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크윽…!”
“너. 내 제자한테 그딴 식으로 눈깔 뜰래?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이제부터 넌 알고있는 모든 걸 내뱉어야 할 거야.”
“흐흐…쿨럭. 찬탈께서 편협한 시선으로 이곳을 보고 계신다. 너는 내게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아아아악!”
녀석의 눈을 으스러뜨린 가시가 연신 꿀렁이며 무언가를 지부장의 안쪽에 주입한다.
그러자 말하다 말고 입에서 거품을 무는 녀석.
이오나가 서늘하다 못해 만지면 베일 것 같은 예리한 눈매로 아까 때렸던 정강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건 내가 정하는 거야. 너도.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눈깔 부라리는 것밖에 없는 너희 신도 아니라. 나, 이오나 프란체스카가 정하는 거라고. 알아들었어?”
“미, 미친년….”
이오나를 욕하고 있긴 하지만, 이전보다는 확연히 기가 꺾인 듯한 목소리.
아니, 사교도를 눈앞에 둔 이오나 왜 이렇게 무섭냐.
H&A에서는 이오나가 진심으로 싸우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질 않아서 잘 몰랐는데….
이런 느낌이었구나.
감탄과 얼떨떨함이 섞인 심정으로 이오나를 바라보고 있던 것도 잠시.
누가 봐도 카리스마 넘치는 잔혹한 뱀파이어에서 그냥 푼수로 돌아온 이오나가 헤실대며 집무실의 문을 가리켰다.
“얀델 학생! 얀델 학생! 조금 전의 비명으로 다른 사교도들이 몰려올 거야! 내가 이놈 심문하는 사이 방해꾼들 좀 상대해줄래?”
“끄응…알겠어요. 이쪽은 맡겨두세요.”
아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겠지.
퇴로는 흡혈의 장막으로 막혔으니 남아있던 모든 사교도와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달려올 것이다.
하지만 여긴 산골의 작은 지부.
아무리 머릿수가 많아도 평신도 아니면 하급 언데드 정도겠지.
그 정도라면 간단하다.
어쩌면 이오나의 심문이 끝나기도 전에 정리가 끝날지도 모르겠네.
문 쪽을 향해 한 걸음 앞장서며 말했다.
“엘리샤. 넌 내 옆에서 같이 놈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있자. 카를라 너는 그사이에 큰 거 한방 부탁할게.”
“좋네요. 저도 놀고만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이번 기회에 당신에게 보여드리죠.”
“기대해도 좋아요 주인님! 지금의 저는 주인님 덕분에 예전보다 조금 더 강해졌으니까요!”
믿음직스러운 대답.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얼어붙은 냉기. 비상하는 창. 관통하라 아이스 스피어.”
쐐애애액-!
스태프 끝에 맺힌 뾰족한 얼음덩어리가 문을 향해 쏘아졌다.
콰직!
“꺄아아아악!”
나무 부서지는 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높은 비명소리.
사교도 토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아이스 스피어!”
쐐애애액-!
스태프 끝에 맺힌 뾰족한 얼음덩어리가 집무실 문을 향해 쏘아졌다.
콰직!
“꺄아아아악!”
나무 부서지는 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높은 비명소리.
이상을 눈치채고 다가오던 사교도 하나가 배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져 있었다.
음…심장을 꿰뚫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문 너머로 마법을 날려서 그런지 좀 빗나갔네.
미안한 마음에 왼손에 쥔 빛나는 사자 단검을 가볍게 던졌다.
마치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레 꿈틀거리는 사교도의 심장에 박힌다.
실제로 누가 잡아당긴 게 맞긴 하지.
염력 마법으로 투척 궤도를 보정했으니까.
단검이 짧게 발광하더니 그대로 축 늘어져 조용해진 녀석.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방음조차 되지 않는 복도에서 저렇게 요란하게 비명을 내질렀으니, 이 지부에 있건 모든 사교도들이 몰려올 터.
다시 한번 염력 마법을 사용해 빛나는 사자 단검을 회수한 뒤. 다음 마법을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두근-
조금씩 커져가는 심장 박동. 그와 비례하듯 고양되어가는 마력. 유사 공명으로 화염 계열 마법이 강화됐다는 증거다.
내 옆에 나란히 선 엘리샤 또한 자신의 머리맡에 원소의 그림자를 띄워둔 채,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달려온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한 순간.
“윈드커터!”
“침입…아아아악!”
바로 준비해둔 마법을 날려 그대로 반 토막을 냈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놈씩 쓰러뜨렸을 뿐.
벌컥!
동시다발적으로 복도의 문이 열리며 싸울 준비를 마친 사교도들이 일제히 이쪽을 향해 적의를 드러낸다.
재빨리 눈으로 놈들을 훑으며 견적을 뽑아냈다.
눈동자가 보라색인 놈이 셋. 초록색인 녀석이 둘. 회색인 녀석이 다섯. 그리고 평범한 검정이나 갈색인 녀석이 나머지 일곱.
“정신계 마안 보유자가 셋, 독쟁이가 둘, 사령술사가 다섯, 나머지는 육체 강화야.”
“제가 견제할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준비해두세요 당신.”
“오케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눈이나 손을 반짝이거나,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사교도 놈들.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정신 방어 포션과, 해독 포션을 꺼내 우리 셋에게 뿌렸다.
마시는 것보다는 효과가 덜하겠지만 잠깐 버티기엔 충분할 터.
엘리샤는 그사이에 자신이 말한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원소의 그림자로 새겨진 물과 바람 속성 마법을 번갈아 가며 마구 퍼부었다.
쉬이익…!
퍼엉!
칼바람이 좁은 복도를 휩쓸고, 원형 톱날 같은 형태를 취한 물이 회전하며 달려드는 놈들의 다리를 노린다.
