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4권) (16/20)

16장.

“마 변호사님은 결혼하셨어요?”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매일이 그랬듯 무표정한 얼굴로 사무실 복도를 지나고 있던 재희는 걸음을 멈추었다.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수기 근처에 모여 종이컵을 들고 있는 두 명의 등이 보였다.

“손가락에 반지가 없으니까…… 미혼이시죠?”

하나는 선배 변호사 정현철이었고, 다른 하나는 막 연수원을 수료하고 들어온 막내 변호사다. 재희는 눈을 좁혔다. 저 막내 이름이- 이동완이라고 했나? 대학 동문 후배라는 것은 아는데-.

“선배 사생활에 무슨 관심이 이렇게 많아?”

후배의 노골적인 호기심이 귀찮다는 얼굴로 현철이 다시 물었다.

“마 변호사한테 관심 있어?”

“네, 무척 많습니다.”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후배의 태도를, 재희는 무심히 응시했다. 점차 연차가 쌓여 가면서, ‘요즘 세대’의 자유분방함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서른둘 된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마 변호사님에게 직접 묻기에는 실례가 될 수 있어서요. 선배님, 이런 질문 드려 정말 부끄럽지만-.”

재희는 더 지켜보지 않고 문을 통통 노크했다. 돌아본 후배가 찔끔했는지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재희는 덤덤히 물었다.

“시보 때 이상하게 꼬박꼬박 사무실에 나온다 싶더니, 우리 사무소에 놀러 다니려는 의도였어요?”

후배 변호사는 마치 군기 들어간 사람처럼 죄송하다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받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재희는 말없이 도망가는 후배의 등을 응시하기만 했다.

“하다 하다 이젠 연하에게 대시도 받고……. 대단해, 후배님.”

무미건조한 시선을 돌려 현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가벼운 흥미를 띤 미소만 짓고 있었다.

재희는 그에게 다가가며 덤덤히 응수했다.

“놀리지 마세요, 선배님.”

“쟤 나쁘지 않다? 저 나이에 사시 붙기 어디 쉽나. 거기다 저 집 형제들 다 판검사고, 아버님이 대기업 이사라던데?”

“그럼 선배님이 데려가세요.”

“난 여기까지 곱게 데려왔잖아.”

“선배가 아니라 조 변호사님이 데려온 거죠.”

“소장님 대신 돌봐 주는 게 누군데?”

재희는 더 대꾸하는 것 없이 종이컵을 집었다.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그렇게 건조한 얼굴로 연거푸 숟가락질을 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정수기 너머 달력에 잠시 닿았다. 그 시선을 따라간 현철이 물었다.

“내일부터 사흘 쉰다고 했던가?”

“네.”

“사무실에서 이십사 시간을 사는 사람이 웬일이냐고 다들 궁금해하던데.”

“일은 없어요. 그냥 좀 쉴까 해서요.”

“웬만해서는 연달아 사흘 쉬는 만용이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묻겠는데, 그것도 너한텐 못 하겠네. 그동안 고생했다. 잘 쉬고 와.”

그 말에 습관적인 미소를 지었지만, 재희는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고생이란 단어는, 자신 같은 사람에게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고.

재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커피를 마셨다. 벽에 걸린 달력 속 검은 글씨, ‘팔월’이 유독 눈을 찌르는 것은, 지나간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달력의 한구석에 적힌 연도를 응시한다. 십일 년. 가만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장 십일 년.

재희는 눈을 감았다.

길고 지독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십일 년’이라는 단어는 너무 짧았다.

사흘의 휴가를 앞둔 그날 밤, 재희는 일찍 퇴근했다. 일찍이라고 해 봤자 그간에 비추어 그랬다는 것이지, 실상은 저녁을 넘겨 아홉 시가 지난 시각이었다. 한참을 차로 달려 마침내 목적지에 주차했을 때는 이미 열 시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재희는 물끄러미 정면을 응시했다. 시야에 ‘연탄 구이’라고 쓰인 간판이 들어왔다. 재희는 텅 빈 가게 안을 응시하다 잠자코 걸음을 옮겼다.

“……너 진짜 질기구나.”

재희는 음성이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재석이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 있다. 목소리만큼이나 지친 얼굴로, 재석이 그녀를 보며 한숨을 흘리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너 때문에 못 지낼 판인데.”

재희는 말없이 입가를 끌어 올렸다. 재석이 앉은 테이블 옆에 앉으며 물었다.

“혼자 마감하시는 거예요? 사모님은 어디 가셨어요?”

“애들 때문에 잠시.”

재석은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똑같은 소리 앵무새처럼 할 생각이라면, 그만해 주지 그래. 오늘 엄청 바빴거든. 피곤해.”

“오늘은 다른 일로 왔어요.”

“대단하네.”

“정말이에요.”

의심하는 눈초리로 응시하는 재석에게, 재희는 담담히 말했다.

“올해 광복절 특사가 있어요.”

“그런데?”

“한영이요.”

수건 쥔 손을 놀리던 재석의 몸이 멈칫 굳는다.

재희는 그런 재석을 주의 깊게 보면서도 입안으로 꺼칠꺼칠하게 맴도는 한영의 이름을 곱씹고 있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불러 본 탓일까.

“……이한영이 특사 대상자야?”

