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15.꼴릿꼴릿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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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괜찮으시겠어요?"
비서로 보이는 여인이 유리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에는 창문을 통해 야경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무엇이 말인가."
"유럽에서 (나)급 인사가 왔잖아요. 아무리 비밀리의 입국이라곤 해도 인사조차 안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닐지...."
"아. 그거 말인가."
얼마 전, 독일에서 한 가족이 방한했다.
가족이라고 하면 별 거 없을 것 같지만, 그 가족이 무려 전용기를 타고 왔으며, 그 안에는 유D10 유럽 지부장이 있었다.
유럽 지부는 아시아 지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 지부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시아와 다르게 유럽은 대륙 지부를 중심으로 뭉쳐 있으며, 각자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피라미드형 구조로 되어 있어 유사시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이번에 방한한 아녜스 이사벨라. 본래 독일에서 정치인으로 있다가 모험가가 되고, 독일 지부장을 거쳐(그래봤자 6개월 이지만) 1대 유럽 지부장이 된 인물이다.
국가 지부가 대륙 지부를 중심으로 잘 뭉치기 때문에 그 힘과 영향력은 매우 막강하며, D10 본부 다음 가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그런 곳의 기관장이 방한한 것이다. 한국지부장으로서 응당 마중 나가고 인사라도 해야 하지만ㅡ,
"그럴 필요 없네. 괜찮아."
회장은일축했다.
비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후...."
회장이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표지에는 끔찍한 사진이 넣어져 있지만 요새는 대부분 담배 케이스를 사용하기에 의미가 없다.
스윽.
"금연구역입니다. 회장님."
"스트레스 받고 탈모 되는 것 보단 낫지. 벌금 낼게."
그러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ㅡ,
"담배도 탈모의 원인중 하나입니다."
"...씁."
다가 그만두고 주머니 안에 넣어 둔다.
"이 나라엔 그가 있잖은가."
"...유은말인가요?"
"그래. 애초에 유럽에서 그 여자가 온 것도 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겠지. 꽤 무시당했거든. 본부장에게."
"그 분이 무시를 당했다고요?"
"대놓고 한 건 아니지만, 자존심 상할 만 하지. 그러니까...문제 없다는 거야. 그 여자 성격에 그냥 넘어갈 리도 없고...어떤 모양으로든 그자와 부딪힐 거다. 다시 말해...우리가 케어할 필요도 없다는 게지."
"...구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적으로."
비서는 그녀의 모습을 알고 있다.
어떻게든 한 번 건드려 보려는 남자가 무수히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걸 아는 사람으로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은은 색마니까.
"무슨 수로? 자네가 한 번 가볼래?"
"아니요. 그냥 두죠."
하지만 그것도 본인에게 손해가 없을 때의 이야기. 유은은 논외의 존재다.
"앞으로 세계는 그 남자의 의도대로 흘러갈 거고, 그 전에 이 나라가 먼저 그리 되겠지. 괜히 부딪힐 필요 없어."
"그럼...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제일 힘든 법이지."
"...저 직장 옮겨도 될까요?"
"왜? 그놈 시녀라도 되게?"
"미쳤어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비서도 한숨을 쉬었다.
한국 지부 초창기, 그러니까 거의 4년 전 부터 몸담아 왔던 곳이라 꽤 정을 두고 있었는데, 회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뭔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일본 지부는 무너지지 않았는가.
"치킨 드실래요?"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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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얼른 선택해."
"...."
아녜스는 머리를 굴렸다.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있는가?
있다면 실행 가능한가?
없다면차선책은 무엇인가?
무수한 질답이 이루어졌다.
'싸워야 하나? 아냐...이놈 공격력이 심상치 않아. 자칫하면...모든 걸 잃을 수 있어.'
겁을 먹은 게 아니다.
최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방금 한 대 맞아본 바에 의하면 유은의 공격력은 그녀의 방어력을 뚫고도 남는다.
아마 계속 맞다 보면 그녀도 리타이어 하게 되겠지. 그렇게 될 경우 그녀는 물론이고 딸과 남편까지 모조리 그의 손에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 '선택'한다면, 적어도 한 명은 구할 수 있다.
만약 유은이 그녀의 가족을 모조리 나락으로 처박으려 했다면 차라리 주저없이 싸우는 걸 택했을 텐데.
그는 현명하게도 한 명은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러면 싸우지도 못해....'
한 명이라는 희망.
사랑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도 구해줄 수 있다.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추가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결국,
'타협...해야해.'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걸 택했다.
이제 문제는 '과연 누굴살려야 하는가.'.
사실 이게 가장 무서운 문제다.
지금껏 그녀가 무수히 많은 질답을 해왔던 건, 이 문제에서 도망치기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딸이냐 남편이냐!
둘 다 사랑한다.
둘 다 바꿀 수 없다.
만약 가능하다면 목숨과 바꿔서라도 두 사람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눈 앞의 인간은 그걸 용납지 않는다. 그녀 본인은 이미 그의손에 있는 취급이니.
딸은 유은에게 있어서 유용하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 현실이 그렇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원하는 만큼의 성적 쾌락을 안겨줄 수 있다.
