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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211화 (211/230)

“응? 왜 그러십니까 헬레나 사제님?”

“이제 보니 알겠습니다! 지금 형제님께서 걸치신 목도리는 성갑聖甲의 일부입니다!”

“네?”

이어진 헬레나의 설명에 따르면 정의로운 광명의 사도에게는 그 상징으로 빛으로 된 망토가 주어진다고 한다.

지금처럼 목과 어깨를 가리는 순백의 갈기가 특징이라나.

망토는 그 자체로도 막대한 신성력을 품고, 온갖 신성술을 보조해주지만…그 진가는 따로 있다.

평소에는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날개뼈까지 가리는 짧은 길이지만, 전투 시에는 쭈욱 늘어나 전신을 휘감고 갑옷의 형태가 된다고 한다.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성갑은 착용자의 보조를 넘어 스스로 착용자를 강화하고 치유하며, 위기 상황에 반응해 실드를 비롯한 각종 신성술을 발휘하기도 한다나.

신물이라기보다는 권능에 가까운 것. 그렇기에 오직 사도만 사용할 수 있는 특전 같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제 대신전을 한 바퀴 돌면서 보았던 온갖 성화와 조각상에서도 사도는 항상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지.

“이건 단순한 형태만 같은 껍데기겠지만…그래도 그런 걸 저한테 둘러주셨다고요?”

[크허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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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응. 잘 어울리던데 이참에 내 사도하지 않을래?] 라며 당신을 재차 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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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니까요.”

은근 집요한 면이 있단 말이지.

[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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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끄아앙….] 이라며 시무룩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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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번역이 잘못됐나 싶어 찬찬히 다시 읽어봤는데, 내용은 그대로였다.

그냥 끄아앙이라고 말한 거였냐고….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린 정의로운 광명이 헬레나를 끌어안고 부비적거리기 시작했다.

[크으앙…!]

“네? 어, 그…주, 주께서 원하신다면 이 한 몸…!”

조금 전의 말로 흥을 깬 탓에 정의로운 광명이 화난 거라 여긴 걸까. 헬레나가 양팔을 크게 벌리고 눈을 꾹 감았다.

마치 사자 앞에 제물로 바쳐진 처녀 같은 모양새.

하지만 정작 그녀의 신은 별로 화난 것 같지 않지만. 단순히 투정 부리듯 헬레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그르렁거리고 있을 뿐이니까.

그나저나 귀랑 꼬리 말고는 생긴 게 똑같아서 그런 걸까. 이렇게 둘이 달라붙어 있으니 몬가몬가네.

수녀복으로도 숨기기 힘든 굴곡과 굴곡이 서로 짓눌리며 일그러진다. 거기에 한명은 각오했다는 듯 비장한 표정이고, 다른 한명은 만족스러운 표정이라는 대조까지.

아직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건만 슬금슬금 올라오는 엄한 상상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흠흠. 그나저나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만. 괜찮으실까요 정의로운 광명님?”

[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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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한 게 신나서 잠시 깜빡했네…뭐였지? 이 아이를 사도로 만들자는 이야기였던가?] 라고 머쓱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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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제가 아니라 헬레나 사제님을 사도로 삼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마법사로 있을 때 더 강하기도 하고…무엇보다 헬레나 님이 저보다 훨씬 정의로운 광명님과 잘 맞을 거예요.”

[크릉.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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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확실히. 헬레나는 나와 잘 맞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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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아무리 눈을 꾹 감고 기다려도 돌아오는 신벌이라고는 꾹꾹이밖에 없어서일까.

슬그머니 실눈을 떴던 헬레나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멍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 헬레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정의로운 광명님은 별로 화 안 나셨다니 걱정 마세요.”

“아…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헬레나의 모습에 키득이며 말을 잇는 정의로운 광명.

[…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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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내 최초의 제사장과 이렇게나 닮았는걸. 처음 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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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이요? 성녀나 성자가 아니라요?”

“그거 아시나요 얀델 형제님? 정의로운 광명께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종교의 틀조차 없던 시기에는 사도를 제사장이라 불렀다고 하지요.”

“대체 얼마나 오래전인 거야…?”

“글쎄요? 적어도 제국이 생겨나기 이전인 건 확실합니다.”

“허어.”

제국은 에우렐리아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지만…동시에 최초의 국가기도 하다.

즉, 정의로운 광명은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부터 원시 종교의 형태로 함께 있었다는 소리.

“너무 스케일이 커서 머리가 멍해지네…그보다 최초의 제사장과 닮았다는 소리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자, 이를 눈치챈 정의로운 광명이 씨익 웃으며 헬레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딱 붙인다.

“주, 주님?!”

[그르릉.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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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아마 그 아이의 먼 후손이겠지. 내 인간형 모습은 그 아이에게서 따온 것이니 이렇게나 닮은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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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며 딱딱하게 굳은 헬레나와 마냥 기분 좋아 보이는 정의로운 광명.

어림잡아 몇 천 년 전의 선조인데 이 정도로 닮는 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한데…놀랍게도 이 세상에서는 가능하다.

특별한 힘을 가진 핏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도 흐릿하게나마 그 특징을 유지하니까.

