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174)화 (173/517)



〈 174화 〉17.하렘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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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 말이...정말 사실인가?"


짙은 밤.
한켠에서는 광란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 한창이었지만, 이곳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가득했다.

던전협력기구의 본부장이자 회장이 믿을  없다는 눈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애써  사실을 털어 놓은 헤라는 두려움에 퍼렇게 죽은 얼굴이다.

"사실...이에요. 그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분명...억대였어요."
"...그건 말이 안 되네."


회장은 부정했다.

그래.
이건 정말 말이  된다.
고작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한데 공방이 억대라니? 이건  국가에 있는 모험가의 공방을 전부 합쳐야 나올까 말까한 단위다.

즉, 국가전력이라는 뜻이다.

그마저도 공방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단일로 억단위인 개체와, 수만 명이 모여 억대를 이루는 집단은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단일 개체로 억단위를 이룩한한명의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질 뿐.


그런 걸 간단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아무리 던전에 대해 밝혀진 게 적다 해도 정도가 있는 법. 홀로 억단위의 공방을 갖고 있다는 건 믿어선 안 될 일이다.


"자네...어디 피곤한 아닌가? 아까 구토도 하지않았었나."
"저는 멀쩡해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요! 그 자는 절대 건드려선  되는 인물입니다!!"


헤라는 반쯤 발악하며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가 신임받는 사람이라 해도, 이해의 정도를 넘어선 일을 덜컥 믿기란 힘든 것.

"흐음...이거 참. 안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믿을 수도 없고."
"믿으세요!"
"그럼 일단 내일 그와 만나보기로하지. 그때 같이 가주게나. 그때도 같은 말을한다면 믿어 주겠네."
"...."

헤라는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녀가 회장의 입장이었어도 믿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튼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 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데...다행히도 현재 아녜스 지부장이 입국해 있으니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아니...네...일단 알겠어요."

그분과는 비교도 할  없다고 말하려했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의미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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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은...?"
"한사랑 중령입니다."

공연이 한창인 가운데, 전투복을 풀로 챙겨입은 여인이 장교 여럿을 데리고 등장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한사랑 중령.
일각...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이코패스'로 얼굴을 인식시킨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군인이다.

"아하. 군모 쓰고 있어서 못 알아 봤어요."

여경들과 함깨 떡볶이를 먹고 있던 은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 아십니까?"
"모를  있다고 생각하세요?"
"...."
"저는 우연히 개새끼를 만나 좆 같은 인생이 되어버린 은소령이라고 해요. 경정이랍니다."

스윽 하고 손을 내민다.
한사랑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악수는 하지 않았다.

"개새끼라는 건 누굴 말하는 겁니까?"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누구겠어요?"
"...."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한사랑.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악수 안 하실 거예요? 싫음 말구...무슨 용건이에요? 뭔가 있으니까 오셨을 텐데."


손을 거두며 뚱하게 쳐다보는 그녀.
예상대로 싸가지 없는 년이라고 생각했다.


한사랑은 잠시 생각하듯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특수경찰과의 연계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연계라뇨?"
"몬스터가 던전을 탈출한다던지, 일부 모험가가 범죄행위를 저지른다던지 했을 경우 말입니다."
"그럴 땐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굳이 군대까지 나설 필요는 없어요."
"경찰은 그럴 능력 없지 않습니까?"
"...이젠 아니거든요. 제가 하는 거 못 보셨어요?"
"?"

그제야 은소령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는 한사랑.
그러고보니 뭔가 익숙한 얼굴이다.

한남동 대학살 직후 또 한번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놨던 공개처형의 장본인이다.

"아 당신은ㅡ."


"우리 경찰이 군대에 비해 힘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모험가에 한해서는 우리가 한  앞서고 있어요. 그러니걱정 마시길. 그보다 그렇게 풀무장한 군대가 그것도 천단위로 돌아다니면 시민들이 위협을 느껴요. 적당히 해주실래요?"

