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01. 모험가가 되다.
01.모험가가 되다!
서기 2030년. 세계는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다름 아닌 '던전'으로 인한 일이다.
강대한 마력을 품고 세계 곳곳에 나타난 던전은 흉악한 괴물들을 도시로 진군 시켰고, 이는 패닉을 불러 오기에 충분했다.
괴물들은 평범한 현대 병기로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지만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 혹은 군사력이 막강한 나라들은 금방 제압했다.
그러나 그런 국가들은 20개국이 채 안 되었고, 나머지는 국토 전역이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이후 던전을 극복한 선진국, 그 중에서도 상위 10개국이 던전 협력기구를 설립하고 다른 나라들을 지원했다.
여차저차해서 던전 출몰 후 2년.
세계는 간신히 진정되고, 괴물들은 던전 안에 갇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던전 밖으로 나온 괴물들은 어렵게나마 현대병기로 상대할 수 있었지만, 던전 안에 있는 괴물들은 현대 병기가 먹혀들지 않았다. 덕분에 던전으로 들어간 군대는 모두 전멸하거나 후퇴.
던전 협력기구를 설립한 D10은 새로운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연구하는데, 그 과정에서 던전이 '게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를 이용하여 D10은,
"각 던전이 있는 곳에 관리기관과 군대를 주둔 시키고 모험가를 육성하고 있지요."
"...뭔가 설명이 건너 뛴 느낌입니다만."
눈 앞에는 어여쁜 누나가 눈웃음을 치고 있다.
그녀는 가이드다.
처음 모험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배경 설명을해주는 거지.
근데 뭔가 설명이 성의없다.
"호호. 솔직히 '게임'을 해보셨다면 대충 감 잡히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무책임한 말을 한다!
"제가 게임을 안 해봤을 수도 있잖아요."
"에이...후줄근 한 게 게임 폐...아니 열심히 하시는 분처럼 보이는데요. 덤으로 네다씹 속성까지."
"...."
훅 들어온다 이 누나.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지.
"외견 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아니됩니다."
"호호. 농담이에요. 사실 저도 잠깐 모험가로 활동한 적이 있거든요."
그녀는 살짝 얼굴을 내밀더니 검지로 왼쪽 눈을 가리켰다.
"제게는 [관찰]이라는 재능이 있답니다. 앞에 있는 분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그리고 뭘 하다 왔는지 대강알 수 있어요."
"큼..흠흠. 그..렇군요."
"참고로 어젯 밤에는 수많은 컴퓨터 여친을 탐험하시며ㅡ."
"으아악!!"
뭘 말하는 거야!!
"후후."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데....
"그냥 넘겨짚은 건데 진짜였을 줄은 몰랐네요."
"...."
"아, 그래도 뭘 하고 사는 사람인지 대략적인 느낌은 받을 수 있어요. 이건 사실이랍니다."
"...흥 아무리 그렇다고 설명을 대충 건너뛰다니.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닙니까! 직무유기 아닌가요??"
"인생 대충 사는 거죠 뭐."
"...."
뭐야 이 여자.
심하잖아.
나름 손님인데 너무 대놓고 본심을 드러내는 거 아냐?
"뭐, 장난은 여기까지 하죠."
나의 마음이 전달된 걸까.
그녀는 장난스런 웃음을 치워 버리고 진지한 얼굴을 드러냈다.
"정말 후회 안 하시는 거죠?"
"네."
"모험가가 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거예요. 몬스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사람이나 믿었던 동료들에게까지 해를 입을 수 있죠. 그런 상황에서 회사와 국가는 최대한 노력을 하겠지만, 100% 구제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요. 오히려 낮은 확률이죠."
"상관 없습니다. 전 꿈이 있으니까요."
"안에는 그 흔한 CCTV도 없답니다. 군대도 없고, 경찰도 없어요. 오직 모험가 본인이 달고 가는블랙박스만이 기능할 뿐이죠."
"괜찮습니다. 각오는 이미 되어 있어요."
그녀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물어왔다.
설명을 대충넘긴 것 치고는 나름 친절했다.
