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충전되어있는 모든 신성력을 단번에 방출하여 신성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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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헬레나도 곧 알게 되겠지.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에 닿는 공기의 감촉이 달라졌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 대신 피부를 스치는 시원함. 다만 그 안에 담긴 냄새는 꽤나 역했다.
“우윽…이게 무슨 냄새죠?”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엘리샤에게 어깨를 으쓱여주었다.
“뭐긴. 키메라 냄새지. 너도 수업 시간에 들어서 알잖아? 키메라형 몬스터는 항상 괴사와 재생을 반복하는 탓에 악취가 심하고, 그중에서도 재생형은 한층 더 독하다는 거.”
“어머? 근처에 몬스터는 없는걸요. 그냥 당신 몸에서 나는 냄새 아닐런지?”
“없긴. 저기 있네.”
처음부터 내 냄새를 맡는 게 목적이라는 양 장난스레 킁킁대는 엘리샤의 코를 검지로 꾸욱 누르고는, 앞쪽을 가리켰다.
V자로 패인 거대한 계곡. 그리고 그 계곡으로 향하는 길을 가득 메운 검은색 덩어리들.
던전 입구는 안전지대라는 걸 알고 여유를 부리던 엘리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저게 다 키메라인가요?”
“맞아.”
“저희가 돌파하고 전멸시켜야 하는?”
“응. 알면서 뭘 자꾸 물어.”
“그야 너무 많으니까 그렇죠?!”
내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엘리샤.
“정말 가능한 거 맞나요? 지금이라도 되돌아가서 조금 더 준비를 철저히….”
“엘리샤.”
“네?”
“지금의 넌 중위 마법사야.”
“…아.”
아직 실전에서 자신의 경지를 시험해보지 못한 탓일까. 무심코 하위 마법사 시절을 생각하며 걱정부터 앞선 듯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지금 보이는 정도는 혼자서도 어떻게 되더라고. 문제는 저 안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을 나머지들이지만.”
“글쎄? 글쎄? 내가 옆에서 직접 봐서 아는데 평범한 중위 마법사는 그 정도로 강하지 않을걸?”
“에이. 그렇게 따지면 엘리샤도 평범한 수준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해!”
키득이며 엘리샤의 어깨를 꾹꾹 눌러주는 이오나.
딱딱하게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풀어지며 딱 좋을 정도로 풀어지는 엘리샤의 모습에 이리스가 순간 흠칫했다.
그리고는 작은 손으로 엘리샤의 팔을 쪼물쪼물 주무르기 시작한다.
“스승님…?”
“흠흠. 제자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스승의 일이 아니겠느냐. 외부인은 저리 가게. 쉿쉿.”
“어라? 어라? 학생을 격려해주는 것도 교수의 일인데?”
“이젠 퇴학했으니 자네 학생이 아니잖나!”
“흐응? 그렇게 따지면 노예가 되며 기존의 인간관계가 전부 말소된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말만 사제지간이지 공식적으로는 그냥 남남인걸?”
“으읏…그건…주, 주인이 허락했으니 괜찮네! 에이잇!”
볼을 잔뜩 부풀리며 빈약한 엉덩이로 이오나를 밀어내는 이리스.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이오나에게 엘리샤를 뺏긴 것 같아 그런 거였나.
다만 여기서 더 긴장이 풀어졌다가는 엘리샤가 낑낑대며 자기 팔을 만지작대는 스승의 귀여움에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으니 슬슬 개입해야지.
짝짝.
“이제 돌입해야 하니 이리스로 노는 건 거기까지만 해주세요 이오나 교수님. 이리스도 자리로 돌아가고. 헬레나 님이 근질거리는지 벌써 무기까지 드셨잖아.”
“앗…부끄럽습니다 형제님.”
메이스를 뽑아 들고 언제든 달려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취한 헬레나가 발그레 볼을 붉혔다.
말로는 부끄럽다고 하면서도 메이스를 집어넣지도, 자세를 풀지도 않는 헬레나.
길버트도 그런 헬레나에게는 조금 질린 것인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대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는 게 참 광명 교단의 교인다웠지만.
아무튼 더는 장난칠 상황이 아니게 되자 순순히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앞으로 나서는 이오나.
“응응. 얀델 학생이 그리 말한다면야.”
“주인이여?! 나로 논다는 게 무슨 의미인 게냐?!”
이리스도 한마디 덧붙이긴 했으나 제대로 이오나의 옆에 서서 스태프를 들었다.
