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일종의 마력포니까.
직접 전투력이 떨어지는 서큐버스들이 악신의 권능과 모아둔 정기를 섞어 날리는 주력기.
마법이라고 하기도 뭐한 막무가내식 공격이지만, 속도도 빠르고 정기가 섞였기 때문인지 위력도 상당하다.
옆으로 한 바퀴 구를 듯한 기세로 즉시 몸을 비틀었다.
슈웅-!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에 내리꽂히는 광선. 별다른 소리는 없었지만 제법 깊숙이 패인 지면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대로 맞았으면 팔 한쪽은 날아갔으리라. 아니, 실드 마도구가 있으니 뒤로 꺾이는 수준에서 그치려나.
어찌됐건 정통으로 맞으면 팔 하나를 무력화 당할지도 모른다는 소리.
경계심을 한층 더 끌어 올리며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지만…그 사이에 이미 빈틈이 메꿔져 있었다.
발정난 피셔맨들은 상상 이상으로 빠릿빠릿했다.
위에서 날아오는 멜로니아의 공격에 주의하며 다시금 마법을 준비했다.
“피어오르라 얼어붙은 꽃이여. 아이스 플라워!”
전방의 허공에 피어오른 얼음으로 이루어진 푸르스름한 꽃.
직접적인 공격력은 없지만, 주변에 강력한 냉기를 뿜어내는 효과가 있다.
항상 물기를 머금어 촉촉한 피셔맨에게는 꽤 불편한 마법이겠지. 실제로 벌써부터 몸에 성에가 끼며 둔해지는 녀석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한번 시전하면 한참 남아있는 지속 마법이니 이대로 아이스 플라워를 몇 번 더 깔아두면 피셔맨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H&A에서는 급할 때 시간을 버는 용도로 수생 몬스터에게 자주 사용하던 방법인데….
“에잇!”
슈우우웅…퍼석.
공중에서 이를 지켜보던 멜로니아의 마력포에 얼음꽃이 바스러졌다.
나를 직접 노릴 수 있음에도 굳이 아이스 플라워를 공격한 건가.
“하….”
슬쩍 올려다보자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흔드는 멜로니아.
다만 눈동자만큼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거 그거네. 하염없이 잡몹들만 내던지다, 빠져나가려 할 때만 개입해 다시 잡몹들 사이에 떨어뜨리는 거.
그렇게 내가 지치면 안전하게 사냥하려는 거겠지.
지휘관형 적들이 주로 쓰던 방법이다만…이걸 멜로니아가 쓴다고?
내가 멜로니아의 매료에 전부 저항하니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쯧.”
이럴땐 주도권을 넘겨줘선 안 된다.
했던대로 싸웠다가는 멜로니아의 의도대로 아무것도 못 하고 지쳐 쓰러진 뒤 생포 당하겠지.
촉수에 박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큰 거 한방이 필요하다.
속으로 작전을 변경하는 사이. 어느새 팔팔해진 피셔맨이 삼지창을 찔러왔다.
채앵!
완전히 내질러지기 전에 단검으로 옆면을 후려쳤다. 크게 궤적이 비틀리며 자연스레 팔이 들어 올려진 녀석.
본래라면 여기서 무방비한 상체에 간단한 마법을 하나 꽂아줬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한쪽 발을 걸어 균형를 무너뜨린 뒤, 어깨로 밀어 방패막이처럼 사용하며 돌진했다.
“Acha hii!”
녀석이 무언가 외치며 창대로 내 등을 후려쳤지만 무시했다.
기껏해야 손목 힘으로 내리치는 공격이다. 실드까지 발동할 필요도 없이, 로브의 충격 흡수에 전부 막힐 테니까.
그렇게 녀석을 이용해 조금이나마 돌파하며 입으로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몰아치는 폭풍이여, 분노를 노래하라.”
우웅-
스태프 끝에서 천천히 그려지는 녹색과 적색의 마법진. 이젠 익숙해진 템페스트 번의 전조다.
대충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건지 피셔맨들이 한층 더 사납게 달려들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무기부터 들이밀거나, 이대로 압사 시키겠다는 듯 한 덩어리가 되어 뭉쳐오기까지 하는 녀석들.