"마지막으로, '유은'님은 미필인 상태로 모험가에 지원하셨으며, 원하신다면 최소 2년간 모험을 한다는 조건으로 군 면제가 됩니다. 물론 2년이 되기 전에 포기하신다면 군대를 가셔야 하고요, 이 경우 1년 10개월 만에 포기하셨다 해도 군대에서 다시 18개월을 채우셔야 합니다."
"아. 끔찍하네요 군대."
"호호...모험가보단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물론 군대도 힘들겠지만 진짜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우는 모험가보단 나을 수도 있다. 이 던전이라는 녀석은 하루에도 몇 명씩 사망자를 배출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난 그래도 군대가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여자가 없잖아..;
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여자가 없잖아....
뭐 '여군 있는데?'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들은 군인이지 여자가 아니다.
군대는 여자가 없는 곳이다.
그리고 판타지가 없는 곳이다.
감금 되어 있으며,
착취 당하고,
멸시 당하고,
갑질 당하는,
정말 인생에 있어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곳이다.
심지어 잘못하면 병신 돼서 나온다.
그에 비해 던전은?
병신 될 확률이 현저히 높고,
사망할 확률도 현저히 높고,
레벨 낮으면무시 당하고,
스펙 낮으면 무시당하고,
갑질도 당하지만,
최소한 보상은 두둑하다.
득템 하나 잘 해오면 그대로 인생이 쫙 핀다고.
그런데 군대?
하....
"2년간 모험가를 하고 군대를 면제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절차를 밟아드릴 게요."
.
.
.
모험가 등록이 끝났다.
그녀는 나를 이끌고 건물 어딘가로 향했는데, 아마 튜토리얼을 할 모양이다.
모험가는 매우 위험한 직종이기 때문에 각 국가기관과 회사가 협력하여 튜토리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당연하지만 필수 참여이며, 기간은 한 달.
"튜토리얼 기간에는 혼자 던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지정된 보호자와 동반해야 하죠."
보호자라 하면 은퇴하여 아예 이쪽으로 직종을 옮겼거나, 모종의 대가를 받고 보호자 노릇을 하는 현역 모험가다.
운이 좋으면 괜찮은 사람을 만나 기초를 단단히 쌓을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남자는 싫다고 했을 텐데요?"
눈 앞의 이 여자처럼 혐오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는 최악의 상대를 만날 수도 있다.
정말이지 그럴 거면 왜 보호자 신청을 한 건지...그냥 동료랑 모험하면 되잖아??
누나는 그녀에게 쩔쩔매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현재 다른 분들은 인원이 꽉 찬 상태라...이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유나님?"
"칫."
여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예쁜데...몸매도....
"대신! 보수를 10% 더 얹어 드릴게요!"
"...이번만이에요."
누나는 10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연신 감사를 표하더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
"...."
남은 건 나와 이 여자.
나이는 음...나보다는 누나겠지.
"몇 살이에요?"
"네?"
"몇 살이냐고요."
그녀가 대뜸 물어왔다.
"스무...스무살입니다."
"...그래요? 그나마 낫네."
살짝 풀어지는 표정.
나이가 어려서 좋다는 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죠. 잘 보고 배우도록 해요. 괜히 쓸데 없는 한남 되지 말고."
"...네?"
헐.
잘못 들었나?
"아직 뭘 모르는 스무살이니까 이런 말도 해주는 거예요. 사회에 찌들어 평범한 한남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을, 제가 고쳐 드리는 거라고요."
"...."
"아, 스무살이면 군대도 안 갔겠네요? 모험가 2년 채우면 군대도 면제 해준다면서요? 요즘 진짜 편해졌다니까. 하긴 뭐. 군대 보다야 모험가가 백 배는 힘들지."
"...."
망했다....
이 여자....
꼴페미다....
얼굴이 이쁘면 뭐해.
몸매가 좋으면 뭐해.
꼴페민데!!!
꼴페미가 뭐냐고?
음. 두 글자로 설명해 줄게.
민폐.
응. 그거야.
민폐.
"왜 말이 없어요?"
"아...아니에요."
나는절망한 나머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