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16.사랑스런 사랑씨.
.
.
.
한사랑의 말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당연하지만 간부들 중에는 이미 퇴근한 사람들도 있고, 휴가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퇴근한 자들은 다시 출근하게 하고, 휴가간 이들에게는 복귀령이 떨어졌다.
간부가 그 모양인데 병사들이 멀쩡하겠는가. 사랑씨의 특명에 의해 일부 필요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때아닌 완전군장을 매고 각 대대 연무장에 집결했다. 그 병력이 대략 2300여명.
그녀의 명이 떨어진 지 1시간 정도 지나자, 퇴근했던 간부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모두 들은 탓이다.
"어떤 병신 새끼가 그딴 짓을 했대?"
"...상병 하나랑 이등병 한 명인데...하필 연대장님께 들키는 바람에...."
"그러게 잘 단속하라고 했잖아!"
한 중대장이 땀을 삐질 흘리며 소대장을 갈궜다.
나이는 얼핏 40대.
한사랑 중령보다 아득히 많은 나이이고 짬도 많았지만 감히 대들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포스타의 딸이라는 시점에서 모든 짬은 무시되니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마침내 휴가간 간부들을 제외한 전원이 모였다.
한사랑은 어느새 갈아입은 전투복을 입고 단상에 섰다.
굳은 얼굴이 그녀의 기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동 침묵.
"오늘, 우리 부대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마이크나 확성기를 쓰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발성은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초병 두 명이 근무중 배달음식을 시킨 것도 모자라, 민간인인 배달원에게 암구호를 알려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듣긴 들었지만연대장의 입으로 들으니 사태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간부들이 웅성거렸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문제를 문책하기 위해 당직사령과 당직사관을 불렀으나, 둘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당직사령은 부하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자기 멋대로 퇴근해 있고, 당직사관이라는 자는 병사들을 시켜 망을 보게 한 뒤 휴게실에서 자고 있었다."
사실 후방부대에서는 반쯤 일과와 같은 것이다. 퇴근은 좀 심했지만 어디 숨어서 자거나 하는 건 예사로운 일.
그러나 여긴 위치 자체도 전방이고, 던전부대특성상 최전방부대다. 단 하나의 작은 실수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본관이 자리를 비운 지 고작해야 3일이다. 3일만에 이렇게도 나태해질 수 있다니 이게 군대가 맞는가? 간부들 부터가! 해이해져 있으니 병들도 그리 되는 것이다! 여기가 도심이라 방심했나? 사람들이 오가고 차들이 오가며 도시의 불빛이 훤히 보이니 군대가 군대같지 않던가?"
"아닙니다!!"
초급장교도 아니고, 어지간해선 할 일도 없는 복명복창을 하게 된 간부들.
젊은 여인에게 혼나는 게 기분 좋을 리 없건만 모두 묵묵히 들었다.
"언제 몬스터가 창궐할지 모르고, 언제 모험가라는 자들이 위세를 떨칠 지 모른다. 우린! 그런 미증유의 존재로부터 이 도시를 지켜야 하는 최전방 부대란 말이다!"
한사랑의 설교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10여분이 흐른 뒤 대망의 마지막 문장.
"나태해진 정신은 훈련으로 붙잡는다."
"씨발...."
사방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
아쉽게도 병문안은 나 혼자 왔다.
사실 사랑씨의호통치는 모습 같은 것도 보고 싶었지만, 잔뜩 뿔이 난사랑씨는 군기밀이라면서 나를 밀어냈고, 결국 이렇게 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군병원이라도 올 수 있다는 게. 사랑씨와 꽁냥대는 건 나중에도 할 수 있잖아.
"그리고 제대로 놀려줄 수도 있고 말이지."
사실 사랑씨와 함께 오면 염장은 지를 수있을지 몰라도, 제대로 된 나쁜짓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뭐 내가 어마어마한 걸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있으면 힘들거든.
"여-."
아무튼 병실.
사랑씨의 입김으로 지인버프를 받아 병문안을 올 수 있었다.
"...!"
그의 몰골은 그야말로 참혹.
불쌍하게 느껴질정도다.
하얀 침대에 걸터 앉아 있는데,사지가 없다. 아아. 이 불쌍한 처지여.
"몸은 좀 어때?"
"너...!"
적의를 불태운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나름 병문안이라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최고급 한우세트다. 나중에 구워먹어. 아. 그리고 혹시 적적할거 같아서성인잡지도 사왔지롱. 어때. 최고지? 특별히 사랑씨와 닮은 모델이 나오는 걸로 추려봤다고.
"이새끼...!"
나를 노려보는 눈이 충혈되어 빨갛게 변했다.
어우. 그렇게 보니까 좀비같다.
"너 사랑씨 좋아하니까 생각하면서 하면...아! 너 이제 딸도 못 치는 구나. 어쩜...."
"개새끼가!!!"