“네.”

“잠깐만, 광복절이면 바로 내일이잖아.”

“네.”

재석이 한숨을 흘렸다. 오랫동안 가슴에 묵혀 둔 숨을 그제야 내놓는 것처럼.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잘됐네. 똑똑한 놈이 평생 거기서 썩는 건가 싶었는데.”

“…….”

“몇 년이나 있었지?”

재희는 조용히 답했다.

“십일 년이요.”

“……고집 센 놈. 진작 전향서 썼으면 더 빨리 나오는 것을.”

“한영이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억울해도 일찍 형살이 끝내 보겠다고 전향서 쓰는 사람들은 뭐가 돼?”

“……”

“너 비전향 장기수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알아?”

“알아요.”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녀가 근무하는 법률 사무소의 소장 조 변호사나 마재희나, 인권 단체에 법률 지원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단체들 중에는 재소자들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지원 활동을 하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의 법률 지원을 담당하다 보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재석은 감이 좋았다. 재희가 보이는 것만큼 무감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만나 봤어?”

괜찮으냐는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재희는 무뚝뚝하게 거짓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교도소 들어가곤 한 번도 못 봤어요.”

한영은 면회 금지 대상자였다. 면회 신청부터가 불가능했다.

어디까지나 처음 삼 년간은, 그랬다는 것이다.

“……사람 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나.”

“보고 싶지 않은 사람 피하는 거야 개인의 선택이죠.”

재석이 빤히 재희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다.

그러나 재석은 더 말 붙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자칫 무관심해 보이는 그 몸짓이 노골적인 회피라는 것을 재희는 알고 있었다. 몇 달 전, 그녀가 가까스로 그를 찾았을 때도 이재석은 그랬다. 대학 후배의 등장 앞에서 지금과 똑같이 고개부터 돌렸다.

“……그래, 너희들 일이니까.”

“…….”

“대신 난 이곳에 없는 사람이야. 이한영 나와서 만나더라도 내 이름은 꺼내지 마.”

“만나고 싶지 않으세요?”

“만나고 싶지 않아. 네가 이한영 소식을 여기까지 와서 전하는 속내를 아니까.”

“…….”

“……가게 내느라 빌린 대출이 아직도 남았어.”

재석이 그녀의 시선을 보지 않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애들도 아직 어리고. 나중에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도 갈 건데, 애 둘을 먹여 살리려면 내가 멀쩡해야 돼. 돈도 한참 벌어야 하고.”

재희는 말없이 재석을 보다 눈을 감았다. 어차피 오늘은 한영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다. 그러니 재석이 처음으로 드러낸 진심 어린 거절 앞에서, 낙심해서는 안 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재희는 눈을 떴다. 재킷에서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렇게 등을 돌리면서도 재희는 예감했다. 이재석은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지난 세월과 다른 변화가 일어나리란 신호였을까? 재석이 그녀의 등 뒤로 충고를 던졌다.

“그만하고 너도 네 인생 살아.”

재희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재석의 가게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길은 재희의 체감상 길지 않았다. 실상은 그럴 리 없었지만, 재희는 그만큼 타성에 젖어 그녀의 오피스텔 집 문을 열었다. 깜깜한 거실이 그녀를 반겼다. 한편에 희미하게 비쳐 들어오는 탁상 등의 불빛에 의지해 재희는 거실에 들어섰다.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려던 재희는 곧 걸음을 멈추었다. 소파에 작은 인영이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부터가 귀엽다. 재희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굽혀 잠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앳된 볼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재석의 목소리가 부지불식간 뇌리를 스친다.

‘그만하고 너도 네 인생 살아.’

그러나 재희가 생각하기에, 그 말은 이재석이 품은 죄책감만 노골적으로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다시는 그 옛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그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뜯어 고치고 살았는데.

재희는 아이의 말간 볼을 슬쩍 눌러 보았다. 아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잠꼬대를 했다.

“엄마…….”

재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미소는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삭막한 얼굴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를 안아 들었다. 네 살이 되니 부쩍 무거워져 잠시 비틀거렸지만, 다행히 아이는 깨지 않았다.

그대로 안방으로 향했다. 반쯤 열린 문 안에서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재희는 문을 발로 슬쩍 밀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 너머로 나지막이 말했다.

“은호 잠들었어.”

방문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곧 문이 활짝 열렸다.

“왔어?”

“응.”

“미안, 애가 소파에서 기다리겠다고 떼를 써서…….”

“괜찮아.”

재희는 잠든 아이와 함께 그대로 안방에 들어갔다.

* * *

정권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을 거치면서도 광복절의 아침은 매년과 같았다. 집이며 가로등마다 태극기가 걸려 바람에 나부꼈다. 일찍부터 나들이를 나가는 차들로 도로에는 제법 차가 많았다. 재희는 휴가 첫날의 느긋함을 즐길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굳이 붐비는 도로를 비집고 고척동으로 향하면서도 마음은 현실감 없이 붕 떠 있었다.

영등포 교도소 앞은 번잡했다. 특사가 있는 날은 으레 기자들이 찾아오곤 했지만, 오늘은 남달리 붐볐다. 모두 한 인물만 바라보고 온 이들이었다. 억울하게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십일 년을 갇혀 있다 겨우 출소하는 것만으로도 드라마틱한 인생인데, 옥중에서 쓴 시집 세 권이 전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팔십 년대의 기자들마저 혹할 만한 기삿거리를, 밀레니엄을 앞둔 기자들이 놓칠 리 없었다.

