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15.꼴릿꼴릿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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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새끼."
"인간말종."
"핵폐기물."
"음식물 쓰레기!"
"자지 박다 귀두 잘릴 새끼."
"자...힉...?"
놀라며 주춤한 여인.
맞은편에 있던 여자가 씨익 하고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이런 말 못해? 한 번 해봐. 자지."
"무,무슨 망측한 말을 하는 거에요!"
탁!
하고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그러나 새빨개진 얼굴의 그녀의 주먹에는 별 힘이 실려있지 않다.
"왜애? 우리 유나도 25이나 됐잖아. 이런 말 쯤은 할 수 있어야지."
"사,상관 없거든요. 그런 거."
유나는 빨개진 얼굴로 맥주잔을 들이켰다.
소라는 그런 그녀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안주로 시킨 오돌뼈를 집어 먹었다.
"귀엽네 유나는."
"으...놀리지 마요."
"놀리는 거 아냐. 정말 귀엽고 예뻐.부러울 정도로."
화악 하고 달아오른 유나는 벌컥벌컥 마시더니 말을 마구 더듬었다.
"가,갑자기 뭐에요...그러는 언니도...언니도...."
"내가 뭐? 난 평범한 사람인데?"
옛날엔 그랬을 지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다. 그녀 역시 절세의 미녀.
그녀가 걸어간다면 누구나 돌아볼 것이다.
적당히 그런 식으로 말해주면 될 텐데,당황한 유나는 전혀 다른말을 해버렸다.
"가슴이 크잖아요!"
"...."
"힛!"
본인이 말해놓고도 놀라 횡설수설.
평소의 차분한 그녀와는 달랐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 걸까?
"훗. 가슴이 여자의 자존심이긴 하지. 그런 의미에서...."
스윽 하고 상체를 들더니, 두 팔로 팔짱을 끼며 자신의 가슴을 들어 올렸다.
"내가 좀 특별해."
같은 여자가 봐도 압도적인 크기.
일일이 재보진않았지만, 유은의 여자들 중에서는 제일 크지 않을까.
그렇다고 유은의 여인들이 작은 게 아니다.
당장 앞에 있는 유나만 해도 충분히 큰 편이다.
"하아."
자신감을 내뿜던 소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너는 예쁘고 귀엽고, 나는 가슴이 큰데 그럼 뭐하니. 걔는 보란듯이 아방궁 차리겠다는데."
"쓰레기잖아요."
유나도 붉게 달아올랐던 표정을 벗어던지고 그야말로 사신처럼 얼굴을 굳혔다.
애초에 두 여인이 술을 홀짝이며 욕배틀(?)을 한 것도 다 유은 때문이다.
"씨...남의 여자 뺏어왔으면 잘해주기라도 하던가. 방치플레이 하고 있어."
원망을 불태우며 맥주잔을 비운다.
"진짜 구제불능이에요. 그게 그렇게 좋을까."
"섹스가 좋긴 하지."
"...어,언니는..."
"왜?"
"많이...해봤어요?"
"그야뭐...."
"...."
으.
하며 입술을 깨무는 유나.
사실 소라의 인상은 많이 놀아본 여자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클럽에서 온 건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
보라색 염색부터가 뭔가 비범하지 않은가.
"보통그런 건 결혼하고 나서 하지 않나요?"
"무슨 소리야. 너 빼고 다 해."
"...."
"아, 너무 뼈 때렸나. 미안."
"별로 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처녀때면 모를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무,물론이죠."
"그럼 나한테 양보해."
"...네?"
"움...뭐 그녀석 변태니까 전부는 안되겠지만, 네가 적절히 행동하면 3분의 1정도는 양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무슨...."
"싫다며?난 섹스 좋아해."
소라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마치 모든 걸 다 읽고 있다는 눈이다.
"그,그인간은 절 볼 때마다 탐하는데요. 제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구요."
"그래? 그럼 은이한테서 떨어지면 되지 않을까?"
"...?!"
순간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은 유나.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다.
"아하하! 막 이래. 농담이야 농담."
"...."
"그 변태새끼가 널 놓아줄 리 없지."
크게 웃어재끼며 마지막 남은 오돌뼈를 쏙 집어간다.
"언니! 여기 파전 하나!"
그리곤 당연하다는 듯이 안주를 새로 주문한다.
"그나저나 그녀석을 어떻게 한담. 지금쯤 여자들 끼고 죽어라 섹스하고 있겠지? 나쁜ㅡ."
딱 그 시점에, 멍하니있던 유나가 덜컥 일어나 소라의 뺨을 때렸다.
