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05.새로운 세력.
"물론 아무 대가 없이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국가기관이 무슨 대가를줄 수 있죠?"
서장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여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부터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래. 아저씨 말 보다는 여자 목소리가 훨씬 낫지.
"현재 유은님은 하렘궁...길드의 길드장으로서, 강남 던전시티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위치에 있습니다. 유은님에 의해 던전의 통행세가 결정되고, 모험가들의 성장이 결정되고, 그들의 사냥터가 결정되는 등 상당히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렇죠. 참고로 제 연 소득은 이미 백억단위니까 돈으로 회유하실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그럴 돈 없으니 걱정 마세요."
잠시 도끼눈을 뜨던 그녀가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이 모든 건 우리 경찰의 치안력이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총탄이 들어먹지 않는 몬스터를 모험가들이 때려잡고 있고, 그 모험가들이 던전시티의 주된 구성원인 이상 경찰력으로는 치안유지에 필연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 경찰의 힘이 몬스터와 모험가들에게 유효하다면, 굳이 유은님과 같은 길드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겠죠. 인정하십니까?"
"뭐, 그런 걸로 치죠."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유지될까요?"
"?"
"경찰은 바보 집단이 아닙니다. 결국 언젠가는 치안력을 되찾을 것이고, 도시와 모험가는 다시 경찰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전에 던전이 사라질 수도 있고요."
"하하. 그렇게 가능성 있다고 보진 않는데요."
"아까 하신 말씀처럼 F급 던전부터 시작하면 얼마든지 키워낼 수 있습니다."
"그건 힘들다면서요 여러 요건상."
"무시하면 되거든요."
"...."
"그래봤자 서울 한복판에 있는 던전이고, 그래봤자 국군이 주둔해 있는 던전입니다. 협회의 입김? 까짓거 한 번 무시하죠."
뭐야. 강하게 나오네.
"지금이야 모험가들이 별 해를 안 끼치고 길드와 공생하며 적당히 살아가고있으니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여차하면 협회를 몰아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라고 있는 조직이니까요. 그렇게 됐을 때, 유은님의 장악이 계속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녀는 살짝 숨을 들이켰다.
"이 일에 협조해 주신다면, 우리 경찰 조직...아니 검경은 당신과 당신의 길드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법조항을 제외한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대충 무슨 말이죠?"
"치외법권을 말하는 것 같네요."
소냐씨가 짤막하게 설명해준다.
치외법권이라...근데 지금도 치외법권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걸 굳이ㅡ.
"그것도 지금처럼 암묵적인 게 아니라 국가기관이 공인하는...하지만 그게 효력이 있을까요? 만약 대외적으로 공론화가 된다면, 유은씨는 줄 거 다 주고 타격만 받는 셈이 아닌가요?"
오. 소냐씨가 치고 나간다.
"...누구시죠?"
"제 고문 변호사이십니다. 이소냐씨라고 하죠."
"흠?!"
서장이 놀란다.
과연. 서장도 알 만큼 유명하구나.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법조항'이라는 것도 애매하네요. 법이 한 두개가 아닌데 어디서 어느부분까지 말씀하시는 거죠? 설령 그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법적인 효력이 발생하는 건가요? 아니면 특수법이나 조항을 만들어 따로 특례를 두실 생각인가요?"
여경누나가 잠시 멈칫 하다가 대답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치외법권을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이 던전시티의 지배권에 관한 말씀을 드리는 것이죠."
"그 말은, 유은씨가 강남을 지배하는걸 영구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뜻인가요?"
"...의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논할 가치도 없군요."
"뭐라구요?"
"이미 유은씨는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죠. 국가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꽉 쥐고 있는 거예요. 군대가 출동하지 않는 이상 밀어내지 못할 텐데, 그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는 또 없죠.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사실 군대가 밀고와도 이길 자신 있습니다. 헷.
"그러니까 그건ㅡ."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라는 건 거래 내용이 되지 못합니다. 그건 당신의 가정법일 뿐이고요. 현실은 많이 다르죠. 설령 그렇게 일부 경찰이모험가의 힘을 갖게 된다 해도, 그 동안 유은씨는 더 강해져 있을 거예요. 그건 다른 길드 역시 마찬가지죠. 이미힘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길드와, 맨땅에 헤딩하는 경찰 여러분들의 성장속도는 굳이 비교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아니...."
"그리고 지배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변호사인 제가 해석하기에 유은씨를 비롯한 길드장이 던전시티를 지배하는 걸 '권리화' 하겠다는 것으로 들려요. 그럴 의향이 있으신 건가요? 그러려면 2~3년 가지고는 택도 없을 텐데."
"...."
