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04.여기 우리구역인데? 응. 아냐~
"이...이...!"
세 돼지는 이제 빨간 돼지가 되었다.
온통 붉게 달아 올라 금방이라도 식탁을 엎어버릴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거기에 소냐씨는,
"조사해보니까 딱히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던데. 그러면서 바깥 활동도 거의 안 하고... 하는 거라고는 집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경험해보지도 않은 세상을 욕하는 게 전부.... 왜 살아요?"
아주 조곤조곤한 존댓말로 지그시 밟아주신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왜 살아요?"
"마,말이면 단 줄 알아!!! 당신 이거 명백한 명예훼손이고 모욕이라고!!"
"왜 사냐고 물어봤잖아요. 가족한테 안 미안해요? 당신 같은 사람이 가족이라면 얼굴 들고 다니기도 창피할 거 같은데."
"이 씨발년이!!"
한 돼지가 유리컵을 집어든다. 설마 그걸로 때릴려고?
"야! 참아!"
"이거 놔!"
"저년 흉자야. 상대하지마. 그냥 우리가 참자."
"이 개 같은 년!"
세 돼지가 사이좋게 아웅다웅하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덕분에 카페 안의 이목은 초집중.
알바생은 아예 경찰을 부를까 갈등하는 얼굴이다.
결국 컵을 들었던 녀석이 다시 내려놓는다.
"와아."
거기에 소냐씨가 감탄.
"요즘 개돼지는 진화했나봐요. 참을 줄도 알고."
"이,이게!"
꾸준히 도발하시는데...왜 그러는 거지 뭐 작전이라도 있는 건가.
"아까부터 계속 말 더듬는 것 밖에 못하던데, 제대로 된 말 좀 해보시죠? 아, 돼지 삼형제한텐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미안해요. 방금 말은 철회하죠."
뿌득.
여자(라고하기에도 미안하지만)들은 뿌득 하고 이를 갈더니 소냐씨와 나를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그냥 가려나보다.
"어머. 이번엔 도망?"
"닥쳐!! 너, 운 좋은 줄 알아! 우리가 착해서ㅡ."
"가 아니라 겁이 많아서겠죠. 당신들이 진짜 착했으면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밖에서 일도 하고 그랬겠지. 하지만 아니잖아요?사육당하는 돼지새끼마냥 주는 것만 받아 처먹고 그런 주제에 쓸데 없이 자존심은 높아서 자기가 자주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착각하며 주변인을 공격하죠.세상에서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묶어서 잉여인간, 나아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 쓰레기'라고 부른답니다."
"이 개녀ㅡ."
"저기요.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언성이 높아지자, 결국 보다못한 옆테이블의 남자가 주의를 주었다.
참고로 언성이 높은 건 돼지들이다. 소냐씨는 줄곧 조용히 말했어.
"하,한남충 따위가...!"
"겁쟁이가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으면 와서 앉아요. 아니면 내가 무서운가?"
부들부들하면서도 결국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는다. 자존심 때문에 도망은 안 치나본데, 실수한 거다. 도망쳤어야지.
"성희롱이니 뭐니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말고, 현실 좀 봐요. 누가 당신들한테 성희롱 해요? 누가 당신들을 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껴요? 과대망상 하지 마. 보는 사람 기분 나빠."
"후...당신 같은 꼰대들 때문에 여권신장이 안 되는 거에요. 뚱뚱한게 죄야? 얼마나 여자를 무시하고 외모로만 보면 그런 말이 나올까!"
오. 그래도 좀 화를 다스릴 줄 아는 녀석이 있었네. 엘리트 쿵쾅인가?
"여권은 외교부 가서 찾으라니까. 말 못알아 들어요?"
"그 여권이 아니잖아!!"
"아니면?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거에요?"
"그래! 이 나라는 남성이 가진 젠더권력의 억압에 의해 여권이 비약적으로 낮은 나라라고요! 성평등지수가 무려 세계에서 117위에 있는 아주 비상식적ㅡ."
"권리는 법학용어인데. 변호사인 나보다 당신들이 더 잘 알아요?"
"버,법학용어일지라도 실제로 사용될 때는 좀 더 포괄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거든요! 대표적으로 여성의 권리 등을 말할 때 말이죠."
"그러니까, 그 '권리'라는 말 자체가 법학용어라고요. 사람이 어떤 특별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법적'인 힘이 바로 권리라는 거에요.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여자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데에 있어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고 남성에 비해 차별받는 '법적인 요소'도 없는데 어딜 봐서 여권이 낮다는 거에요? 여권신장이니 그런 소리 하지 마요. 지금이 20세기야?"
"아니, 그러니까ㅡ."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법적으로 남성과 어떠한 차이도 없고 차별도 받지 아니하며 남성이 하는 모든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당신들이 무슨 여권타령을 하고 있어요? 그럼 진짜로 여권이 없는 중동 여자들은 뭐라고 해야하죠? '우리는 마치 법적으로 완벽하게 남자와동일한 권리를 보장받고 이를 침해당하지 않는 한국 여자들처럼 여권이 낮아'라고 하면 되는 건가요? 그분들에게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법적으로 그럴지라도 실제로 사회에선 그렇지 않다구요!!"
"그럼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워야지 왜 여권을 들먹여요? 그렇게 자극적인 말로 선동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럼 그것부터 이미 힘이 없는 운동이라는 거네요."
"다,당신도 여자잖아!!"
"그래서요? 여자면 당신들의 그 같잖은 논리에 어울려 줘야 하나요? 그렇게밖에 설득을 못하겠어요?"
"으으...당신은 정말 아무런 지식이 없군요! 관련 책 좀 찾아 읽으세요!"