던전 입구는 별다른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안전한 곳이지만, 몬스터가 있는 곳과도 멀리 떨어져 이쪽의 공격도 닿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선빵부터 날리고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버프나 탐지 마법을 시전하는 정도겠지.
하지만 상위 마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력이 강한 만큼 범위나 사정거리 또한 상당한 마법이 많다. 공성용이나 다름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런 이유로 이번 작전의 시작은 이리스와 이오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우선 강력하고 화려한 상위 마법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그 틈을 타 단숨에 접근한다.
다만 키메라가 우글거리는 큰길로 가는 게 아니라 옆에 난 샛길과, 누가 뚫어뒀는지 모를 비밀 통로를 통해 몇몇 구간을 스킵해서 혼자 버티고 있을 클라라와 합류한다.
그 뒤에는 힘을 합쳐 몰려오는 몬스터를 싸그리 조진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이 공략법을 알아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공략 사이트에서 흔히들 정석이라 부르는 공략법보다 효율은 조금 떨어지지만 훨씬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제한 시간이 있다고는 하나 촉박한 것도 아니니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선 이리스와 이오나가 각자 스태프와 팔을 뻗었다. 그리고 마력을 끌어올린다.
쿠우웅-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마력의 파장. 어찌나 농도가 짙은지 단순한 여파마저 눈으로 보일 정도다.
푸르고 붉은 마력이 뒤엉키되, 서로 섞이지 않고 각자의 마법을 자아내는 기묘한 모습.
다만 울려 퍼지는 영창은 반대였다. 분명 서로 다른 마법을 사용하는 걸 텐데 신기하게도 뒤섞이는 목소리.
무슨 합창이라도 듣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멍하니 둘의 영창과 마력에 집중하기를 얼마나 계속했을까.
영창은 어느새 끝을 다해 시동어만을 남겨두었고, 마력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했다.
오대 속성 전부가 새겨진 원소의 그림자를 활성화시킨 채, 백열하는 거대한 구체를 띄워 올린 이리스.
체내에서 새어 나온 마력이 만든 핏빛 안개 속에서 거대한 혈창을 손에 쥔 이오나.
이오나는 일전에 봤던 체페슈라는 마법인 건 알겠다. 그런데 이리스는 뭐지?
내가 모르는 마법, 그리고 내게 원소 조합을 알려준 게 이리스라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무슨 조합 마법인 것 같긴 한데.
뭐, 그거야 이제 보면 되는 거겠지.
이쪽을 향해 슬쩍 시선을 보내오는 둘. 계속하라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이오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체페슈!”
쐐애애애액-!
맹렬한 파공음을 흩뿌리는 피의 창이 순식간에 키메라 무리의 정중앙에 꽂힌다.
푸욱.
창에 꿰뚫려 쓰러지는 키메라 하나. 아직 살아있는지 바르작대며 창을 뽑으려 들었고, 갑작스런 이상에 다른 놈들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허나 이미 늦었다. 슬슬 체페슈가 본래의 형태를 해방할 타이밍이었으니까.
촤아아아악-!!
막혀있던 둑이 터져 나오듯 혈창의 내부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피의 격류.
다만 평범한 형태는 아니었다. 단검에서 장창까지. 다양한 크기의 꼬챙이 형태로 일대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렇게 피어오르는 거대한 가시덩굴의 숲.
-키에에에에에엑!!!
-캭! 캬아아악!!
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일제히 지르는 비명이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다.
순식간에 가시덩굴에 뒤덮여 사라지는 키메라들. 아마 지금쯤 너덜너덜해진 채, 체페슈의 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본래는 저 모든 위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만, 이렇게 폭발시키면 범위기로도 쓸 수 있는 거겠지.
단 하나의 마법으로 저 그저 검은 덩어리 같던 키메라 무리에 균열을 일으킨 이오나.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 이리스가 남아있으니까.
텔레포트에 이어 체페슈까지 연달아 사용하며 소모가 컸을 이오나에게 목덜미를 내어주는 사이.
그제야 이리스의 입이 열렸다.
“엘레멘탈 버스트.”
나지막한 목소리. 이를 신호 삼아 이리스가 만들어낸 백열하는 구체가 빠르게 쏘아졌다.
노리는 곳은 이오나가 만들어낸 가시덩굴 숲의 정중앙.
관성을 무시하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선 구체가, 물방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래로 흘러내렸다.
또옥.
그렇게 떨어져 내린 하얀 불꽃이 핏빛 가시에 닿는 순간.
콰가가가각!!!