하지만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잠깐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맞아도 괜찮은 건 실드와 로브의 성능을 믿고 맞아주고, 단검은 날아오는 창칼을 쳐내 서로 얽는 데 사용한다.
대응하기 힘든 각도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과하게 비트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렇게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며 섬세한 마법을 완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내겐 시스템 보정이 있다.
내가 영창을 중간에 끊지만 않는다면 어떤 자세에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쯤되자 가만 지켜보던 멜로니아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는지 저 멀리서 각종 마법과 권능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자꾸 반항하면 곤란한데….”
몸을 빼기 힘든 타이밍에 날아오는 마력포,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달달한 향기, 시야를 가리는 분홍색 안개,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각와 환청.
아무리 시스템 보정 덕에 실수 없이,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인다고 하나 물리적인 한계는 존재하는 법.
“큭….”
몬스터 속에서 춤을 추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결국 멜로니아의 마력포에 한쪽 어깨를 살짝 긁히고 말았다.
주르륵 흘러나오는 피. 단검을 쥔 왼팔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단검을 쥐고 휘두르는 정도는 가능해도, 이전처럼 빠릿하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허나 상관없다. 어찌 됐든 마법은 완성됐으니까.
주변을 둘러싼 피셔맨 무리, 그리고 저 너머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멜로니아.
그 모든 것들을 시야에 담은 채 스태프를 번쩍 들어 올렸다.
“템페스트 번!”
선명하게 내뱉은 시동어. 이에 반응한 마력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주변에 그 위용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화르륵!
머리 위로 떠오른 거대한 불덩이. 술자인 내 피부마저 따끔따끔해질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품은 화염구에 놈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화염구가 전방위로 자신의 열기를 풀어헤쳤다.
콰아아아아-!!
마치 나를 중심으로 타오르는 토네이도가 솟구치는듯한 모양새.
단단한 비늘을 믿고 버티려던 피셔맨은 전부 잿더미가 되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려던 녀석도 강한 상승기류에 휘말려 공중에서 타오른다.
제대로 주문을 외운 것은 물론이요, 마법진에 유사 공명. 그리고 마력 과충전까지 때려 박은 템페스트 번의 위력은 하급보다 중급에 가까운 마법이다.
이거라면 분명 멜로니아에게도 닿을 터.
그래. 명중한다면 말이다.
솟아오른 화염이 닿기 직전. 멜로니아는 자신의 날개를 펄럭이며 멀찍이 날아올라 템페스트 번을 피해냈다.
“우와…너 정말 학생 맞아? 우리 계획이 줄줄이 박살 난 건 둘째 치더라도 그 재수 없는 에드메렉이 죽은 건 이해가 안 됐는데…이제야 알겠네. 너 좀 강하구나?”
“글쎄. 사실 겉보기보다 약할 수도 있잖아? 한번 맞아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지.”
“에이. 여기까지 따끈따끈한 걸 봐서 맞았으면 좀 아프긴 했을걸? 천재라는 게 정말 있는 거긴 하구나? 그거 알아? 재능있는 사람은 정기도 맛있다는 거. 너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 이제 충분히 발악한 것 같은데, 슬슬 잡혀주지 않을래?”
“좆까.”
“누구 거부터 깔까? 나도 있는 거 알지?”
“…….”
키득대는 멜로니아의 낯짝을 보고 있자니,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마법을 날려 버렸다.
“썬더 볼트!”
파지직!
빠르게 날아간 번개 줄기가 멜로니아의 실드를 두드린다. 당연하지만 완벽히 막혔다.
금 하나 없는 매끈한 실드 너머로 멜로니아가 짜증을 내듯 인상을 찌푸렸다.
“흐응…아직 팔팔한가 보네. 조금 더 힘 빠지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그리고는 가볍게 허공에 손짓하자, 풀파워 템페스트 번에 겁먹고 뒷걸음질치던 피셔맨들이 다시 미친놈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아랫도리를 부풀린 모습이 심히 좆같네.