“이한영 씨! 한 말씀 해 주세요!”

“이한영 씨!”

기자들이 치켜든 사진기가 번쩍번쩍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 속에서 재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인 순간밖에 없었다. 그녀가 다니는 법률 사무소의 소장인 조 변호사가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 틈 사이로 얼핏 보였다. 로만 칼라를 걸친 신부들이 웃으며 박수 치는 모습은 그래도 그중 가장 잘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어떻게든 보기를 원하는 얼굴만큼은, 보이지 않았기에-.

재희는 눈을 감았다. 제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만 청각에 집중하면 목소리가 들릴지 모른다. 한영이 입을 떼기 시작했는지 요란하던 기자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그래서 재희는 어렴풋하게나마,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재희는 온몸을 타고 오르는 찌르르한 감각을 느꼈다. 통증을 닮은 감각이었다. 아니, 그것은 고통이었다. 재희는 눈을 떴다. 한영이 있는 방향을 다시금 바라본다. 검은 머리통들과 사진기 사이로, 언뜻 한영의 흰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재희는 더 버티지 못했다. 등을 돌렸다.

얼마나 운전대에 머리를 묻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과거를 헤매는 머리가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렸으나, 재희는 그조차도 통증으로 느꼈다.

재희는 잠자코 고통에 순응했다. 한영이 형을 확정받은 순간부터 피를 말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기억이 새삼 떠올라 이렇게 괴로운 걸까. 어쩌면 그녀는 또다시 문제의 본질에서 회피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옛날의 안 좋은 버릇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왔는지도.

어차피 이제 다 끝이다. 아니, 새로운 시작이다. 십일 년 만에 사회로 나왔으니까, 한영에게는 사회 적응이 필요했다. 그것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검진도 받아야 하고-. 확실히 앞으로 해야 할 것을 떠올리니 고통스레 뛰던 심장은 차츰 진정세로 돌입했다. 재희는 심호흡을 깊이 했다.

그 무렵에야 귀에 닿는 소음을 인지했다. 진동 소리였다.

운전대에 머리를 댄 채 고개만 옆으로 틀었다. 옆 좌석에 둔 시커먼 삐삐를 잠자코 내려다보던 재희는 손을 뻗었다. 푸른색 화면에 뜬 전화번호를 기계적으로 확인했다.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이동완입니다.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전화를 걸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정수기 앞에서 본 막내 변호사였다.

-조 변호사님께서 찾고 계시는 사건 기록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마 변호사님이 가지고 계시다 들어서요.

재희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따로 갖고 있는 사건 기록이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집에 두었는데. 그 기록을 조 변호사님이 왜 찾는 건가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

“…….”

-저, 실례만 안 된다면, 편하신 시간에 제가 잠시 변호사님 댁 근처로 찾아봬도 될까요?

“……그러세요.”

한 시간 뒤 어느 카페로 오라 말하자 동완의 목소리가 급격히 밝아진다. 그녀는 그저 묵묵히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재희는 공중전화 부스 밖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 많던 기자들은 전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삭막한 교도소의 담이 저 멀리 보인다. 저 안에 갇혀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다, 그 안에 갇혀 있다 나온 단 한 사람을 떠올린다.

한영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조 변호사가 식사를 대접한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쯤 인권 단체의 사람들과 천주교 신부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네 기분은 어떨까.

십일 년이나 널 가두고 있던 철창에서 비로소 나왔으니, 날아갈 정도로 기쁠까?

재희가 비단 보따리에 감긴 사건 기록을 들고 카페에 나타난 순간, 동완은 화색을 띠었다. 잠시 시간 있으면 차 한잔하고 가라는 사무적인 친절 앞에서는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눈치를 비쳤다. 후배가 그러건 말건 재희는 건조했다.

동완이 잠시 기록을 확인하는 사이, 창밖을 보았다. 다채로운 꽃들로 조성된 화단이 보인다. 쨍쨍한 햇살 아래 원색을 자랑하는 꽃들 속에서 나비가 날갯짓하고 있었다. 재희는 그 광경을 무심히 보다 불현듯 깨닫는다. 나비를 본 것이, 까마득할 정도로 오랜만이라고.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조차 오랜만이었다. 시간에 쫓기듯 살았다. 일분일초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랬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재희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짧게 단발 친 머리로 하얀 피부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푸른색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를 걸친 채 삭막한 얼굴만 하고 앉아 있는 오피스의 여인. 그것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알면서도 재희는 찬찬히 살폈다.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이제야 새삼스럽게 궁금해지는 이유는 왜였을까.

“마 변호사님.”

재희는 창에 비친 자신을 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동완이 미안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오늘 휴일이신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디 다녀오는 길이셨습니까?”

“네.”

“저 때문에 급하게 오신 거라면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후배의 얼굴에는 진정으로 후회하는 빛이 없었다.

“잠깐 친구 보러 간 거였어요.”

“휴일에 가장 먼저 만나는 친구니 많이 각별하시겠어요.”

