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220화 (220/230)

조금 소란스러울 정도로 큰 진동 소리를 내며 바쁘게 왕복 운동을 하는 기구.

무척 익숙한 크기의 막대가 쉴 새 없이 길쭉한 원통 안을 긁어대고 있었다.

툭 까고 말해 오나홀에 딜도를 박고 마사지 건 같은 도구로 피스톤질시키고 있는 모양새.

저 물건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아무것도 없다. 여긴 바깥도 아니고 귀빈실 내부니까.

밖에서 발가벗고 돌아다니면 미친놈이지만, 집 안에서 알몸으로 생활하면 그냥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쳐주지 않는가.

그러니 문제는 남사스러움이 아니라 기능 자체에 있다.

저거. 일전에 내가 부탁했던 감각 연동 마도구거든.

“전 분명 오나홀만 만들어 달라고 했잖아요 페이 선배!”

“생각해봐 후배님! 보지를 만들었으면 자지도 만들고 싶어지는 거 아냐?! 그리고 만들었으면 박아보고 싶어지고, 박아두면 흔들고 싶어지잖아!”

“그, 그건 그렇긴 하지만…아무튼 제대로 작동하는 거 확인했으니 이제 좀 멈춰 주세요. 생각보다 자극이 강해서 지금 좀 위험하단 말이에요.”

“……해.”

“네?”

“…못 해. 나도 자극이 심해서 움직이면 쌀 것 같아.”

“아니. 뭔.”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짓는 것도 잠시. 이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지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짜요?”

“진짜야.”

“진짜로 진짜?”

“진짜로 진짜.”

“…….”

“…….”

재확인. 그리고 침묵. 그 끝에는 원점으로의 회귀만이 존재했다.

“어떻게 페이 선배가 저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피 한 방울만 주면 완성이라길래 믿고 드렸더니!”

“완성은 완성이잖아?! 후배님의 사이즈 딜도의 완성이었지만!”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진 설전. 하지만 그 끝은 결국 일단 꺼야 하는데 저걸 어떻게 끄지로 귀결되었다.

이러다가는 끝이 없다는…아니, 최악의 경우 이대로 지릴 거라는 생각에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사실 페이 앞에서 싸는 거야 별문제가 아니다. 지금껏 몇 번이나 했던 일이니까.

다만 바지에 지린다는 것, 그리고 어째서인지 대치 구도가 형성됐다는 게 문제다.

페이에게 지고 싶지 않아…! 그런 묘한 심리가 발동하며 고집을 부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 페이도 같은 생각이겠지.

“페이 선배. 치마를 입고 계시니 그냥 팬티만 벗고 한번 가버린 다음에 샤샤샥 끄고 오시면 안 될까요?”

“후배님…지금 상태에서 내 아랫도리를 보고도 참을 수 있겠어?”

“아.”

높은 확률로 지리겠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솔직히 좀 지치기 시작했다.

다른 여인들을 먼저 절벽 밑의 바닷가로 보낸 뒤, 태닝 크림과 페이만 챙겨서 내려가려 했는데 이렇게 발이 묶일 줄이야.

괜한 경쟁심을 내려놓고 허리춤을 붙잡았다.

“좋아요. 그럼 제가 벗고 가죠 뭐.”

아무리 클린 마법으로 닦을 수 있다고 하나 바지 안에서 싸면 엄청 찝찝하거든. 심지어 나는 양도 꽤 많고.

왜 남자는 자기 몸에서 나온 건데도 이렇게 불쾌해하는 걸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바지를 내리려는 순간.

“아, 안 돼!”

이번에도 소리를 지르며 이쪽을 막아 세우는 페이. 뭔가 싶어 바라보자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후, 후배님이 벗으면 내가 지려….”

“…….”

빤히 바라보자 스윽 시선을 피하는 페이. 뭔데 이거.

꼼짝 마 움직이면 싼다! 뭐 그런 건가?

위이이잉-

조용해지자 다시 들려오는 진동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동시에 벗을까요?”

“……응.”

이후. 제대로 옷 갈아입고 나왔다.

***

정의로운 광명 교단의 본단. 솔라리스 대신전은 바닷가의 절벽 위에 세워졌다.

