 대의를 위해서 자길 희생했다는 거잖아요."
"희생? 뭐...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찰이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건 당연한 거야. 뭘 새삼스럽게 그래."
"그래도 그런 쪽으로 희생하는 건 좀...."
무려 유은의 여자가 됐다.
여자도 그냥 여자가 아니다.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만 여겨지는 성노예다. 물론 데려다가쩔도 해주고 하는 걸 보면 단순한 시녀나 성노들 보다는 애정을 주는 모양이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됐고, 용건이 뭐냐고 물었지?"
"...네."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너...."
그녀가 스윽 하고 몸을 내밀었다.
"교주(敎主) 해볼 생각 없냐? 모험가들 상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