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과 기대가 뒤섞인 심정으로 카를라를 돌아보자.
“흐이에엑….”
물 빠진 물풍선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하긴. 물이 없는 곳에서 이만한 수둔을 썼으니 지치는 게 당연하지.
힘이 풀린 탓일까.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카를라를 부축해주었다.
그러자 몸을 기대는 척 자연스레 내 품에 전신을 비벼대는 카를라.
가슴팍에 딱 붙인 얼굴을 치켜들며 은근한 눈빛을 보내오는 것이 여간 잔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땠나요 주인님? 마음에 드셨나요?”
“마음에 들다마다. 수계 마법의 장점으로 흔히들 조형의 자유로움을 손꼽지만, 질량을 가진 물질을 생성한다는 것 그 자체를 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준 거잖아?”
“헤헤…이런 상황이니까 극대화된 거죠. 보통은 대지 마법 쪽이 질량 공격에는 더 효율적이죠,”
“흥! 달리 말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마력을 무식하게 쑤셔넣은 수계 마법이 최고라는 걸 바로 눈치챘다는 소리 아닌가요? 그냥 얌전히 칭찬이나 받으시죠 카를라.”
일시적인 탈력감이었는지, 다시 제 발로 일어서는 카를라를 퉁명스레 추켜세우는 엘리샤.
그렇게 우리 셋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을 무렵.
“끄이이이이이익!! 그, 그만! 아까 말한 게 전부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야! 아니야! 말대꾸하는 걸 봐선 아직 여유가 있는걸? 조금 더 허파의 바람을 빼줘야 솔직한 말을 내뱉을 것 같아!”
“그게 뭔 개소…흐아아아아악!!”
뒤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 소리에 우리 셋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두 눈을 가시에 찔린 채,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지부장.
외상은 거의 없었지만…아마 내부는 이오나의 마법에 엉망진창이 되어있겠지.
졸지에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버린 지부장을 심문하던 이오나가 홱! 고개를 돌리더니 이쪽을 향해 해맑게 웃었다.
“대단해! 대단해! 카를라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강해졌구나! 여긴 아카데미 바깥이니 뭔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알려주려 했는데…그럴 필요도 없었네!”
“미친년이….”
질린 듯한 지부장의 중얼거림.
음…내가 봐도 지금의 이오나는 오락가락하는 게 좀 싸이코 같긴 해.
“미친년이….”
질린 듯한 지부장의 중얼거림.
음…내가 봐도 지금의 이오나는 오락가락하는 게 좀 싸이코 같긴 해.
물론 내색은 하지 않겠지만.
이오나가 또라이긴 해도 우리 집 또라이인걸.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카를라가 머쓱하게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핫…그러는 이오나 교수님은 여전히 사교도 상대로는 가차 없으시네요.”
“뭐야. 카를라 넌 이오나 교수님이 싸우던 모습을 본 적 있었어?”
“네. 딱 한 번뿐이지만요. 실습 중에 아카데미 쪽을 정탐하려던 사교도가 붙잡힌 적 있었거든요. …그땐 사람이 돌변한 것 같아 깜짝 놀랐었죠.”
“아이참! 그런 말 하지 마! 부끄럽잖아!”
자기 볼을 감싸며 몸을 베베꼬는 이오나.
그 모습이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다 죽어가는 지부장 놈이 역겹다는 듯이 핏물 섞인 가래침을 뱉어냈다.
“퉷!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노괴가 온갖 아양을 떠는구나.”
“…이것 봐. 이것 봐. 아직 여유가 있는 거라니까?”
“하! 마음대로 지껄여라. 내가 뭘 말해도 안 믿을 거면 할 말이나 하고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야지.”
그리고는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지부장.
“거기 너! 감히 대적자 행세를 하려는 네놈.”
“엉? 나?”
“그래. 얀델이라고 했던가. 배짱도 좋구나. 자기보다 강한 노예를 그냥 방치해두다니.”
“그냥 방치한 건 아닌데. 틈 날 때마다 귀여워해주고 있으니까.”
“…미친년이 아끼는 이유가 있었군. 똑같이 미친놈이야,”
쯧.
가볍게 혀를 차는 지부장. 이에 이오나가 심문을 다시 시작하려는 건지 한쪽 손을 들어 올리길래 잠시 말렸다.
내가 자신의 고통을 미뤄줬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낄낄대며 말을 잇는 지부장.
