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07. 키잡의 시작.
말을 그렇게 하긴 했지만, 서경위의 말 대로 블랙박스도 있고 하니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 수 있다.
경찰조직이 아무리 딱딱하고 콱 막혀 있다지만 명백하게 증거가 남아있는 것까지 나몰라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군대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번 프로젝트는 엎어진다.
'인성은 쓰레기지만...실력은 확실히 최강이야.'
아무리 모험가가 아니라 해도, 딱 보면 안다. 유은은 가히 최강을 자처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호적수가 없다.
일단 광역스킬부터가 사기. 오늘 하루만 해도 몇 번이나 목격했는데, 수십마리의 몬스터가 생기자마자 스킬을 얻어맞고 전멸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던전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라는 대명제가 너무나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쉬웠다.
거기에 300여명이나 되는 모험가를 도륙한 그 스킬.
화려한 의자에 앉고, 거기서 명령을 내리는 것 만으로 무수한 모험가들을 말 그대로 '도륙'했다. 그 누구도 저항 다운 저항하나 해보지 못했고, 그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했다.
'그들은 최소 공/방 5천 언저리의 모험가야. 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도 못 이겼는데...이 인간을 잡겠다고 했다가 날뛰기라도 하면 경찰조직은 끝장이다.'
당연하지만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유은의행각을 밝혀 버리면, 경찰로서는 그를 잡아야만 한다. 누가 뭐라 하기 이전에 머리가 돌대가리인 윗놈들과, 여론이 절대 가만있지 않는다.
그렇게 부딪혀서 경찰이 개박살 나거나, 설령 잡아도 엄청난 피해를 입어 버리면 그걸 본 모험가들은 그나마 남아있던 경각심조차 버릴 것이다. 그렇게 그들도 날뛰게 되면...
'진짜 대한민국은 끝장이야. 절대 그래선 안 돼.'
푸우....
그녀의 지끈거리는 고민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뿌연 담배연기가 뱉어졌다.
"콜록콜록...바,반장님...근데 여기 금연ㅡ."
"어쩌라고."
"...아니...편하게 피시라고..."
경감은 한 차례 더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7 : 38분.
넉넉한 시간이다. 4시에 던전에 나와서 적당히 저녁먹고 뒤풀이 한 다음에 5시 30분에 칼퇴근. 이후 수다와 자유시간을 보내다가 그녀가 잠깐 소집했으니 아직도 시간이 널널하다.
치익.
재떨이에 담배를 짖이겨 끄고는 난간에 걸터 앉았다.
"야. 니들."
"네."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냐?"
"네?"
뜬금없는 물음에 다들 벙쪘다.
갑자기 나라는 왜 나오는걸까.
"아니, 경찰을 어떻게 생각하냐?"
"그렇게 물으셔도...."
무슨 면접에서나 할 소릴 하는 거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경찰이란, 선량한 시민을 범죄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다. 하지만 지금 우릴 봐. 강남 경찰서는 이미 잃어버린 물건이나 돈 따위를 찾아주는 정도의 일밖에 못하고 있어. 모험 범죄자? 던전이 등장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죄다 길드가 처리해왔지. 그 대가로 지배를 인정받았고. 혹시라도 던전시티에서 탈주하면 길드에 의뢰해서 잡을 수밖에 없어. 말도 안 되는 거야. 경찰이 존재 의미가 없는 거지."
그녀는 뭔가 굳은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이 잘못된 과정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치안력을 되찾는 수밖에 없어. 그건 하루라도 빨리 모험가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거야. 근데 우린 3년이나 뒤쳐졌어. 이 간극을 매우려면 고가의 장비를 둘둘 마는 게 제일이지만...그게 가능할 리 없지. 그래서 남는 건...."
그녀가 고개를 들어 여경들을 바라봤다.
"저 쓰레기한테 뽑아낼 만큼 뽑아내서 압도적인 속도로 성장하는 거야. 여기 몬스터를 학살할 수 있을 만큼. 그 다음에 우리가 돌아가서 남은 경찰에게 쩔해주기 시작하면...우린 치안력을 되찾을 수 있어. 당분간 우리가 힘들긴 하겠지만 주역이 되는 거라고? 역사의. 그러니까...."
어두운 얼굴로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간다.
"희생할 각오가 없는 녀석은 지금 말해라. 서장님한테 말해서 바꿔주든, 아니면 그냥 빼버리든 할 테니까. 나는 여기 남는다."
"반장님...."
다들 감동했지만, 동시에 갈등했다.
솔직히 몸이 힘든 정도라면 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말하는 희생이라는 건 여자로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희생하는 걸 말한다.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말살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한희생이다.
거기에 단호하게 예! 하고 대답할수 있을 만큼 신념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거 가지고 불이익이 있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
그래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뭐야. 다들 남을 거야? 그럼 고맙고."
"그,그건...."