에우렐리아 대륙의 최동단에서도 가장 해가 잘 보이는 곳. 그렇기에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보러 온 관광객이 몰린다나?

그들에게 적당한 축복을 내려주고, 자리도 좀 빌려주며 받는 기부가 그렇게 짭짤하다는데…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솔라리스 대신전이 풍경 좋은 바닷가에 자리 잡았으며, 이 일대는 정의로운 광명의 은총이 깃들어 햇빛이 잘 든다는 점.

즉, 절벽만 내려가면 딱 좋은 선탠 장소가 나온다는 소리다.

그중 조금 구석지지만 일조량은 좋아, 교황 전용 별장이 지어진 곳을 오늘 하루 빌리기로 했다.

목적은 당연히 일전에 약속했던 나만 했던 태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시키는 것.

약간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챙길 거 챙기고 페이와 함께 내려온 바닷가.

가장 먼저 이쪽을 발견한 엘리샤가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당신? 페이 양? 왜 이렇게 늦었나요? 지금 보니 옷도 바뀌었는데, 설마 저희 몰래 또….”

“에이. 그런 거 아냐.”

“마, 맞아. 후배님이랑은 별일 없었어. 그냥 조금 문제가 생겨서….”

“문제 말인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리샤. 페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이제 전부 해결됐으니까. 그, 그보다 이거 가져왔으니까 빨리 써보자!”

“이게 그 크림이군요.”

페이로부터 태닝 크림이 든 작은 통 하나를 받아든 엘리샤가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저는 솔직히 내키지 않는단 말이죠.”

“설마 이제 와서 약속을 무르려는 건….”

눈을 크게 뜨고 짐짓 아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바라보자, 스윽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샤.

“알겠어요. 약속은 약속이니 하면 되잖아요? 다들! 얀델 왔으니 이리 나와 보세요!”

엘리샤의 외침에 별장 안에 있던 이리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따로 놀고 있던 카를라와 이오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전에 선베드나 설치해야지.

지구나 여기나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인지 비슷한 가구가 있더라고. 재질과 가격은 달랐지만.

인벤토리에서 꺼낸 선베드를 사람 수대로 적당히 설치하고는 도착한 이들에게 하트 모양 스티커 같은 것과 티팬티를 나눠주었다.

“주인이여. 이건…?”

“옷이야.”

“옷?”

이딴 게? 라는 말이 생략된 것 같은 이리스의 반응.

어깨를 으쓱이며 옆을 향해 턱을 까딱였다. 내 신호를 받은 페이가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스륵. 스르륵. 툭.

기껏 새로 갈아입은 옷을 순식간에 벗고 속옷 차림이 된 페이.

다만, 그 속옷 차림이라는 게 티팬티에 니플 패치를 붙인 게 전부였지만.

멋대로 내 사이즈 딜도를 만들고 나랑 감각 연동까지 한 걸 용서해주는 대신, 내가 지정한 옷을 입고 선탠하도록 시켰다.

거대한 가슴 끝에 하트 모양 스티커만 달랑 붙여놓은 페이의 모습에 경악하는 다른 여인들.

그녀들을 돌아보며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옷을 입고 태울 수는 없잖아? 그래서 준비했는데…아, 물론 다른 버전도 있으니까 안심해.”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온 이런저런 수영복을 추가로 꺼내며 말을 이었다.

“페이 선배는 먼저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정해줬지만, 너희는 안심하고 각자 원하는 걸로 입으면 돼.”

“““…….”””

나, 옷, 그리고 페이를 번갈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여인들.

하지만 이번에도 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건 카를라였다.

“저….”

슬쩍 손을 들더니, 눈이 마주치자 루비색 눈동자를 초승달 모양을 예쁘게 구부리는 카를라.

“저는 주인님이 골라주시면 그대로 입을게요. 어떤 게 저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판단은 온전히 내게 맡기고 자신은 그저 따르겠다는 듯한 순종적인 태도.

당연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고른 만큼 책임지고 귀여워하라는 말이 숨겨져 있겠지.

그렇다면 최대한 내 취향대로 골라주도록 하자.