“그 친구 덕분에 변호사가 될 생각을 했어요.”

덕분에? 재희는 속으로 반문했다. 무심히 나온 말이 일순 못 견디게 괴로웠다.

“……이 변호사님은 어때요?”

“아,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활기차게 이어 나가는 동완의 목소리를, 재희는 묵묵히 귀담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변호사가 꿈이었다, 라는 레퍼토리는 윤색과 각색이 잘 버무려진 하나의 소설 같았다.

“-랬던 거죠. 선배님은 어릴 때 어땠어요?”

호칭이 ‘변호사님’에서 ‘선배님’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재희는 모르는 척 대꾸했다.

“또래에 비해 둔한 아이였어요. 그래서 놀림 많이 받았고요.”

“선배님이요? 상상이 안 가요.”

재희는 대꾸할 말이 없어 그저 옅게 미소 지었다.

“선배님은 언제부터 변호사가 될 생각을 하셨어요?”

“대학교 중퇴할 때요. 그 전까지는 사법 고시는 남 얘기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어, 그럼 법학과도 아니시겠어요.”

“네. 국문학과 출신이에요.”

“와…… 독학해서 합격하신 거예요?”

“네. 그래서 공부 기간이 길었어요.”

후배 변호사는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러나 재희 스스로가 보았을 때 그녀의 이야기는 남들 듣기에 지루한 것이었다.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법전을 처음 잡기 시작했다. 지워 낸 줄 알았던 죄책감이 계속해서 그녀로 하여금 법전을 잡게 했다.

“……그때는 왜 자꾸 법전을 읽게 되는 건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알았어요. 저는 그 당시에 법전 속에서만 보이는 명확함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잘 모를 때니까 법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거죠. 현실과 다르게 법전 속에서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분명한 인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선배님은 현실에서 보길 원하는 세상을 법전에서 찾았던 거네요.”

“네.”

재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랬다, 그때는.

애초 계획보다 대화가 길어졌단 생각에 재희는 말을 돌렸다.

“……빠진 건 없나 다 확인했어요?”

“아, 네. 금방 하겠습니다.”

동완은 말을 더 걸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재희는 그것을 못 본 척했다. 동완도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종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재희는 찻잔을 내려다보는 척, 그런 동완을 주시했다. 동완의 시선은 종이 위를 헛돌고 있었다.

그때 불쑥, 동완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이 사건 기록을 어떻게 보관하게 되신 겁니까?”

재희는 적당한 사실만 골라 대답했다.

“이 사건을 안타깝게 여기신 조 변호사님이 구해 주셨어요. 그리고 제게 맡겼죠.”

“왜 선배님에게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피고인에게 억울한 판결이니 나중을 위해서 사건 기록을 보관하기는 해야 하는데, 피고인에게 가족이 없었거든요.”

재희는 무덤덤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제가 보관하겠다고 했어요. 나중에 피고인이 재심을 원한다면 제가 맡을까 해서요.”

동완이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서는 제 손안에 있는 종이를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눈치다. 재희는 그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동완이 물었다.

“선배님은 이 사건, 재심이 가능할 거라 보세요?”

재희는 조용하지만, 확고한 음성으로 답했다.

“네.”

“선배님은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믿고 계시나 봐요.”

재희는 가만히 동완을 보았다. 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이상했는지, 동완이 서류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재희는 그제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조작된 것을 안 믿는 게 더 이상한 사건 아닌가요?”

“저, 죄송합니다. 제가 이 사건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라서요.”

재희는 차분히 물었다.

“이 사건 기록 처음 보았을 때, 이상하지 않았어요?”

“……기록이 많지 않은 게 이상하긴 했습니다.”

“맞아요.”

재희는 카페 테이블에 놓여 있는 기록을 응시하며 설명했다.

“진상을 논하기 이전에, 절차에서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어요. 안기부에서 검찰로 넘어간 의견서의 내용이,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과 토씨 하나 다른 것 없이 똑같아요. 재판부의 판결문도 마찬가지죠.”

“……검찰이든 재판부든, 다 한통속이었던 거네요.”

“재판정에서 피고인에게 진술의 기회도 주지 않았어요. 변호인도 없었죠.”

“……터무니없네요.”

“네. 터무니없이 신속했죠.”

재희는 눈을 내리떴다.

“저, 선배님, 그렇다면 무고한 사람이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다는 건데…… 피고인은 이적 행위를 자백하지 않았습니까?”

“……자백의 보강 법칙을 모르진 않을 텐데요?”

“그거야 절차로는 그렇지만, 자백이 진짜였을 가능성도…….”

동완은 말을 하다 말고 재희의 얼굴을 살폈다. 재희는 무표정하게 동완의 시선을 맞부딪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문득 떠오른 깨달음을 곱씹고 있었다.

대다수가 무고함을 믿어도, 지금의 동완처럼 의심을 되풀이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아지겠지. 그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그래서 무심한 의심조차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한영이 너는 정말 괜찮을까.

“……자백은 거짓이었어요. 이한영 씨는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결백해요.”

재희는 고요히 답했다.

그녀가 손을 뻗자 동완이 눈을 크게 떴다. 당황해하는 후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희는 사건 기록을 끌어다 곱게 비단 보따리로 감쌌다. 십일 년이라는 세월을 버텨 낸 종이에서 올라오는 묵은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재희는 그 냄새에 익숙해진 것에 문득 먹먹해졌다.