"싫으면 빨리 말해 이년들아. 짜증나게 하지 말고. 니들이 그러면 나도 흔들린다고."
"아으...조,좀만 생각할 시간을...."
"후우...."
그래. 너무 재촉하는 것도 안 좋은 거다. 특히이런 문제라면.
"그럼...9시까지는 결정해라. 10시되면 그새끼 방에 들어가야 되는데...알지?"
"...."
"별 말 같지도 않은 말로 이상한 짓 하려고 할 건데, 그거 당하고 나서 빠지면 억울하지 않냐? 빠질 거면 옛저녁에 빠지는 게 낫지."
"저...저는 이미 당했...는데요."
"...넌 당해도 싸."
"에엑?"
"씨발 너때문에 나까지 당했잖아. 아오."
"꺄악!"
장난스럽게 그녀의 옆구리를 발로 툭툭 찬 그녀는 숨을 가라앉혔다.
"아니지! 이따 또 당해야 되잖아!!"
"히익!"
"넌 좀 맞아."
퍽퍽 하며 한경위의 등을 몇 대 때린다.
딱히 힘이 실려 있진 않아서 그닥 아프진 않았지만 정신적 압박감은 상당했다.
"자. 해산. 이따 9시에 다시 모여."
"네...."
힘없이 터덕터덕 걸어나가며, 자신의 방을 찾아 돌아가는 여경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경감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하...씨발. 이런 건 영화에 나오거나 다른 놈들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설마 내가 당첨이라니."
그녀는 담배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마음이 진정되질 않는다.
푸우...
"그래 까짓거. 희생 한 번 하고, 경찰청장 달자. 씨발 이 지랄을 하는데 그 정돈 해야지?"
그녀는 휴대폰을꺼내 잠금을 해제하곤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컬러링이 울리는 동안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을 고수했다.
-여보세요?
앳된 목소리.
무려 7살 연하인 남자친구는 반가움을 잔뜩 표현하며 이런 저런 말을 걸어왔다.
-뭐야. 왜 말이 없어? 또 무슨 일 있구나?
"야."
-응 누나. 말해봐. 다 들어줄게.
순간 울컥했다.
오늘 있었던 일, 지금 하는 고민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할 일 등을 모조리 털어놓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울먹임을 감추며 말을 이었다.
"헤어지자."
.
.
약속한 시간 9시.
여경들은 칼 같이 시간을 지키며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반장님...."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경감의 모습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결정했냐."
쉰 목소리. 어쩌면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은 없는 힘을 더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을 년들만 이쪽으로 나와."
당연히 남을 사람이 적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인데, 웬걸 전원이 앞으로 나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진심이냐?"
"제 동생놈이 군인인데 맨날 남자만 목숨걸고 희생한다며 지랄하는게 너무 좆같습니다. 저는 남겠습니다."
"저는 이미 당했으니...억울해서라도 참아내고 고위직으로 가겠습니다."
"강해져서 그 개새끼 죽빵 때려버릴 겁니다."
등등.
저마다 굳은 결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왔다.
"반장님 맨날 쎈척만 하지 실제론 연약하시잖습니까? 울면 어떡합니까."
"...죽인다 너."
경감이자 반장, 은소령은 피식 웃으며 험악한 말을 내뱉고는 몸을 일으켰다.
"후회하지마라. 기회는 이번이 끝이다. 지금이라도 나온다면 엉덩이 열 대 때리는 걸로 봐주지."
"후회할 거면 결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잘해요 주먹만한 년이."
그렇게 파견된 여경은 전원 결사를 다짐했다.
+++
"전부 모였군요."
오후 10시.
그동안 소라누나와 유나씨를 품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나는 9시 50분 즈음해서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 내 앞에는 긴장된 표정으로 쭉 서있는 7명의 여경들. 나의 요구로 전원 경찰제복 착용중이다.
나는 그녀들 앞에서 훌렁 옷을 벗었다.
벌써부터 불끈하고 있는 나의 좆이 머리를 잔뜩 들어 올리며 여자들을 향해 껄떡거렸다.
"...."
아~ 저 입술 깨무는 표정. 진짜 최고다. 분명 이름이...그래 생각났어. 은소령. 은경감이야. 아까 그 펠라는 정말 탁월한 맛이었지. 흐흐. 이번에는 보지도 뚫어주자.
"아까 분명히 말했었죠? 또 한 번 큰소리치면 그땐 진짜로 연대책임을 물겠다고."
마구 일그러지는 표정들.
아. 이거 진짜 재밌네.
"...역시 쓰레기야."
"하...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끝났어 씨발년아."
여경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수근댄다.
"한경위 앞으로 나오세요."
"우으...."
아까 따먹었던 단발머리 여경이 앞으로 나온다.
이제보니 가슴도 제법크고 좋은데? 흐흐. 넌 오늘밤 좆물받이 당첨이다.
"당연하지만 당신이 원인이기 때문에 다른 벌을받을 겁니다. 잠깐 열외하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