“그러네…카를라 너는 이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다 아래쪽에 파레오가 달린 파란색 비키니를 건네주었다.

“와…조금 예상외네요.”

“응? 뭐가?”

“주인님이라면 분명 엄청 야한 옷을 입히실 줄 알았는데.”

“허어. 카를라 뭘 모르는구나? 야한 거랑 잘 어울리는 건 달라.”

“이게 저한테 잘 어울리실 거라 생각하신 건가요? 어디가요?”

“카를라 네가 항상 머리에 달고 다니는 푸른색 꽃 모양 장식에 어울리면서, 전체적으로 가녀린 몸 선을 살릴 수 있는 건 이 수영복뿐이더라고.”

어디가 어떻게 예쁜지 한참을 설명해주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래. 내 합리적인 선택에 수긍한 것 같구만.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슬금슬금 다가오는 나머지 여인들.

“…너희도 골라달라고?”

쓰읍.

룩덕질은 본인 취향대로 해야 재밌는 건데!

“카를라. 여기 엎드려.”

“네 주인님.”

위쪽을 완전히 젖혀 평평하게 만든 선베드 위에 냉큼 몸을 올리는 카를라.

앞면이야 알아서 태우면 되겠지만 등까지는 손이 닿지 않을 테니, 내가 차례로 발라주기로 했다.

서로의 사심도 살짝 담긴 결정.

태닝 크림을 꺼내는 사이에 카를라가 느릿하게 몸을 뉘인다.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등. 나긋한 팔다리. 그리고 선베드에 눌려 살짝 삐져나온 가슴과 고개 돌려 이쪽을 지그시 올려다보는 옆 얼굴.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카를라로 하여금 잘 만들어진 세공품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름다워서 한번 만져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망가질 것 같은 덧없는 인상.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내 손에 쥐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누웠어요 주인님!”

뭐, 요즘은 그런 분위기는 가끔 풍길 뿐이고 평소에는 말 잘 듣는 댕댕이 한 마리만 보이더라고.

피식 웃으며 카를라의 등을 토닥였다.

“나도 알아. 잠깐 구경하고 있었던 거야.”

“뭐를요? 저를요.”

“어. 조금 더 정확히는 내가 골라준 수영복을 입은 너를.”

몇 번을 봐도 잘 골랐다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를라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보기만 할 거예요?”

“설마. 이제 끈 풀 테니까 움직이지 마.”

“넹.”

선물 포장지를 뜯는 기분으로 카를라의 등 쪽에 나 있는 비키니의 매듭을 풀었다.

사르륵.

끈이 옆으로 흘러내리며 드러나는 옆 가슴. 여기서 눈을 떼지 않으며 미리 꺼내둔 태닝 크림 통의 뚜껑을 열었다.

“오….”

뚜껑을 열자마자 흘러나오는 바닐라와 딸기를 딱 좋은 비율로 섞어둔 것 같은 향기.

한번 맡아본 적 있는 건데도 감탄하게 된단 말이지.

과일맛 포션도 그렇고 이 크림도 그렇고. 페이는 맛이나 향을 내는 데도 일가견이 있네.

뭐, 여기에는 후원을 받기 전엔 잼 살 돈도 없어서 식빵에 이런저런 맛이 나는 포션을 뿌려 먹었다는 눈물 나는 사연이 있지만.

피식 웃으며 퍼올린 태닝 크림을 손바닥에 골고루 펴 발랐다. 피부에 착 달라붙는 감촉이 은근 좋단 말이지.

“등만 발라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수 있지?”

“가능하면 주인님이 다른 곳까지 전부 해주셨으면 하지만…다른 분들도 있으니 어쩔 수 없죠.”

헤헤 웃는 카를라의 등에 그대로 손을 올렸다.

“힉!”

웃는 얼굴 그대로 움찔하는 카를라. 손끝으로 전해지는 꿈틀거림에 절로 킥킥대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차가워?”

“알면서도 바로 바르신 거죠…?”

“응. 지금처럼 펄떡거리는 모습이 보고 싶었거든.”

“…주인님은 귀엽지만 가끔 이렇게 짓궂으시단 말이죠.”

“내가 귀엽진 않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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