벌떡 하며 몸을 일으킨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애석하게도 지탱할 수단이 없는 관계로 그는 다시 넘어졌고, 분한 듯이 몇 번이나 그걸 반복했다.
"애 쓰지 마."
"닥쳐!!!"
"애 쓰지 말래도. 인생의 교훈 삼고 그냥 살아. 사랑씨는 포기하고."
"으아아아아!!!"
마구 발악해 보지만, 내겐 닿지 않는다. 그저 허공을 휘두를 뿐.
그게 너무도 분한지, 어느덧 그는 울고 있었다.
"속담도 모르냐?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지는 거야. 주제를 알아야지."
"이이익!!"
안쓰러울 정도로 애쓰는 임대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게 던전은 왜 들어가서. 쯧쯧쯧. 훈련하다 다쳤으면 내가 이렇게 무시하진 않는다. 바보 같이 뭐 하는 짓이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좀비라도 된양, 소리지르며 달려든다.
하지만 역시 내게 닿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이쿠. 그러면 안 되지. 오래오래살면서 세상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사랑씨가 내 첩이 되는 것도 보고 그럴 거 아냐."
"처...첩...이라고?"
"응. 첩. 나한텐 여자가 많으니까. 어디보자...일단 소냐씨랑 소라누나랑유나씨를 부인으로 삼는다 치면...오. 그 뒤는 사랑씨네. 잘 하면 첩이 아니라 부인으로 삼을지도."
"...."
임대위는 허탈하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봤다.
그 표정에는 분노조차 초월한 무언가가 있었다.
"겨우...겨우 첩...이라고...? 그 사람을 얻은 놈이...그런 놈이 한다는소리가...첩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이 몸에겐 여자가 많단 말야. 순수하게 순서로만 따져도 사랑씨는 첩이야. 뭐부인으로 삼는 것도 정 못할 건 아니지만."
"이...."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되살아났다.
허탈함을 느꼈던 만큼, 증오가 가중되어 눈가에 씌워졌다.
"이 천하의...!"
"천하의 뭐? 무협지세요? 무슨 천하가 나와. 촌스럽게."
임학봉이 괴성을 질러댔다.
이젠 힘도 없는지 달려들지도 못한다. 그저 나를 노려볼 뿐.
"자. 할 말도 끝났으니 난 이제 갈게. 아마 앞으로 만날 일은 없겠지? 물론 넌 TV라던가 인터넷으로 날 보겠지만. 잘 보고 있어. 그럼 언젠가는 사랑씨의 모습도 보게 될 테니까. 내 옆에 있는."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을 나섰다.
뒤에서 괴성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아.
맞아. 마지막 한 마디도 잊으면 안 되지.
다시 방 안으로 고개를 집어 넣고,
"참. 궁금하지? 사랑씨 어땠는지. 평생 알 수 없을 테니 마지막 자비로 알려줄게."
나는 최대한 비열하게 웃어 주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웃음이 나왔다. 참을 수가 없거든. NTL의 쾌감이라는 건...
"사랑씨 엄청 맛있다? 군인이라 그런지 몸매도 아주 잘 빠졌고, 가슴도 보이는 것보다 크다고. 무엇보다 그쪽 조임이..크~. 넣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야. 얼마나 잘 조여주는데."
"으아어아으아어아으앙어아아아아!!!"
내 말을 들은 임대위가 눈물을 휘날리며 바닥을 기어왔다.
"자, 그럼 진짜 안녕~!"
그리고 나는 문을 닫았다.
.
.
"오. 사랑씨, 끝났어요?"
"...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사랑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들어오셨어도 됐을 텐데."
"...괜찮습니다. 이제와서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서요."
"아하."
동정심이 다 떨어졌구나.
애초에 상당히 모욕적으로 관계가 틀어졌으니까.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 사람."
자연스레 함께 걸으며 물었다.
그녀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도 한때 나라를 위해 봉사했던 군인입니다. 최소한의 명예는 지켜줘야겠지요. 세간에는 국군의 숭고한 작전수행을 위해 일하다 부상...정도로 나갈 겁니다."
"작전수행이요?"
"네. 어차피 언젠가는 군대가 던전도 탐험하고 해야 하고, 그런 계획도 있으니, 적절한 사유가 될겁니다."
"그렇군요."
뭐, 어찌됐든 몰락이다.
거 참 안됐네. 그러게 왜던전에 들어갔니.
"사랑씨."
"네."
"군복 잘 어울리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흥분했어요."
"...네?"
나는 지금도 울고 있을 임학봉을 생각하며 사랑씨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마침 사방에는 으슥한 곳이 여러군데 있다.
그 중 한곳으로 그녀를 끌고갔다.
"잠...이 차림으로는!"
"그럼 빨아주세요."
신성한(?) 군복차림이라 그런지 그녀는섹스를 거부했지만, 펠라를 요구하자 거기에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조심스레 내 바지를 벗기고, 우람한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 문득 생각났는지 내게 물어왔다.
"우리...사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