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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78화 (178/230)

그 구덩이 안에서는 잔류한 번개가 쉴 새 없이 파직 거렸으며, 수백은 될 법한 몬스터는 한 줌 잿가루가 되어 공중을 유영할 뿐이었다.

일격이다.

겨우 일격에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가 먼지가 되었다.

최대한 많은 수의 몬스터를 장악하기 위해 일부러 격이 낮은 것들을 불러 모았다고 하나, 단번에 전멸할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다.

이건 결코 방금 막 중위 마법사의 경지에 발을 디딘 반쪽짜리가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아니, 완숙한 중위 마법사라도 이만한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본신의 힘만으로 이러한 위력을 내보일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마도 명가를 자칭하며 거들먹거리던 린델하이트 가문 정도….

“어…?”

멜로니아는 일전에 들끓는 고요의 교단에게 받은 얀델의 정보를 뒤늦게 떠올렸다.

살아남은 린델하이트 가문의 여식을 노예로 데리고 있다 했던가.

“설마? 아니,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텐데….”

린델하이트의 재능은 철저히 핏줄을 통해 이어지는 것.

설령 린델하이트의 비전을 잇는다 하여도,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을 터.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저 크레이터 속에서 푸른 뇌광을 줄기차게 흘리는 저 사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멜로니아는 알 수 없었다.

***

흘러넘치는 마나를 주체할 수가 없다.

분명 마나량이 절반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썬더 콜링을 시전했을 텐데….

어째서인지 심장의 펌프질을 따라 외부의 마나가 빠르게 체내로 흡수되고 있었다.

미처 갈무리하지 못해 전신에서 튀어 오르는 푸른 스파크. 아마 눈에서도 마력광을 줄줄 흘리고 있겠지.

이게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단 한 번의 낙뢰로 귀찮게 굴던 피셔맨들을 전부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잔류한 전기들 때문인지 바닥에 가라앉지도 못하고 공중을 유영하는 시커먼 잿가루들.

그 너머로는 경악한 표정을 짓고있는 멜로니아의 얼굴이 보인다.

놀랐겠지. 나도 놀랐으니까.

슬쩍 이오나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당장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아도, 꽤 수세에 몰려있는 것 같네.

빨리 정리하고 저쪽으로 가야 한다.

아직까지 손에 남아있는 전능감을 의식하며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멜로니아가 내게 마력포를 쏘던 것과 비슷한 자세.

다소 오만하게 느껴지는 자세로 하나 남은 적을…멜로니아를 가리켰다.

“너어!”

내가 자기 흉내를 내고 있다는 건 바로 알아챘는지, 멜로니아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리고는 조금 전의 내가 보여준 마법을 경계하는 건지, 다짜고짜 마력포를 연속으로 쏘아낸다.

아무래도 썬더 콜링이 어떤 마법인지 잘 모르는 것 같네.

날아오는 광선을 노려보며 달아오른 마나와, 검게 물든 하늘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흘러넘치는 마나를 뭉텅이째 쏟아부으며 외쳤다.

“내리쳐라 썬더 콜링!”

콰릉!

날아오던 광선이 하늘에서 내리친 번개에 요격당해 그대로 지워진다.

“뭐…?”

허망해하는 멜로니아의 표정을 보니, 그간 위에서 키득거리던 게 생각나 속이 시원해진다.

썬더 콜링.

하늘에 먹구름을 생성해낸 뒤, 거기서부터 벼락을 내리꽂는 구조의 마법이다.

설치형과 발동형이 반쯤 섞인 타입으로 처음 시전에는 막대한 마력과 시간이 소모되지만.

한번 사용한 뒤에는 비교적 적은 마력을 지불해, 연속해서 번개를 내리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말뚝 딜에 최적화된 마법. 물론 썬더 콜링에도 몇 가지 문제는 있다.

우선 마법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 있고, 두번 째로는 반동이 꽤 격렬하다는 점이 그러하다.

파지직.

마력이 집중된 손가락 위로 푸른 전류가 솟구치며 바들바들 떨려온다.