이를 악물며 다시금 몰려드는 피셔맨과, 간간히 떨어지는 멜로니아의 공격을 쳐내며 고민했다.
내가 쓸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화력이 강한 템페스트 번이지만…멜로니아에게는 통하지 않겠지.
위력은 좋아도 너무 느리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저 기동성을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니까.
이대로라면 녀석의 노림 수대로 지쳐 쓰러지는 수밖에 없으리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마법 중에 멜로니아를 격추시킬 수 있는 마법은 뭐가 있지?
우선 어중간한 투사 속도로는 안 된다. 그리 전제조건을 깔고 가니, 자연스레 남는 건 번개와 바람 속성뿐.
하지만 바람은 범위가 넓고 속도도 빠르지만, 위력은 비교적 약한 속성이다.
설령 멜로니아에게 닿더라도, 저 실드를 깨뜨릴 수 없으니 논외.
결국 남는 건 번개뿐인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원소지만, 약간의 틈만 낼 수 있다면 괜찮다.
부서진 실드 사이로 단검을 쑤셔 박을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부서진 실드 사이로 단검을 쑤셔 박을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이번에는 번개 속성의 마법을 준비했다.
당연히 기존의 하급 마법으로는 실드를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할 테니, 지금껏 이론만 생각해두고 실제로 연습해본 적 없는 원소 조합을 전부 꺼내야겠지.
피셔맨과 멜로니아의 견제를 몸으로 때우며 영창을 외운다. 조금 전에 다친 어깨 때문인지 한쪽 다리를 살짝 베였다.
상관없다. 마법은 완성했으니까.
“이그니 스파크!”
번개처럼 쭉쭉 뻗어 나가는 불길. 번개와 화염이라는 강력한 원소를 조합한 덕에 위력 자체는 강력하리라.
다만 그 궤적이 뻔하고, 범위 또한 너무 좁았다.
멜로니아는 자신의 실드를 한데 모아 일점에 집중시켰다.
파지지직!
강렬한 번갯불이 두꺼워진 실드를 지졌다. 약간 금이 가긴 했어도 뚫을 수는 없었다.
다른 조합을 생각해내야 한다.
“윽….”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다음 마법을 준비하던 도중. 그물을 피하려다 멜로니아의 마력포에 등을 얻어맞았다.
다행히 반사적으로 펼친 실드와 마도구가 있어 직격은 면했다. 등의 살점이 살짝 패인 정도로 끝났으면 이득이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조합의 마법을 발현했다.
“라이트닝 웹!”
물 속성과 조합하여 번개로 이루어진 그물을 던지는 마법이다.
속도는 조금 전의 이그니 스파크 보다 느리지만, 범위가 넓으니 괜찮을 터.
예상대로 멜로니아는 피하지 못하고 그물에 걸렸다. 하지만 이걸로는 위력이 좀 부족했다.
자신의 마력과 정기를 불어넣어 실시간으로 수복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
어차피 한 번에 성공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차분하게 다음 마법을 준비한다.
상처가 하나 늘었다.
실패했다.
상처가 하나 더 늘었다.
또 실패했다.
상처가 하나 더 늘고 마도구가 하나 부서졌다.
그럼에도, 실패했다.
뭘 어떻게 해도 닿질 않는다. 어디가 문제였던 걸까. 역시 즉석에서 만든 엉성한 마법이라 그런가.
떨어지는 완성도를 마력으로 커버하기 위해 상당한 마나를 소모했다.
벌써 절반 이하로 떨어진 마나량. 체력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아무리 포션과 버프의 효과가 남아있다고는 하나 너무 격하게 움직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상처가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다. 하나하나가 목숨에 지장 없는 것이라고는 해도,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고통 완화 포션을 마셔두길 잘했네. 평상시였으면 진작에 통증으로 기절했을 지도 모르잖는가.
…여기까지 했는데도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잡아 죽여도 몬스터는 여전히 내 주변을 포위하고 있고.
멜로니아는 저 위에서 실드를 두르고 이쪽을 지켜볼 뿐이다.
사냥감이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포식자의 눈.
순간 불안감이 확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