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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87화 (187/230)

누가 들으면 큰일 나는 짓을 저지르려는 건가?!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달빛이 검붉은 머리카락을 비췄다.

그래. 흡혈귀도 귀신이라면 귀신이지.

어째서인지 내 침대에 잠입해온 이오나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오나 등장!”

“이오나 등장!”

어째서인지 내 침대에 반쯤 올라탄 이오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외쳤다.

“…아니, 여기서 등장하면 안 되죠! 이거 불법 침입이잖아요!”

“괜찮아! 괜찮아! 내가 누구? 아카데미의 최고참 교수이자, 얀델 학생의 담임 교수! 심지어 같은 전장에서 싸우다가 다친 거잖아! 당연히 나한테도 이 병실의 출입권이 있다 이 말씀!”

“출입권이 있다는 게, 아무 때나 들어와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지금이 몇 신데….”

“으응? 으응? 수상한데? 이렇게나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다니…얀델 학생 설마 혼자 즐기는 중이었어?”

“교수가 학생 성희롱해도 되는 거예요?”

“그럼 학생은 교수한테 억지로 키스하고, 막무가내로 가슴에 얼굴 파묻고 그래도 되는 거야?”

“…그 부분은 저번 기습 키스로 끝난 이야기잖아요.”

괜히 퉁명스레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자, 아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키득거리는 이오나.

안 그래도 새하얀 피부가 달빛을 받아 더욱 투명하게 보인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덧없는 분위기.

이래서야 뱀파이어보다 잠깐 마실 나온 요정 같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떠오른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교수님은 지금 괜찮은 거 맞나요? 저보다 더 많이 다치셨잖아요.”

“응? 당연하지 나는 얀델 학생이랑 기본 회복력 자체가 다른걸? 진작에 다 나아서 여기저기에 불려다니다 지쳐서 기어들어 온 거야!”

“그게 제 침실에 숨어든 거랑 무슨 상관인가요?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아, 혹시 저한테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고 했던가. 이오나쯤 되는 사람을 아무나 호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아카데미 지하에서 골골대고 있을 교장 겸 이사장, 선신 교단 연합, 각국의 왕이나 황제.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게 틀림없다.

그렇게 살짝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이오나의 새빨간 입술에 집중하는 것도 잠시.

이오나는 지금까지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싹 버리고는 허리를 쭉 펴 정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인가?

자연스레 강조된 가슴. 자꾸만 아래로 향하려는 시선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이오나 교수님?”

“어, 으응. 그게 말이야….”

무언가 할 말은 있지만,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듯 입술만 우물거리는 이오나였으나.

이내,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있잖아 있잖아…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네? 뭔데요?”

“…를…게 해줘.”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그러니까……를 게 해줘.”

“???”

멍하니 눈만 끔뻑이자 돌연 이오나가 고양잇과 맹수처럼 유연한 움직임으로 내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건지 내 머리 양옆에 턱! 하니 손을 짚었다.

검붉은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리며, 커튼처럼 달빛을 적당히 가렸다.

덕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딘지 절박해 보이는 이오나의 얼굴, 그리고 내 상체에 닿을랑 말랑한 가슴뿐.

치료실에 잠입하고, 침대 위에 올라타, 나를 덮친 것 같은 모양새.

이오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피. 마시게 해줘.”

“…네?”

“그러니까! 얀델 학생의 피를 마셔도 되냐는 소리야!”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되물은 거거든요? 그리고 귀 아파요.”

“…미안 미안. 내가 지금 좀 여유가 없어서 그랬어. 이젠 소리 안 지를게.”

조금 시무룩해진 어조로 상체를 일으키는 이오나.

내 허리 위에 올라탄 상태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거 알아? 얀델 학생은 이틀 만에 일어난 거야.”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요.”

“그야 대륙 최고의 시설에서 치료받았잖아. 거기에 치료가 전문은 아니라지만, 정의로운 광명의 추기경이 응급치료도 했고.”

전원이 성기사와 전투 사제로 이루어진 기형적인 교단이지만, 그래도 성직자는 성직자. 치유 신성술 정도는 당연히 쓸 수 있겠지.

“아, 혹시 이틀간 피를 안 드신 건가요?

“안 먹은 게 아냐. 못 먹은 거야.”

“허?”

이어진 이오나의 말에 따르면 평소처럼 동물의 피를 마시려 했더니 너무 역겨워서 한입 먹자마자 전부 토해버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으니, 사람의 피가 담긴 수혈팩을 마셔봤지만….

“그게 그게…나도 모르게 얀델 학생의 피랑 비교해서 그런가? 마실 수는 있는데 갈증은 오히려 심해지더라구. 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이는 이오나. 하지만 자세히 보면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마 처음 치료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떨리고 있었던 거겠지.

누가 보면 위험한 약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

“지금도 그래…분명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참을 만했는데…얀델 학생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돼버려서….”

“이오나 교수님.”

이오나의 말을 끊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잡아당겼다.

별다른 저항 없이 끌려와, 다시 가까워진 이오나의 얼굴.

“저번에 제 피가 궁합이 좋다고 했었죠?”

“응응…아마 오랜만에 마신 사람 피가 잘 맞기까지 하니 몸이 좀 놀랐다고 해야 하나…들떴다고 해야 하나…그런 느낌이야. 응.”

안절부절못하며 횡설수설하는 이오나. 얼굴이 가까워져서라기보다는 내 목덜미가 가까워져서 이러는 것 같네.