“하! 그럼 그렇지! 그만한 마법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맞는 말이야.”

처음에 썬더 콜링을 시전할때 사용한 스태프는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고 피셔맨들과 함께 잿가루가 되었다.

게임에서는 무기의 내구도가 가파르게 소모되다가, 내구도가 다하면 취소되는 마법이었는데….

계속해서 사용하려 들면 몸이 망가지는 건가.

하지만 상관없다.

“아직 손가락은 9개나 더 남았어.”

9발 안에 쓰러뜨리면 되는 것 아닌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중지를 치켜 올리자 표독스레 이쪽을 노려보는 멜로니아.

“…교단이, 우리가 너를 잘못 생각했네. 어떤 조직이 대계를 방해했는지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얀델이라는 개인에는 신경 쓰질 못했어. 이쪽도 만만치 않게 위험한데 말야.”

“아하? 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생포하려고 든 거였구만.”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청년이 연달아 자신들의 은밀한 계획을 쳐부순다.

당연히 운이 좋아 가능한 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겠지. 일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내 뒤에 어떤 조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아마 다른 누구도 아닌 멜로니아가 내 상대를 하러 온 것도, 나를 완벽히 수세에 몰아넣었음에도 팔다리만 집요하게 노린 것도.

전부 나를 통해 역으로 정보를 캐내려 들었던 거겠지.

물론 그런 조직 따윈 없지만! 있어도 내가 몇 달 전에 만든 신생 조직이지만!

피식 웃으며 치켜올렸던 중지를 멜로니아에게 겨누었다.

“아쉽게도 나는 놀아줄 시간이 없거든. 빨리 끝내자고.”

“자, 잠시만! 항복할게!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아니면…해보고 싶은 거라던….”

난데없이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자신의 다리 사이를 훑길래, 냅다 번개를 갈겼다.

“내리쳐라. 썬더 콜링!”

“…왜! 대체 왜 안 통하는 건데!”

분통을 터뜨리며 재빨리 피하는 녀석. 그 탓에 아쉽게도 실드는 깨뜨렸으나 멜로니아 본인을 맞추지는 못했다.

괜찮다. 아직 손가락은 많이 남아있으니까.

“썬더 콜링! 썬더 콜링! 썬더 콜링!”

쾅! 꽈릉-! 콰앙!

연달아 내리친 벼락이 멜로니아의 실드를 내리쳤다.

방어에만 집중한 걸까. 안쪽이 들여다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진한 분홍색 실드를 펼친 멜로니아.

다만 연달아 내리친 낙뢰를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일격에 금이 가고, 이격에 실드가 부서졌며, 삼격에 직격한다.

정신을 잃은 건지 힘없이 추락하는 멜로니아.

바닥에 널브러진 보라색 머리를 바라보다, 혹시 몰라 마지막 엄지까지 사용해 한 번 더 지졌다.

“내리쳐라 썬더 콜링!”

“…꺄아아아악!”

진짜 죽은 척하고 있었던 건가. 하긴. 정기는 곧 생명력이니 뱀파이어만큼이나 목숨줄이 질기겠지.

이럴때 쓰기 딱 좋은 무기가 있긴 하다.

머리 위의 먹구름과의 링크를 끊는다. 대신, 그 마력을 고스란히 왼손에 든 단검에 쑤셔 넣었다.

“포스 핸드.”

이전까지 쓰던 포스 그랩의 강화형. 움직임이 직선적이었던 이전과 달리 진짜 손으로 휘두르는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무엇보다 훨씬 강한 힘을 실을 수 있다.

쐐애애애액-!

허공을 찢으며 날아간 빛나는 사자 단검이 그대로 멜로니아의 심장에 박힌다.

번쩍!

터져나오는 빛 무리. 그걸로 끝이었다. 심장부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는데 어떻게 살아있겠어.

혹시 몰라 슬쩍 한번 더 찔러봤는데 반응이 없는 걸 보아 확실히 죽었다.

