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14. 일본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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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 비서의 전화를 받은 것은 오늘의 쇼핑이 끝나고 가까스로 호텔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아아.
다행이었지.
중년 아저씨를 만나야 하는 내용의 전화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몰랐어.
"그래서 돌아간다고?"
소라누나가 불만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누나랑 유나씨는 굳이 돌아오실 필요 없어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일 때문에 돌아가는거니까요. 두 분은 휴가와 쇼핑을 마음껏 즐기시면 됩니다."
"...은이가 말을 길게 하고 있어."
"이 인간이 말을 길게 한다는 건 어딘가 켕기는 게 있는 거죠."
네? 그게 무슨 소리죠?
"그렇게 돌아다니는 게 싫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누나가 사과를 집어 먹으며 말한다.
막 흘겨보고 있는데...
아니 저기여. 꽤 많이 말했던 것 같습니다만.
"뭐 좋아. 사실 나도 이쯤에서 돌아갈까 하고 생각중이었거든."
"에이. 거짓말. 누나 꿈이 된장녀라면서요. 명품으로 둘러싸인."
"어머. 누가 그래? 명품이 좋다고 했지 된장녀가 꿈이라고 한 적은 없어."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나가 방을 둘러보며 나머지 말을 이었다.
"충분히 산 것 같고...."
마찬가지로 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나씨.
대충 예상했겠지만, 지금 우리가 머물고 이는 호텔 방은 온통 쇼핑백으로 한가득이다. 꽤 큰 방을 빌렸는데도 역부족.
"근데 저거 다 어떻게 가져가실 생각이에요? 그러게 택배로 보내라니까...."
"안돼. 택배는 맛이 없어."
"무슨 논리입니까?"
"직접 들고 와서 방 안에 던져놔야 쇼핑이지."
"...."
뭔가 괴상한데.
"음... 우리 동생한테 맞춰서 설명해줄까?"
"네."
누나는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동화를 설명해주듯 손가락을 스윽 들었다.
"어느날 은이가 클럽에 갔어요."
"전혀 동화같지 않은데요."
"응?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기서 아주 예쁘고 핫한 여인을 만났죠."
"그거 좋네요. 지금이라도 하고 싶...켁!"
꼬집었어! 방금 꼬집었다고!!
"응큼하고 항시발기 상태인 은이는 여인에게 다가갔죠."
"뭔가 악의가 담긴발언 같습니다."
"그리고는 검은 돈다발로 그녀의 뺨을 때리는 거에요.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니?' 라고."
어설픈연기까지 첨가한다.
구현동화라도 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돈다발로 뺨을 때리다니...혹시희망사항은 아니죠?
"그래서 그 여자는 홀랑 넘어갔죠."
"비약이 심각합니다."
"But unfortunately, 섹스는 3일 뒤에 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발기한 건 지금인데!"
"아니 저기...."
뭔가...
뭔가 어마어마하게 이상한 설명인데요???
"이제 왜 택배로 받으면 안 되는지 알겠지?"
"...해괴한 설명이지만 느낌은 알 것 같네요."
"흐응. 클럽에 가고 싶긴 한 거구나."
"예? 얘기가 그렇게 되는겁니까?"
"흥. 애초에 이 인간은 클럽이고 뭐고 퇴폐업소도 마구 드나드는 인간이잖아요."
"맞아. 그랬지."
두 여자가 실망한 듯이 한숨을 내쉰다.
"아무튼, 그런 거야."
"뭐가 그렇다는 거에요?"
"올라갈 거면 혼자 올라가라는 거지. 우린 이것도 가지고 가야 하니까."
"...이미 받았으니까 올라갈 땐 택배로 보내도 되잖아요?"
"응. 아냐."
대체 뭐가 아니라는 거지....
"뭐, 알았어요. 여행이 더 하고 싶다는 거죠?"
"여행도 좀 하고."
둘이 서로를 쳐다보며 슬쩍 웃는데...뭔가 나는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저 둘 사이에. 설마 사귄다거나?? 그건 그것대로 그림이 좋ㅡ.
"근데말야. 저 짐들 들고 돌아다니려면...아흑이가 꼭 필요한데...에헤."
스윽.
하고 갑작스레 나한테 달라붙는 소라씨.
뭉클 하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안겨왔다.
나는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그럼 소냐씨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하죠 뭐."
"켁."
대번에 일그러지는 유나씨의 표정.
"이참에 모녀상봉이라도 하실래요?"
"됐거든요.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상봉은 무슨...."
"서울에서 여기까지 꽤 먼데 그분이 오실까? 바쁘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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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나도 생각했으나 오셨다.
이것이 호감도 100의 힘인가.
늦은 밤이 다 되어 온통 깜깜한 가운데, 내 앞으로 고급 외제차 한대가 스윽 멈추었다.
창문이 스무스하게 내려가고 드디어 드러난 안쪽의 얼굴은 바로 소냐씨.
밤인지라 선글라스를 쓰진 않았지만 특유의 도도한 카리스마는 열일하고 있다.
"소냐씨!"
"유은씨."
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온다.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젊은 육체와, 중년 귀부인의 기품이 서린 분위기.
그야말로 절정의 아름다움이라 할만한 그녀가 내게 안겼다.
"오랜만이에요."
"며칠 안 됐는데요. 아.데리러 와준 거 고마워요."
소냐씨가 슬쩍 웃으며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왔다.
"하루가 한 달 같아서. '오빠'"
"힉."
아,아니 그 단어는 트리거입니다 소냐씨.
"흥분했어?"