이 사건 기록은 언제쯤, 세상에 다시 드러나게 될 수 있을까.

언제고 애타게 궁금해하던 질문을 다시금 속으로 중얼거리며, 재희는 동완에게 물었다.

“조 변호사님이 제게 이 기록을 주실 때 하신 말씀이 뭔지 알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구명줄이 될지도 모르는 기록이다. 함부로 남에게 넘기지 말고, 보여 주지 마라.’ 조 변호사님이 제게 그러셨죠.”

말문이 막힌 동완을 보며 재희는 물었다.

“그러니 조 변호사님이 찾으시는 기록은, 제가 그분께 직접 전해 드릴게요.”

“…….”

“더 묻고 싶은 것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재희는 무뚝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동완이 서두르다시피 목소리를 높였다.

“저, 선배님.”

“…….”

“저 선배님께 진심으로 마음 있습니다. 그래서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따로 뵙고 싶었던 겁니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재희를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흥미진진해하는 시선 속에 노출된 기분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차분하지만 온기는 없는 어조로 그녀는 물었다.

“제가 미혼인지 기혼인지는 알고 그런 말 하는 건가요?”

“선배님이 기혼이시더라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

“선배님께서 제게 조금의 마음도 없으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부담스럽게 굴지는 않겠습니다.”

무서운 애가 들어왔네.

재희는 냉담히 평했다. 그러나 능숙히 자신의 생각을 숨겼다.

“한 번도 이동완 씨를 남자로 본 적 없어요. 직장 동료와 사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고요.”

낙심한 얼굴빛을 보이는 후배를 둔 채, 재희는 몸을 돌렸다.

카페를 나서며 비단이 제대로 감싸지 못해 드러난 지면을 손끝으로 쓸었다.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피로감을 닮은, 거칠거칠한 감촉이었다.

자동차를 돌리기 전까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어느덧 노을이 지는 하늘을 확인했다. 재희는 담벼락 밑에 주차하고 자동차 키를 뽑아냈다. 그러나 선뜻 차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심곡동은 십일 년이 지나는 동안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했다. 이 층짜리 양옥집이 모여 있었던 마을은 지난 오 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공사장의 먼지만 날리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완연한 빌라촌이 되어 있었다.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단 한 집을 제외하고는.

재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철문을 응시했다. 창살 너머를 안 그런 척 살폈다. 그러나 그녀가 어떻게든 보고자 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재희는 망설이다 차의 창문을 내렸다.

희미하지만, 담배 냄새가 났다.

“…….”

재희는 눈을 감았다.

문득 궁금해한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십일 년 만에 돌아와 밀어 연 철문은 부드럽게 열렸을 것이다. 녹슨 흔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마당의 잔디는 어제 깎은 것처럼 정리되어 있었을 것이고, 금 간 유리 하나 없었을 것이며, 먼지 앉은 기물이라곤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집 내부 또한 늘 사람이 쓰는 집처럼 깨끗했으리라. 새로 산 수건, 이불, 뜯지 않은 속옷, 옷가지, 그 모든 것이 구비된 집을 보며-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은 나무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과거와 똑같은 너의 집을 보며.

아직도 미련을 떨고 있냐며, 쓴 미소를 지었을까?

재희는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정면으로 향했다. 지나가던 부부 한 쌍이 그녀를 은근슬쩍 눈여겨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의 집을 엿보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 의심스러웠겠지. 재희는 그들 부부를 이해했다. 당신들이 살고 있고, 지금 들어가려는 그 빌라가 내가 예전에 살던 집이다, 털어놓아 봤자- 그들은 그렇게 의심하는 눈으로 볼 것이다.

그래서 재희는 시동을 켰다. 자동차는 마지못한 것처럼 엉금엉금 기어 이한영의 집을 지나갔다. 예전 마재희의 집이 무너진 자리에 세워진 빌라마저 지나는 순간, 재희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자신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예감을.

그럼에도, 그녀는 액셀을 밟았다.

* * *

오피스텔에 텔레비전의 어스름한 불빛만 일렁였다. 막 집에 도착한 재희는 어둠이 짙게 내린 소파 위에 주저앉은 채였다. 씻지도 않고 텔레비전을 튼 참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텔레비전을 트는 것은 그녀의 습관이었다. 늘 사무실과 재판정을 오가며 지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챙겨 들을 시간이 이른 새벽 아니면 자정밖에 없었다.

재희는 물끄러미 뉴스 앵커를 보았다. 그것을 보았다고 표현해야 하나? 재희는 그런 의문조차 되뇌지 못한 채 멀거니 정면만 바라보았다. 딱딱한 목소리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도 전해 주지 못했다. 시간도 공간도, 그녀에게는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뇌리 속 한구석을 건드리는 한마디가 들려와 눈을 떴다.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를 응시했다. 시적인 단어가 아나운서의 냉정한 어조에 실려 담기고 있었다.

「방금 제가 읊은 시는, 오늘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이한영 시인의 시, ‘바람 부는 시간’입니다.」

아나운서가 여운을 주듯 말을 끊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십일 년의 복역을 마치고 나온 이한영 시인은 오늘,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할 역사 속에서, 다른 이들처럼 살았을 뿐이다. 억울하지는 않다. 다만, 편해지기 위해 잊고 살 생각은 없다.’」

재희는 건조한 눈으로 아나운서의 얼굴을 보았다.