"내가 그 책을 왜 읽어요? 당신들이 읽어서 제대로 그 지식을 습득하고 알려줄 생각을 해야지. 무슨 논리가 그래요? 책은 전파하는 사람이 읽는 거에요. 받는 사람이 읽는 게 아니라."
역시 변호사라 그런지 말빨이 엄청나시네.
이후에도 세 돼지와 소냐씨의 말싸움은 지속되었다.
거의 수십분 가량....대단들 하시네.
"후...당신이랑은 말이 안 통해!"
"역시나 흉자. 전혀 무익한 시간이었노."
"한남충 자지나 빨고 뒤져라!"
당연하지만 논리적 승리는 소냐씨다.
애초에 쟤들은 논리고 뭐고 없는 애들이니까.
지들도 그걸 아는지 결국 먼저 발을 뺀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흥. 뭐?"
"방금 저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한남충 6.9나 빨고 뒤지라고!! 왜? 아깐 신나서 인신공격하더니 막상 자기가 당하니까 기분 나빠요? 아이고 그래쪄여?"
"사스가 논리 없는 흉자."
소냐씨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네모난 전자기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한남충 자지나 빨고 뒤져라!]
[지금 뭐라고 했어요?]
[흥. 뭐?]
[바금 저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한남충 6.9나 빨고 뒤지라고!!]
"자. 유은씨 들었죠?"
"네."
"저는 방금 당신들한테 심각한 모욕을 당했고, 아울러 성적인 희롱까지 당하여 정신적 피해가 막심하니 고소하겠어요."
"뭐,뭐야 갑자기..."
"나,나도 저 남자한테 성희롱 당했다고!!!"
"그래서 증거는요?"
"내,내 말이 증ㅡ."
"아니 그런 거 말고. 이런 거."
손에 든 녹음기를 짤랑 흔든다.
"현실이 얼마나 차갑고 무서운지, 그리고 법이 얼마나 냉정한지 겪어 봤어요? 내 인맥과 실력이면 당신들 인생 망치는 거 일도 아냐."
"이...이...!"
녹음기가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자, 그럼 이제 제대로 사건 얘길 해볼까?"
.
.
매운갈비탕과의 얘기는 꽤 늦은 시간에 끝났다.
무려 밤 11시, 그러니까 카페가 문 닫을 때까지 이어진 것이다.
거기서 나는 소냐씨의목적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목적은 매운갈비집 길드의 완전한 해체. 그리고 다시는 뭉칠 수 없도록 사회적으로 완전히 말살을 시키는 엄청나게 무서운 목적이다. 이를 이용해서 매운갈비탕의 말도 안 되는 사건도 수리한 것.
"저...근데 소냐씨."
"네."
"가능할까요?"
"그럼요. 지성도 없는 사람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죠."
"그게 아니고...그, 세 명에 대해서는 특별히 면책을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게 가능한 거에요?"
소냐씨는 세 돼지에게 사이트 회원들을 선동하여 매운갈비집 길드와 싸움이 나도록 도발하라고 '명령'했다. 서로 쌍욕도 오가고 시위도 하는 등 본격적으로 법적싸움이 될 수 있도록 일을 크게 벌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에 대해 껄끄러운 반응을 보이자, 소냐씨는 도와줄 경우 모든 법적인 책임을 자신의 인맥과 힘을 써서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걸 세 돼지는 믿은 거고.
근데 솔직히...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가능할 리 없잖아요?"
"...."
역시나....
"유나는 재능 있는 아이에요. 앞길이 창창한 아이고요. 그런 유나를 쓸데 없는 길로 빠지게 한 년들을 가만 놔둘 수는 없죠."
"그...렇죠? 역시."
내재돼 있는 엄청난 분노가 느껴진다.
"매운갈비집이든, 매운갈비탕이든, 멍청하게 물고 뜯고 싸우다가 다 같이 말살당하는 거예요. 사회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새,생물학적으로도요?"
무섭네 이사람.
"그보다 시간이 늦었네요. 제가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것 같은데. 태워다드릴 수도 없고...."
여기서 강남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편도라면 상관 없겠지만, 소냐씨는 다시 여기로 와야 한다. 그럼 너무 늦은 시간이겠지.
"그럼 소냐씨 집에서 신세져도 될까요?"
"네?"
"아버님도 뵙고 싶습니다."
"흠...그러죠 그럼. 유나한테는 제가 말해둘게요."
오예! 소냐씨 집에 간다!!
뭐, 물론 오늘 엄청난 일을 한다거나? 만리장성을 쌓는다거나? 이런 건 힘들겠지만 말야. 그래도 이게어디냐. 정보라도 얻을 수 있잖아. 흐흐.
+++
"성욕 증진제 있나요?"
남자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물건을 주문했다.
중년 부부의 원활한 성관계를 위해 개발된 이 물건은,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성욕과 정력을 끌어올려 주는데, 그는 이걸 사용해서 최근 미진한 부부관계를 할 생각이었다.
"15,000원 입니다."
"여기요."
사실 소냐는 그렇게 성적으로 담백하거나 고지식한 여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일 때는 나름 적극저긍로 임하는 여인인데, 몇 년 전 부터 급격하게 바빠지면서 부부관계도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미치는 건 남편인 그.
객관적으로 소냐는 엄청난 미인이고, 그것은 거의 50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게, 아이템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그녀는 20대 초반의 미모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여인을 부인으로 두고 있으면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있겠는가.
"후..오랜만에...!"
그렇기에 그는 일찍 오겠다던 그녀의 말을 굳게 믿으며 기쁜 마음으로 물건을 구입했다.
집에 어떤 인간이 오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