내 반응을 즐기고 있는 건지, 소냐씨는 내 허리를 만지던 손을 슬쩍 엉덩이쪽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서 나도ㅡ.
"부디 애정행각은 딸이 없는 곳에서 해줄래요?"
애무하려 했으나,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려온 유나씨 덕분에 우리 둘은 떨어지고 말았다.
"흠...오랜만이구나. 유나."
"뭐가 오랜만이에요.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가끔은 며칠이 몇 달처럼 느껴지기도 한단다."
"흥. 스무살 애송이 하나 잡아서 아주 살판 나셨네요. 부디 올라가면서 마음껏 즐기세요. '엄마','아빠'."
"...네?"
잠깐만요. 설마 그거 저한테 한 거 아니죠?? 아빠라니!
"흥."
유나씨는 잔뜩 삐졌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올라가 버렸다.
남은 건 멋쩍은얼굴로 애매하게 서있는 소라누나뿐.
그리고 그런 누나마저 대충 고개를 까딱이고는 올라갔다.
아직 소냐씨랑친해지긴 이른 시간인가. 하긴 나이차이가...흠흠.
"...가요. 이만."
"아...네."
뭐, 두 분은 나중에 올라오시면신경쓰자. 지금은 옆에 있는 소냐씨와 함께해야지.
"근처 모텔로 갈게요."
"...네?"
"오는데 4시간 넘게 걸렸어요. 설마 저보고 4시간을 더 운전하라는 건 아니겠죠?"
"엥...? 그건 그렇긴 한데...."
스윽. 하고 그윽하게 쳐다본다.
그 눈동자에는 불끈불끈 타오르는 중년의 정욕이 있었다.
"모텔로 가죠."
입이 알아서 대답해 버렸다.
아무래도 내 입은 아랫도리랑 연결돼 있나봐.
척추반응이 아니라 자지반응인가.
"우훗."
소냐씨가 웃었다.
지금은 뭐랄까, 기품있는 귀부인이 아니라 마냥 즐거운 여고생 같은 느낌이다.
악동이라고나 할까.
사락.
입고 있던 마이를벗는 그녀.
그러면서 내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대통령은 어쩌고요?""
"음...나중에 보던가...아니면 내려오라고 하던가...."
소냐씨가 야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덜컹!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확 젖히고는 고양이처럼 넘어와 내 위에 올라탔다.
"모텔은...서울에서 잡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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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아니,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이 철군을 거부하면서, 한국과 일본 양국은 초긴장 상태로 접어들었고 이는 세계 경제 및 정치에 막대한 파급력을 불러 일으켰다.
안 그래도 한국과 일본의 해결되지 않은 앙금은 암암리에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었다.
상대국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럴 상황만 된다면 얼마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국가이다.
자본가들 역시 상세히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이를 알고 있었으며, 다만'미국'이 건재하기 때문에 같은 제 1세계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전쟁할 리 없다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슬슬 빗나가고 있다.
한국은 이번 일을 통해 핵을 손에 넣었고, 그걸 바탕으로 일본에서의 철군을 거부하며 강력한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난리가 났습니다. 당장이라도 시위가 일어날 것 같은분위기에요."
"그렇겠죠."
"특히 미국이 펄쩍 뛰고 있습니다. 핵보유 취소라도 할 기세에요."
"핵취소는 안됩니다."
어딘가로 가는 차 안에서, 대통령은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커피를 마셔댔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그의 비서관.
"대통령께 호의적이던 여론도 완전히 돌아섰어요. 명백한 패착이라면서요."
"그럴겁니다."
"대통령님!"
"일본은 어떻습니까?"
"일본이요? 말할 것도 없죠! 제 7 기동군단이 어디에 주둔해 있는지 잊으셨습니까?"
"도쿄에 있죠."
"예. 그것도 일본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고쿄(천황의 거처 황궁 비스무리한 곳.)가 있던 곳에 말입니다."
"일본인들도 심하게 반발하고 있겠네요."
"혐한이 들끓고 있습니다. 고귀하신 어느 분 덕분에요."
"하하. 그거 감사합니다."
"칭찬 아닙니다! 대체 어쩌실 요량입니까? 저로서는 전혀 짐작도 안 돼요!"
"혹시...일본에서 핵을 가져야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까?"
"그야 물론이죠! 이게 다 반도(한국)가 핵을 보유해서 나오는 거만함 때문이니, 자기들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일본인들이 동조하고 있고요."
"그거 잘됐네요. 계속 그렇게 둡시다."
"예???"
커피를 다 마셨는지, 컵홀더에 끼워놓고 시트에 몸을 묻었다.
"일본은 말입니다. 유일하게 핵을 얻어맞은 국가에요."
"저도 압니다."
"그래서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하면 의외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습니까?"
"아무리 일본 정치가 막나가도, 국민이 반대하면 그렇게 큰 사업은 진행할 수 없죠. 때문에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이렇게 강한 자극을 주는 게 필요한 겁니다."
"...대통령님."
"네."
"혹시 친일하십니까?"
"...설마요."
"그럼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이건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를 돕는 일입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건 그렇고,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뭡니까."
"몇 년 전에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만약...또 다시 그만한...아니, 더 큰 원전 폭발이 일본에서 일어난다면...그땐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긴요. 그야 당연히 일본이 망ㅡ."
뭘 그딴 걸 묻느냐는 듯이 말을 잇던 비서관이 순간 숨을 삼켰다.
"Oh my God...."
그리고는 질식할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대통령을 가리켰다.
"...아니죠?"
씨익.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슬쩍 웃어 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