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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몰락영애. 한 번도 안 쓴-172화 (172/230)

그 정도라면 사전에 뿌려둔 포션으로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다.

한차례 쓸어냈건만, 이전보다 훨씬 빽빽하게 모여든 언데드들을 향해 나지막이 읊조렸다.

“광탄.”

쐐애애애액….

스태프 끝에서 쏘아진 빛 덩어리가 전열의 방패에 부딪혀 폭발한다.

퍼어어엉!!

앞에 내세운 뼈 방패가 순식간에 부서지더니, 질서정연했던 스켈레톤의 대열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아아앗.

-따닥…딱!

-구에에엑.

하급 마법. 그것도 물리력이 약한 빛 속성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력한 결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언데드들의 약점인 빛 속성 마법. 그것도 내 마력을 듬뿍 머금은 광탄이 부딪힌 것이다.

심지어 태양신의 사도 특성과 사교도 혐오 특성까지 어우러져 최종 데미지를 뻥튀기하기까지 했잖은가.

템페스트 번처럼 일격에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어도, 전열을 넘어뜨리기에는 차고도 넘친다.

돌파력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빽빽하게 모여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앞줄이 넘어지자, 뒷줄의 스켈레톤들이 덩달아 넘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켈레톤의 3분의 1 정도가 무방비해진 순간.

“…이는 장막으로 가릴 수 없는 빛이요,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니. 누구도 감히 저항할 수 없으리라!”

카를라의 마법이 완성됐다.

“프로미넌스 플레어!”

처음 카를라가 내게 보여준 마법의 경이.

내가 템페스트 번이라는 마법까지 만들어가며 따라 하고자 했던 일격이 재현된다.

화르륵-

허공에 떠오른 작은 불씨가 급격하게 몸을 부풀린다.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압도적인 열기와 광량.

마치 하늘 전체가 불타는 듯한 광경이다.

기겁한 소피아가 내게 쏘아내던 저주를 황급히 카를라의 마법을 향해 쏟아 부었다.

뭐…통할 리는 없지만.

린델하이트 가문이 어째서 마도 명가로 불렸는가.

사람 자체가 강한 핏줄이라 그런 것이다.

소피아가 평생을 쌓아올린 저주의 권능?

이는 증폭되고 또 증폭된 카를라의 마력 앞에 무력하게 녹아내릴 뿐이었다.

“?????!”

저 멀리서 소피아가 무어라 외치는 것과 동시에, 작은 태양이 이제 막 일어서는 언데드들의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명멸하는 시야. 먹먹해진 귀. 그리고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움찔할 수밖에 없는 열기.

너무 강한 빛에 잠시 꺼멓게 죽어있던 시야가 천천히 회복되어간다.

그렇게 드러난 광경은 실로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던 언데드 군단만큼이나 큼직한 구덩이.

그 안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잔열 때문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르는 불씨. 그리고 구석에 작게 뭉쳐있는 하얀 덩어리뿐이다.

뼈와 뼈가 복잡하게 얽히고, 녹아내린 것 같은 모양새.

마지막의 그건 자신을 보호하라는 명령이었나.

“흐억…헉…후으….”

이번엔 완전히 탈진했는지, 쓰러져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카를라.

엘리샤가 그런 카를라에게 마력 포션을 먹여주는 것도 잠시.

팟!

소피아가 있는 하얀 구체로부터 쏘아진 뼛조각이 총알처럼 날아들어 카를라를 노렸다.

물론, 이런 알기 쉬운 발악 패턴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흐읍!”

이를 악물고 카를라와 엘리샤의 앞에 뛰어들었다.

채재쟁!

무언가 연속으로 깨지는 소리와 함께 품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마도구의 잔해들.

사전에 걸어둔 실드와, 방어 마도구 몇 개를 관통할 정도의 위력이라.

내가 이걸 모르고 방심하다 죽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툭.

모든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뼛조각을 즈려밟으며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기도 해야지.”

미리 준비해놓았던 터라, 물 흐르듯 매끄러운 동작으로 빛나는 사자 단검을 투척할 수 있었다.

쐐애애애액-!

소피아가 뼛조각을 쏘아내며 생긴 빈자리.

그 틈을 정확히 노리는 단검에 소피아가 황급히 자신을 둘러싼 구체를 회전시킨다.

순식간에 반 바퀴 돌아가며 옆으로 옮겨간 빈틈.

상관없다. 정석적이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선택을 한다는 소리기도 하니까.

이런 일이 있을 것 또한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포스 그랩…!”

단검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준비해두었던 염력 마법을 시전했다.

팔을 크게 휘두르자, ㄱ자를 그리고 급격하게 꺾이는 단검의 궤적.

그 상태에서 다시 반대쪽으로 팔을 휘두르자.

쉬이이익…퍽!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인 단검이 소피아가 이동시킨 구멍 속을 파고들었다.

누가 보면 단검이 빨려 들어간 것이라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운 궤적.

아무리 소피아라도 여기에는 반응하지 못했는지, 염력 마법을 타고 무언가 꿰뚫는 듯한 감각이 전해진다.

