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자기들 쪽으로 회유한답시고 들러붙었을 거다.
내가 능력이나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지금은 어느 세력에 속하기 보다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편이 훨씬 이득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최고 수준의 치료시설을 갖춘 건 물론이요, 내게 뭘 요구하기보다 포인트나 두둑이 챙겨줄 아카데미가 훨씬 좋지.
아까부터 시야 한구석에서 반짝이는 시스템 창을 옆으로 치우며, 카를라에게 물었다.
“그럼 카를라 네가 내 옆에 이렇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거야?”
“물론이죠. 주인님이 언제 또 떨어지라고 명령할지 모르니 평소에 붙어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미안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사과.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내가 잘못한 게 맞다.
충동적인 결정. 하물며 근거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태도였고.
카를라가 살짝 울먹이며 내게 안겨들었다.
“주인님은…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시나요?”
“미안. 다만 그때는….”
“알아요. 주인님이 없었다면 이오나 교수님이 위험했겠죠. 저도 다 알아요. 하지만….”
내 가슴팍에 고개를 묻은 카를라의 떨림이 조금 더 심해졌다.
“저번 실습 던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흐윽. 제가 어쩌지 못하는 곳에서 주인님이 위험한데, 몸은 멋대로 달아나고 있으니…히끅.”
“…….”
그런가. 카를라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던 건가.
조금 더 힘을 주어 카를라를 끌어안았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그러니까 안심하라는 말을 전하듯이 꽈악.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간헐적으로 들썩이던 카를라의 등은 잠잠해졌으며, 가슴팍에서 느껴지던 물기도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슬슬 진정한 건가 싶어 팔에서 힘을 푸는 순간.
꾸욱.
이번에는 카를라 쪽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다시금 밀착된 상태에서 천천히 이쪽을 향해 얼굴을 들어 올리는 카를라.
반사적으로 나 또한 입술을 살짝 내밀어 그대로 키스하려는 찰나.
휙.
그대로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간 카를라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서? 주인님과 이오나 교수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엇.”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목소리.
뭐야. 지금은 약간 후일담 같은 잔잔한 분위기 아니었어? 사실 스릴러물이었나?
등 뒤를 타고 흐르는 긴장감에 식은땀만 뻘뻘 흘리는 것도 잠시. 카를라가 루비색 눈을 번뜩이며 대답을 재촉했다.
“제가 이렇게나 마음고생 하는 사이에 많이 가까워지셨더라구요? 막 자연스레 피도 내어주고? 키스도 하고?”
“어, 음….”
“대답해주세요 주인님.”
“그게 말이지….”
무슨 일이 있긴 했지.
세상에. 마음껏 빨아주세요나 키스할까요 같은 말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역시 매혹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상태였나? 서큐버스에 이어 뱀파이어의 매혹에 노출됐으니 가능성은 있다.
자꾸 우물쭈물대며 대답을 미루는 내 모습이 답답했던 걸까. 카를라가 울컥 언성을 높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없다면!”
바로 다음 순간에 풍선 바람 빠지듯 급격하게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제가 더는 궁금해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리는 것도 방법인데요?”
“…….”
시선을 피하듯 슬쩍 돌린 고개, 그런 주제에 이쪽을 힐끔거리는 루비색 눈동자, 약간의 미안함과 그 이상의 고집이 담긴 입가.
하지만 여전히 몸은 무언가를 참아내듯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언제나 내 의견에 헤실대며 따르던 카를라의 보기 드문 강경한 태도.
쓴웃음을 지으며 카를라의 위에 올라탔다. 다행히 몸이 상당히 회복됐는지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다.
“읏.”
어디 해보면 해보라는 듯이 눈은 꾹 감고 입술을 삐죽 내민 카를라.
그런 카를라의 볼에 내 볼을 맞대며 속삭였다.
“미안. 내가 너무 불안하게 만들었네.”
이후, 엉망진창으로 입막음했다.
***
“내일은 엘리샤가 찾아올 거예요.”
“응…그다음은 이리스랑 페이 선배인가?”
“네. 잘 알고 계시네요 주인님.”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방긋 미소 지은 카를라.
“뭐야. 자고 가는 거 아니었어?”
“저도 그러고 싶지만 조금 뒷정리가 남아서요.”
“뒷정리라니….”
“별거 아니에요. 이번에 대주교를 하나도 아니고 7명이나 쓰러뜨리셨잖아요? 거기에 추기경도 하나 토벌하셨구요. 그 보상에 관한 조율이라거나, 주인님을 데려온 정체불명 마법사들의 이야기라던가…그런 걸 조금 준비해야 해서요.”
“아하?”
아직 사도가 없는 지금. 추기경은 최고 지도자이며, 대주교는 실질적인 전력이다.
당연히 선신 교단 연합은 모든 대주교에게 현상금을 걸어두었으며, 자주 깽판치던 대주교의 목에는 피해를 많이 본 국가의 현상금도 걸려있다.
단순한 명예나 도덕만으로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 부분은 전적으로 너한테 맡길 게 카를라. 이리스가 이런 쪽으로는 경험이 많을 테니 서로 상담해가며 하면 좀 더 편할 거야.”
