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13. 귀두의 제국.
"힘...들것 같습니다."
그러다 나온 한 마디.
그것은 대통령의 생각과 그야말로 일치하는 대답이었다.
그래.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냥 단순하게 산술적인 계산만 해도 답이 나온다.
던전으로 치환해 보면, 이번 도쿄에 출현한 몬스터들은 아무리 잘 쳐줘도 공방 5만이안 될 것이다.
보스몹이라 해도 10만 정도일 터.
그몬스터들을 잡기 위해 무수히 많은 전차의 포격이 가해졌고, 나중에는 미사일 세례까지 퍼부어 고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물론 희생을 각오한다면 군대만으로도 얼마든지 밀어버릴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충분한 전력이 있었고, 시간도 충분했다. 주변이 망하든 말든, 어차피 일본의 땅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이겨봤자 B급 방어전을 치른 것에 불과한 일.
유은은 무려 공방 300만을 초과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300만을 던전 등급으로 치환하면 대체 몇 급으로 잡아야 할까.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SSS급 던전이라 해도 그 정도는아닐 것이다.
10만 정도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군대.
그들이 공방 300만을 넘기는 유은을 이길 것이라 희망하는 건 보이는 걸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걸 믿는 아둔한 짓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그런 실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 해서도 안 되었고.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대답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더러 소란이 일었다.
다들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귀로 듣고 나니 자존심이 이 상한 것이다.
고작 일개 모험가, 한 명의 인간에게 국가 권력이 패배를 선언해야 한다니. 그것도 붙어 보기도 전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 못한다.
그 표정을 읽은 걸까, 대통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표정. 그 느낌.저도 잘 알 것 같군요."
그가 유은의 스탯이 인쇄된 종이의 양쪽 끄트머리를 잡고, 몇 번인가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책상 중앙에 살며시 놓았다.
"그러나 우린 기분 나빠하지 말고, 감정적이 되지 말고, 보고 싶은 걸 보지 맙시다."
그리고 나직이 내뱉는 말.
고성도 아니었고, 외침도 아니었으나,
그 말에는 뚜렷한 힘이 있었다.
"보이는 걸 봅시다."
쾅!
종이의 정 중앙, 책상을 내려쳤다.
"유은이라는 자는, 공방 300만을 아득히 초과하는 논외의괴물. 분명군대조차 그를 감당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너무 그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되니까요."
맞는 말이다.
제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 해도, 적이 아니라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만약 아군이라면 오히려 칭송해 마땅하다.
"그,그게 가능할까요? 하는 행동으로 봐선...도저히 민주국가에서 받아줄 만한 인간이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도 던전 시티는 반쯤 무법도시 아닙니까. 그걸 조금 더 인정해 주면 될 일입니다."
"그러다 세력이 커져서 국가를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아니, 분명 전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조직원...아니 길드원이라고 하던가요? 그 수도 만 단위를 넘을지 모르죠."
"그렇게 되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키워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벙찐 이들에게 그가 살며시 웃어 주었다.
"군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건, 결국 그 혼자가 아닙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그 수는 매우 적을 겁니다. 그러면서 세력이 커졌다면...그건 두려워할 게아니라 반겨야 하는 겁니다. 약점이 늘어났으니까."
"...."
참으로 신박한 관점.
"잘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인간이라면, 차라리 세력을 늘려 지킬것이 많아지도록 하는 게, 우리에게 훨씬 이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대통령께서는 그 자를...."
"최대한 지원해야죠. 그렇게 아군이 되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충분히 많은 것을 우린 쥘 수 있습니다."
+++
"후욱...후우...."
늦은 저녁. 한 헬스장...
아니, 자세히 보니 집 안이다.
무려 집에 그럴듯한 헬스장이 구현되어 있고, 조금 나서면 샤워실까지 마련되어 있다.
거기에는 한 여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몸을 엎드릴 때마다 드러나는 등골라인과, 탱탱하게 받쳐진 엉덩이가 특히 어마어마했다.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소냐.
최근 무수히 많은 아이템이 거래소에 쏟아지고, 그로 인해 5차 산업혁명이 도래한다느니 말이 많은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운동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오직 유은 때문.
가난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돈이 많은 소냐에게 건강을 위한 운동 따위는 전혀 필요없다. 그럼에도 하는 것은 다 그런 이유다.
