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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97화 (197/230)

“네….”

뛰어난 기억력 특성 덕에 이미 외웠지만, 그렇다고 말했다가는 바로 대련이 시작되리라.

얌젼히 고개를 끄덕인 내게 이오나가 보충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체내에서 작용하는 마법이다 보니, 무의식적인 보호가 작동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실패해도 돼! 문제는 성공했을 때야!”

“성공했을 때요?”

“응응. 어설프게나마 성공하면 그 순간부터 얀델 학생의 피는 몸을 움직이는 연료가 되는 거야. 가만히 숨만 쉬어도 최소한의 피가 소모되고, 큰 힘을 쓰면 더 많은 양의 피가 증발해버리겠지.”

“…엄청 위험해 보이네요.”

“맞아. 실제로 위험해. 만약 얀델 학생이 한계 이상의 힘을 쓰려고 하다 잘못되면 그대로 쓰러져버릴지도 몰라! 그 경우 원인은 상처 없는 과다출혈이려나?”

재밌는 농담을 했다는 듯 히히 웃는 이오나. 하지만 내가 따라 웃지 않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물론 얀델 학생이 능숙해지면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완전히 익히기 전까지는 절대 혼자 연습하지 마. 무조건 이 이오나 교수님이 있을 때만 수련하는 거야. 어때? 약속해줄 수 있어?”

“당연하죠. 제 안전을 위한 거니 명심할게요.”

한번 성공하면 시스템에 등록되어 보정을 받게 될 테니,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교수님. 이 마법은 다른 강화 마법과 어떻게 다른 건가요?”

“아앗! 아앗! 그 부분을 아직 알려주지 않았었네! 아까 말했었지? 피가 연료가 된다고.”

“네.”

“피는 그 자체로 생명력의 정수야. 그러니 오러와 비슷한 방식으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어. 혈마법인 만큼 효과도 다른 강화 마법보다 몇 배는 좋고! 무엇보다 블러드 시프트가 타인의 피해를 술자가 대신 지불하듯, 얀델 학생이 받아야 할 반동을 혈액이 대신 받아줄 거야! 이건 평범한 외상에도 적용할 수 있어!”

“피가 엄청 소모되겠는데요?”

“그러니까 지금의 얀델 학생 같은 사람이 아니면 뱀파이어나 쓸 수 있는 기술이지. 아, 이름은 블러드 포스다?”

“허어….”

혈마법이라고 블러드만 붙이면 다 되는 게 아니거늘.

이오나의 파멸적인 작명 센스에는 한숨만 나오지만, 기존의 강화 마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효율적이라는 건 사실이다.

마법으로 오러를 흉내 내는 데다가, 여차할 때는 피를 소모하는 것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다만 문제는 역시 재생력. 어중간한 재생력으로는 어림도 없겠네.

내 재생력을 가장 큰 폭으로 늘려주는 건 태양신의 가호다. 그리고 이는 해가 떠 있는 동안만 재생력 보너스를 주는 가호고.

기껏 배워도 낮에만 쓸 수 있는 건가…아니지, 결국 피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나중에 페이에게 부탁해서 피만 집중적으로 회복시키는…조혈제 같은 포션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밤에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속으로 이런저런 대안을 떠올리던 도중. 이오나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라? 어라? 아까부터 눈이 허공을 보고 있네! 벌써 다 외운 거야?”

“아.”

“생각보다 외우는 속도가 빠르네! 에잇!”

밀착해있던 나를 밀쳐 떨어뜨리고는 가볍게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이오나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온 빨간 빛무리.

이젠 익숙한 블러드 시프트의 빛무리가 나와 이오나의 몸을 하나로 엮었다.

이제 곧 대련이 시작될 거라는 의미였다.

“딱 얀델 학생이 블러드 포스로 몸을 강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대응할 수 있는 정도의 세기로 공격할게!”

“자, 잠깐. 잠깐만요! 적어도 마법을 시전할 시간 정도는 주셔야죠! 영창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거 알아 얀델 학생?”

“뭔진 모르겠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일 것 같은데요.”

“혈마법은 단적으로 말해 마력과 생명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마법이야. 그래서 효율이 좋은 거지.”

“그…렇죠?”

“얀델 학생은 이미 마력을 사용할 줄 아니, 생명력의 사용법만 알면 금방이란 말이야?”

“아아아악!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불길함에 귀를 막고 어린애처럼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이오나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생명력을 일깨우는 가장 좋은 방식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보는 거야!”

“이럴 줄 알았어!”