"그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경찰인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요. 애초에 강남은 그인간이 꽉 쥐고있는데 군대가 무슨 필요람. 주제도 모르고 나대다간 끔살당할 텐데. 아, 이거 당신 얘기 아니에요. 모험가 얘기에요."

"...그런 논리라면 경찰도 필요 없을 텐데?"


은소령의 말에 발끈했는지, 한사랑의 말투가 변했다. 전형적인 군인말투는 이제 없다.


"경찰은 필요하죠. 범죄가 강력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원활한 수사를 위해 경찰은  필요하답니다. 군대와는 달리. 아셨으면 그놈의 무장 좀 풀어요. 딴사람도 아니고 사랑씨가 그렇게 풀무장으로 돌아다니면 사람들 벌벌 떤다고요. 본인이  일을 생각해 보세요."
"...."

열받는 소리지만 딱히 반론을 찾지 못한 한사랑.
확실히 미치지 않고서야 유은이  잡고 있는 강남에서 난동부릴 모험가는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경찰 특무대의 전력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다만, 유은 자체가 깽판을 부리거나 정부에 반기를 들 경우, 당연히 경찰전력으로는 택도 없으며 현재 군부대가 강남에 주둔해 있고, 이후 사단 편제까지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이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물론 유은이 반기를 들게 된다면 군대도 의미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참,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은소령이 다가가 속삭였다.

"그 인간이랑 잤다는 소문이 있던데...그거 사실이에요?"
"!"

한사랑이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표정 보니 맞네. 그럼 사석에서는 말  통할 수도 있겠다."
"...그게무슨?"
"그놈 여자란 여자는 다 건드리고 다니잖아요."
"...."


한사랑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금 이 얘기가 나온다는 것은 즉,


"뭐 반쯤 강제지만. 그놈이 하는 게 그렇죠 뭐."
"...."
"근데 그쪽은 딱히 접점이 없을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에요?"
"...그런 일 없습니다."
"에이. 표정보면 있었던  같은데? 혹시 트라우마생겼어요? 그런 거라면 미안한데."
"이만 가보죠."

싸늘하게 등을 돌리고는 걸어가는 한사랑.
은소령은 그 뒷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욕을 한바탕 퍼부었다.

"씨발년. 존나 싸가지없네. 중령이라 이거야?"
"여군이 다 그렇죠 뭐."
"근데 부장님이 싸가지 없다는 말을 하시다니...흠흠...."
"뭐야?"
"아닙니다. 아무것도."
"밥이나 처먹어."

여경들에게꿀밤을 먹이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장난스레 울상을 짓는 여경들.
하지만 곧 눈 앞의 음식들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
.


"아오! 그년 진짜 싸가지 없지 말입니다. 경정주제에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거 보셨습니까?"
"아무리 타기관이라지만 한참이나 아래인데 말입니다."

왁자지껄한 길거리를 걸어가는 한사랑과 몇몇 간부들.
아부하는 건지, 아니면 기분을 풀어주려는 건지 간부들은 계속해서 은소령의 욕을 해댔다.


"와 씹...저거 한사랑 아냐?"
"맞는 거 같은데?"
"풀무장이다...또 뭘 하려고...?"
"하렘이랑전쟁하려는 거 아냐?"
"그러고보니 주변에 군인들도 엄청 많이 보이는데."
"제발 지랄 자제좀...."


한사랑이 걸어가는 곳마다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며 인파가 갈라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고, 더러는 들릴 듯 말듯 욕까지 내뱉었다.



"근데...저희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하렘궁으로 간다."
"예??"
"공연중이라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만큼, 사건사고가 생길 가능성도 크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그런 사건사고라면 경찰이 처리하는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 나왔지만 필사적으로 삼켰다.
눈 앞의 여인은 왕국의 왕 연대장이니까.
"애인 만나러 가십니까?"


하지만 다른 장교의 입에서 끔찍한 말이 튀어 나왔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입각한 절대 해서는 되는  TOP3에 당당히 올라갈 있는 말을.

"...."
"...."
"...."
"...."
"아니다."

꽤 긴 침묵 끝에 대답하는 한사랑.
그리고 첨언까지 한다.


"애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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