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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79화 (179/230)

여파만으로도 산산조각나는 언데드들과, 거꾸로 뒤집히며 속살을 드러내는 지면.

마치 폭격이라도 떨어지는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

뭐지. 생각보다 위력이 좀 강한데?

언데드를 상대할 때 보너스를 받는 고스트 버스터 칭호와, 빛 속성 마법을 사용할 때 보너스를 받는 태양신의 가호 특성.

이 둘이 있는데다가 마력 과충전까지 썼다지만 좀 많이 화려하지 않은가.

…뭐, 좋으면 좋은 거지.

마법을 발현한 왼손은 좀 저릿하긴 해도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네.

공중에 떠다니는 단검을 잡아챈 뒤, 쓸려나가는 언데드 쪽을 향해 까딱였다.

“포스 핸드.”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몸을 부드럽게 움켜쥐고는, 있는 힘껏 앞으로 내던졌다.

쐐애애애액!

발로 달릴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 그만큼 도중에 무언가와 부딪혔을 때의 충격도 크겠지만….

부딪힐 만한 것들은 전부 조금 전의 마법으로 쓸려나갔다. 주저 없이 집어던질 수 있겠네.

그렇게 허공에서 내 몸을 잡아 던지고, 또 던지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곰보처럼 패인 땅을 지나고, 부서진 뼈가 즐비한 언덕을 지나,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초토화된 지역에 도달했다.

지상에 남겨진 격전의 흔적. 그 원인은 머리 위에 있었다.

온갖 권능이 하늘을 수놓고, 피를 머금은 마법이 가까스로 대항한다.

조금전의 나와 멜로니아가 벌인 전투의 몇 배는 될 정도로 화려한 전투.

아일라를 필두로 한 대주교 다섯과, 이오나가 서로를 죽이려 드는 모습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조금 수전증이 오긴 했지만, 썬더 콜링을 사용할 정도는 되겠지.

“『신뢰, 뇌광, 섬전.』

주변의 마나가 들끓고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낀다.

자연스레 이쪽에 집중되는 시선. 나를 발견한 이오나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날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영창을 이어나간다.

“『찰나의 순간에 내리쳐라.』”

“정말 정말 여기까지 온 거야?!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지금 그 마법은….”

무언가 할 말이 많은지, 허둥대며 주변의 피를 끌어모아 실드를 만드는 이오나.

다만 완전히 시야가 가려지면 준비 중인 마법을 쓰기 어려울 터.

영창 중인지라 말로 하기 힘들어 고개를 까딱이자, 얼추 알아들은 이오나가 피로 이루어진 보호막에 작은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 너머로 이쪽을 향해 쏘아지는 권능을 노려보며 멋있게 마지막 시동어를 이었…

“『썬더……껙.』”

…이으려고 했으나, 돌연 느껴지는 탈력감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얀델 학생?!”

당황한 이오나가 다시금 실드를 메우며, 무너지는 내 몸을 받쳐 들었다.

물컹.

자연스레 이오나의 가슴에 파묻힌 얼굴. 전투 중이라 그런지 옷이 풀어져 맨살이 직접 닿는다.

멜로니아의 매혹에도 멀쩡했던 정신이 순간 흔들리며 풀어지려 했다.

“흠흠. 지금 전투 중인 거 알지 얀델 학생? 이거 오래는 못 버텨!”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이건 추악한 번성의 권능에 노출된 부작용인데요?”

반사적으로 죽은 멜로니아를 내세우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윽.”

그러다 다시 무너져, 더욱 깊게 이오나의 가슴골에 얼굴을 묻었지만.

몰랑.

“…정말로 권능 때문인 거 맞지?”

“에헤이. 진짜라니까요.”

내 몸을 잡아당겨 가슴이 닿지 않게 받쳐 든 이오나에게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에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는 이오나.

“하아…됐어 됐어. 그렇다고 치자. 그나저나 괜찮은 거 맞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 같던데 어디 다친 거야?”

이오나가 피 투성이가 된 내 몸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잠시 내면에 정신을 집중해보자 원인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 약빨 떨어져서 그런 거니까 걱정 마세요.”

“…….”

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이오나.

그런데 사실인 걸 어떻게 해.

여기저기 베인 상처는 최상급 물약을 마시며 전부 회복됐다. 지금 남아있는 상처라고는 과부하 때문에 겉바속촉이 된 손가락뿐.

손이 아닌 전신을 못 움직이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몸에 가득 차올라 온갖 움직임을 보조해주던 버프가 전부 사라졌다.

묵직한 대검도 한 손으로 받아낼 수 있게 해주던 팔은 공중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렸고.

바람처럼 땅을 박차게 해주던 다리는 경련이라도 온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신에서 올라오는 익숙한 통증…근육통.

하필이면 마법을 완성하려던 찰나에 효과가 다한 것이리라.

“그래도 괜찮아요 교수님. 제가 여기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이미 목적은 달성했으니까요.”

“목적이라니…그래. 한번 들어보자 얀델 학생.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시 돌아온 거야? 이 이오나 교수님이 기껏 목숨 바쳐 살려 보냈더니…뭔가 방법이 있긴 한 거겠지?”

