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정리되어가는 계획.
이오나와 이야기 하다 보면 이런 게 좋단 말이지.
여기저기 재보는 대신, 해볼까? 싶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 말이다.
엘리샤를 경매장에서 사 오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러 문제가 많았겠지. 하지만 이오나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외출 허가를 끊어주었잖은가.
“맞다. 카를라, 엘리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를게요.”
“흠흠. 위험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저희는 수저만 얹는다고 하니 괜찮겠죠.”
대충 이야기가 끝난 듯 하자, 조금 떨어져 있던 이오나가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제 이제. 전부 이야기 끝난 거지? 바로 텔레포트 한다?”
“엇, 네. 잠시만요.”
나와 카를라가 손을 잡고, 카를라와 엘리샤가 손을 잡는다.
그렇게 하나로 이어진 채, 이오나에게 손을 뻗었다.
잠시 멍하니 우리 쪽을 바라보던 이오나가 씨익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자, 그럼 우선 가까운 곳부터 가볼까?”
이오나가 조금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로 영창을 외웠다.
검붉은 마력광이 커튼처럼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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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빠른 속도로 사교도 지부 몇 개를 추가로 토벌할 수 있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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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얀델
칭호: 고스트 버스터
기초 능력
근력: 14 -> 15
내구: 14
민첩: 14 -> 15
재주: 15 -> 16
마력: 21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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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꿀.
내구를 제외한 모든 스탯이 올랐다.
슬슬 하나 올리는 것도 힘들어지는 마력마저 21에서 22로 늘었다.
순수 마력량만 따지자면 진작에 엘리샤는 뛰어넘었고, 이젠 카를라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수준이리라.
물론.
“그에엑…. 이걸로 전부야 얀델 학생?”
실수로 애벌레까지 갈아 넣은 녹즙이라도 마신 것처럼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있는 이오나와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말이야.
이오나의 발치에 널린 수혈팩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끝이긴 합니다만…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교수님? 점점 마시는 수혈팩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요.”
“괜찮아 괜찮아. 마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싸울수록 흡혈욕이 쌓여서 그런 거니까. 짐승 피가 효율이 떨어지긴 해도 흡혈은 흡혈이거든.”
“그렇긴 한데…아니, 교수님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죠. 쿤달 항구의 위치부터 알려 드릴게요.”
미니맵에서 봤던 풍경을 떠올리며 지면에 간략한 약도를 그렸다.
“여기서 이렇게…항구랑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여기에 창고가 주르륵 늘어선 곳이 있는데….”
“응? 생각보다 규모가 적은데? 넓긴 해도 얀델 학생이 걱정한 것만큼은 아니잖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이놈들은 주력이 언데드라 그런지 맨날 땅속에 묻어놓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교수님도 지금껏 박살 낸 지부 보셨죠? 전부 지하에 있던 거요.”
“아하? 아하? 그럼 다른 지부들처럼 이것도 창고를 중심으로 한 일대 전체가 언데드 밭이라고 생각하면….”
“항구 마을 전체가 지하에 언데드를 품고 있어요. 괜히 편협한 찬탈의 무기고가 아닌 거죠.”
“…설마 마을 주민들 모두 찬탈의 신도는 아니겠지?”
이오나가 입을 꾹 다물고는 조금 장난스러웠던 표정을 지웠다.
여차하면 마을까지 싹 다 지워버리겠다는 듯한 살벌한 눈빛.
내게 향한 것이 아님에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정의 무게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비슷한데 조금 달라요.”
“으응?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사교도면 사교도고 아니면 아닌 거지.”
“신도는 아니지만 아주 오랜 기간 세뇌당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편협한 찬탈을 위해 일하고 있거든요.”
“…마을 전체가?”
“네. 마을 전체가요.”
편협한 찬탈의 대표적인 권능 중 하나는 바로 마안.
마안의 효과는 천차만별이지만 그중에서도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었으니.
정신계 마안이 바로 그러하다.
쿤달 항구의 주민들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나, 편협한 찬탈과 관련된 일에는 뒤틀린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 언데드를 봤냐는 질문을 들으면 은근슬쩍 말을 돌리려 든다거나.
창고에 뭐 숨기고 있는 거 없냐는 소리에는 시치미를 떼며 다른 물건이라 하는데, 물어보는 사람마다 들어있다는 물건이 전부 다르다거나.
그런 주제에 창고를 확인하려 들면, 외부인이 도둑질한다며 입에서 거품을 물고 달려든다거나.
무엇보다 이런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을 지적하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등.
악신을 섬기는 것은 아니지만…그들의 언행은 명백히 편협한 찬탈의 신도들을 감싸고 있다.
“아마 여차하면 그대로 인질이나 고기 방패로 삼으려는 거겠죠.”
“응응. 아무리 마안과 저주로 머리를 절여뒀더라도, 그 많은 사람들에게 건 정신지배를 유지하는 건 힘들 테니까. …그나저나 또 수인족인가.”
한숨을 푸욱 내쉬는 이오나.
쿤달 항구는 수인족 왕국인 크라시우스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 레반틴 제국이 아닌, 다른 나라지만 문제 될 건 없다. 아카데미 교수와 재학생은 특정 국가가 아닌 아카데미 소속이 되며.
