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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230화 (230/230)

울먹이며 메달리온을 낚아채는 정의로운 광명.

불규칙하게 진동하던 메달리온이 즉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정의로운 광명도 입을 꾹 다물었고.

내가 뭔가 저질렀다 생각한 걸까. 카를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주인님? 대체 클라라 님을 어떻게 하신 건가요…?”

“아, 별거 아냐. 그냥….”

잠시 말을 끊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오직 정의로운 광명만이 메달리온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을 뿐.

슬슬 뒷말을 이으려던 순간.

우르릉!

천둥을 닮은 소리와 함께 귀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클라라가 사라지며 결계를 넘어온 키메라들이 사납게 울부짖어서가 아니다.

주인을 잃은 던전이 왜곡된 시공간을 유지하지 못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공간. 경계와 경계가 흐려지고 색이 서로를 침범하며 뒤섞인다.

심지어 시간 감각마저 들쭉날쭉해져 주변이 슬로우 모션과 패스트 모션을 반복하는 풍경 속에서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메달리온을 에고 메달리온으로 강화했을 뿐이야.”

“…네?”

카를라가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내가 무어라 답해주기도 전에 주변의 왜곡이 심화되더니, 그대로 번쩍하고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허공에는 던전 클리어를 알리는 보상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

키메라 특유의 악취도, 시끄러운 울음소리도, 정신이 곤두서는 살기도 없는 적막한 사막.

모래 섞인 건조한 바람을 크게 들이마시며 허공에 떠다니는 빛 무리를 손에 쥐었다.

파아아앗.

손에 잡힌 무언가를 빼내자 순식간에 사라진 광휘. 천천히 손바닥을 펴자 작지만 고급스러운 유리병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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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첫 번째 이슬】

생명의 여신이자, 치유의 여신. 그리고 엘프의 수호신인 순환하는 생명.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인 세계수의 가장 높은 잎새에 맺히는 이슬이다.

허나, 맑고 청량한 향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신의 몸에서 나온 것은 필멸자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것이니.

이는 분명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신수神水이나 기적에는 대가가 따르리라.

-생명력, 마나, 오러, 신성력의 완벽한 회복

-최대 생명력의 500%를 방어막 형태로 초과 회복

-죽음을 제외한 모든 상태 이상 회복

-50% 확률로 신체 변형, 30% 확률로 정신 붕괴, 10% 확률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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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여전히 살벌한 소개문이다

사실 세계수의 이슬 자체는 그리 위험한 것이 아니다. 굉장히 희귀하긴 해도 훌륭한 치료제니까.

너무 아낀 탓에 엔딩을 본 이후에도 몇 개씩 남아있다는 완전 회복약 중 하나가 바로 세계수의 이슬이다.

다만 이건 첫 번째 이슬이라는 점이 문제다.

세계수의 이슬은 말이 이슬이지 정말 습기가 맺혀 생기는 이슬이 아니다.

세계수…정확히는 그 거대한 나무를 자신의 성소로 삼아 쉬고 있는 순환하는 생명이 엘프들을 위해 가끔씩 내려주는 은총이지.

치유의 권능을 잔뜩 담은 정수 같은 것인데,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 희석해 뿌린다고 한다.

가장 높은 잎새에 맺힌 한 방울은 아래로 떨어지며 두 방울이 되고, 그렇게 떨어진 이슬은 다시 네 방울이 되는 방식.

이를 가장 낮은 잎새에 떨어지는 순간까지 반복하여 나온 것이 세계수의 이슬이다.

희석하고 또 희석해 만든 결과물이 완전 회복인데, 농축 원액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슬이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넘쳐나는 생명력이 되려 문제가 되어 망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그나마 생명력이니까 10% 확률로 부작용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다.

만약 마나나 오러를 그만큼 농축해 마신다면…100% 확률로 펑! 하고 몸이 터지고 말 테니까.

아무튼 이제 마지막 조각도 얻었으니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겠지.

추방에 가까운 형태로 갑작스레 던전을 나온 탓에 다들 어질어질해하는 사이.

메달리온을 꼭 쥐고 있는 정의로운 광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깐 줘보시겠습니까?”

“…응.”

역시 신은 신이라는 걸까. 정신만 내려와 많은 것들이 제한됐을 텐데도, 내가 하려는 일을 눈치챘는지 순순히 메달리온을 넘겨주었다.

받아든 메달리온이 부드럽게 진동한다. 항의라도 하던 것 같은 조금 전과는 다른 유순한 모양새.

클라라도 내가 자신을 도와주려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안쪽에서 듣고 있을 클라라에게 작게 속삭여주었다.

“이거 나중에 다 갚으셔야 합니다?”

그리고는 염력 마법으로 세계수의 첫 번째 이슬이 들어있는 병을 개봉했다.