“그렇게 노예에게 정을 주다가 유명을 달리한 놈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애초에 너보다 잘난 마법사가 네 밑에 있을 이유가 어딨지? 그리고 린델하이트의 여식. 네년도 마찬가지다. 혈기 왕성한 주인이 그 몸뚱이에 질려 다른 노예를 더 총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나?”
“허?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기다렸는데…”
그냥 개소리잖아?
죽어가는 와중에도 나랑 카를라의 사이에 질투의 씨앗을 남기려는 건가. 편협한 찬탈의 신도답다면 시도다운 수작이네.
코웃음 치며 카를라에게 목덜미를 내밀었다.
“카를라. 물어볼래?”
“넹.”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빨로 간질이듯 내 목덜미를 오물거리는 카를라.
귀여운 장난 수준의 세기지만, 만약 분위기가 야릇했다면 애무라고 해도 좋았을 정도다.
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카를라의 이빨 감촉을 즐기며 장난스레 외쳤다.
“으아아악! 카를라에게 목덜미를 물렸다앗…힘이 빠진다아….”
“크앙! 크앙!”
이걸 또 장단에 맞춰주는 카를라.
이건 예상치 못했던 걸까. 키득대는 우리 둘의 목소리에 지부장이 이를 바득바득 갈기 시작했다.
마안으로 사전에 공사친 것도 아닌데, 그게 먹히겠냐고.
이간질 전문인 들끓는 고요의 사제가 와도 쉽게 당해주지 않을 텐데 말이야.
혼자 외로워하는 엘리샤의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어주고 “뺘악?!” 이오나 쪽으로 향했다.
설탕 한 주먹을 강제로 입안에 쑤셔 넣은 사람 같은 표정이네.
하기야. 코앞에서 다른 사람의 꽁냥대는 모습을 봤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나도 전생에 많이 당해봐서 저 심정 잘 안다.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오나의 옆에 나란히 섰다.
“교수님? 뭘 물어보셨길래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 거예요?”
“그게 그게. 알고 있는 다른 지부의 위치랑 어디로 어떻게 보고 하는 건지 물었거든? 뭔가 석연치 않더라고.”
“아하? 대답이 어땠길래요?”
“어디 보자…차례대로 말해주자면….”
이오나가 차분하게 심문 내용을 알려주었다. 내용은 꽤 놀랍더라.
“…뭐야. 진짜로 그럴 듯한 거짓말이네요?”
잘 모르는 사람이나,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깜빡 믿을 만큼 앞뒤가 잘 짜여있었으니까.
이오나가 거짓임을 간파한 게 놀라울 정도다.
“응? 응? 사실 거짓인 걸 알았던 건 아니야! 그냥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 정도 조진…크흠. 적당히 심문하면 못 이기는 척, 거짓 자백을 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거든!”
“연륜이 느껴지는 이유네요….”
대체 사교도를 얼마나 조진 거냐고.
이오나의 태연한 대답에 아연해 하는 것도 잠시.
얼굴을 와락 찌푸린 지부장이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마구 흔들며 사방으로 핏물을 튀겼다.
“개소리! 되지도 않는 헛소리다! 네놈이 뭘 안다고 그러는 거냐! 난 전부 진실만을 말했다! 그러니 그만! …그만 편히 죽여다오. 어서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달란 말이다….”
격분하던 처음과 달리 힘이 쪽 빠진 듯한 말끝.
마치 열은 받았지만, 모든 걸 체념하고 그저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하는 사람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교수님 저놈이랑 저 중에 누굴 더 믿으세요?”
“그야 그야. 당연히 얀델 학생이지?”
애초에 사교도의 말은 믿는 게 아니랬거든.
여전히 잔뜩 지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지부장의 모습에 절로 흘러나오는 코웃음.
“헹! 이걸 어쩌나. 우리 교수님은 나를 더 믿는다는데.”
“…스승의 뒤에 숨어 으스대는 꼴이 부끄럽지도 않더냐.”
“뭐래. 편협한 찬탈의 뒤에 숨어서 자기 합리화하는 건 지들도 마찬가지면서.”
“이익…!”
사교도라도 성직자는 성직자라는 걸까. 자기가 모시던 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발작을 하는 녀석.
놈이 내뱉는 말뿐인 저주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 보자…오르토스 산맥에 숨겨진 유적을 지부로 써먹고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그거 대략 30년 전의 이야기잖아. 지금 남아있는 건, 간신히 작동하는 유적 수호자들과 너희들이 남긴 함정뿐이고.”