「옥중에서도 민주주의를 노래한 젊은 시인의 말처럼,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오늘 하루 또 흘러가고 있습니다. 광복을 맞은 지 사십육 년이 지난 오늘,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멘트가 마무리될 무렵, 재희는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한영이 지금 텔레비전을 끄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왔어?”

안방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재희는 고개를 들었다. 인혜가 문간에 서 미소 짓고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깼어?”

“아니. 안 자고 있었어. 은호가 잠투정을 해서.”

“……지금은 자?”

“겨우 잠들었어.”

“오늘은 유치원에서 아무 일 없었대?”

“아니. 얘가 오늘 유치원에서 남자애들하고 치고받고 싸운 거 있지? 소매에 아주, 남자애들 코피를 다 묻히고……. 얘는 대체 누굴 닮은 걸까?”

재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나는 알 것 같은데…….”

“어머, 재희야. 난 패싸움은 안 했어.”

인혜가 우아하게 손사래를 쳤지만, 재희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인혜의 과거에 얽힌 진실은 언제나 재희의 머릿속에만 있는 듯했다.

“맥주 사 놨는데. 마실래?”

마시고 싶은 날이었다. 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의 느긋한 자리였다. 변호사인 재희는 물론이고, 화장품 회사의 영업을 뛰며 아이까지 키우는 인혜는 하루하루가 휘몰아치듯 정신없었다. 그 탓에 일 년 전 인혜가 은호를 데리고 재희의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이래, 둘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 기억조차 드물었다.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조차도, 숨 가쁜 현실에는 사치였다.

“우리 대학교 때, 남자애들이 술 마실 때면 왜 저러나, 하고 이해를 못 했는데. 기억나?”

인혜가 네 번째 맥주 캔을 따며 물었다.

재희는 오래 걸리지도 않고 기억을 떠올렸다.

“응.”

“셋 다 술주정이 가관이었잖아.”

인혜를 따라 재희도 조용히 웃음 지었다. 그랬다. 다들, 술버릇들이 안 좋았었다.

“왜 있잖아, 영재하고 상현이가 가끔 술 더 사 오겠다고 동네 돌아다니고 그랬잖아. 그때마다 노래 고래고래 부르고 다녀서 동네 아저씨들한테 많이 혼났는데.”

“혼난 것보다는 많이 맞았어. 노래 못하면 입 좀 다물고 다니라고.”

그 말에 인혜가 낭랑히 웃다 말고 중얼거렸다.

“……그때 그 사람들 전부 다 어디로 갔나 몰라.”

“…….”

“하기야, 영원한 우정 어쩌고 하던 놈들도 자기 갈 길 가 버리고 소식조차 없는데, 어쩌겠어.”

인혜의 혼잣말이 유독 아프게 속을 찌르는 밤이었다.

이 년 전 인혜를 법원에서 우연히 만나기 전까지, 재희는 친구들을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다. 세월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갈라놓았다. 마 사장의 성화에 끌려가듯 이사를 간 마재희처럼, 모두가 하나둘 떠났다. 한영에게 일어난 비극은 그만큼 파급력이 컸다. 부모들은 저들의 자식들만 챙기느라 바빴다.

모두가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서도 연락은 가까스로 닿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쁜 일상으로 점차 뜸해지고, 적어 놓고 외워 둔 전화번호가 바뀌고, 불타고, 사라지고-. 그렇게 시간 속에 친구들은 서로를 잃어버렸다.

어쩌면 서로가 보기 괴로워 그렇게 차차 끈을 놓아 갔던 건지도 모른다. 그 시절은 모두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으므로.

“오늘 이한영 보러 가려고 휴가도 냈어?”

아마도 이 술판의 가장 큰 목적이었을 화제를 인혜가 입에 올렸다.

“……응.”

“그래서 봤어?”

“아니.”

“……앞으로 계속 안 볼 거야?”

인혜는 잠시 슬픈 기색을 드러냈다. 인혜는 그간 마재희가 영등포 교도소로 보냈을 편지를 떠올렸으리라. 바쁜 시간을 쪼개서 교도소까지 찾아갔다 허탕 치고 돌아온 시간도 헤아렸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재희는 다른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언젠가 날아온 한 통의 편지였다. 아주 짤막한 문장이, 유려하고도 그리운 글씨로 적혀 있었던- 그 편지.

더는 찾아오지 마.

재희는 그렇게만 적혀 있던 편지를 떠올린다. 그 편지를 받은 날이 언제였던가. 재희는 그날을 어제처럼 떠올렸다. 그녀가 스물다섯이던 해였다. 연거푸 사법 고시에 낙방하던 시절. 부모님이 자꾸만 남자를 소개해 주려 들어, 종종 그녀를 곤혹스럽게 하던 그 시절.

“재희야, 아직도 이한영 사랑해?”

문득 들려온 인혜의 목소리에, 재희는 회상에서 빠져나와 시선을 들었다. 인혜가 복잡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재희는 한순간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실상 대답은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응.”