마안의 영향인지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졌으나…미리 뿌려둔 포션 덕에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머리 조심해!”
“끄아아아악!”
“멍청아! 머리만 신경 쓰다가 다리 날아간다!”
악을 쓰며 어떻게든 엘리샤의 마법 세례를 빠져나오려는 사교도들.
뒤에서는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빠르게 주문을 외는 카를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마력의 흐름이 주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보아 아직 완성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슬슬 공기 중에 퍼진 사교도 놈들의 독이 점막을 아릿하게 자극할 때 쯤.
저 뒤에서 눈을 회색빛이 일렁이며 주변의 모든 언데드들을 불러 모으는 놈들이 보였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동시에 상태창의 칭호를 변경했다.
칭호: 어설픈 트레저 헌터 -> 칭호: 고스트 버스터
언데드 계열을 상대할 때 나름 괜찮은 보너스를 받는 칭호.
약간이지만 확실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준비했던 마법을 해방했다.
“타오르는 폭풍이여. 분노를 노래하라. 템페스트 번!”
빠른 시전을 위해 마법진을 생략했음에도 꽤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응축되는 화염 덩어리.
스태프 끝에 뭉친 두 원소의 정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올올이 풀어지며 거대한 폭풍을 자아냈다.
화르륵.
회오리 형태의 불꽃이 복도 전체를 휩쓸었다.
“크아아아악!”
“편협한 찬탈이시여…!”
“그 자식을 죽이기 전에 죽을 수는….”
공기 중에 섞인 독과 함께, 어찌어찌 엘리샤의 마법을 뚫고 접근해오던 녀석들이 단번에 타올랐다.
괜히 광신도가 아닌 건지 저 화염 폭풍 속에서도 어떻게든 몸을 밀어 넣고 있었지만….
애초에 몸이 녹아내리는데 어떻게 버티겠는가.
결국 달려들던 대부분의 사교도가 두어 걸음 만에 전부 잿더미가 되어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비교적 뒤에 있어 중상을 입는 것으로 끝난 마안쟁이들과, 아예 범위 바깥에 있던 터라 멀쩡한 사령술사 계열뿐.
물론 진짜 사령술사는 아니고 권능으로 비슷한 짓을 흉내 내는 것이지만…어쨌든 시체를 다루며 저주를 흩뿌리는 귀찮은 것들이다.
주변의 언데드를 끌어오는 데 성공했는지, 기껏 나와 엘리샤가 반절이 넘는 사교도를 죽이거나 무력한 것이 무색하게도 복도는 해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음산한 기도문과 함께 저주로 강화된 스켈레톤들이 아군이었던 시체를 짓밟으며 돌진해 온다.
-딱. 따닥.
-궤에에엑…
-그오오…
분명 뼈만 남았을 텐데, 신기하게도 다양한 소리를 내는 녀석들.
저만한 물량이 꾸역꾸역 밀려오면 아무리 나와 엘리샤가 마법을 난사해도 결국 머릿수에서 밀리고 말리라.
좁은 곳에서 싸우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너울은 파도가 되고, 파도가 그 높이를 더해가니. 너는 항거할 수 없는 재앙이요, 바다의 분노로다.”
슬슬 카를라의 마법이 완성될 때가 됐거든.
“차올라라. 불어나라. 그리고 휩쓸어라. …타이달 웨이브!”
시동어를 외치는 것과 동시에, 카를라의 스태프 앞에 복도의 크기에 맞는 큼직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천정부터 바닥, 양쪽 벽을 전부 덮는…어찌 보면 이 기다란 복도의 뚜껑처럼 보이는 푸른 마법진.
살 떨리는 마력과 심장에서 느껴지는 묘한 이끌림을 보아 공명에 마력 과충전까지 때려 박은 중급 마법이 분명하다.
정면을 노려보는 카를라의 눈에서 마력광이 넘실대는 모습에 재빨리 엘리샤와 함께 양옆으로 몸을 던졌다.
그 직후 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양의 물줄기.
콰아아아아——!!
거대한 저수지에 뚫린 구멍이 이러할까.
복도를 빈틈 하나 없이 가득 메운 물이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은 속도로 몰아친다.
이 정신 나간 수압을 버틸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적어도 이곳의 사교도 중에는 하나도 없겠지.
콰아아아아——!!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요란스런 물소리 사이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큿…언제 이런 수준까지….”
입술을 삐죽이며 볼멘소리를 내는 엘리샤.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어린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 나도 비슷한 느낌이겠지.
그렇게 카를라의 마법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물이 역류해 집무실로 넘치려는 순간이 되어서야 그 힘을 다하고 사라졌다.
“…엥?”
그 많던 물이 어디로 사라진 건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바닥에 묻은 약간의 물기와, 아직 쿵쿵 뛰는 심장, 그리고 깔끔하게 쓸려나간 지부의 풍경뿐이었다.
거뭇한 잿더미도, 잘려 나간 팔다리도, 기분 나쁜 기도 소리도. 쓸데없이 리얼한 눈동자 모형의 신상도.
모든 것이 카를라의 마법에 쓸려나가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무슨 뚫어뻥도 아니고….
아마 으스러진 잔해들은 여기서 가장 멀리 떨어진 끝부분.
그러니까 이오나가 미리 펼쳐둔 흡혈의 장막이 있는 산장 부근에 모여있겠지.
설령 물줄기 자체를 버텨냈다 하더라도, 잔해에 뒤섞여 곤죽이 되는 것도 모자라, 흡혈의 장막에 생명력을 빨리기까지 했으리라.
생존자는 없다고 봐도 되겠지.
이 모든 게 마법 하나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공명을 쓸 수 있게 되면 나도 이런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걸까?