물론 미용에 관한 아이템도 넘친다. 하지만 '운동하는 여자'는 그것 만으로 하나의 카테고리가 될 정도로 인기. 그걸 모를 소냐가 아니다.
아무튼 열심히 운동하며 사방의 공기에게 본인의 몸매를 과시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누군가의 전화를 바로 받기 위해서인지 꽤나 요란하게도 해놨는데, 즉시 받아본 결과, 원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선생!!!
"...무슨 일이에요? 의원님."
건너편 남자는 호들갑을 떨어보지만, 돌아오는건 소냐의 냉랭한 말투다.
하지만 원체 냉랭한 여인인지라 그는 신경쓰지않았다.
-드디어...드디어 때가 왔네!!
심이라도 봤다는 듯이 외치자, 그제야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였다.
"그 말은...발의했다는 건가요?"
-아,아직 그런 건 아니지만...일단 들어보게! 이건 특급 정보인데....
침을 꿀꺽 삼키는 남자.
자기가 말하면서도그러고 있다.
그 사이에 소냐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통을 들었다.
500미리짜리 물통을 그대로 쭉 들이키며 한방에 원샷.
입에 채 들어가지 못한 물들이 흘러내렸지만,전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안그래도 착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푹 적셔버리니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간 그녀의 몸매가 훤히 보여 강렬한 색기가 뿜어졌다.
-무려...대통령이 이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네!
"...정말이에요?"
믿을 수 없는 말.
뜬금없이대통령이라니?
그녀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당연(?)하지만 그녀가 의원에게 요구한 법안은 대한민국 입장에서 절대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중세 봉건제와 같은 것이기에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욕먹으며 다시는 정계에 발을 들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때가 맞지 않으면 완전히 매장될 만한 것.
그런데 그걸 대통령이 관심갖고 있단다.
"무슨 수를...쓴 거죠?"
제 아무리 소냐라 해도 대통령까지 손이 닿진 않는다.
대체 뭘 한 걸까.
-흠흠. 거 알고 싶다면 좀 더 나를ㅡ.
"좀 더 협박해 달라고요?"
-아,아니...협박이라니 하하. 이 사람 보게...그냥 농담 한 번 해본거지.
"농담 하지 마요. 우리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쩝...이선생 성질 하고는....
"뭘 하신 거예요?"
-별 건 아니고...그...예전에 내가ㅡ.
"아무것도 안했죠?"
-응?? 아,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노ㅡ.
"그럴 능력 없으시잖아요."
-....
너무나 심한 팩트폭력에 잠시 움찔.
그러나 다시 말을 이어간다.
-거 진짜...사람 기 좀 살려줍시다. 예?
"됐으니까, 빨리 말 하기나 해요."
소냐의 재촉에, 결국 모든 걸 털어놓는 그. 참으로 처량하기 짝이 없다.
-오늘, 대통령께서 글쎄 던전시티에 한해서 길드의 자치권을 인정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셨네.
"그게 정말이에요?"
-아 그럼! 내가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선생에게 연락했을까? 이선생이 얼마나 무섭...아니 위엄이 넘치시는데.
"...."
-아무튼, 이거 진짜야. 내가 굳이 발의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그렇게 말을 꺼냈으면, 알아서들 할 거야. 그렇지 않겠나? 그러니까ㅡ,
"그럼 더잘됐네요. 의원님께서 앞장서서 발의하시면 되겠어요."
-....
"대통령과 생각도 같으시고. 이야. 잘됐네요. 출세하실지도."
-아,아니 그러니까....
"혹시 파란집에 불려가시거나 의원장 같은 거 하시게 되면 밥 한끼 사드리죠."
-필요 없...아니, 그러겠네. 비싼 거 시켜도 되나?
"그러세요."
별다른 인삿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그녀는 그대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옷도 벗지 않고 물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이지 그 노인네."
상식적으로, 그런짓을 해서 좋을 게 없다.
길드의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건, 다시말해 던전 시티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투표권을 빼앗아 간다는 걸뜻한다. 시민들의 투표로길드장이 선출될 리가 없지 않은가.
순전히 힘에 의한 야만적인 점령과 통치를 국가가 나서서 승인하는 것이니, 이딴 법을 발의했다가는당연히 매장되고 만다.
그런데 그걸 대통령이?
자칫했다간핵보유 승인으로 인해 치솟고 있는지지도를 바닥으로 쳐박아 버릴 수도 있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
"멍청한 인간으로는 안 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