인혜가 잠시 재희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것이 경탄 어린 눈빛임을 재희는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맥주만 마셨다. 맥주 특유의 감칠맛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재희는 그 와중에도 어딘가에 홀로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냥…….”

재희는 말을 끌다 담담히 답했다.

“……한영이가 원하는 걸 해 줄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응시해 오는 인혜를, 모르는 척했다. 말 그대로였다. 이한영이 원하는 것만 해 줄 것이다. 재희는 그저 그런 생각뿐이었다.

재희는 조용히 인혜에게 부탁했다.

“인혜야, 요즘 너 하는 PC 통신 있잖아. 천리안.”

“어? 응.”

“그걸로 사람들이 동창도 찾고 그러잖아.”

“그렇지? 주소와 전화번호 모르면 이산가족 되어 버리는 세상은 이제 지났으니까.”

“혹시 시간 날 때마다 사람 좀 찾아 줄 수 있어? 내가 그동안 찾아보긴 했는데, 하나보단 둘이 나을 것 같아서.”

“……설마……?”

재희는 인혜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응. 영재하고 상현이. 찾을 거야.”

* * *

-일단 검진으로 나온 건 없어. 건강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재희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심리 상담도 진행하고 있고……. 담당 선생님 말로는 상담에도 우호적이야. 앞으로 잘해 보려는 의지가 강해. 괜찮을 거야.

재희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말없이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어두운 밤 위로 손톱 같은 그믐달이 떴다. 하늘을 할퀼 듯 날카로운 빛을 보다 재희는 눈을 감았다. 문득 피로감이 들었다.

“……저는 희망적인 말만 듣고 싶어서 전화한 게 아니에요.”

그제야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진중해졌다.

-검진에 아무것도 안 나온 것은 사실이야. 몸은 건강해. 건강한데- 계속 통증을 느끼나 봐. 일단 진통제를 처방해 줬어. 정확한 원인은 더 알아봐야지. 그런데 이런 유의 후유증은 학계에서도 제대로 된 연구가 없어.

“…….”

-앞선 피해자들의 전례를 살펴보면…… 통증이 평생 갈 수 있어.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 문제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고.

평생-.

평생을 괴로워할 거라고.

재희는 굳어 있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두 눈을 감쌌다.

“……주변에서 신경 써야 할 건 없어요?”

-변호사가 신경 쓸 건 없지. 이후는 가족과 친구들의 영역이야. 안정감 느끼게 도와주고, 후유증으로 예민해져도 말없이 지지해 주고. 이한영 씨가 잘 참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고통이 참는다고 참아지나.

“…….”

-장기수로 십 년 넘게 복역하다 나온 상황이니 사회 적응에 압박받고 있을 거야. 스트레스에 주의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가장 중요해.

재희는 비슷한 말을 이미 들었다. 그동안 교도소에 있는 한영을 수시로 찾아가며 돕던 조 변호사도 재희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거절하는데 억지로 다가가는 것은 배려가 아니지. 폭력이야. 힘든 사람 더 힘들게 하는 걸지도 몰라, 마 변호사.’

그 말에 수긍해서 마재희는 이한영을 찾지 않았지만, 그 이후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정말로 나란 존재는 이한영에게 폭력이자 스트레스밖에 될 수 없단 걸까.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선배.”

-오냐.

“경신이는 잘 지내죠?”

-와이프야 쌍둥이 때문에 바쁘지. 안부 전하라고 할게.

“감사합니다.”

재희는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말없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잡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한 페이지를 차지한 사진이 잡지 안에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인지 철저히 다듬어지고 계산된 사진이었다. 손질된 머리카락에서부터 그가 걸치고 있는 정장까지,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종이에 갇혀 있어 그런 것일까. 아무리 사진을 접해도, 그것이 이한영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모델 같다는 감회만 뭉근하지만 아프게 느꼈을 뿐.

재희는 사진 속 한영과 시선을 마주쳤다. 웃음기 없는 얼굴이 정면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무감정한 시선이 도발적이다. 문득, 이한영이 쓴 시에만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 사진이 충격으로 느껴질 것임을 직감했다. 그가 교도소에 있을 때 쓴 시들은 순수한 감정의 결정체였으니까. 시대의 비극에 휘말린 젊고 순수한 시인의 모습을 상상했을 이들은, 사진 속 이한영에게서 치열한 약육강식 세계의 생존자를 볼 것이다.

그래서 더 열광하겠지. 그 간극의 차에서 오는 아름다움 때문에.

조용히 재희는 잡지를 덮었다. 한영은 앞으로 더 유명해질 것이다. 미디어가 무엇에 반응하고 열광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희는 다른 것은 확실히 예측할 수 없었다.

유명해지는 것이 과연, 한영에게 도움만 될 것인가.

재희는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를 다시 잡았다. 번호를 누르고 몇 초 걸리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낮은 남성의 목소리에, 재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 * *

한영이 출소한 후 거의 한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재희는 그의 이름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재희의 예상이 적중한 탓이었다. 알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이미 유명한 시인인 한영이었지만, 몇 번 뉴스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비친 이후 한영의 인기는 비할 데가 없었다.