계속해서 힐끔거리는 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가.

내가 자꾸만 이오나에게 흡혈 당하던 때의 감각을 떠올리듯, 이오나 또한 내 피를 빨던 때를 잊을 수 없던 거겠지.

약간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그전에 제가 했던 말도 기억하시나요 교수님?”

“뭐, 뭔데?”

내 목덜미에 정신이 팔려있는 이오나를 향해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 했잖아요.”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멍하니 이쪽을 내려다보는 이오나에게 목덜미를 내미는 것처럼.

“여기요.”

“…어?”

“안 드실 거예요?”

“…….”

이오나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거친 숨결. 아주 잠깐 망설이던 이오나였으나,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했는지 얼굴을 가져다 댔다.

으득.

날카로운 송곳이 내 목덜미를 파고드는 감각. 조금 단단한 코의 감촉. 물린 곳을 툭툭 건드리는 부드러운 혀.

뒤이어 버릇이 될 것 같은 쾌감이 스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츄읍….”

심장 박동에 따라 울컥이며 빠져나가는 피. 그럴 때마다 서늘했던 이오나의 피부가 점점 온기를 되찾는다.

“쯉….”

상체를 짓누르는 말캉한 가슴을 통해 전해지던 이오나의 떨림이 점점 약해진다.

얌전히 내 목덜미에 매달린 모습이 어쩐지 아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부드럽게 이오나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으븝?”

내 손길에 순간 멈칫했으나, 이내 다시 흡혈에만 집중하는 이오나.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슬슬 빈혈기가 돌며 어질어질하길래, 이만하면 됐다 싶어 이오나의 등을 살살 토닥여주었다.

“교수님? 이제 충분하죠?”

“하음…브읍….”

대답이 없이 계속해서 피를 빠는 이오나.

이번에는 등을 손끝으로 콕콕 찔렀다.

“교수님? 저 좀 어지러운데요? 아직도 부족하세요?”

“…….”

대답이 없다. 아니, 대답 대신 은근슬쩍 내게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가슴으로는 상체를 꾹꾹 눌러대는 상태에서 움직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기같은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아기 맘마통이 마구 눌리는 것은 물론, 옷 너머라고 하나 서로의 고간이 마찰하게 된다.

“이오나 교수님?!”

화들짝 놀라 이오나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내 쪽을 꽉 잡고 있는 터라 살짝 들리는 게 전부.

세상에…현역 기사 수준으로 상승한 육체 스펙으로도 밀어낼 수가 없어…?

일단 위험해지기 전에 포션부터 꺼내 마시고 생각해야지.

인벤토리에서 꺼낸 회복 포션을 어찌어찌 마신 뒤에야 이오나의 상태를 살펴봤다.

“흐으…하읍….”

이미 이성은 날아가 버렸는지 아무리 이름을 부르고, 옆구리를 건드려도 반응이 없네.

오히려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더욱 끈적하게 몸을 비비적댈뿐.

당연한 말이지만 이쯤 되면 내 쪽에서도 반응할 수밖에 없다.

발깃.

“으브?”

본능에 몸을 맡기고 있던 이오나에게도 놀라운 사이즈였는지 잠시 허리를 멈춰 세운다.

조금 민망하지만 이렇게라도 정신을 차리면 다행이지.

허나 이오나는 내 기대와는 달리 무언가를 가늠하듯 천천히 꼼지락대더니, 이내 딱 좋은 각도로 고간을 밀착해온다.

옷 위로도 알 수 있는 부드러움.

…더 이상은 위험하다.

조금 전에 카를라와 한판 했다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평소에 최소 두 명씩 상대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문제는 이오나는 내 여자도 아니거니와, 지금은 제정신도 아니라는 점이다.

어쩔 수 없나.

한숨을 푸욱 내쉬며 손을 크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단숨에 이오나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찰싹.

“흣?!”

아무리 흡혈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이 정도면 정신이 들 수밖에 없다는 걸까.

고개를 퍼뜩 들어 올리며 자신의 엉덩이를 부여잡는 이오나.

“야, 얀델 학생 이건…이건….”

“교수님이 정신줄을 놓으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리 말하며 슬쩍 검지를 뻗어 이오나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조금 전에 마구 비벼대면서 옷깃이 흐트러졌는지, 절반 이상 가슴골이 드러난 모습.

“앗.”

황급히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려다 말고 얼굴을 붉힌 채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이오나.

“저기 저기. 얀델 학생.”

억누르던 매료를 다시 풀어헤친 것인지 색기를 풀풀 풍기는 목소리.

이오나의 핏빛 눈동자가 떨리며 온갖 감정을 뚝뚝 떨궈냈다.

긴장, 고마움, 죄책감, 배덕감, 기대, 두려움, 그리고 흥분.

순식간에 야릇해진 분위기 속에서 조심스레 이오나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한쪽 손으로는 검지와 엄지를 말아 원을 만들고, 다른 한 손의 검지로는 그 원을 쑤시는 천박한 제스쳐.

“할래?”

“네.”

뇌를 거치지 않고 입이 먼저 움직였다.

아마 생각하고 말했어도 똑같은 내용이었겠지만.

순식간에 야릇해진 분위기. 이오나가 조심스레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한쪽 손으로는 검지와 엄지를 말아 원을 만들고, 다른 한 손의 검지로는 그 원을 쑤시는 천박한 제스쳐.

“할래?”

“네.”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즉답. 아마 뇌를 거쳤더라도 대답은 변함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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