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01. 모험가가 되다.
카앙!
"...."
호기롭게 나간 화살이 맞춘 곳은 들개가 아니었다.
이유나의 허벅지였다.
이른바 절대영역이라고 하는, 미니스커트와 오버니삭스의 사이에 드러난 맨살 부분.
거기에 정확하게 화살이들어갔다.
다행이라면 방어력이 높아서인지 꽂히지 않고 튕겨나갔다는 것일까.
"...죄송합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니까 얼른 쏘기나 해요."
나는 쿨한 그녀를 보고 다시 화살을 매겼다.
이번에야 말로...!
카앙!
"...."
또 맞췄다.
반대편 허벅지를.
"...당신."
이쯤되자, 유나가 뒤를 돌아본다.
"설마 일부러 허벅지만 맞추는 건 아니겠죠? 성희롱 하는 거예요?"
"네? 설마 그럴 리가요!"
"흥."
콧소리를 내며 다시 전면 주시.
다행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번에야 말로! 맞아라!!"
다시 화살을 매기고...
카앙!!
그녀의 허벅지를 맞....
"잠깐!! 왜 허벅지만 맞추는 건데!!"
분노한 표정이 보인다.
"아니...저기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놈의 화살이 이상한 거다!!
난 분명 들개를 조준했다고!
"뿌득...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해요. 여기 던전이에요. 알겠어요?"
"...네."
그녀가 다시 앞을 봤다.
이제 보니까 이 활이 이상한 거 같아.
들개를 조준했더니 옆에 있는 유나씨 허벅지를 맞추잖아?
그렇다는 건...그걸 감안해서 옆을 조준하면되지. 흐흐.
나는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맞추기 위해 유나씨의 몸을 조준했다. 마침 그 옆쪽에도 발광하는 들개가 있다.
검막을 마구 때리고 있어서 움직이는 표적이었지만, 한 번 시도해 보자.
끼익.
자! 가라! 하렘왕이 되기 위한 초석이여!!!
피융!
오오!뭔가 느낌이 좋아!
이대로 가면 드디어 들개를...!
카앙!
"...."
"...."
아...허벅지...뭐지....
"...야. 스무살."
"...네."
"솔직히 말해라. 너 양궁이나 국궁 한 적 있냐?"
"없는데요."
"근데 왜 정확하게 허벅지만 맞추냐?"
"우연입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전 청렴하다고요. 하렘왕을 꿈꾸고 있긴 하지만 초보때부터 마구 날뛸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정말이에요.
"씁...제대로 해요. 쳐 맞기전에."
"...네."
뭔가 점점 살벌해진다.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활시위를 당겼....
"경고하는데, 이번에도 허벅지 맞추면 당장 끌고 나가서 성희롱으로 고소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흡...."
피융!
살벌한 경고에그만 활 시위를 놔 버리고 말았다!
헉! 이번에도 허벅지 맞추면 어떡하지? 그럼 진짜 내 모험가 인생은...아니 내 인생은망하는 거잖아!!
콱!
-크아앙!
"오오!"
다행히 무심코 쏜 화살은 들개의 머리를 꿰뚫었다.
"흥. 이제 그런 식으로 다처리해요. 가급적 빨리. 검막도 영원하진 않으니까."
"넵!"
.
.
.
"으아아...!"
던전을 나왔다.
유나씨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지만, 나는 조금 지쳤다.
그녀가 앞에서 검막을 펼쳐 탱킹하는 동안, 나는 화살을쏴서 들개들을 죽였다.
처음에는 유나씨의 몸을 계속 맞췄는데, 갈수록 그 비중은 줄어들었다.
그렇게 오늘은 들개 36마리를 사냥. 유나씨가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숫자다.
감사할 건 감사하자.
덕분에레벨도 올랐으니까.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
그녀가 말 없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왜...그러시죠?"
"변태."
"네?"
"색마."
"아,아니 전...."
"진짜 최악이네요. 역시 한남 예비군...하아...."
그녀는 혐오를 드러내며 살짝 거리를 벌렸다.
아마 4연속 허벅지를 맞춘것때문이 아닐까.
"저...오해입니다."
"오해는 무슨. 제가 직접 겪었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오해입니다!"
"아아~! 여기 여성의 허벅지만을 노려 화살로 쏘는 초보 모험가가 있어요~! 여성 모험가 여러분 조심하세ㅡ."
"우왁!!"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다 쳐다보잖아!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는데, 웬일인지 순순히 막혀 주었다.
"...."
"이,일단 정산하러 가요!"
나는 뚱한 얼굴의 그녀를 이끌고 정산을 위해 던전기관으로 들어갔다.
"유괴하는 거예요? 저 같은미녀를 유괴해서어쩔 셈이죠? 성희롱으로 고소할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저 같은 왕초보가 어떻게 유나씨를 유괴합니까!"
"흥. 장난이에요."
