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13. 귀두의 제국.
그럼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어쩌면 그 의원이 잘못 알았거나, 아예 날조했을 수도 있고, 오히려 그 편이 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말을 날조하는 건 언제고 반드시 들키기 마련. 발이 넓은 소냐에겐 더더욱 빠른 시간에 들킬 것이다. 그리고는 '그가 소냐를 따라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겠지.
그러니 괜히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아니면...그것 자체가 견제 수단인건가."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럴듯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이런 건 직접 그 인간의 뇌를 엿봐야 하는 걸까.
.
.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그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녀의 주소록에는 없는 번호.
어차피 직업 관계상 모르는 사람의 전화도 즉각 받아야 했기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통화를 눌렀다.
그리고 들려오는 건 원망과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 깊은 곳 울화를 뱉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섬뜩한 여인의 목소리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그것 만으로 질렸겠지만, 그녀는 변호사. 이런 원한섞인 목소리쯤은 수도 없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천천히 말씀하세요. 들어드릴 테니."
-죽었어요!!
거칠게 토해지는 함성 같은 말.
뭔가일이 있는 듯하지만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무슨 일인지 제대로 말씀해 주세요."
-제 동생이 죽었다구요!!!
"...."
여전히 필요한 말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럴 아이가 아닌데...그런데...그런데 죽어버렸어요...
"실례지만 자살에 관한 거라면ㅡ."
-자살이 아니에요! 살해된 거라구요! 멋대로...재판도 없이...!
"...?"
살해당했다고 해놓고 '재판도 없이'라는 말을 하다니.
그녀는 순간 촉이 잡혔다.
누구에 관한 것인지.
-이게 나라에요? 이래도 되는 거에요?
"일단 진정하세요...제가 누군지 알고 전화하신 거죠?"
-네...대한민국 최고의 변호사 중 한 명이라고 들었어요. 운현이한테....
"흐음...그렇군요."
아무래도 이 여자는 모르는 모양이다.
운현을 몰락의 끝자락까지 이끈 것이 바로 이소냐 라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복수에 대한 도움을 갈망하는 목소리로 전화했을 리가 없다.
"일단...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만나서 얘기 나눌까요?"
-...아...죄송해요. 귀국하고 보니 이런 상황이라...내일 뵀으면 좋겠어요.
늦은 밤이라는 걸 인식했는지, 목소리에 미안함이 깃든다.
그렇게 다음날.
두 여인은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냐는 언제나처럼 깔끔한 정장차림. 워낙 예쁘고 어린 외모에, 절로 풍겨나오는 기품 때문인지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건너편의 여인은 그런대로 미녀라 할만한 모습.
길다랗게 자란 머리카락을 왼쪽 어깨 앞으로 빼낸 것이 묘한 색기를 우러냈다.
그러고보니 운현이라는 인간도 잘생긴 남자였다.
'누나...라고 했었지?'
소냐는 눈 앞의 여인을 가만히 노려봤다.
물론입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상태.
"외국에서 막 들어오셨다면서요?"
"네...미국에 잠깐...아니그것보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성격이 원래 급한건지, 아니면 그만큼 충격을 받은 건지, 그녀는 잡담 따위 하고싶지 않아했다.
하긴 '해결'을 위해 변호사를 찾아온 사람인데 잡담을 나눌 여유따위 있겠는가.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제대로 말씀해 주셔야죠. 어떤 걸 가지고 그러시는 건지."
"아...."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며칠 전, 뭔가 트러블이 생긴 듯한 동생(운현)의 전화를 받고 달래준 적이 있다.
여자문제라고만 하고 자세히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더니 나중에는 실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신을 배신한 여자와 자신을 골탕먹인 놈년들을 전부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섬뜩한 말을 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 입국해서 보니 전국 생중계로 공개처형 당했다는 게 아닌가.
공식 재판을 거쳐 사형을 집행하는 것도 꺼려하는 대한민국에서,무려 공개처형이다. 그것도 일개 형사의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이렇게 어처구니 없을 수가 있을까.
덕분에 그녀는 부랴부랴 부모님을 만나 대략적인 상황을 듣고 소냐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듣자하니 창녀들한테 강간미수로 집단고소 당했다던데, 하! 기가 막혀서 정말...몸 팔아서 돈 버는 년들이 강간은 무슨...거기에 웬변호사한테도 고소 당했다죠? 변호사라는 사람이 그런 곳에 가기나 하고...거기에 성희롱으로 고소까지 하니 나참...술 쳐먹었으면 곱게 마셨어야지!!!"
아무래도 그 변호사가 여자, 심지어 눈 앞에 있는 이소냐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하는 듯하다.