잠깐의 정적. 뒤이어 구멍 속에서 솟구치는 빛.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피아를 감싼 구체가 부서지며 평범한 뼈가 되었다.

그 중앙에 있는 것은 이마를 꿰뚫려 즉사한 노파의 시체.

아무리 소피아가 언데드를 다루는데 정통하더라도, 자신의 사후에 되살아날 정도는 아니다.

“후우….”

한숨을 푸욱 내쉬며 손목을 까딱거렸다.

염력 마법의 도움으로 다시 내게 되돌아오는 단검을 낚아채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멈춰있던 오색 연기가 천천히 하늘 위로 떠오르더니, 약간의 빛을 뿜으며 그대로 사라졌다.

이걸로 됐….

쿠우웅!!

“이건 또 뭔…?”

가슴을 쓸어내리다 말고 지축을 울리는 충격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피로 이루어진 거대 가시덤불이 돌처럼 굳어 바스라지는 광경이 있었다.

“아.”

무너지는 덤불 속에서 비틀거리며 떨어지는 이오나의 모습에 직감했다.

소피아와의 전투가 너무 길었다.

이대로라면…이오나는 지원이 오기까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뿌득.

짓씹은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추락하는 저 머릿결처럼 새빨간 피가.

“궤에에에엑!”

너덜너덜한 살점을 휘날리며 울부짖는 구울.

소피아가 부리던 놈들과 달리, 생전에 꽤 칼 밥 좀 먹어봤던 건지 보통 살벌한 기세가 아니다.

물론, 기척 차단에 언데드 동화 포션까지 이어지는 지금의 나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지축이 울릴 정도로 몰려다니는 구울 무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오나의 막대한 생명력에 이끌려 부나방처럼 달려가는 놈들 사이에 섞여 쉬지 않고 다리를 놀렸다.

언데드라 그런지 지치질 않네. 미리 도핑 해두길 잘했다.

그렇제 정신없이 이오나의 마법을 피하며, 언데드들 사이를 헤집고 달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후우웅…콰앙!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괴인 하나.

탈의한 상반신을 통해 훤히 드러난 회색 피부와, 바윗덩어리 같은 근육질 몸매.

키는 얼추 2m를 가뿐히 넘으려나.

이게 정말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가 운석처럼 떨어지며 크레이터를 남겼다.

당연히 그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은 전멸.

하지만 눈으로 봐도 심상치 않은 거리를 날아온 괴인은 부서진 언데드들과 달리 아무런 상처조차 없었다.

아니, 상처만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그만큼 강하게 내동댕이쳐졌으면 기가 죽을 법도 한데, 되려 울부짖으며 분노를 끌어 올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는 분을 이기지 못하겠는 건지, 자신이 만든 크레이터에서 뛰쳐나오자마자 주변의 몬스터를 잡아 던지는 괴인.

지금 이 순간에도 이오나를 노려보고 있는 저 녀석의 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바위 거인 빌프리트.

분노를 상징하는 무모한 포효의 대주교로, 무식할 정도로 힘이 세고 단단한 녀석이다.

약점이라고 해봤자 이성이 증발하여 함정에 잘 걸린다는 것 정도?

지금 같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선 제법 까다로운 상대라고 할 수 있겠지.

머리는 나쁜 녀석이지만 쓸데없이 감은 좋은 터라 서둘러 멀어져야 한다.

지금이야 이오나에게 정신이 팔려있지만, 조금만 신경을 돌리는 순간 위화감을 눈치채고 내 위치를 찾으려 들 테니까.

후욱!

고개를 숙여,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두꺼운 팔을 피했다.

주변에 있던 피셔맨과 스켈레톤이 녀석의 거대한 손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이오나를 향해 쏘아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직접 후려치는 것도 아니고 이 먼 거리에서 던진 돌팔매질은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

파스스….

이오나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핏빛 안개에 닿은 살과 뼈의 덩어리가 급격히 느려지더니, 그대로 부서져 바닥에 떨어진다.

“크릉!”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으르렁대는 녀석. 이후로도 몇 번 더 주변의 몬스터를 공처럼 뭉쳐보더니.

“우 워 어 어 어!!”

생각처럼 되지 않자 땡깡이라도 부리듯 바닥을 마구 두드리며, 이오나 쪽이 아닌 사방팔방으로 몬스터를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휙! 휘익! 후우욱!

저 미친 분노 조절 장애가….

안 되면 그냥 조용히 갈 것이지, 왜 여기서 지랄인 건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우연히 이쪽으로 날아오는 몬스터 덩어리를 피해 땅을 굴렀다.

“흡…!”

이오나니까 이걸 손도 까딱 안 하고 막아낸 거지, 나였으면 공중에서 요격한답시고 온갖 마법을 난사해야 했으리라.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이렇게 땅을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고.

그렇게 몇 번이나 흙을 뒤집어썼을까. 드디어 화풀이를 끝낸 녀석이 씩씩대며 이오나를 향해 돌진했다.

쾅! 콰앙! 콰아앙…!

걸음 걸음마다 바닥에 자신의 발자국을 새기는 녀석.

요란한 소리만큼이나 빠르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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