호다닥 거리를 벌리며 즉흥적으로 짜낸 주문을 더듬어 보지만, 그보다 이오나가 조금 더 빨랐다.

“괜찮아! 괜찮아! 블러드 시프트 걸어뒀으니 죽지는 않을 거야!”

후웅.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 그리고 채찍처럼 낭창하게 휘어지는 이오나의 다리.

어설픈 심상과 마력이 몸을 뜨끈하게 데우는 것과 동시에 관자놀이에 이오나의 발등이 닿았다.

퍼억!

격통과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야.

바닥에 드러누운 채, 올려다본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여름 방학 이틀째였다.

분명 방학이 됐건만 어째 변한 게 없다.

물론 내 목적을 생각하면 방학이라고 마냥 풀어질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빡쎄잖아?!”

이리스의 납작한 가슴에 얼굴을 마구 부비며 하소연하자, 난처한 표정으로 내 뒤통수를 쓰다듬어온다.

“으음. 주인의 고생은 잘 알고 있네. 그래도 효과는 좋지 않나. 이틀 만에 마력을 녹여내는 정도는 할 수 있게 됐으니.”

“그럼 뭐해! 아직 불발이잖아! 맨날 얻어맞는다고! 이게 억울해서 한 방 먹여주려고 했던 건데…!”

“아니, 그래도 침대 위에서는 주인이 반대로 엄청 괴롭히잖나. 무엇보다 블러드 포스는 엄연한 비전이네. 우악스러워 보여도 그 밑에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는 걸세.”

“…그 부분은 나도 알아.”

블러드 포스는 단순한 신체 강화의 상위 버전이 아니다. 그 본질은 마법으로 오러를 흉내 낸다는 것에 있다.

만약 성공만 한다면 여기저기에 써먹을 방법은 많겠지.

예를 들면 저항력.

마나를 끌어 올리면 자연스레 정신계 마법이나 독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한다.

이는 오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효과만 놓고 보자면 오러쪽이 훨씬 더 좋겠지.

그런데 만약 오러를 흉내 낼 수 있게 된다면?

마나 회로로는 마나를 돌리고, 혈관으로는 블러드 포스가 걸린 피를 돌려 이중으로 저항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그 외에도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할 테고.

진짜 오러가 아닌 만큼 재현 불가능한 것들도 많겠지만…신체에 한정된 효과라면 대부분 따라 할 수 있겠지.

당연히 전체적으로 몸이 빈약한 마법사라면 눈에 불을 켜고 배우려 들만한 마법이다.

뭐…일반인의 4배 이상 되는 재생력을 가지고 있거나, 지속 회복 포션을 물처럼 마셔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붙지만 말이다.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야.”

한숨을 푸욱 내쉬며 이리스의 가슴팍에 더더욱 고개를 문댔다.

갈비뼈가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주인은 기껏해야 스무살이었지.”

“응? 뭐, 그렇지?”

“세상에 나온 것도 겨우 3년 좀 넘었을 뿐이고.”

“맞아.”

지구에서는 22살이었고, 이 세상에 빙의한 지는 3년 정도 되긴 했다.

그나저나 이건 이것대로 좋네.

작다고는 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과, 힘을 꾹 주면 갈비뼈에 뺨이 짓눌리는 느낌.

이리스의 매력 포인트를 하나 더 찾은 것 같다.

정작 이리스는 일부러 강하게 비비적대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건지, 내 머리를 강하게 마주 끌어안고 있었지만.

“…고생 많았구나. 이번에도 결과가 좋았을 뿐, 꽤 아슬아슬했네. 허나 앞으로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터.”

“뭐어, 내가 선택한 길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나도 마음 같아서는 인벤토리에 쌓인 골드나 펑펑 쓰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몇 년 뒤에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가 없더라.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어째 이리스는 무척이나 안쓰러운 것을 보는 눈빛으로 내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그런가…그렇다면 지금만이라도 편히 쉬게. 내 품에 안겨있는 동안이라면 주인의 짐을 내려놔도 좋네. 언제든 날개를 접고 쉴 수 있는 둥지가 되었으면 하니.”

“…….”

뭐지. 그냥 투정 좀 부리러 왔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위로받고 있잖아. 별거 아니었다고 하기엔 너무 뻘쭘한 분위기다.

무엇보다 쓰담쓰담 받는 이 기분…나쁘지 않아….

자그마한 이리스에게서 느껴지는 모성애. 묘한 언밸런스함에 마음이 노곤해져 간다.