"...심장 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런 장난 하지 말아주세요."
초보시절부터 성범죄자가 되고 싶진 않다고!
게다가 이 사람은 페미잖아? 성희롱으로 고소한다는 말이 절대 장난으로 들리지 않는단 말야.
"돌아오셨네요."
건물 안에는 아까 나를 안내해줬던 가이드 누나가 있었다.
정산도 하는 건지 창구에 앉아있다.
"유나씨가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다녀왔습니다."
"다행이네요. 도움이 되어서. 유나씨는 어떠ㅡ."
"어떻게 봐도 한남이 될 것 같은 사람을 맡아서 기분이 울적하네요."
"...네?"
미소 그대로 굳어버린 누나를 두고, 유나씨가 들개가죽을 꺼냈다.
총 36개.
당연하지만 일일이 가죽을 벗긴 것이라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여기 한남한테 정산해 주세요. 전 필요 없으니."
"저...한남이란 말은 그만 좀...."
"흥. 그럼 변태라고 하죠."
"...유은이라고 해주세요."
좀 제대로 된 사람인가 싶으면 한남 한남 거리고...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들개 가죽 36장. 개당50센트씩 총 18달러네요."
누나는 생긋 웃으며 내 모험가 통장을 갱신했다.
왜 달러냐면, 던전협력기구, D10의 수장이 미국이라서 그렇다. 보다 원활한 정산과 교류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들어 이런 만행(?)을 저질렀는데, 덕분에 던전 근처에 있는 상가는 모두 달러로 계산한다....
"혹시 가죽 말고 득템한 아이템은 없으신가요?"
"안타깝게도 없네요."
"풋. 일급 18달러...역시 한남."
"...유나씨도 같이했는데요."
초보자를 보고 비웃다니...역시 글러먹은 인성이다.
"...초보자한테 그러시면 안 돼요 유나님."
가이드 누나가 난처한 듯이 웃는다.
"그보다내일 부터는 본격적으로 팀사냥을 나설 거예요."
"네? 팀이요? 팀이 있어요?"
"당연하죠. 제가 당신만 맡는 줄 알아요? 팀으로 하는 만큼 탱커, 딜러, 힐러, 원거리 딜러 등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훈련할 거니까 검막은 기대하지 마요."
"헉...!"
그 편한 검막을 쓰지 않는다니??
"본격적인 사냥이군요. 건투를 빌어요."
가이드 누나가 시원하게 웃어준다.
으으. 뭔가 걱정되는데.
.
.
정산을 마치고, 기관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씻은 나는 대충 차려 입고 밖으로 나왔다.
다름 아닌 유나의 호출이다.
던전 맛보기가 끝났는데 왜 호출했냐면, 팀원을 소개해 주기 위함이란다.
"으으...설마 전부 꼴페미인 건 아니겠지? 그럼 진짜 답 없는데...."
유나씨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한남 거리는 게 거슬리긴 하지만 나름 공사는 구분하는 모양이니까.
하지만 일반적으로 꼴페미 하면 제대로 된 사람을 떠올릴 수가 없다.
그래서 걱정....
"아, 저기 있네. 변태한남 예비군."
날 이상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 넷.
가운데에는 익숙한 유나씨가 있고, 나머지셋은 모르는 얼굴이다.
꽤 수수한 인상인 걸 봐선 나와 같은 초보자.
"안녕하세요. 유은이라고 합니다. 이제 막 모험가가 된 초보에요."
나는 먼저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여자들은 물끄러미 내 손만 쳐다봤다.
"?"
영문을 몰라 고개를 들자, 유나씨가 여자들에게 속삭인다.
"말했죠? 변태라고. 처음 만날 때부터 성희롱을 하려 하다니. 사스가 한남."
"아니!! 누가 변태라는 거예요!! 악수할 뿐이잖아요 악수!!"
"그냥 자기 소개만 하면 되는데 굳이 악수를 하려는 의도가 뭐죠? 응? 허벅지를 연달아 4번 맞춘 이유는? 응?"
"아,아니...그렇게 험악한 얼굴로 다가오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흥 하며 팔짱을 꼈다.
"들은 대로, 여기 이 사람은 오늘 제 팀원이 된 초보자에요."
"아...자,잘 부탁드립니다. 하나에요. 서하나."
"유소라다. 잘 부탁해."
"...."
두 명은 그래도 자기소개를 하는데, 한 명은 말이 없다.
그녀는 물끄러미 날 쳐다보다가 유나씨 뒤로 숨었다.
"아, 얘는 우리 예비 길드원이에요."
"켁...매운갈비집의 예비 길드원이라고요?"
"네. 유은씨가 한남이라 그런지 낯을 좀 가리네요."
그러니까그 한남이라는 소리 좀그만....
"자세한 얘기는 밥먹으면서 해요."
유나씨는 나의 상처받은 가슴을 무시하고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