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180)화 (179/517)



〈 180화 〉18. 콜로세움.

유은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라라를 데려온 것 때문에 부인들의 심기가 안 좋은 모양.


아니, 그냥 최근 그녀들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호감도 100인데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뭔가 색다른 기분.

그래도 딱히 거슬린다거나 하진 않았다. 좀 귀찮긴 해도 뭔가 제대로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으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리에 앉자, 회장이라는 인간이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중년의 남자 따위에게 원자의 원자핵 만큼도 관심 없는 유은으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대통령 보다도 힘이 강한 인간인데 체면 정도는 세워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수틀리면 얄짤 없다.

"제가 듣기로 유은씨는 모험가가 된 지 몇 개월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그렇게 강한 세력을 일군 비결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저 궁금해서 말입니다. 이래봬도 던전협렵기구 협회장인데 정보를 판다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실례입니다."
"...."

꽤나 긴 장문으로 질문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심플한 단답.
회장의 인내심에 자그마한 금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질을 부리기에는 상대가 만만치 않다.
아니, 만만치 않은  아니라 공방 500만 이상의 인물이라 가정한다면 적으로 둬선 안 되는 존재다. 현존(밝혀진) 최고 방어력을 지닌 아녜스보다 5배는 강할 테니까. 그것도 공격력으로.


물론 현실은 5배 정도가 아니지만.


아무튼 그는 나름대로 화를 참아내며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막나가는 인물이 상대일 때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어디서 틀어질  모르니까.



그가 새로운 말을 하려던 그때, 이번에는 유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거기 누나분, 표정이 너무  좋은데 힐러라도 불러드릴까요? 아니면 포션? 암 같은 병도 치료할 수 있는데 단순 컨디션 이상 정도면 떡을 치고도 남죠."


다만 그에게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비서 헤라에게 말을 걸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유은은 남자 따위에게 전혀 관심 없으니까.


"괘,괜찮습니다."

헤라는 괜히 유은과 얽히고 싶지 않아 최대한 정중히 거절했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와 엮이는  사양이다. 정상적인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당연한 것.

"하하. 헤라양이 낯을 좀 가리는 편입니다. 이해하십시오."
회장이 또 끼어들었다.
유은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요 영감님."
"여,영감?"
"궁금한 게 있는데 답해주십니까?"
"...뭡니까?"
"지난번에 던전협력기구 이름으로고지서가 날아왔던데, 그게 뭡니까?"
"고지서?"

회장이 비서, 헤라를 바라봤다.
그녀가 조심스레 '회비 말하는 게 아닐까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은의 눈치를 보는 게 겁 먹은 토끼 같았다.

"아 회비...."


던전과 던전시티에서 얻는 모든 수익에는 '세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명목 하에 세금이 붙는다. 그 세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 가는 게 아니라 던전협력기구의 각 산하 지부로 들어가는데, 하렘궁의 경우 강남과 서울 여러 군데, 그리고 도쿄에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만큼, 지불해야 하는 회비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된 것이다.


일본 방송에 출현했을 때 선언하기도 했듯, 유은은 전혀 낼 마음이 없다. 미쳤다고 천억을 넘기는 돈을 내겠는가. 얻을  있는 혜택도 없는데.

그런 그의 선언을 회장도 들었기에, 상당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몬스터를 진압하지 못해 생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고 또 각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힘이 필요하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선진국의 던전시티에서 회비를 징수하는 것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 그래요? 그럼 그 구원활동을 제가 할 테니 회비는 없는 걸로 하죠."
"...네?"
"지난 3년간 별로  것도 없드만. 차라리 내가 그 돈을 들여서 망국의 몬스터들을 제압하고 던전으로 몰아 넣어서 사람도 구원하고, 나라 안정도 시키고, 센터도 짓고  그렇게 하겠다고요. 문제 없죠?"
"아니...."
말은 청산유수.

못할 것도 없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문제다. 안 그래도 유은의 세력은 일개 지부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그것도 한국 지부면 굉장히 큰 지부인데도 불구하고) 커지고 있는데 이젠 세계 각국에 파견까지 하고 정당성까지 확보한다면 D10의 입장에서는 큰 방해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 이미 그가 선언한 것만 해도 실시간으로 D10의 위신을 깎아먹고 있다.

"말 나온 김에 하면 되겠다."

유은이 손짓으로 VIP석 가장자리에  있는 시녀  명을 불렀다.

"예. 주인님."
"서현이 좀 불러와줘."
"네."

당연하지만 유은이 뭔가를 할 리 없으므로 그녀가 실질적으로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바쁘다.

하지만 유은의 부름은 무엇 보다도 우선하기에 그녀는 한 걸음에 달려왔다.