그래서일까. 의식에 흐름에 따라 나도 모르게 이리스의 봉긋한 가슴을 옷 위로 물었다.

“으븝.”

“흐읏?! 이런, 아직 날도 밝고 점심엔 외출도 해야 하지만…주인이 이렇게나 원한다니 어쩔 수 없구려.”

말은 그리하면서도 기대된다는 듯 조금 숨이 거칠어진 이리스.

그런 이리스가 떨리는 손으로 상의 단추를 풀어, 아담한 가슴을 내보이려는 순간.

덜컥!

“이런데 숨어 있었어 후배님? 아무리 오늘 수련이 힘들었어도 말없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 슬슬 준비하고 나갈 시간……앗.”

갑자기 튀어나와 헥헥 거리는 페이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나와 이리스를 보고 흠칫했다.

그리고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후배님이 원한다면야….”

빙글빙글 돌아가는 페이의 눈동자. 무엇을 착각한 건지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천천히 상의를 벗어 던진다.

쭐렁.

이리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흔들림.

그저 시야에 담았을 뿐인데, 내 마음도 덩달아 흔들린다.

“와아아….”

“주인이여?!”

홀린 듯이. 아니, 실제로 페이의 가슴에 홀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에서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은 이리스가 뭐라고 한 것 같지만 잘 들리질 않네.

아마 페이의 가슴에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거겠지.

다만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이 페이에게는 답답해 보였나 보다.

“으음…이걸로는 부족한가? 에잇! 에잇!”

자신의 가슴을 살살 좌우로 흔드는 페이. 가벼운 몸짓이었으나, 크고 부드러운 유방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찰싹 찰싹.

격하게 흔들리는 페이의 젖가슴이 서로 부딪히며 나는 소리.

박수를 닮은 소리에 이끌려 비틀비틀 페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주인이여! 정신 차리게! 지금은 내게 응석 부릴 타이밍이 아니었나!”

“가스음….”

“에에잇! 그놈의 가슴! 왜 주인의 주변엔 거유밖에 없는 겐가! 심지어 최근에 합류한 이오나마저 큰데 왜 나느은…!”

이리스가 분을 참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콩콩 발을 굴렀다.

…이거 좀 귀엽네.

사실 이리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넋이 나간 건 아니지만, 반응이 재미있어 일부러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멍한 표정을 유지했다.

내 정면에 있는 페이도 진짜인 줄 알고 조금 당황한 것 같지만.

“이, 이리 와! 여기야 후배님!”

“찌찌…머리보다 크다….”

대충 되는 대로 중얼거리며 페이의 앞에 도착한 순간.

“얍!”

돌연 자신의 양쪽 가슴을 써서 내 얼굴을 감싸는 페이.

가슴에 둘러싸여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선 내 모습에 페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잡았다아…이제 후배님은 여기서 못 나가. 내 가슴 사이가 후배님 집이야…후힛.”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음습한 한숨이었나?

아무튼 볼에 부벼지는 말랑한 감촉과, 등을 꾹꾹 잡아당기는 서운함 가득한 손길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몇 시인가요 선배님?”

“으응?! 아…시간. 응….”

조금 시무룩해진 페이가 손목에 달린 시계를 힐끗거리고서 대답했다.

“12시 50분이야. 1시에는 출발해야 한다며?”

“쓰읍…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다른 사람들은?”

“다들 준비 끝나고 기다리고 있어. 후배님이 안 보여서 찾으러 온 거고.”

“알았어. 바로 준비하고 거실로 갈게.”

“응.”

그제야 내 얼굴을 가슴에서 해방시켜준 페이가 주섬주섬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잠시 그 모습을 감상하다가 뒤에서 볼을 잔뜩 부풀린 이리스에게 클린을 걸어주었다.

“느악!”

“급하니까 씻는 건 이걸로 대신하자.”

뒤이어 내게도 클린을 걸고 미리 준비해둔 여행용 옷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갈아입었다.

하지만 같이 갈아입던 이리스는 상의를 뒤집어쓴 채, 팔을 버둥거리길래 옷을 고쳐 입혀주었다.

머리 넣는 데가 아니라 팔 넣는 곳에 머리를 집어넣으니 안 들어가지….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놓고 가는 건 없는지만 확인하자.”

“알겠네.”

나나 다른 이들은 각자의 아공간 주머니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다니지만, 이리스는 저택에 사니 놓고 가는 게 있을 수도 있지.

자신의 공방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확인한 이리스가 마지막으로 내 옆으로 쫑쫑쫑 다가와 그대로 팔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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