시집은 불티나게 팔렸다. 발표된 지 몇 년은 된 그의 시집 세 권 전부가 다시금 나란히 베스트셀러 일, 이, 삼 위를 엎치락뒤치락 오르내렸다. 그의 시집을 증쇄한다는 소식조차 신문에 크게 실릴 정도였다. 유명한 문화 평론가는 ‘이한영 신드롬’이라는 단어로 이한영을 향한 대중의 관심을 정의 내렸다.

“이한영?”

재희는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들린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를 낸 남자는 옆에 있는 직원이 들고 있는 시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장님, 이한영 시인 좋아하세요?”

“오랜만에 시 읽어 볼까 해서요.”

비닐봉지에 한영의 시집을 담으며 직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도 유명해서 궁금하더라고요.”

“대단하죠. 칠팔십 년대 때 시의 인기가 되살아나는 건가 싶을 정도예요.”

그때 멀뚱히 서 있던 다른 이가 넌지시 끼어들었다.

“시의 인기라기보다는 얼굴의 인기겠죠.”

“맞아, 얼굴이 정말 잘생기긴 했어요.”

“시 자체는 별로예요.”

“그런가요? 평은 좋던데…….”

재희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새로 대화에 합류한 인물을 눈에 담았다. 그는 냉소적인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있었다.

“사적인 견해지만, 이한영은 시인보단 연예인을 닮지 않았습니까?”

“음…… 연예인보다는 기업가 같다고나 할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시인의 이미지는 아니긴 해요.”

“홍보를 기가 막히게 할 줄 알긴 해요.”

띵,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멈췄다. 한차례 우르르 밖으로 사람들이 쏟아졌다. 시집을 들고 있던 직원이 손을 뻗어 닫힘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 문이 바로 닫히고, 층수를 표시하는 전광판은 다시 위로 올라갔다.

“다른 시집은 누구 건가요?”

“아, 이건요, 북한의 시인이라고 해서 궁금해서 샀어요.”

“북한이요?”

“네. 세상 참 많이 변했죠? 백석이라고 하는데-.”

순간 재희의 시선이 빨려들어 가듯 시집을 든 직원의 손끝으로 향했다.

엎어져 있던 시집의 앞표지가 그녀의 시야에 닿았다.

백석 시집.

“…….”

재희는 잠시 믿기지 않아 그 제목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대신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재희에게 속삭였다.

‘오늘 밤 읽어 봐. 오늘 아니면 다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정말이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어.

“…….”

“변호사님?”

“…….”

“마 변호사님, 안 내리세요?”

“……아.”

친절히 열림 버튼을 눌러 주고 있는 직원을 향해 재희는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서둘러 승강기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괜찮다. 이 정도는.

이제까지 잘 참아 왔으니까.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재희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흉통이 지독했다. 조곤조곤 평안도 사투리를 해석해 주는 목소리가 아스라이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반지가 그녀의 세 번째 손가락에 끼워졌다. 한영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문득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자각했다.

보고 싶다.

사진이나 영상으로가 아니라- 눈앞에서, 직접.

막혔던 댐이 무너지듯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감정에, 재희는 속수무책이었다. 떠내려가듯 과거로 떠밀려 가다 보니, 발걸음도 덩달아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향하려 했다. 재희는 사무실로 애써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걸어가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잘 참다 무너진 이유를 깨달았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했는데- 자신의 옆에는 여전히 이한영이 없어서.

“선배님!”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사무실 앞이었다.

동완이 서둘러 다가오며 말을 쏟아 냈다.

“정 변호사님이 손님 모시고 오셨어요.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

“선배님?”

동완은 모를 것이다. 재희가 언제고 튀어 나갈지 모르는 갈망을 내리누르고, 또 짓밟고 있음을.

“손님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재희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다. 간신히 의문을 떠올린다. 이런 시간에 누가 법률 사무소를 찾았을까.

그래도 손님 덕분에 다행이란 생각을 그녀는 하고 있었다. 아마 이 문 너머에 있는 손님을 마주하다 보면, 이 괴로운 감정도 가라앉겠지. 그리운 곳으로 향하고픈 이 강렬한 충동도, 누그러지겠지.

재희는 그렇게 기대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그대로 문을 열었다.

“어, 마 변호사. 어서 들어와.”

그러나 재희는 제때 현철의 말에 응수하지 못했다.

문을 연 순간, 재희의 시야에 가장 먼저 잡힌 것은 창문 너머 노을이 지는 풍경이었다. 그다음이 창가 아래 놓인 소파였고, 그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미동도 없는 한 남자의 인영이었다.

격식 갖춘 자리를 다녀오던 참이었을까. 남자는 양복 차림이었다. 창문에서 떨어지는 석양의 빛이, 서늘한 빛이 흐르는 얼굴로 떨어지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책상 위에 놓인 명패만 담는 눈동자는 무감각하기만 했다.

그 눈이 곧 천천히 정면으로 돌아와, 마재희에게 닿았다.

덜컥 가슴부터 움켜잡는 눈빛 앞에서, 재희는 지난 세월을 실감한다. 마주하는 이들로 하여금 온화함과 다정함부터 느끼게 했던 눈빛은 더 이상 없었다. 그것이 기만임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쏘는 눈빛만 그곳에 있었을 뿐.

재희는 그 눈을 마주하며 깨닫는다.

십일 년이 지나는 동안,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 있었구나.

한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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