모든 것을 휩쓰는 거대한 폭풍이 되었다. 그것도 백색 화염과 피의 가시를 동반한.
“아.”
첫눈에 보고 알았다. 저 마법이 왜 엘레멘탈 버스트라 불리는지.
화염, 바람, 그리고 물인가.
나도 원소 조합을 익히고 있긴 하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본질과 형상을 뚜렷하게 나누지도 않고 그저 뒤섞었다. 그것도 3개나. 심지어 상생하거나 상극인 속성까지 합쳐서.
아니. 그래서 가능한 건가?
불을 베이스로 바람으로 위력과 범위를 늘리고, 물을 이용해 세세한 컨트롤을 한다는 느낌인가.
다만 복잡하긴 해도 본래의 위력은 이오나의 체페슈보다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오나의 가시를 이용한 것이다.
혈마법은 이러지 저러니 해도 피를 뽑아 쓰는 마법이니, 대지 마법처럼 뚜렷한 물질을 남긴다.
물리적인 파괴력이 강해진 것도 대단한데 이오나는 이오나대로 자신의 가시덤불을 컨트롤하기까지.
내 목을 깨문 채, 이리저리 손가락을 흔드는 이오나. 그럴 때마다 가시가 쏘아지며 키메라를 꿰뚫고, 그 생명력을 흡수해 더 크게 자라나기를 반복한다.
재생 특화고 나발이고 생명력을 빨리며, 기이할 정도로 들러붙는 불길에 태워지면 누구든 죽어버리겠지.
상위 마법사 둘이 힘을 합치면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상정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위력. 영창 시간이 너무 길어 연달아 쓰기는 힘들겠지만, 목표는 초과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단순히 샛길이 있는 곳까지 뚫으려던 걸 한참은 더 밀고 나가는 인위적인 자연재해.
마법의 지속시간이 지나고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것도 잠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헬레나가 메이스를 번쩍 들며 외쳤다.
“이,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다들 길이 막히기 전에 달리셔야 합니다!”
“뭐, 생각보다 길이 길어져서 바로 막힐 것 같진 않지만 늑장 부릴 수는 없죠.”
이오나의 머리를 슬쩍 떨어뜨리며, 포션 한 병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다리가 짧아 달리기도 느린 이리스를 들쳐업고 땅을 박찼다.
“가즈아!”
다음은 내 차례다.
다리가 짧아 달리기도 느린 이리스를 들쳐업고 땅을 박찼다.
“가즈아!”
헬레나로부터 받은 버프. 그리고 미숙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된 블러드 포스. 거기에 평범한 강화 마법과 물약까지.
이 둘 덕분에 지금의 내 달리기 속도는 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진 상태다.
카를라는 헬레나에게, 엘리샤는 이오나에게 업혀 내 뒤에 바짝 따라붙고 있었고.
고위 성기사인 데다가 업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길버트야 두말할 것도 없지.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리스와 이오나가 만들어 낸 파괴의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박혀있는 피의 결정과 산산조각이 난 육편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열기.
요청한 대로 깔끔하게 몬스터만 치워버린 덕에 구석의 샛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기로!”
이리스와 이오나의 마법이 생각보다 강했기에 추적은 걱정할 필요 없다.
키메라가 쫙 깔려있는 중앙을 벗어나 옆으로 빠진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작은 동굴.
저 안은 굉장히 복잡한 미로 같은 곳이지만, 길만 제대로 찾으면 최소한의 전투로 단번에 요새 근처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뛰어난 기억력 특성 덕에 아예 H&A의 유저들이 만든 지도 자체를 외우고 있고.
자신만만하게 일행을 이끌고 앞장서서 동굴 속을 헤쳐 나갔다. 몇 번이고 마주친 갈림길에서도 망설임 없이 길을 고르기를 몇 번.
좁고 어두웠던 길이 확 넓어지더니, 큼직한 공동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열댓 쌍의 눈동자들.
아마 섣불리 들어왔다가 길을 잃고 갇힌 녀석들이겠지.
이 동굴이 전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건 사실이나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몬스터의 존재를 확인한 헬레나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이대로는 싸우기 불편하겠지요. 나의 주여 당신의 빛을 여기에.”
화아악-
헬레나의 짧은 기도에 반응하듯 밝게 빛나는 성갑.
공동 전체를 밝힐 정도로 밝은 빛이었으나, 신기하게도 눈이 부시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덕분에 어둠 속에서 이쪽을 노려보던 키메라들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역겨운 모습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