"시녀 200명 정도만 추려서 해외 파견 준비하자."
"해외 파견이요?"
"응. 아직 실시간 헬게이트인 동네 많잖아."
"그런 곳이 더 많죠."
"던전 있는 도시부터 거점 삼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안정화 시키자."
"세력확장을 원하시는 군요."
"무릇 황제라면 만국에 영향을 끼쳐야 하지 않겠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할 필욘 없고, 일단 행사부터 끝내자. 나중에 해도 돼. 일본 문제도 있으니까. 그냥 예산 정도만 편성해놔."
"네."


서현은 물러갔고, 그제서야 회장이 정신을 차렸다.


"아,아니 그렇게 막무가내로!"
"막무가내라니? 내 돈을 내가 알아서 쓰겠다는데 왜 영감님이 간섭이세요?"

회장은 속으로 오만 가지 욕을  내뱉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건방진 놈.  앞에서 대놓고 세력확장을꾀해?'


차라리 말이라도 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면 좋을 텐데, 그딴것도 없다. 마치 무시하듯 직선 스트레이트.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이제 고지서 보내지 마요. 괜히  영역에서 뭐 뜯어갈생각도 하지 마시고."
"...거래소가 중지되면 유은씨도 만만찮은 타격을 입을 텐데요?"

결국 그가 할  있는 말은 그 정도.
거래소라는 것도 D10의 중계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 것이기에 D10의 조력이 없다면 아이템을 구하는 것도, 파는 것도 힘들어진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


하지만 유은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까짓거 문이 닫힌다면 시장이 문을 만들게끔 하면 된다.


유은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 중에는 무기나 방어구 같은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도 있었고, 조금만 신경 쓴다면 현재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아이템 보다 훨씬 고효율의 제품을 찍어낼  있다.

그리고 그런 물건이 하렘궁의 영역에서만 팔리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하렘궁의 영역에 들어올 수밖에 없고 이는 또 다른 수익 창출의 시발점이 된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거래소 같은 건 끊어 버리는 게 이득이다.


"아, 회비  낼 거니까 자동으로 던전협력기구에서도 탈퇴한 거예요. 알겠죠? 이제 할  끝났으니 돌아가도 돼요. 토한 누나는  남으시고. 몸 안 좋아 보이는데 포션이라도 마시고 가야지."
"뭐 이런ㅡ."


회장이 발끈해서 뭔가 말하려던 때, 뒤에 유나들과 앉아 있던 소냐가 유은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 일을 하러 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은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는 이마에 키스해 주었다.
완벽하게 회장을 무시하는 행동.

회장은 분노를 넘어서 어이가없었다.

'이거 내가 화 내도 되는 거지?'


스스로 의문을 던져보며 비서를 쳐다보니,

도리도리.

그녀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 너머에 있는 한국 지부장을 바라보니, 스윽 양팔을 들어 교차해 보였다.

마지막 희망으로, 이젠 입술 박치기까지 하고 있는 유은커플 너머로 유럽 지부장 아녜스를 바라보니,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뭐야?  내도 되는 거 아냐? 이 정도면 화낼 만 하잖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헤라야 유은을 처음 봤을 때부터 두려움에 빠졌으니 그렇다 쳐도, 한국 지부장과 유럽 지부장의 반응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니, 백보 물러서서 한국 지부장까지 그렇다 쳐보자. 그것도 이해 안 되지만 그렇다 쳐보자.

아녜스의 저 반응은 대체 뭔가? 누구보다 강경하고 패도적인 인물이 그녀 아닌가?
어쨌든 그녀는 회장 밑에 있는 사람이고, 회장이 무시당했다는 건 그녀가 무시당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시당하고 절대 가만있을 여자가 아닌데 화내지 말라며 고개를 젓는다.

'...설마 그녀도 유은에게서 뭔가를느낀 건가? 아니면 요 한달 사이에 커넥션이 있던가...?'


안 그래도 최근 그녀의 행보는 이상한데, 거기에 이런 상황까지 겹치니 아무래도 의심하게된다. 그래봤자 그가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어쨌든 세 명이 안된다고 하고 있다...납득은  되지만 물러서야지.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다행히 그는 바보가 아니다.
이유가 뭐가 됐든 간에 5레벨 스카우터와 일국 지부장과 대륙 지부장이 한 마음으로 하지 말라고 한다면 하면 안 된다.

결국 그는 불편한 심기를 가다듬고 물러서기로 했다.

"후...일단 그건 알았으니 투기장 관람이라도 좀 합시다."
"그래요? 그럼 그러시던가."
마침 소냐를 떠나보낸 유은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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