하긴. 운현이 고소당한 곳은 매음굴이다. 설마하니 '여자 변호사'가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성희롱으로 고소했다면 여자라는걸 한 번쯤 생각해 볼법도 할텐데.'
"그 웃기는 년놈들 때문에 운현이가...!"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친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며 눈물을 머금었다.
동생을 꽤 아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와는 달리꽤 침착하시네요."
방금 열변을 토하고 식탁을 내리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제 전화 너머로 들려오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그녀는 양반이다.
"아무튼 무슨 일인지 대충 알겠어요."
소냐는 내심운현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라 해봤자 그녀가 성희롱으로 고소한 것이지만, 그건 앞으로의 재미난 일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운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우리 운현이를 죽음으로 몰고간 그 창녀들, 변호사...형사 그 씨발년들 전부 다 사형 받게 해줘요."
"...."
황당한 요구에 소냐의 말문이 턱 막혔다.
"아. 국가에 대해서도 운현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상금을 요구하고요, 공개처형을 집행할 수 있는 웃기지도도 않는 특례조항을 만든 군, 그걸 방패삼아 묵인한 경찰, 검찰 그 장면을 생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것들, 언론들, 영상을 보고 욕질한 네티즌들 싹다 고소할 거예요."
"...."
엄청난 분노다.
그야말로 한기가 풀풀 날린다.
생긴 건 나름 청순하게 생겼는데 눈을 치켜뜨고 저러고 있으니 뭐랄까 무서움에 보너스가 붙은 느낌이다.
"...많이도 벌리시네요...아예 그 바람펴서 헤어졌다는 여자도 고소하시지 그래요? 간접적으로나마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을텐데."
살짝비아냥 거리는 소냐였지만, 눈 앞의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쪽은 부모님이 가고 있어요. 모르는 얼굴도 아닌데 고소까지 갈 필욘 없겠죠. 그년도 사람이면 무릎 정돈 꿇겠지."
"어머...."
소냐가 살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정말로 놀랐다기 보다는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필사적으로 가린 것에 가깝다.
하필이면 그쪽으로 보내다니.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일이 참 재밌게 돌아가네.'
유은, 황제에게 종속된 법관으로서 오로지 그의 가치관을 진리로서 받아들이게 된 소냐는 눈 앞의 여인이 먹잇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알던 누군가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분명 최악의 악녀로 타락했다 하겠지만, 그녀는 나름의 정의를 지킬 뿐이다.
조정의 진정한 2인자인 황궁법관.
황제를 제외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법을 만들기에, 누구보다 황제의 가치관에 공감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살포시 미소지었다.
상대방이 안심할 수 있도록 눈에도 웃음을 표했다.
"사형이나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은 좀 힘들겠지만...최대한 노력해보죠. 그 전에,"
"?"
"저 비싼 거 아시고 오신 거죠?"
"흥. 싼 변호사는 취급 안 해요."
"어머."
+++
짜악 - !
경쾌한 소리가 길드 본...아니 황궁 로비에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주목되어 있던 시선들이 더욱 끈질기게 몇몇 사람을 따라 붙는다.
참고로 저 경쾌한 소리에 얻어맞아 뺨이 돌아간 건 나의 소라누나다.
스탯으로만 보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얻어 맞고 있는 이유는 누나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미안함.
그게 바로 저 장면의 정체다.
대체 무슨 일인고 하니,
아침부터 방문해온 중년의 부부가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누가 말릴 세도 없이 소라 누나의 뺨을 갈겨댄 것이다.
음.
아주 간단한 사건이군.
연령대로 보건데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설마 운현 그 자식의 부모인가?
그렇잖아? 그거 밖에 없잖아?
뜬금없이 중년 부부가 찾아와서 소라누나의 뺨을 갈겨대며 고성을 지른다면, 그리고 그걸 소라누나가 죄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당연히 그놈 부모밖에 없지....
"이봐요!!"
옆에 있던 유나씨가 소라누나의 앞을 막아섰다.
나도 개입해볼까.
"넌 또 뭐야! 당장 비켜!!!"
중년의 부부, 특히 아줌마쪽이 날뛰고 있다.
이제는 유나씨의 뺨까지 날려댈 기세.
그러면 안 되지. 나의 소중한 여자들에게 더 이상은 두 낫 터치다.
하지만 말로 해서 들을 리가 없겠지?
그럼함무라비 법전을 체험하게 해주자. 그야말로 역지사지의이념 그 자체 아니겠어.
짝 - !
짜악 - !
중년 부부의 뺨을 공평하게 한대씩 갈겨주고는 두 여자 앞에 섰다.
스탯을 다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강하게 갈겼기에 두 사람은 꼴사납게 넘어졌다.
응?
너무 인성 터진 거 아니냐고?
몰랐냐. 그깟 인성, 하렘 앞에 무의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