일부러 보물이 있다는 소문까지 내가며 적극적으로 모험자를 끌어들이는 곳이다.
제 발로 고대 유적에 발을 내디딜 정도면 실력에 자신이 있는 녀석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생전에 강할수록 죽은 뒤에도 강한 언데드가 되는 경향이 있다.
즉, 저 유적이라는 곳 자체가 편협한 찬탈 신도들의 언데드 수급처가 됐다는 소리.
…뉴비 시절에 보물찾기 이벤트인 줄 알고 열심히 위치를 추적해 진입했다가 전멸당한 적이 있었기에 잘 안다.
그때 베드 엔딩 일러스트가 언데드가 된 주인공의 모습이었지.
아무리 열심히 커스터마이징해도 반쯤 썩으면 징그러워지는 건 똑같더라.
일확천금을 바라는 순진한(?) 과거의 내게 트라우마를 심어주다니. 절대 용서 못 해.
“아, 그리고 쿤달 항구에 있는 지부? 거기가 편협한 찬탈의 지부는 맞지만 네 말대로 평범한 시골 지부는 아니잖아.”
서류상으로는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도 영세 상단이 사들인 어업용 창고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거긴 편협한 찬탈의 언데드 보관 창고다.
다른 자잘한 지부들은 직접 언데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머릿수가 부족하면 쿤달 항구의 창고에서 지원을 받는 형식.
당연히 박살 내면 좋겠으나, 그만큼 보안이 빡쎄다.
편협한 찬탈의 권능은 그 특성상, 미리 시간을 들여 함정을 준비해두면 그 위험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런데 고위 사제들의 권능으로 떡칠되어 까다롭기 그지없는 곳에 별다른 준비 없이 쳐들어간다?
이것도 그냥 우리 보고 죽으라는 소리지.
“마지막으로 보고 체계 말인데…이건 완전히 틀렸잖아.”
이오나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녀석은 자신이 정기적으로 플라맹이라는 도시에 암호화된 보고서를 편지로 보낸다고 했다.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편협한 찬탈 교단의 보고는 전적으로 권능에 기대 이루어진다는 건 알고 있다.
우선 정신계 마안 소유자 중에서도 엄선된 자들을 본단으로 모으고는, 미리 납치해온 일반인의 정신을 완전히 박살 내 자신의 사역마처럼 조종한다.
완전히 정신을 무너뜨려 자아 없는 인형으로 만든 뒤, 오감을 링크하는 느낌인데.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들은 전 대륙의 지부를 돌아다니며, 지부장들에게 직접 보고를 듣는다고 한다.
당연히 보고를 올린다는 도시 또한 앞서 말한 두 곳처럼 함정인 거겠지.
“이래 놓고 편히 죽길 바라? 교수님! 실력을 보여주세요! 저 거짓말쟁이의 입에서 진실이 나올 때까지 피를 거꾸로 돌려 보는 거예요!”
“엑…얀델 학생은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조금 깬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이오나. 하지만 금세 한쪽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다른 누구도 아니고 얀델 학생이 원한다니 한번 해봐야겠네!”
이오나의 의욕 충만한 모습에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는 지부장.
팔뚝을 걷어 올리는 이오나의 뒤에 숨어, 고개와 중지를 빼꼼 내밀었다.
에우렐리아 대륙에서도 통하는 욕. 보이지도 않을 텐데 창백해졌던 녀석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어떻게…아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새파랗게 어린놈이 우리의 대업을 방해했다고 하더니…! 누구냐! 얀델 네놈은 대체 누구고, 뒤에는 누가 있냔 말이다!”
발악이라도 하듯 빼액빼액 소리를 지르는 녀석.
이제껏 보여준 반응 중에 가장 격한 반응이다. 뭐야 내 중지 때문에 열폭하는 건 아니었잖아?
뭐, 어찌됐든 이 정도로 흔들어 뒀으면 이오나의 심문도 잘 통하겠지.
심문을 재개하려다 말고, 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이오나에게 엄지를 척! 치켜올려 주었다.
그리고는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카를라와 엘리샤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교수님이 마저 심문하는 사이, 우린 집무실이나 뒤져보자.”
“…….”
“…….”
뭐라 할 말은 많은데 차마 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둘.
-으아아악!!
-끄허어어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