사교도 토벌을 위해서라면 어느 나라든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조약을 맺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크라시우스 왕국의 주류 종족이 수인족이라는 점 그 자체다.
엘프가 정령을 봉인 당하며 전력이 반 토막 났다면, 수인족은 지난 전쟁을 통해 치명적인 약점이 발견됐다.
강인한 신체능력과 높은 자존심을 타고난 수인족은 뛰어난 전사 종족이지만….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야성이 역으로 그들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약점이 있다.
예를 들자면 전투에 취해 피아를 가리지 못하고 날뛴다거나, 특정 시기가 되면 발정기가 와서 몸이 달아오르는 등.
다른 어느 종족보다 본능이 강한 만큼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수인족도 바보가 아니니, 이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나름의 교육을 거치는데.
문제는 자기 본능을 제어하느라 외부에서의 정신공격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신들의 전쟁 초기에는 편협한 찬탈이나 추악한 번성 같은 정신과 본능을 자극하는 사교도들에게 탈탈 털렸었지.
태생적인 강력함이 엄청난 종족인 만큼, 태생적인 약점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운 것이리라.
이오나는 당시의 일을 떠올린 거고.
“그래도!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조금 시간이 들긴 하지만, 지표면이 아니라 지하에 충격을 집중시키면 되는 거잖아?”
“어? 그런 게 있어요? 저는 그냥 포션은 충분하니 죽이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무서워! 하지만 기억해둘게! 여차할 때를 위한 보험으로 말이야!”
이후로도 한참 동안 내가 아는 모든 정보를 알려주며 이오나와 함께 계획을 점검했다.
그리고 이쯤이면 됐다는 확신이 들 때쯤.
이오나와 카를라의 손을 동시에 맞잡고, 주변을 둘러싸는 마력에 몸을 맡겼다.
***
우웅-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공간을 뛰어넘는 감각.
기묘한 울렁증과 함께 시야를 가리던 검붉은 마력광이 천천히 공기 중으로 녹아든다.
조금 전과는 확 달라진 주변 풍경을 빠르게 눈으로 담았다.
슬슬 석양이 지는지 주황색으로 타오르는 하늘.
마찬가지로 하늘의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드넓은 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슬슬 하루를 마무리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어?”
어부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혹시나 싶어 바닷가가 아니라, 마을 쪽을 살펴봤으나 이쪽도 마찬가지.
광범위 마법으로 선빵부터 날리려고 일부러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덕에 쿤달 항구 인근은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그저 고요한 침묵만이 마을을 무겁게 내리깔고 있을 뿐.
“교수님?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아니. 아니.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 응. 정말 제대로 찾아왔어.”
파르르 떨리는 이오나의 목소리.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로 생기 없는 마을을 노려보는 것이 마치 나와는 다른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카를라와 엘리샤를 확인하자, 이쪽도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인다.
갑자기 이오나가 왜 이러나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의아함도 잠시. 이오나가 품에서 잿가루가 든 병 하나를 꺼냈다.
흔든 것도 아닌데 스스로 병 안쪽에서 소용돌이치는 기묘한 잿가루.
마치 무언가에 격하게 반응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교수님? 그건 대체….”
“아일라의 한쪽 팔을 불태우고 남은 잿가루야.”
“…네?”
여기서 교수님 동생이 왜 나와?
내 어벙한 목소리에 이오나가 떨리는 손으로 병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얀델 학생은 알지? 내가 아일라를 굉장히 오랫동안 찾아다녔다는 거.”
“그럼요. 일기도 봤고, 직접 듣기도 했으니까요.”
“300년간 정말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건 아니야. 딱 한 번. 아일라를 찾아낸 적이 있어.”
그 전투에서는 아일라의 한쪽 팔을 뜯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뿐이다.
기어이 아일라는 이오나에게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고, 그 뒤로 몇십 년 째 어딘가에 처박혀있는 상황이었다.
이오나가 탈모 교수님의 머리카락까지 뽑아가며 했던 연구가, 당시에 뜯어낸 팔로 아일라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였다나.
그 연구는 반쪽짜리 성공을 거둬, 근처에 팔의 원주인…그러니까 아일라가 있으면 반응하도록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훼손되었을 신체에서 모종의 연결을 찾아낸 셈이니, 이를 추적하는 데만 성공하면 되는데 거기서 막혀 탈모 교수님의 머리카락을 마구 학살하고 있던 차였다나.
“그리고 그리고. 처음에 심문했던 지부장이 했던 말 기억해?”
“악신 교단 상위 사제들의 회합…설마?”
“확실한 건 아냐. 하지만 그거라면 아일라가 여기 있는 것도 설명되잖아?”
악신이 아직 사도 임명을 할 만큼 회복하지 못한 지금.
추기경급은 사실상 각 교단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고위 사제가 모여 회합을 가진다 해도 보통은 대주교들이 모인다는 뜻이고.
하지만 이곳은 편협한 찬탈의 무기고.
아무리 다 같은 악신 교단이라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각자 다른 교단 아닌가.
함부로 이런 중요 시설을 공개하지는 않겠지.
소피아로는 부족하니 추기경인 아일라를 보냈다…라고 생각하면 대충 앞뒤는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