“헤헤…이리스 님은 이미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그보다 주인님. 지금은 주인님의 공이 어느 정도인지 책정하는 단계라 저희끼리라도 상관없었지만…혹시 따로 원하시는 보상이라던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쪽 위주로 판을 짜볼게요.”
“글쎄…보상이라고 해도 물질적으로 부족한 건 아니란 말이지…일단 골드보다는 희귀한 물건이나 장비 쪽으로 부탁할게.”
“돈보다 실물 쪽이라는 거죠? 맡겨만 주세요. 주인님이 일어나시기 전에 싹 준비해둘게요!”
콧김을 뿜으며 자신만만하게 끄덕이는 카를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옅은 미소로 내 이마를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사실 주인님의 경지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그건 다 나으면 해요. 아직 내상은 남아있는 거죠? 지금은 푹 쉬고 회복하는 데 집중하세요 주인님.”
“응.”
“그리고 이건 저희가 없는 동안 심심하실까 봐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이에요.”
“고마워. 나중에 읽어볼게.”
머리맡의 탁자에 책 한 권을 올려둔 카를라.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치료실을 나섰다.
혼자가 된 어두컴컴한 치료실에서 잠시 멍하니 이마를 만지작대다가, 시야 한구석에 정신을 집중했다.
교단이나 여러 나라에서 줄 보상도 좋지만, 내겐 역시 이쪽 보상이 더 기대된단 말이지.
“후우….”
가볍게 심호흡하고서 지금껏 최소화되어있던 시스템 창을 펼쳤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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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도 간부 토벌!】
홀리몰리! 과카몰리! 대체 어떻게 한 건가요?
당신은 대량의 몬스터, 각 악신 교단의 일곱 대주교, 그리고 무려 편협한 찬탈의 추기경을 한 번에 쓰러뜨렸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나요?
단순히 악신 교단의 계획이 미뤄졌다거나 일부 취소된 걸 넘어, 전력 자체가 대폭 깎여나갔다는 소리랍니다!
물론 당신 혼자 행한 업적은 아니라 하나…당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업적이기도 합니다.
이는 전 대륙의 사람들은 물론, 저어기 높은 곳에서 엉덩이만 들썩이던 선신들마저 찬사를 아끼지 않을 업적!
특히 정의로운 광명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를 갈던 때도 있었으나, 멋지게 살아남아 토벌을 마친 모습에 폴짝폴짝 성소를 뛰어다닐 정도로요!
감동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가호를 퍼주는 모습에 다른 선신들도 동참합니다.
당신에게 만신의 가호가 깃듭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당신은 분명 대단한 업적을 이뤘지만, 이는 그만한 반대급부를 가져올 것입니다.
-모든 스탯 대폭 상승
-모든 특성의 숙련도 대폭 상승
-특성: 사교도 혐오(C) 대폭 강화
-특성: 태양신의 가호(B) 대폭 강화
-특성: 만신의 가호(B) 획득
-당신의 명성이 전 대륙에 울려 퍼집니다
-모든 악신 교단이 당신을 불구대천의 공적으로 지정합니다
-모든 선신 교단의 우호도 대폭 상승
-칭호: 대적자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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쒜에에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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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탯 대폭 상승
-모든 특성의 숙련도 대폭 상승
-특성: 사교도 혐오(C) 대폭 강화
-특성: 태양신의 가호(B) 대폭 강화
-특성: 만신의 가호(B) 획득
-당신의 명성이 전 대륙에 울려퍼집니다
-모든 악신 교단이 당신을 불구대천의 공적으로 지정합니다
-모든 선신 교단의 우호도 대폭 상승
-칭호: 대적자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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쒜에에엩.
스탯과 특성의 성장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벌써 대적자 칭호랑 만신의 가호를 얻을 줄이야.
둘 다 획득 조건이 까다로워 빨라도 2학년, 보통은 3학년에 얻는 것들이다.
그만큼 이번 업적이 대단했다는 거겠지.
악신 교단 쪽에서 아득바득 이를 갈 거라는 건 예상했던 바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나저나 정의로운 광명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원래 좀 더 뭐랄까. 근엄하고 강인한? 그런 멋있는 사자 같은 느낌 아니었어?
뭐어…가호를 이렇게 퍼주는 건 고맙지만 말이다.
침을 꼴깍 삼키며 우선 얻은 것들부터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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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만신의 가호(B)】
에우렐리아 대륙의 모든 선신이 당신을 지지하고 가호합니다.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의 미래에 신들의 축복이 있기를.
-체력, 마력의 회복속도 50% 증가
-모든 속성의 내성 30% 상승
-정신 내성 20% 상승
-단 한 번 치명적인 피해를 무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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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방어적인 특성이다.
딱 한 번뿐이지만 죽음을 회피하게 해주는 효과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고.
각종 내성을 올려주는 효과도 단연 모든 특성 중에서 최고 수준.
심지어 이거 성장형 특성이라, 선신들이 좋아할 만한 일을 반복해 랭크를 상승시키면 큰 폭으로 효과가 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