경쾌한 타격음이 들리고, 술집에서 마시고 떠들던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
소라가 맞은 부위에 손을 대며 놀라고, 그녀를 때린 유나도 흠칫 하고 놀랐다.
당황으로 확장된 소라의 눈동자가 유나를 향하자, 그녀는 주춤하더니 '죄,죄송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자,잠깐! 유나야!"
소라가 다급히 일어나 쫓아가려 하지만 그 전에 종업원이 붙잡았다.
"손님 계산은...."
"유은한테 붙여!"
"예?"
종업원이 알아듣질 못하자, 소라는 대충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이거 1,000달러...."
"나머지 팁."
"에??"
놀라는 종업원을 놔두고 소라는 유나를 찾아 나섰다.
.
.
"...하아."
소라의 뺨을 때린뒤, 던전까지 뛰어 온 유나.
사방에는 멋모르고 다가왔던 몬스터들의 시체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뜬금없이 싸대기를 갈기고 오다니. 그것도 전력 풀스윙이다. 같은 모험가였고, 딱히 살기까진 없었으니 망정이지, 일반인이 얻어맞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대체 내일부터 소라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한단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소라의 '유은과 떨어져'라는 말을 듣고 발끈해 저질러 버렸으니, 유은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고백한 거나 다름없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나 창피하다. 비록 소라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해도.
"아니...좀 때리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악질적인 장난도 꽤 하는 편이라 때리고 싶었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헤프닝 정도로 끝나는 정도다. 이번처럼 순간적으로 뺨을 갈겨버린 적은 처음이다. 아마 소라도 많이 놀랐겠지.
"...화 많이 났겠다..우우...."
"화 안 났어."
"!"
푸념하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는데, 뒤에서 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의 것도 아니었고, 마냥 평온한 것도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이었다.
"옆에 앉아도 되지?"
"...."
유나는 말 없이 끄덕였다.
"미안. 생각해 보니 좀 심한 말이었어. 장난이라도."
"아,아니에요. 제가 좀...컨디션이 안 좋아서. 사실 별 것도 아닌 말인데..."
"흐음 그게 아니잖아 유나야...우리 솔직해지자고 하지 않았어? 심지어 서로 다 알고 있잖니."
"으으...그래도...."
유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밖으로 꺼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게 다 갖춰져도 힘들다.
"어땠어?"
"...뭐가요?"
"기분. 나한테 뺨을 갈길 정도의 기분은 어떤 걸까 해서."
"그냥...잘 모르겠어요...순간적인 거라."
"화 많이 났었지?"
"...네."
솔직하게 대답했다.
소라의 바람처럼.
지금은 말끔히 희석됐고, 오히려 창피함과 미안함이 몰려오고 있지만, 당시 유나가 느꼈던감정은 분명 주체할 수 없는 분노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될것만 같았다. 발산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분노가 올라와 그만 손을 휘둘렀다.
'그 만큼 나는....'
단지 유은과 떨어지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그저 평소처럼 하던 농담일 뿐인데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개새끼...그딴 스킬로 날 농락하고 있어....'
유은에 대한 원망이 고개를 들었다.
이건 분명 그놈의 스킬이 원인이다. 그것도 곁에 있으면 저절로 호감도인지 뭔지 하는 게 올라 결국 종속되고 마는 그런...저열한 스킬.
아무리 패시브라 하지만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하지만그것과는 별도로 그녀의 감정은 이미 유은에게 밀착해 있다.
그에게서 떨어지는 걸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전에 스킬에 대해 들었을 때, 잠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
"마치 만화나 소설처럼, 유은을 사랑하면서도 그게거짓된 마음인 걸 알고 어떻게든 유은을 막으려 하는 거야. 솔직히 그녀석 인류의 적 같잖아? 색마이고."
"인성파탄도 추가요."
"응. 아무튼 뜨거운 마음을 애써 부정하고 그녀석과 적대하여 마침내 세계를 구하고 나도 구하는...뭐 그런 망상이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소라가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할수 있겠니? 그렇게. 능력적인 건 둘째 치고. 네 감정으로."
"...."
유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맞아. 못해. 그런 거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거 같은걸."
소라가 엉덩이를 톡톡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유나를 내려다보며 웃는다.
"내가 선택했어 이 길. 내가 키스했고, 내가 고개 끄덕였어. 시녀가 되겠다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요소야. 그러니까,"
톡 하고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 굳은 의지가 그 손에 있었다.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쓸 거야. 그냥 사랑하고, 쟁취할 거야."
"언니...."
"너도 앞으로 가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