"그래서 논할 가치가 없다는 거에요. 한 개인을 위한 특례조항을 만든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데다 법과 질서를 지키고 치안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 그 의무를 일부나마 포기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의도적으로 의무를 포기할 바에는 차라리 무능한 게 낫다고 보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소냐씨는 거의 일방적으로 밀어 붙였다.
사실 내용 자체가 경찰에게 너무 불리하다.
여경누나가 완전히 할 말을 잃어버렸을 즈음, 내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저한테 명예직을 주세요."
"...명예직이라면 어떤...?"
"경무관."
"뭐,뭐라구요?!"
"뭣?!!"
여경누나와, 탐탁치 않게 상황을 지켜보던 경찰서장 아저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제가 경무관이 되면 경찰쪽에서 뒤통수를 치거나 팽치거나 하긴 힘들겠죠. 보험으로 딱 적당하다고 보는데 어때요?"
"무,무슨 말도 안 되는! 당신 경무관이 어떤 직급인지 알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음...적당히 '높으신 분들'에 해당하는 정도?"
"하...."
여경누나가 어이없다는 듯이 날 바라보고, 심지어는 곁에 있는 소냐씨마저 얼이 나가있다.
그렇게 높은 직급인가.
난 이것도 나름 양보한 건데. 뭐...힘들거라고 생각하지만.
"아 그리고 추가로 쩔 받으실 경찰분들은 전원 젊은 여자로 해주세요. 우리 길드원이 여자가 많고...또 저기 유나씨가 남혐하시거든요. 좀 불편해 하시니까 양해해 줘요."
"미쳤어...."
"그리고 명예직이니까 괜히 더 높은 사람 있다고 해서 이거저거 명령하지 마시고요. 그냥 어디까지나 대우 받는 명예직 정도로. 대신 강남 치안은 확실하게 잡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응. 맞아. 나 말고 범죄 저지르는 인간은 없을 거야. 나 말고는.
"후...저기요. 경무관이라는 건요...치안감 바로 아래거든요? 치안감부터는 사실상 대통령이 뽑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 그분 입김을 제외하면 경찰 최고봉이라는 얘기에요. 그걸 명예직으로 달라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안 될 건 또 뭐에요? 제가 여러분들 잘 키워서 힘도 갖게 해드리고, 어? 아이템도 좀 드리고. 뭐 이것저것...조언도 해주고. 그래서 댁들이 치안력을 되찾게 되면, 아 그럼 럼 경무관도 부족하지. 안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여경누나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흐흐. 힘들겠지? 못하겠지?
새파란 스무살짜리애송이를 아무리 명예직이라지만 경무관으로 임명한다는 게 말이 되냐~
이대로 흐지부지 되는 거지.
안 그래도 할 일 많은데 괜시리 경찰이랑 묶일필요 없잖아? 난 맨하탄도 가야 한다고.
"자. 제 조건은 일단 그겁니다."
"일단? 그럼 더 있다는 거에요?"
"경무관이 최소입니다. 못하시겠으면 돌아가 주세요. 더 할 얘기 없으니까. 지금이...아우 벌써 2시네. 안 주무세요? 전 자야겠는데. 읏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소냐씨와유나씨, 그리고 하품하고 있던 소라누나까지 연달아 일어났다.
"아,아니..."
그리고 딸려 올라가듯 일어서는 여경누나와 경찰서장.
아, 참고로 경무관이면경찰서장(총경)보다 높은 거다. 큭큭. 당연히 될 리가 없지.
자~ 그럼 이제 즐거운 섹스라이프를 즐기러 가볼ㅡ.
"그걸로 됩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서장 아저씨가 뜬금없이 말을 던졌다.
"...무슨?"
"경무관, 그걸로 되냐고 물었습니다."
뭐야...갑자기...?
"그걸로 족하다면 임명해 드리죠. 이 자리에서."
"...네?"
나는 무심코 얼빠진 소릴 내고 말았다.
그러자 여경누나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하실 거예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불세출의재능이라면서요."
"확실히 그렇긴 해요. 제가 지금까지 본 모험가들 중 가장 강한 직업이니까요."
저기요? 지금 뭐죠? 돌아가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데요?
"...직업명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
시발...재능이다.
"뭐야 당신들...재능? 그럼 스탯을 열었다는 거잖아요."
유나씨가 잔뜩 얼굴을 찌푸린다.
그녀의 말 대로, 재능이 있을 정도라면 이미 던전에 진입했다는 건데.
"아뇨. 다릅니다. 저는 스탯을 열자마자 재능을 개화했을 뿐, 전투 능력은 없습니다."
"그럼 아이템으로 스탯만 열었다는 거에요?"
"네. 아, 그리고 소개를 다시 해야겠네요."
여경누나가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강남 경찰서장, 신도희입니다. 직급은 총경이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