그러다 선조 회귀라도 일어나면 추가로 몇 세대는 더 이어지는 거고.

당장 린델하이트 가문도 비슷한 느낌이다. 한번 끊어진 줄 알았던 용의 피가 시조의 각성 이후로 다시 진해지지 않았던가.

막대한 마력과 아름다운 외모라는 형태로 말이다.

아마 헬레나에게도 무언가 있는 거겠지. 재능의 근간이 되는 무언가가. …성녀의 재능이라고 하면 영 감이 안 오지만.

성격이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체질 같은 게 있는 건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과호흡이라도 오려는 것처럼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헬레나를 위해 입을 열었다.

“어…아무튼 헬레나 님을 성녀로 삼으시겠다는 소리죠?”

[크앙 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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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응. 얀델 너는 아무래도 따로 생각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내 지원이 오히려 방해되는 거지?] 라며 조금 쓸쓸하게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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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람맞은 여인처럼 축 늘어지는 정의로운 광명.

“그으…방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정말로요. 다만, 저랑은 좀 안 맞아서 그래요. 아깝기도 하고요.”

무슨 변명이라도 하듯 튀어나온 말에 귀를 쫑긋거리는 정의로운 광명.

어디 한번 계속 말해보라는 듯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 목표는 모든 악신을 멸하는 것. 이는 절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마법사 겸 성자가 되는 것보다 대마법사와 성녀가 둘 있는 편이 훨씬 강하겠죠.”

예를 들어 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기절하면 누가 나를 치료해주겠는가.

혼자 강해져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건 좋지만…악신은 그런 고집으로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다른 누구도 아닌 정의로운 광명과 헬레나에게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

내 입에서 악신을 죽이겠다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입을 떡 벌리고 굳은 정의로운 광명.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표정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턴 상태가 풀렸는지 천천히 입을 뻐끔거리더니…그대로 우다다 예배당 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

그렇게 예배당 안을 3바퀴 정도 돌고, 이유 없이 폴짝폴짝 뛰며, 마지막에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제자리로 돌아온 정의로운 광명.

그녀가 황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벌떡 일어나 나를 덮친다.

“어어…?”

맹수의 사냥을 연상시키는 부드럽지만 위협적인 몸놀림. 반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정의로운 광명은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받아치고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켁.”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뒤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그제야 입을 여는 정의로운 광명.

[크앙! 킁! 크르릉! 크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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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요즘 시대에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 심지어 교황이라는 아이마저 악신을 봉인할 생각만 했지 죽일 생각은 안 했으니까!] 라며 눈을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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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도 얼추 비슷한 생각인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제님…진심이신 겁니까? 단순히 사교도를 궤멸시키겠다거나, 던전을 전부 클리어해 선신들의 영광을 되찾겠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악신을 멸하시겠다고….”

“네. 애초에 지금은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 와서 사교도를 전부 죽여도, 던전을 전부 클리어해도 악신은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그리고 준비도 부족하고 용사도 없는 이번에야말로 종말을 맞이하겠죠.”

“이미 멸망이 확정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아아….”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자마자 무거워진 분위기. 하지만 정의로운 광명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벌러덩 내 무릎 위에 누웠다.

그리고는 한쪽 손을 뻗어 자신의 배로 이끌었다.

[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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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쓰다듬어!] 라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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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당황하며 머뭇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손을 잡은 채로 자신의 배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거나 위아래로 쓰다듬는 정의로운 광명.

손바닥에 와 닿는 복부의 감촉이 말랑말랑하기 그지없다.

나도 모르게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자, 다급히 자신의 배를 가리는 헬레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다. 조금 귀엽네.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정의로운 광명이 내 고개를 잡아 자신을 향해 돌렸다.

[크앙.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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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역시 내 사도가 될 자질이 충만한 것 같지만, 그런 거라면 거절하는 것도 이해해!] 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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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은 제 가호를 조금 덜어내시고 헬레나 님에게 옮기는 걸로….”

[크허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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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그건 싫어!] 라며 볼을 부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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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땡땡하게 부풀어 오른 볼은, 몇 번 배를 쓰다듬자 다시 가라앉았다.

[크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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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더 좋은 방법이 있어! 조금만 도와주면 얀델도 가호를 유지하며 헬레나를 성녀로 삼을 수 있을 거야!] 라며 의기양양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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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런 게 있으면 좋죠.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요? 뭘 하면 될까요?”

그런 게 있다면 당장 해야지. 역시 이래 보여도 신은 신인가.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

[크앙! 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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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간단해! 둘이 몸을 겹치면 돼!] 라고 해맑게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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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구요?”

너무 예상치 못한 내용에 순간 주춤하며 되물었으나, 정의로운 광명은 변함없는 미소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우는 제스쳐를 취했다.

[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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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광명이 [수컷! 암컷! 교미!] 라며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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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것처럼 즉시 튀어나온 대답.

그 말을 전해 들은 헬레나는 무언가 짚이는 거라도 있는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털썩 주저앉아 본인 앞에서 기도를 시작했고.

정의로운 광명은 여전히 헬레나를 보며 호의로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개판이었다.

[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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