“당연하죠. 방해만 될 게 뻔한데 아무 생각 없이 왔겠어요?”

“있잖아 있잖아. 이미 방해는 됐는데?”

“…….”

내가 멜로니아에게 당하기 직전에 위험을 감수하며 써준 블러드 레인을 떠올리면 할 말이 없긴 하다.

머쓱하게 이오나의 시선을 피하는 것도 잠시.

쩌적.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이오나가 펼친 실드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진다는 신호였다.

“…시간 없는 것 같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고개를 쭈욱 내밀어 이오나에게 목을 들이밀었다.

“제 피를 빠세요 교수님.”

“아.”

시간만 끌면 지원군이 온다. 그들이 대주교만 맡아줘도 이오나가 승리할 확률은 대폭 상승하고.

문제는 지원군이 오기까지 버티지 못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오나 버틸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마침 뱀파이어는 흡혈로 생명력과 마력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는 종족이고.

“그러니까 제 피를 빠세요 교수님. 실수로 권속으로 만드시지는 마시구요.”

“하아…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얀델 학생. 내가 이래 보여도 로드급 뱀파이어야! 사람 한 명의 피를 전부 빨아도 1할도 회복하지 못할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도주를 우선시하면….”

한숨을 푸욱 내쉬는 이오나의 앞에서 최상급 포션 하나를 꺼냈다.

“피는 만들면 되죠.”

“세상에 세상에. 진심이었구나?”

회복 포션은 어디까지나 치료용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이오나가 마셔도 상처가 치료될 뿐, 생명력이 보충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포션을 마셔 피를 보충하고, 이오나가 그런 내 피를 빤다면?

생명력과 마력을 동시에 보충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실로 효율적인 방법이다.

“…얀델 학생. 그걸 뱀파이어 업계에서는 전문 용어로 피 깔때기라고 하는데, 대전쟁 이전부터 몰래몰래 행해진 악습이라 조약에서 금지당했다는 거 알아?”

“얀델은 그런 거 몰라! 빨아줘!”

“아니….”

시선은 내 목덜미에 고정시킨 주제에 자꾸만 주저하는 이오나.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밀며 자꾸 거절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오나가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 미리 독을 마신 아일라의 피를 빨고 마력이 굳어버린 적이 있으니까.

그 탓에 클랜원들의 시체를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짐 덩어리가 된 탓에 전 로드가 목숨 바쳐 구출해내기도 했고.

당시의 기억이 가시처럼 걸려 차마 직접 흡혈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래라면 필요하다는 이유로 차분히 설득할 생각이었지만.

쩌저적. 쩌억-

시간이 부족하다. 이제 곧 이오나가 펼친 실드가 부서질 터.

실금으로 가득찬 실드를 노려보며 입술을 악물었다.

어쩔 수 없나.

으득.

턱에 힘을 주어 깊숙이 베어 물자 울컥 솟아오르는 핏물.

눈을 가늘게 뜨고, 주절대며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는 이오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빈틈을 봐서.

쪼옥.

“으븝?!”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입술에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 무어라 말하려는 건지 살짝 입이 벌어진 틈을 타, 잽싸게 혀를 집어넣었다.

“흐읍….”

입을 닫으려는 건지 턱이 움찔거렸으나, 그랬다간 내 혀를 씹을 거란 생각에 멈칫한 이오나.

대신 혀로 꾹꾹 눌러 밀어내려 하길래, 냉큼 얽어서 제압했다.

그리고는 혀를 통해 침과 섞인 피를 천천히 흘려보낸다.

“으읍…읍….”

고개를 도리질 치며 거부하는 이오나.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는 없지.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능숙하게 이오나의 입 안쪽을 자극했다.

혀 뒤쪽, 입천장, 잇몸, 그리고 볼 안쪽까지.

꼼꼼히 간지럽히자 결국 참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목울대를 울렁이는 이오나.

꿀꺽.

“…흐응♡”

귓가를 간질이는 달콤한 비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후, 작전 성공.

“…흐응♡”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오나의 달콤한 비음.

오래만에 마신 인간의 피. 그것도 하필 상처 입은 몸이 피를 원할 때 이루어진 직접 흡혈이 트리거가 된 걸까.

피맛을 본 이오나는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격정적으로 나를 요구해왔다.

츕. 츄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밀어내려던 혀는 반대로 졸라대듯 마구 잡아당기기 시작했고.

살짝 닿는 수준이었던 입술은, 이쪽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강하게 짓눌러 온다.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열심히 침과 함께 피를 흘려 넣는 일뿐.

“흐응…하으….”

꼴딱꼴딱 내 피를 삼킬 때마다 거칠어져 가는 이오나의 숨결이 얼굴을 간질인다.

한번 피 맛을 본 이오나는 지금으로는 부족했는지, 한층 대담하게 피를 요구해왔다.

“베에…하읍!”

돌연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이번에는 본인 쪽에서 기습 키스를 시도한다.

다만 노리는 것은 오직 내 입술뿐.

상처가 난 아랫입술을 입에 머금고는, 아기가 젖을 빨듯 내 입술을 강하게 빨아대기 시작했다.

“쯉. 쮸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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