퐁.

어딘지 귀여운 소리와 함께 뽑혀나간 마개. 머릿속까지 개운해지는 시원한 향기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이것만 맡아도 멀미처럼 남아있던 어지러움이 확 사라지네.

헤롱헤롱대던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인지, 비척거리며 일어나 이쪽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느끼며 잠시 메달리온을 바라보았다.

H&A를 오래 플레이하긴 했으나 새로운 요소나 공략법 같은 건 찾아내지 못했던 나다.

그러나 내게도 한 가지 자랑할 만한 공략이 있었으니.

최후의 성녀 클라라에 관한 히든피스가 바로 그러하다.

아카데미에서 솔라리스 대신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던전을 클리어 해 클라라의 메달리온을 얻고.

이를 정의로운 광명의 새로운 성녀에게 장착시킨 뒤, 사막에 있는 시나리오 던전을 찾아내 클라라와 성녀를 상호작용시킨다.

그리하면 갈 곳을 잃고 흩어지려던 잔류 사념이, 생전의 념이 가득 담긴 물건에 발이 묶여버리게 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의사소통도 진동으로밖에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클라라의 사념이 성불해버리니까.

그때는 기겁하고 바로 세이브 파일을 불러왔었지.

이후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클라라를 고정할 방법을 찾아냈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답이 있더라고.

바로 클라라가 등장하는 시나리오 던전의 보상. 세계수의 첫 번째 이슬을 메달리온에 사용하면 된다.

살아있는 사람이 마시면 부작용이 생길 정도로 막대한 생명력을 품은 아이템이다.

설령 영혼조차 없는 잔류 사념이라도 그 수혜를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물론, 부활한다거나 그런 건 불가능하겠지만…적어도 100년 정도는 메달리온에 깃들어있을 수 있게 된다.

덤으로 메달리온에 깃든 상태로 발휘할 수 있는 힘도 조금 강해지고.

지금껏 그래 왔듯, 이번에도 H&A에서의 정보가 현실에서도 변함없길 바라며, 단숨에 이슬을 메달리온 위로 부어버렸다.

쪼르르…뚝.

워낙 용량이 작아서 그런지 순식간에 내용물을 전부 쏟아낸다.

이슬은 메달리온에 닿는 순간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되었다. 덕분에 바닥에 흘리는 것 없이 온전한 생명력을 품은 메달리온이 반짝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클라라를 품으며 은은한 서광을 흘리던 상태였는데, 이제는 눈이 부실 지경.

막대한 광량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빛이 사라질 쯤이 되어서야 다시 떴다.

“아.”

그 자리에는 메달리온이 뿜어낸 빛으로 만들어진 반투명한 여인이 서 있었다.

길게 늘어진 백발. 투명한 피부. 순백의 복장. 그리고 에메랄드 빛 눈동자.

분명 속옷도 하얀색일 게 분명한 여인이 어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자 멈칫하고는 입술을 오물거리는 클라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것 같길래, 이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기로 했다.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는 무슨. 이런 건 좀 미리 말해주시길. 저도 광명님도 헬레나도 얼마나 놀랐는지 아시나요?

“하지만…이쪽이 더 재밌잖아요.”

-…그렇긴 하지만요.

샐쭉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입꼬리는 웃음을 참으려는 것처럼 파들파들 떨리는 클라라.

다시 나타난 클라라의 모습에 일행들이 경악한 사이. 정의로운 광명이 느릿하게 다가와 그런 클라라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뻗은 팔은 허공을 가르며 클라라의 모습을 일그러뜨릴 뿐, 실제로 만질 수는 없었다.

“아.”

이건 좀 아쉬운지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는 정의로운 광명.

클라라가 축 늘어진 귀와 꼬리를 보며 키득키득 소리 내어 웃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애초에 사라졌어야 할 잔류 사념을 이렇게 붙잡아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걸요?

“으응. 그래도 방법을 찾아볼게. 메달리온에 저장된 신성력을 사용해서 이렇게 나타난 거지? 결국 내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야. 지금은 순환하는 생명의 권능도 섞여 있어서 좀 힘들지만….”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의로운 광명. 하지만 슬슬 시간제한이 다 된 건지 귀와 꼬리가 사라질 듯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신을 해제하고 헬레나에게 다시 제어권을 건네준 정의로운 광명.

느릿하게 눈을 뜬 헬레나가 평상시의 금안으로 눈을 깜빡였다.

“으음….”

잠시 헤매던 초점이 또렷하게 돌아온다. 그리고 눈앞에서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반투명한 클라라를 발견하는 순간.

“꺄아아악!! 귀신입니다 형제님!!!”

비명을 지르며 메이스를 뽑았다.

아니, 왜 무서워하면서 무기부터 드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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