그렇기에 목숨만은 안전하다.
하지만 남편은?
남편은 그에게 아무 의미 없다. 굳이 있다면 남의 여자를 빼앗았다는 뒤틀린 만족감 정도? 하지만 그건 아녜스를 품는 시점에서 이미 의미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유은은 그가 필요 없다 말했고, 아녜스가 딸을 선택한다면 남편은 태워 죽인다 했다.
즉, 그를 선택하지 않으면 확정적으로 죽는다.
'그이를 선택하면 앙리에타가 고통을 받긴 하겠지만...죽진 않아. 하지만...앙리에타를 선택하면 남편은 죽어. 살아만 있다면...구할 기회는 있다.'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가까스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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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을 보니 결정 난 거 같은데. 누굴 택할 거야?"
"...."
아녜스가 입술을 달싹인다.
말하기 힘든 건가?
뭐, 그렇겠지. 딸이나 남편 중 한 명을 포기해야 하는데.
-엄마...!
앙리에타가 절절하게 애원한다.
근데 자길 선택하면 아빠가 죽는다는데 그래도 줄기차게 구해달라고 하는 걸 보면 얘 인성도 좀 쓰레긴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자. 얼른. 나 인내심 별로 없다고."
"아,알았...어."
나의 재촉에 아녜스가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을 보내줘."
결정을 내렸다.
내가 원하던 쪽으로.
-엄...마...?
"당신!! 어째서!!!
앙리에타와 남편 모두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지었다.
그 목소리들을 애써 외면하며, 그녀가 말을 잇는다.
"대신, 말장난 하지 말고 사지 멀쩡하게 살려 보내."
서슬퍼런 기색이다.
여기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는 모양.
뭐, 나도 굳이 살려주겠다고 해놓고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까짓거 들어주마.
"서현."
"네."
나의 부름에, 남편놈을 잡고 있던 서현이 그를 기절시키고는 다른 시녀에게 건내 주었다.
"걱정 마. 기절시켜서 독일로 가는 배에 던져줄 테니까."
"...."
아녜스가 고개를떨궜다.
그리고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아. 자세히 보니 눈물도 흘리고 있는데.
"주인님."
어느새 다가온 서현이 쇼핑백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시녀복입니다."
"오. 그래그래. 이걸 입혀야지."
나만의 소유녀라는 걸 증명하는 시녀복!
이미 알겠지만 이옷을 입으면 내 시녀가 된다.
시녀가 되면 그때부턴 다른 남자와는 일절 정을 통할 수 없지. 크크크.
툭.
나는 주저앉아 있는 아녜스에게 쇼핑백을 던졌다.
"자. 갈아입어. 지금당장."
"...."
아녜스는 벌게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떨리는 손으로 옷을 꺼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섹시미를 강조했을 뿐인 평범한 정장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굴복과 수치. 적어도 아녜스에겐 그럴 거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진 갑옷을 완전히 해체하기 시작했다.
시선은 은주가 들고 있는 태블릿의 반대편으로 고정돼 있다. 화면에서 앙리에타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거든. 엄마로서 차마 볼 수 없겠지.
달칵.
갑옷의 해체가 완료되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 안에는 몸매가 훤히 보이는 전신 타이즈. 안 그래도 불편한 갑옷이기에 최대한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입은 모양이다.
"오. 그것도 벗어라. 아. 그냥 속옷이고 뭐고 입지 말고 알몸 위에그 옷만 입어."
"...."
아녜스는 눈을 질끈 감고 전신 타이즈의 지퍼를쭈욱 내렸다.
등 뒤에 달려 있어 꽤나 어려울 것 같지만, 유연함을 발휘해 쉽게 내렸다.
스윽.
상체 부위가 반으로 갈라지며 뽀얀 어깨가 드러나고, 그 다음으로 풍만한 가슴이 모습을 보였다.
정말 크고 아름다워.
아녜스가 나신이 되는 데에는 그닥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고, 알몸으로 있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수치심을 느낀 그녀가 최대한 빨리 시녀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다...입었다."
착용자에 따라 알아서 사이즈가 변하는 만큼, 마치 맞춤제작을 한 것처럼 그녀에게 착 맞았다.
"크. 최곤데? 뒤로 돌아서 스커트 올리고 있어."
"뭘...하려고...?"
"뭐긴 개통식이지. 스마트폰 사면 상자에 붙어 있는 스티커 있잖아? 그걸 칼로 자르는 느낌이지."
"...."
흐흐. 저 분노의 표정.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뒤로 돈다.
이젠 내 시녀가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딸이 아직인질이다.
스윽.
아녜스의 하얀 손이 정장 치마 끝을 잡고 끌어 올린다.
허벅지 위로 올라갈 수록, 드러나는 스타킹이 더 짙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굴곡진 두 언덕을 넘어 가랑이가 보이는 지점이 되었다.
"좋아. 스탑. 그대로 있어."
"큭...."
아. 기대된다.
이 길쭉한 다리를 타고 내 정액이 흐르는 광경은 과연 어떨까. 죽일 거 같은데.
"그럼 시식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