잠시 멜리니아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단검을 회수했다.

이제 방해하는 것은 전부 치웠다. 남은 건 더 큰 난장판으로 향하는 일뿐.

완전히 못 쓰게 된 오른손과, 멀쩡한 왼손을 번갈아 쥐었다 펴며 전력을 가늠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어쩌다보니 계획과 달라지긴 했지만 이오나에게 닿기에는 충분하리라.

멜로니아를 쓰러뜨린 뒤는 거슬릴 것도 없었다.

아일라와 다른 대주교들은 아직까지 이오나가 붙잡고 있으니 남은 건 멜로니아의 매혹에 걸리지 않았던 언데드뿐.

하지만 지금의 내게 이 정도 언데드는 그 숫자가 얼마나 많건 문제 될 게 없다.

“그 어 어 어 어!”

“딱! 따닥!”

“끼이야아아아아…!”

하늘을 날아다니며 비명을 지르는 밴시, 턱을 위협적으로 부딪히는 스켈레톤, 그리고 썩은 살점을 두르고 우는 구울.

가장 기본적인 언데드 몬스터들이며, 그만큼 다양한 강화종들도 많다.

기다란 혀가 돋아난 밴시라거나, 두꺼운 갑옷과 기다란 대검을 든 스켈레톤 나이트. 그리고 쉴 새 없이 산성 피를 흘려대는 블러디 구울까지.

이오나의 끝없는 견제에 살아남은 놈들인 만큼 전체적으로 강화종의 비중이 높네.

파들파들 떨리는 오른손을 내려 보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바짝 구워진 새까만 숯검댕이 손.

일단 급한 대로 최상급 포션을 마셔두긴 했는데 다른 상처 부위와 달리 회복이 현저히 늦다.

이런 건 사제들에게 정식으로 치료받아야지, 포션으로 강제 회복시키면 후유증이 크다고 들었다.

어쨌든 당장은 못 쓰겠네.

들고 있던 단검을 염력으로 주변에 띄웠다. 마법으로 연결된 것도 내가 들고 있는 취급이니 괜찮겠지.

멀쩡한 왼손을 들어 올리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두근-

심장이 무겁게 뛰며 코어를 쥐어짠다.

고통은 없다. 그저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허함이 살짝 느껴질 뿐.

끝없는 마나 특성이 빠르게 부족한 마나를 채워넣는 중이라 그나마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단번에 길을 열어줄 주문을 외웠다.

“『천상에 낙원 있고, 지상에 기원 있으니. 영원에 이르는 길은 요원한 것이라.』”

언데드의 카운터는 뭐니뭐니해도 빛 속성.

내 손끝에 맺히는 빛이 눈 부셨던 걸까. 아니면 자신들을 불태우는 마나가 거슬렸던 걸까.

한창 이오나에게 달라붙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적의에 가득 찬 놈들의 시선을 느끼며 주문을 이어나갔다.

“『허나, 그럼에도 우리는 근원을 향해 손을 뻗으니.』”

조금 더 긴 영창. 썬더 콜링과 달리 단발성으로 끝나는 마법이니 확실하게 하는 게 좋겠지.

우웅-

주변을 잠식한 마나가 내 명에 따라 빛 덩어리를 마법으로 승화시키고, 과할 정도로 마력을 잡아먹은 빛은 그 몸집을 부풀린다.

상상하는 것은 H&A를 플레이하며 몇 번이고 보았던 백색의 소나기.

“『…반짝여라. 스타라이트 레인!』”

시동어와 함께 쏘아진 빛이 기다란 꼬리를 그리며 언데드들의 머리 위로 솟구친다.

그렇게 놈들의 정중앙에 도착한 순간.

파아앗…!

거대한 빛 덩어리가 작은 광탄으로 분열하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마치 국소 범위에 내리는 유성우 같은 모습.

하지만 아름다운 외견과 달리, 스타라이트 레인의 광탄은 피격 시 폭발을 일으킨다는 살벌한 효과가 있다.

쾅!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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